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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내게 있었던 시간들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논바닥에 모판이 내던져지듯 말이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이따금 선물처럼 찾아오는 막간의 여유 시간이 무척이나 귀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 시간에 나는 문득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개미처럼 일만 하며 바쁘게 살아도, 베짱이처럼 삶을 그저 즐기기만 해도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게 죽음이라는 생각. 그것은 어쩌면 탄생과 더불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운명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삶 전체를 통해 우리는 대개 죽음을 그저 내가 아닌 타인의 문제로만 인식하거나 자신의 미래에 있을 일이지만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낭만의 시기'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시각각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실존의 시기'를 체험하게 된다. 물론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죽을 때까지 '낭만의 시기'를 살다 가거나 자신에게 죽음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인 듯 느껴지지만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둔 채 살아가는 '낭만적 실존의 시기'를 체험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낭만의 시기'에서 '실존의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그가 이승의 마지막 잠을 혼자서 청했던 그 시각, 나는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혼자서 마지막 글을 수정해 컴퓨터에 다시 저장하고 봉화산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던 그 시각, 나는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보를 보고 누군가 전화를 하기 전까지, 나는 그가 떠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p.345)
그가 컴퓨터에 저장했다는 유서에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죽음을 직전에 둔 사람이 마치 넘지 못할 높은 벽처럼 마주했을 '운명'. '운명'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개인의 종교, 철학, 성장 배경이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낭만의 시기'에서 '실존의 시기'로 전환되는 그 순간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마치 운명처럼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부모님이나 배우자 혹은 가깝게 지냈던 친구나 존경하던 누군가의 죽음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그리고 내 삶에서 철없고 행복했던 '낭만의 시기'가 이미 저물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는 사실 노무현 당신이 아닌 유시민 작가에 의해 정리되고 노무현 재단에 의해 출간된 책이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전기의 형식으로 또는 자서전의 형식으로 정리한다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마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일대기를 전기가 아닌 자서전의 형식으로 정리했다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마감하는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누구의 발상이었든 '지극히 유시민답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말이다.
"퇴임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을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가치 있는 자서전은 거짓과 꾸밈없이 진솔하게 써야 하는데,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관계를 맺었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현업에 있는 상황이라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더 많이 흐른 후에야 자서전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p.7)
훗날로 미루었던 자서전의 집필은 끝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자서전을 써야 할 당신이 여기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은 자서전을 쓰지 못한 일 개인의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 듯하다. 당신이 떠난 지 벌써 십일 년. 당신의 부재로 인해 당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 각자의 삶을 '낭만의 시기'에서 '실존의 시기'로 이끌지 않았을까. 그리고 퇴임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당신을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야 만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던 검찰과 국정원, 스스로 기레기를 자처하던 언론들... '실존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5월은 당신의 부재로 인해 매년 대상도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슬픔을 더해 가고 있다. 올해도 분노와 슬픔의 계절이 그렇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