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 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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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에 시작된 비는 하루가 지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1월 상순의 일 강수량으로는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 물안개인지, 는개인지 뿌옇게 변한 하늘에서 종일 그치지 않고 비가 내렸다. 온화한 날씨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소란스럽지 않은 비가 말이다. 이렇게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리는 날엔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내가 그를 만났던 건 지난해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그는 난방도 잘 되지 않는 비늘하우스 안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남자 혼자 하는 살림이야 늘 그렇듯 옹색하기 그지없는 것일 테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는 듯 가재도구며 물건들을 하우스 가장자리를 따라 일렬로 줄을 맞춰 정리 정돈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말하자면 그런 티가 났을 뿐 처음 방문한 나의 눈에는 가지런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는 비가 내렸고, 흙투성이가 된 그의 반려견이 겅중겅중 뛰는 통에 잠자리로 마련한 하우스 안의 장판 위에는 온통 개의 발자국으로 가득했고 손님이랍시고 찾은 내가 좁은 엉덩이 하나 마음 놓고 내려놓을 자리는 도무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먹던 밥과 반찬을 한쪽으로 치우는 동시에 반려견의 목줄을 채우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땟국에 전 걸레를 들어 미안할 정도로 여러 번 걸레질을 한 후 비로소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남양주에 살다가 귀향을 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다는 그는 평생을 건설회사에서 일했다고 했다. 시골 생활을 꺼리는 부인은 어쩔 수 없이 남양주의 아파트에 살라고 하고 혈혈단신으로 귀향을 결심했다는 그는 슬하에 일남일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했다. 장성을 하여 제 앞가림을 하는 자식들은 아버지의 결심에 그저 시큰둥할 뿐 별다른 의견은 내지 않았다고도 했다. 비닐하우스를 때리는 빗소리가 종일 이어졌다. 자신만의 비밀을 끝내 말하지 않던 그는 승진을 위해 영어 공부를 십 년, 이십 년 하다 보니 어느새 벌써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나이가 되었더라며 시골에 내려와서 생각해보니 그 오랜 세월 동안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영어 공부에 왜 그렇게 죽자 사자 매달렸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더라며 쓰게 웃었다.

 

그의 어두운 비닐하우스 한 귀퉁이에서 발견했던 책이 <오은영의 화해>였다. 책의 내용을 알 수 없었던 나는 책에 얽힌 그의 사연을 끝내 묻지 못했지만 정년 퇴임을 하기 전까지 부엌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그가 누구의 도움도 기댈 수 없는 시골에서 몇 개월 동안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언급할 때마다 얼굴에 언뜻언뜻 비치던 복잡한 심경을 객인 나에게도 결코 숨기지 못했다. 어쩌면 온종일 내리던 가을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일을 잘 살아가려면 오늘이 끝나기 전 ''를 용서하세요. '' 마음의 불씨를 끄는 것이 용서입니다. 오늘 생겨난 불씨를 오늘 그냥 꺼버리세요. 그 작은 불씨를 끄지 않으면, 불씨는 어느 틈에 불길이 되어 당신 마음의 집을 다 태워버릴지도 모릅니다." (p.318)

 

비가 시작된 어제부터 <오은영의 화해>를 읽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삶을 마감하지 않는 한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우리는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겉으로는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을 원망하고, 진심이 아닌 이런저런 말들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는 어쩌면 인간의 불완전한 면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가 아는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될 수 없는 까닭에 이따금 실수를 하고,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돌보지 않은 채 냉정하게 뒤돌아섰던 존재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설령 부모이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이거나, 존경하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너무 힘든 것 잘 알아요. 충분히 지쳐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아주 조금만 힘을 내어 보세요. 지금은 상처 받았던 그 때가 아닙니다. 지금의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상처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은 그때와 달라요." (p.177)

 

우리가 스스로도 몰랐던 아픔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부모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상처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받았던 잘못된 시선이나 주체 의식을 가지고 평생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까닭에 한없이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자신과는 영원히 화해하지 못한 채 아까운 생을 허비하는 건 아닌지 저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진심 어린 충고에 이따금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에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큰 슬픔이 동반되는 자책이나 회한은 어떤 위로의 말로도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가슴에 생긴 커다란 구멍이 가벼운 위로 몇 마디로 채워질 리 없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언뜻언뜻 생각나는 사람. 존재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슬픔이 되살아나는 그런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처럼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을 낳고, 회한은 또 다른 회한으로 이어진다. 남양주에 살았다던 어느 귀농인의 얼굴이 빗줄기 속으로 그저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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