112일간의 엄마
시미즈 켄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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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일간의 엄마'.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혹시 다른 사람의 아이를 일정 기간 동안 대신 맡아서 보살펴주는 위탁모 경험을 한 후 그때의 경험을 책으로 썼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저자가 112일 동안 위탁모로서 갓난아기를 돌보며 힘들었던 점과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기록하여 책으로 출간하지나 않았을까 엉뚱한 추측을 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이 책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다. 적어도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책을 펼치자 목차에 이어 표지 사진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앞으로 펼쳐질 책의 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읽자마자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고민에 직면했다. 과연 나는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지, 읽지도 못할 책이라면 애초부터 읽지 않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괜한 궁금증이나 미련을 남기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 겨우 112일간의 엄마로 살았던 젊은 여인의 이야기를 눈물을 참아가며 읽어낼 자신이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심한 치료 중에도, 주변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사랑스러운 미소로 온화하게 지내시던 나오 씨의 모습과 온 힘을 다해 함께 싸우는 남편분의 자세는 우리 의료 종사자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병세를 묻는 일 없이 그저 남편인 시미즈 씨를 따르던 모습, 그리고 아드님을 예뻐하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도 나오 씨는 남편분을 믿으셨습니다.' (p.100~p.101)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나는 수시로 책을 덮었고, 그에 비례하여 책을 다시 펼칠 용기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맘 잡고 읽으면 두어 시간이면 족할 정도의 얇디얇은 책을 몇 쪽 읽지도 않고 덮어버린 채 다시 펼치지도 않고 며칠씩이나 들고만 다닌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독서에 속도를 내지 못했고, 이따금 아무도 몰래 눈물을 훔치거나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어렴풋한 글씨를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그리고 2015년 1월 1일, 다케토미 섬. 아들에게는 첫 설. 우리 셋이 보내는 첫 설이기도 했다. 아, 새해를 맞이했어. 나는 당장에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고마워, 나오. 그리고 아들, 고맙다. 네가 있어서 엄마도 아빠도 힘을 낼 수 있어. 정말, 고맙다.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그 자리에는 분명 행복이 있었다. 우리 세 식구의 행복이 있었다. 아직 질 수 없어. 아직은 아냐, 아직은." (p.122)

 

이 책은 사실 요미우리 TV ten.」의 메인 캐스터로 유명한 방송인 시미즈 켄이 쓴 실화 에세이이다. 담당 스타일리스트였던 나오 씨와 2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시미즈 켄은 결혼 후 1년쯤 지난 뒤 나오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다. 아기가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의 절정기로 치닫던 그즈음, 나오의 유방암 발병 소식이 전해진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이번 출산은 포기하고 치료에 전념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나오는 유방절제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으며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 후 본격적으로 이뤄진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정말 괜찮아?” 나는 수도 없이 나오에게 물었다. 괜찮아 보인다면 그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봐도 괜찮지 않기 때문에 괜찮냐고 물었던 것인데 나오의 대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응, 괜찮아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나오가 지닌 삶의 방식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에게는 더더욱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울지 않는다. 그래서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게 나오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함께 운 적은 없었다. 이것이 우리 부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땠을까, 실제의 나오는. 두려웠으리라. 힘들었으리라. 울부짖고 싶었으리라. 그렇다면 함께 울고, 분노하고, 때로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주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함께, 무섭다고 소리쳤어야 하는 것 아닐까. (p.177)

 

우리는 종종 죽음이라는 장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곤 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운명처럼 짊어진 한계라고는 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은 매번 삶의 의미를 퇴색시키곤 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명언은 가족이 모두 건재할 때나 던질 수 있는 헛된 맹세처럼 들린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고인과 함께 했던 삶의 추억들이 지난가을 책갈피에 끼워둔 단풍잎처럼 습기를 잃고 바삭바삭 말라갈 즈음이면 '그래도 당신이 있어 행복했었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가만가만 되뇌게 된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희생정신을 배우고 희생과 배려야말로 영혼 성장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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