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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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31일마다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라는 노랫말에서 우리는 이별의 슬픔과 계절의 스산함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가수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은 그렇게 10월을 대표하는 명곡이 되었다.

 

금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용보다는 가수 아이유가 부른 '잊혀진 계절'을 더 많이 들었다는 것뿐.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다른 어떤 것이 있었다. 10월 31일을 몇 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우리에게 속보로 전해진 안타까운 사건. 어업 중 다친 선원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출동했던 소방헬기의 추락. 헬기에는 환자와 보호자 구조대원 등 7명이 타고 있었다. 헬기에 탑승했던 구조대원 중에는 유일한 여성 탑승자이자 소방관으로서 자부심이 컸던 새내기 구조대원과 결혼한 지 겨우 2개월 된 새 신랑 구조대원도 있었다고 했다. 이틀이 지난 지금도 그들을 찾는 수색작업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탑승자의 시신 3구만 겨우 찾았을 뿐이라고 하니 탑승자의 가족들에게는 올해의 10월 31일이 그야말로 '잊혀진 계절'이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가족을 잃은 큰 슬픔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계절'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작가이자 완화의료 분야 종사자이기도 한 샐리 티스데일의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가장 먼 미래는 '죽음'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미래의 범주 속에 '죽음'을 끼워넣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자신은 언제나 예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삶의 끝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며,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좋은 죽음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10년 넘게 완화치료 간호사로 일한 샐리 티스데일의 조언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흔히 자기 몸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서 조용히 떠나는 걸 상상한다. 흠, 그야말로 상상이다. 소위 좋은 죽음에 대한 이상이 우리를 옥죄고 있다. 죽음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문제도 아니고, 성취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삶과 죽음은 소유물이 아니다. 죽음이 특정 방식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와 다를 땐 나쁘다고 판단할 것인가? 남들이 원하거나 계획한 방식을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마라. 어차피 혼자서 가야 할 길이다." (p.76)

 

우리 민족에게도 '죽음'에 대한 그와 같은 선입견이 있다. 나이가 들어 숙환으로 별세했을 때 조문을 온 문상객들은 '호상'이라며 상주와 가족들을 위로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호상'이라는 평가는 그야말로 자의적인 해석일 뿐만 아니라 '죽음'을 맞는 당사자가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의 일방적인 해석일 뿐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일에서 마주쳤던 여러 '죽음'에 관한 일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전 세계 다양한 문화와 전통과 문학에서 찾은 죽음의 일화를 통해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현실적인 조언을 책에 실었다. 

 

"석양은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저문다. 우리는 위태로운 삶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눈앞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변화무쌍한 삶에 간절히 매달린다. 우리는 나날이 빛나는 특별한 삶을 찬미한다. 하지만 태어난 모든 것에는 죽음이 따른다. 아무리 다정하고 완벽한 만남도 결국엔 헤어짐이 있다. 우리는 스러져가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바람, 뺨에 와 닿는 숨결, 물 한 모금, 힘없이 떨어지는 단풍,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우리 자신의 삶." (p.298)

 

저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죽음을 터부시하면서 마냥 피하고 등질 게 아니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정확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풍성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을 극복함으로써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자는 게 저자의 주장일 수 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을 위해 부록에 실린 죽음 계획서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장기와 조직 기증, 조력사 등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나는 신문에 실리는 사망 기사를 즐겨 읽는다. 짤막한 기사에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놀랍도록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목록을 훑어보면서 거의 대부분 늦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한다. 고백건대, 나한테는 그 점이 무척 중요하다. 텔레비전을 보면, 연쇄 살인범 손에 죽거나 청초한 모습을 간직한 채 암으로 죽거나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아주 많다. 하지만 미디어가 심어준 믿음과 달리, 우리는 대개 지구상에 존재했던 대다수 사람들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p.184)

 

어제는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으로 유명한 가수 함중아가 향년 67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은 우리의 곁을 서성이며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운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 '죽음'이 선명할수록 삶은 소중해진다. 다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로 탁해진 대기 속에서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의 자태가 선명했던 하루였다. 어쩌면 가을은 '죽음'을 사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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