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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라지지 않는 여름 1~2 - 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어떤 시점이 되면 오늘 뭘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하루를 흘려보내게 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고, 새롭게 주어진 하루를 도대체 뭘 하면서 그 긴 시간을 채워나갈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도덕이나 관습과는 거리가 먼 다소 엉뚱한 생각들이 우리를 지배했던 날들이 더러 있게 마련이었고, 삶의 오점이나 흠은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아무튼 우리는 럭비공과도 같은 그 시절을 통과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이라는 큰 자산을 얻는 대신에 복구할 수 없는 흠을 남기기도 하고, 그저 하나의 작은 오점에 불과한 여러 경험들을 두루 겪어보기도 한다.
세상에 흠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마는 나 역시 지난 삶을 이따금 돌이켜보면 인생의 어떤 부분은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끼게도 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안에서는 밖이 훤히 보이고 밖에서는 안을 조금도 볼 수 없는 원웨이글라스 방식의 화장실에서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한 부끄러움이랄까. 설령 누가 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자신의 영혼을 투명 외피로 겨우 감싼 듯한, 그리하여 누군가 내 영혼의 검은 속내를 속속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듯한 두려움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을 누군가에게 스스로 털어놓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질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것은 대개 삶의 방향이나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십대의 어린 시절에 만들어지곤 한다.
미국 작가 에밀리 M. 댄포스가 쓴 <사라지지 않는 여름 1, 2>은 십대 소녀 캐머런 포스트의 성장 과정을 담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묘사와 표현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동성애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아주 조심스럽게, 한편으로는 섬세하게 다룸으로써 우리가 십대 시절에 형성했을 성(性) 의식과 그를 둘러싼 알 수 없는 죄의식, 동성애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방적인 편견과 무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시나브로 대다수의 이성애자들이 소수의 동성애자들을 향해 얼마나 가혹했던가 반성하게 되고, 자신의 십대 시절을 회상하면서 지나온 삶을 반추하기도 한다.
"그때 나는 리디아가 어째서 나의 망할 발달주기가 엉망이 되었는지, 어째서 내가 죄가 담긴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에 오게 되었는지 설명할 유의미한 무언가를 알아내기 직전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2권 p.228)
소설은 몬태나주 동부의 작은 마을 마일스시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퀘이크 호수로 캠핑 여행을 떠났고, 캐머런을 돌봐주러 할머니가 오셨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아이린과 장난스레 키스를 했던 날 캠핑을 떠났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심으로써 아이린과의 일은 이제 아무도 모른다는 안도감에 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캐머런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고, 부모님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큰 목장을 운영하던 아이린네 부모님은 아이린을 코네티컷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냈고, 캐머런은 그렇게 아이린과 헤어졌다.
부모님의 사망 이후 승무원이었던 루스 이모가 할머니와 함께 캐머런을 돌보기 위해 이사를 왔다. 아이린과 헤어진 후 중학생이 된 캐머런은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시합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하던 린지와 사귀면서 캐머런은 레즈비언 문화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된다. 방학 동안 수영 연습을 함께 했던 린지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혁명적이며 대항문화적인 것'이라고 가르쳐준 상대였고, 그녀가 사는 시애틀로 떠난 후에도 꾸준히 편지를 쓰거나 선물과 믹스 테이프를 보내오곤 했다.
고등학생이 된 캐머런은 육상팀에 들어갔고, 생물학 수업을 같이 듣던 콜리에게 급격히 빠져들었다. 게다가 콜리와 그 애 엄마가 캐머런과 루스 이모가 다니는 찬양의 문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콜리가 커스터고등학교에서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농장에서 통학을 하다가 마일스시티 시내에 아파트를 얻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캐머런은 콜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기회를 엿본다. 아파트에서 격렬한 키스를 나눈 뒤에 털어놓은 캐머런의 고백에 콜리는 잘못된 거라며 부정한다. 콜리와의 일이 발각된 후 캐머런은 결국 릭 목사가 운영하는 동성애 전환 치료 시설인 '하나님의 약속 기독 사도 프로그램'에 보내진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그곳에서 캐머런은 다른 입소생들의 다양한 상처와 욕망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입소생 중 한 명이 자해를 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믿음이나 자기부정을 통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어른들의 신념이 잘못되었음을 캐머런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캐머런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같은 입소생인 애덤, 제인과 함께...
"그러나 아침이 되어도 나는 죄를 극복했다거나 하나님께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만 내가 절제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달리기나 수영을 하면서 나 자신을 극복했을 때처럼 남몰래 뿌듯할 뿐이었다. 절제나 극기는 사람들을 중독시키기도 한다. 마치 자꾸만 절제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다른 사람보다 정결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리디아가 집착하는 그 모든 규칙을 따르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며, 시간이 흐르면 따라야 할 규칙을 점점 더 많이 만들게 되고 급기야는 성경 구절을 통해 이를 정당화하는 데 이르게 된다." (2권, p.248)
본연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고 혐오하며, 끊임없는 죄책감을 통하여 가능하지도 않은 믿음을 주입한다는 건 어쩌면 그들에게 크나큰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들로 하여금 평생을 죄책감과 자기부정 속에서 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직접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동성애자는 단지 그들의 의지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기성세대의 어리석은 믿음을 목격하곤 한다. 그와 같은 믿음은 동성애자들을 향한 포용이나 배려보다는 날 선 비난이나 혐오 혹은 배척이나 차별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나는 다만 운이 좋아서 이성애자라는 주류에 속했을 뿐 어떤 노력의 산물로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다수 이성애자들이 자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코로나19의 확산이 특정 종교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특정 종교의 잘못된 믿음이, 기성세대의 무지가, 그리고 우리 자신의 비양심이 누군가를 향해 보이지 않는 칼날을 휘두르게 된다는 사실을 가슴 절절히 깨닫게 된다.
인간은 평생을 비난과 자기혐오 속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결코 그렇게 명령한 적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자신을 부정하며 평생을 살아가도록 누군가에게 강요한다는 건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자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오늘처럼 봄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면 타인에 대한 혐오와 비난을 일삼는 몇몇 인간의 잘못을 꾸짖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