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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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고향을 묻는 이유는 단순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자는 이유,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는 듯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영남과 호남으로 대표되는 극한적 대립은 말할 것도 없고, 실재하는 전쟁에 의해 70여 년의 세월 동안 분단국가로 살아온 또 다른 이름의 고향, 남한과 북한. 그리고 실향민이라는 이름의 디아스포라. 어쩌면 그것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모국에서 살아가면서도 마음속의 모국을 잃어버린, 간절히 가고 싶어도 다시는 갈 수조차 없는, 모국을 떠나온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못한, 그야말로 디아스포라가 아니지만 가장 비극적인 디아스포라이기도 한 그 이름은 실향민. 나는 몇 년 전 속초의 아바이마을에서 만난 주름살 가득했던 어느 노인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

 

"복잡한 문제군요! 어디서 왔냐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부터 따져봐야 해요. 분만실이 위치한 언덕의 지리적인 위치를 암시하는지, 마지막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나라의 국경을 암시하는지? 부모님 혈통인지? 유전자, 조상, 방언인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이 창조물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예요! 아니면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이랄 수 있어요.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 말이죠." (p.44)

 

우리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보스니아 내전을 기억한다. 19924월부터 199512월까지 있었던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일어난 국제적인 무력 충돌 말이다. 치열했던 전투와 무차별적인 도시 폭격, 인종 청소, 집단 강간과 대학살 등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끔찍했던 전쟁. 소설 <출신>은 그 오래전 기억과 맞닿은 채 현재와 미래가 뒤섞인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면서 지금은 독일인으로 살고 있는 저자의 현재가 그러한 것처럼. 그리고 장담할 수 없는 미래가 또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스니아 내전이 터졌을 때 작가는 부모님과 함께 독일로 이주했다. 작가는 치매를 앓다가 2년 전 세상을 뜬 자신의 할머니를 회상하며 '우리 할머니 크리스티나가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할 때 나는 기억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던 그 시점에 작가는 난민 신분에서 벗어나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자필 이력서를 쓰면서 자신과 연관된 오래전 기억을 수집해야만 했던 것인데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작업인 동시에 지구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모국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작은 추도이자 헌사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연속성 위에 드문드문 공란을 남겨둔 채 파편처럼 이어지는 기억. 작가는 전쟁이 발발하자 어머니와 함께 세르비아에서 헝가리로, 크로아티아를 넘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로 도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을 세르비아 국경까지 무사히 인도한 후 비셰그라드로 돌아갔다. 그렇게 반년 동안 할머니를 돌보셨던 아버지. 그 후 아버지도 독일행을 택했지만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신분은 모두 잃었다. 조국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정치학자였던 어머니도, 경영학자였던 아버지의 신분도 한낱 과거로 남았을 뿐 독일에서 어머니는 큰 세탁 공장에서 뜨거운 수건에 묻혀 살았고, 독일어를 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공사판을 전전할 뿐이었다. 이마저도 불안불안하게 이어오던 부모님은 인종 청소가 자행되는 비셰그라드로의 추방을 염려하여 1998년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했다. 그리고 미국 연금 생활자 신분이 된 지금 부모님은 크로아티아에 살고 있다.

 

작가 역시 독일에서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 작가로서의 삶을 끝없이 '증명'해야만 했고, 이방인인 자신으로 인해 토착민인 주변의 독일인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모든 규칙'을 상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의 부당한 대우와 편견을 통해 가족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부드럽게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출신'으로 인해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게 되었던 셈이다. 그리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로 인해 비셰그라드에서 그녀가 누렸던 행복했던 삶을 기억 속에 저장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비셰그라드 출신이라는 이유가 부당한 차별과 불공평한 대우의 시발점이었다면 할머니에게는 행복의 원천이자 지금의 불행을 잊게 하는 행복의 방부제였던 셈이다.

 

'한 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것''출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처럼 전개되는 소설 속에서 '출신'은 어느새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다. 과거에 대한 회상과 주변 인물의 일화가 모여, 그 모든 과거와 현재가 끝없이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출신'이 형성되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끝없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속초에서 만난 북한 출신의 어느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의 과거는 오롯이 과거 자체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내가 쓰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나의 반항은 일종의 적응이었다.' 독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방식에 걸었던 기대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 그런 소속감과 함께 우리의 가장 작은 공통분모는 '충분하다'였다." (p.295)

 

지나온 삶이 한 번 지운 일기장처럼 희미해지는 날이면 나는 아바이마을에서 만났던 어느 노인을 떠올리곤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통분모로 그와 나의 희미한 기억들이 위치도 정해지지 않은 이 땅의 어느 곳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저 든든해지곤 했다. 나의 기억이 그에게도 닿아 나처럼 든든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다. 할머니의 행복했던 기억이 작가에게 든든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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