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평점 :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잔인하다. 그것은 상상과 체험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디테일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현실은 소설보다 더 공포스러우며 견디기 힘든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을 주관하는 신은 감정이 없는 반면 소설을 쓰는 인간은 다분히 감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예컨대 자신이 상상하는 소설 속 한 장면을 글로 표현할 때, '이 정도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혹은 '이것보다 더 나아가면 과장된 거 아닐까?' 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뒤로 한 발 물러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의 가치판단이나 도덕적 양심, 혹은 신의 자비와는 무관하게 진행되곤 한다.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선 대개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게 일반적이지만 신은 어떠한 순간에서도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쁨이나 행복, 또는 행운과 같은 긍정적인 장면은 현실보다 소설이 더 리얼하고 과장되게 마련이다. 현실에서 인간은 행복한 순간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으며 행복하다고 느끼는 찰나적인 그 순간은 너무나 빨리 흐르는 까닭에 현실에서 우리는 그 순간을 미처 감지할 수 없을뿐더러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행복했던 그 순간을 흐릿하게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행복은 언제나 과거형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서의 행복은 마치 우리의 바람을 모두 옮겨 놓은 듯 길고 과장되게 마련이며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유혹하면서 현실로 되돌리는 순간을 한없이 늦추곤 한다.
"그는 살인을 즐겼다. 세상에서는 비록 가면을 쓰고 다녀야 할지라도 스스로까지 속일 마음은 없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왜인지 설명할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그는 죽음에 무척 매료됐다. 죽음의 형태와 본질과 가능성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연구하고 이론을 세우는 데 흠뻑 빠진 그는 자신을 죽음의 전령이자 신의 부름을 받은 사형집행자라고 여겼다. 살인은 많은 면에서 섹스보다 더 짜릿했다." (p.354)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딘 쿤츠의 초기작인 <어둠의 눈>은 외아들 대니를 사고로 잃고 힘들어하는 크리스티나 에번스(티나)가 겪은 4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들이 죽은 지 1년이 넘었지만 길거리에서 아들 또래의 남자아이만 보아도 대니의 얼굴이 겹쳐 보이고, 시도 때도 없이 대니를 떠올리게 되고, 대니가 살아 있는 꿈을 수시로 꾸곤 했다. 12월 30일 화요일 새벽에도 다르지 않았다. 대니를 낳고도 쇼 댄서로 전전했던 티나는 5년 전 안무가로 전환했다. 그리고 대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만 달러 예산의 쇼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새로운 쇼의 이름은 <매직!>. 그해 12월 30일은 <매직!>의 VIP 시사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아들 대니가 살아 있는 심란한 꿈을 꾸던 티나는 집 안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큰 소리에 잠이 깨고 만다. 그것은 어쩌면 아들을 잃은 상실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던 요즘 <매직!>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걱정하느라 불안감이 커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직!>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티나가 아들 대니의 방에서 겪었던 이상한 경험은 청소를 도와주는 비비언에게도 이어진다. 멀쩡하던 옷장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가 하면 손도 대지 않은 장난감이 스스로 움직이고 기온이 떨어진 방은 성에가 끼기도 한다. 그리고 대니의 방 칠판에 누군가 써 놓은 '죽지 않았어!'라는 글씨. 티나는 그것이 이혼한 전 남편 마이클의 짓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집안 전체의 자물쇠를 모두 바꾼 후에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공포에 휩싸인 티나를 돕기 위해 <매직!> 시사회장에서 만났던 엘리엇이 나타난다. 사실 스카우트 캠프를 떠났던 대니는 캠프 버스가 전복되는 바람에 버스에 탔던 전원이 사망하는 참변을 겪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시신의 훼손이 심했던 대니는 시신 확인 절차도 없이 묻히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티나와 마이클은 아들의 사망 원이도 제대로 모른 채 아들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대니의 방에서 발생한 이상한 일을 겪은 후 티나는 무덤을 열어 대니의 죽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변호사인 엘리엇을 향한 누군가의 협박이 이어지고, 대니에게 있었던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한 티나와 엘리엇의 분투가 이어지는데...
"점차 좁아지는 지역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차를 몰자 위풍당당한 숲이 그들에게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티나는 그 압도감에 경외심을 느끼는 동시에 불안했다. 이 깊은 산속에 대니와 다른 스카우트 단원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 신비하고 불안할 정도로 원시적인 숲은 경외감과 두려움을 자아냈으리라." (p.383)
아들 대니를 향한 티나의 헌신적인 사랑과 소시민의 희생쯤이야 눈을 질끈 감고 전개되는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의와 이에 맞서는 소시민의 용기, 그리고 남녀 간의 진실한 사랑 등 어쩌면 한 편의 영화에나 담길 듯한 여러 요소들이 한 권의 소설에 절묘하게 버무려진 이 소설은 작위적인 느낌마저 진하게 풍긴다는 평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의 사고가 죽음으로 은폐되었던 어두운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인간의 사랑과 용기 그리고 불의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단면들. 소설은 늘 그렇듯 선과 악의 구도 속에 감춰졌던 진실은 언젠가 꼭 밝혀지고야 만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에 우리가 계속하여 빠져들고 몰입하는 까닭은 아마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대립을 끝없이 성찰하고 다스리려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내면의 탐욕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게 현실,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잔인하고 공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