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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100호 - 2019.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평점 :
고집스러운 계절을 살아내자면 때로는 나 죽었소 하고 우직하게 버티는 것도 필요할 터, 겨울은 우리에게 그런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 겨울은 날씨의 변화가 어찌나 심하던지 우직하게 버티는 것은 고사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탓에 발 빠르게 적응하느라 진땀이 날 정도이니 인내를 배워야 할 계절에 도리어 변덕이 팥죽 끓듯 하는 기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게 이렇듯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요동치는 걸 보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한낱 뜬구름 잡기에 그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간 문학동네(2019년 가을호)>에 실린 강화길의 소설 '음복(飮福)'은 우리가 속한 사회의 전통이나 문화가 구성원을 얼마나 옥죄고 끊임없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단편소설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날씨라는 외부요인과는 확연히 다른,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남녀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문화라는 이유로,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민낯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2020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선명한 색채로 각인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이렇다 할 친절한 설명도 한 줄 없는데 독자들은 마치 일간지 1면에 실린 메인 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소설의 구도와 주제를 선명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더 이상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말하자면 군더더기가 없는 명징한 문장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 컷의 사진과 같은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세나)'는 7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한 새색시이다. 결혼 후 첫 시댁 제사에 참석한 '나'와 '남편(정우)'. '나'는 시조부의 제사상에 올려진 낯선 음식과 '나'를 향한 시고모의 날 선 감정의 근원을 추적한다. 20년 넘게 간호사로 근무했던 시어머니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고, 그에 반해 말씀이 없으신 시아버지, 치매를 앓고 있는 시조모 등 시고모의 입장에서 새 식구인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질 만한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제사가 끝나고 끝나고 음복을 하는 자리에서 듣게 된 시조모의 한마디로 인해 '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공부도 잘하는 시고모의 딸 정원이 약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한다고 했을 때의 기억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고 있었던 시조모. "야, 너 정원이 재수시키지 마라. 주제를 알아야지. 지가 무슨 약대를 간다고."
그랬다. 철저한 가부장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시댁은 남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낯선 음식을 제사상에 올릴 수도 있고, 남편의 기가 꺾일까봐 또래의 여자 사촌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었다. 남편(정우)을 향한 시고모의 적대감은 고스란히 내게 쏟아졌고, 남자라는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체득한 특권을 마음껏 누려온 남편은 타인의 눈치를 보았던 적도, 그럴 필요도 느껴보지 못했던 까닭에 고모의 차가운 시선도 감지하지 못한 채 그토록 해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감정쯤이야 몰라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 권력, 우리는 그와 같은 무지를 '선택적 무지'라 부른다. 가정 내에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무지한 권력자와 생존을 위해 언제나 권력자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피지배자의 삶은 어느 한 대에서 그치지 않고 끝없이 대물림된다.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가정 내에서의 권력은 여전히 남자에게 쏠려 있다. 그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그와 같은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 '선택적 무지'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폐습이 지속되는 이유를 남성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일정 부분 여성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듯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혹은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지 않는 한 이와 같은 불평등 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도 아닌데 성별에 의해 어떤 천부적 특권을 누린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게 아닌가.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잘못을 깨닫는 데서 출발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