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참선 1~2 세트 - 전2권 참선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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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을 좋아한다. 영혼마저 서늘해지는 듯한 그 시간에 나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산 위 체육공원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맑아진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일 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찬물에 샤워를 한다.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일련의 절차들을 나는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라도 하면 남보다 예민한 나의 성향이 조금쯤 무뎌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일본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가 말했던 둔감력이 내게는 아주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그친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이자 어떻게든 개선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둔감, 그것은 바로 본래의 재능을 더 크게 꽃 피우는 최대의 원동력이다."

 

테오도르 준 박이 쓴 <참선 1, 2>을 읽으면서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하게 예민한 성향을 타고 태어났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민하다는 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일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일이며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민하다는 건 자신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낼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며, 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 역시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예민함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자신에게 끌리는 예술에 심취하거나 요가든, 명상이든, 혹은 참선이든 자신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거나. 이런 까닭에 선천적으로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은 예술가가 되거나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고 나는 믿는다.

 

"왜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 왜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지 못할까? 인생의 소소한 기쁨들에 감사하며, 피할 수 없는 짐들은 기꺼이 짊어지고, 때때로 발생하는 불편함과 충격을 견디면서 말이다. 세상의 무의미함과 만사의 덧없음을 무심히 넘기면 좋으련만 왜 나는 더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그토록 확신했을까?" (참선 1, p.124)

 

<참선>을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인간의 자기 고백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비록 저자와 나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겠지만 저자가 젊은 시절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던 인생에 관한 숱한 질문들을 나 역시 끝도 없이 묻고 부딪쳐왔던 까닭에 저자의 고백이 예사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던 저자가 일신의 영달을 뒤로한 채 송담 스님의 시자가 되어 '환산'이라는 법명을 받고 30여 년의 출가생활을 했다는 그가 2017년 환속하여 다시 테오도르 준 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면서 저자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수행 과정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확연히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반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들을 어리숙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욕에 반응하지 않아서 때로는 사회화가 덜 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멸시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경쟁심과 불안감으로 가득할 때가 많다." (참선 2, p.184)

 

나도 학창 시절 인연이 닿은 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웠던 적이 있다. 수행의 목적이 아니라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스님의 말씀에 혹해서 아주 잠깐 용맹정진에 든 스님들처럼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결기에 차서 참선에 임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자 참선을 행하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부터는 숫제 참선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이미 깨달음을 얻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참선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에서 저자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용화사를 제 발로 찾아와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과 수행자로 살면서 저자가 겪었던 고뇌와 갈등, 참선의 원리와 방법, 참선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다. 2'참선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에서 저자는 속세와 떨어져 살았던 자신이 송담 스님의 조언에 따라 TV에 출연하고 참선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참선의 혜택과 효능에 대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 >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힘들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내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스님을 생각했다. 나는 비록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로 살고 있지만 종교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 동시대를 사는 인생의 도반으로 스님은 내게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스님이 내게 들려주었던 말이 있다. "수도자는 삶 전체를 탐하는 자요, 속세의 인간은 삶의 순간순간을 탐하는 자이다. 탐하는 대상은 다를지언정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참선>을 읽고 멀리 있는 스님 생각을 했던 나는 내일 아침 오랜만에 참선에 들지도 모르겠다.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고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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