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언어 - 더없이 꼼꼼하고 너무나 사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어 500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도젠 히로코 엮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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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작가의 이름만 들어가도 기본 판매량은 채울 수 있는 작가가 있다. 국내의 작가 중에도 그런 작가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탓인지 아니면 작가의 이름만으로는 뭔가 2% 부족하다고 느끼는 탓인지 책의 제목에 국내 작가의 이름을 끼워 넣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외국 작가의 이름은 심심찮게 보게 된다. 헤밍웨이나 마크 트웨인 등 미국 작가는 물론 코넌 도일이나 생텍쥐페리 등 서구의 작가들은 물론 하루키와 같은 일본 작가도 있다. 그중에서도 호불호가 너무도 명확하게 갈리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이름만으로도 하루키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일본에서는 가와카미 미에코, 오가와 요코·혼다 다카요시, 영화감독 신카이 마코토·뮤지션 스가 시카오 등이, 프랑스에서는 아멜리 노통브·장-필리프 투생, 크리스틴 몬탈베티 등이 하루키의 영향을 받은 작가로 알려졌고, '무라카미언(Murakamian)'이라고도 불린다. 타이완의 우밍이, 한국의 김연수와 편혜영 등을 '무라카미 칠드런(Murakami Children)'이라고 부를 수 있다." (p.5)

 

나는 그 외에도 하루키의 '덕후'를 한 서너 명쯤은 더 말할 수도 있다. 임경선 작가도 내가 아는 하루키 '덕후' 중 한 명이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임경선 작가의 책은 대부분 소장하거나 읽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눈치챘겠지만 이쯤에서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 역시 하루키의 '덕후'임을 밝힌다. 하루키의 작품이란 작품은 모두 읽었을 뿐만 아니라 딱히 읽을 만한 책이 없을라치면 전에 읽었던 하루키의 작품 중 한 권을 멈칫대거나 주춤거리지 않고 꺼내 읽기도 한다. 그리고 마치 처음 펼쳐보는 책을 대하듯 쉽게 빠져들곤 한다.

 

나카무라 구니오가 쓴 <하루키의 언어>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출간된 책이며, 저자 역시 하루키 팬들이 즐겨 찾는 유명 북카페 '로쿠지겐'의 대표인 걸 보면 하루키 '덕후'라 아니할 수 없다. 나카무라 구니오는 책을 쓰고 삽화를 그렸으며 '로쿠지겐'의 운영자이자 편집자인 도젠 히로코에 의해 편집된 이 책은 하루키만 쓸 수 있는 언어를 통해 하루키의 내면을 추적하는 하루키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다.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최근에 나온 에세이까지 방대한 하루키 작품 세계에서 500개의 키워드를 뽑아 하루키 언어 지도를 완성한 셈이다.

 

하루키 작품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 저자의 일상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옮겨진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저자의 분신이 소설이라는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느낌은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각각의 인물이 입고 있는 옷, 듣고 있는 음악, 타고 다니는 차, 먹고 마시는 음식 등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소설 속에서 세밀하게 재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구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하루키의 작품은 그와 같은 모든 조건이 독자의 구미에 맞게 정확히 갖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키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는 건 분명 알았고, 그의 소설도 좋아했다. 그렇긴 해도 왜 이토록 정신없이 쫓겨 다니게 된 걸까? 매일같이 걸려 오는 취재 전화, 하루키 팬들의 문의, TV나 잡지 인터뷰 의뢰, 이러려던 건 아닌데……. 애당초 나는 문학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 (p.684)

 

그렇다고 하루키스트(무라카미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루키가 좋아하는 것들 대부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재즈 음악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심취하는 편은 아니고, 커트 보니것을 좋아하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여러 번 읽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루키가 빚어내는 하루키 월드의 다양한 소품과 주인공의 취향이 그닥 싫지 않은 걸 보면 하루키에게는 독자들을 유혹하는 다양한 매력이 숨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가 생애에서 가장 영향을 받은 소설.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에 쓴 작품이다. 하루키는 이 작품에 애착이 깊어서 60세가 되면 번역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보다 삼 년 앞서서 실천했다. 정경 묘사와 심리묘사와 대화, 그 세 요소의 조합이 완벽해서 "나의 교과서"였다고『무라카미 씨의 거처』에서도 언급한다.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 의 애독서이기도 한데, "단 한 페이지도 재미없는 페이지가 없었다"라고 찬미했다." (p.453)

 

BTS의 팬들이 겨우 한두 곡의 노래를 듣고 '아미'를 자처하지 않는 것처럼 하루키의 작품 한두 권을 읽고 하루키스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카무라 구니오가 쓴 <하루키의 언어>는 하루키 월드로 가는 안내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루키의 모든 책을 두루 섭렵한 하루키 '덕후'들이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회상하면서 '맞아. <댄스 댄스 댄스>에 딕 노스라는 인물이 등장했었지.'라는 생각과 함께 희미해진 기억을 새롭게 하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하루키 월드의 문턱을 넘는다는 게 어디 생각만으로 될까마는 이 기회에 하루키 문학의 키워드를 이해함으로써 하루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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