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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 크리에이터 선바의 거침없는 현생 만담
선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살아가다 보면 아무 말이고 물색없이 툭툭 내던지는 사람을 적어도 한두 명쯤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에 대한 우리들 대부분의 평가는 '도대체 저 사람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이거나 '도무지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이네'와 같은 비난 일색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오는 대로 툭툭 내던졌다고 생각했던 말들도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면 '쉽게 말한 듯해도 깊은 뜻이 담겨 있었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실없는 소리나 하는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달리 보이게 되는 순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상대방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순간을 만나지 못했을 뿐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선바의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도 그런 책이다. 예컨대 '내가 살고 싶은 인생--> 돈이 많고 여유로움, 주변 사람들 인생--> 돈이 많고 바쁨, 내 인생--> 가난한데 바쁨'과 같은 식이다. 가볍고 쉽게 내뱉은 말인 듯한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폭이 커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우리네 생각의 관성은 그런 사람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네가 뭘 알아?'라는 말 한마디로 단숨에 제압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정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질지라도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고 못 들은 체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런 식으로 살아야만 한다고 가르쳐왔던 것이다. 상대방에게 '꼰대' 소리를 들을지언정.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오지랖이다. 상대가 기분 나빠 한다면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게 좋을 것이다. 네? 내가 진짜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조언을 해준 건데 어떻게 기분 나쁘게 이걸 오지랖이라고 말할 수가 있냐고요? 저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조언을 한 건데, 앞으로는 참도록 하겠습니다." (p.104 '조언과 오지랖의 차이')
과거에는 능히 '4차원'이나 '또라이'라는 별명을 귀가 닳도록 들었을 사람들이 존중받고 누구보다도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거나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애써 부인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크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또라이'가 되거나 적어도 '또라이'와 근접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고.
"내가 생각하는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이란 별것 아니라 그냥 딱 그것만 해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상태이다. 사실 별것 아닌 게 아니라 엄청난 것이긴 하다. 구독자가 몇 명이니 조회수가 몇이니 그런 것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그게 성공이다. 여기엔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의미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산다는 의미도 있다." (p.136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이란?')
과거와는 달리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순위를 살펴보면 유튜버가 1위를 차지하는 걸 심심찮게 보게 된다. 선생님과 의사는 2위, 3위로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 그 뒤를 차지하는 게 연예인인 걸 보면 자신의 끼와 재능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아프리카 TV 신생 BJ가 1억 2천만 원 상당의 별풍선 120만 개를 받음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서 여러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던 것이다.
"사랑받으면서도 불안할 때가 있다. 나도 유튜버를 시작하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 행복하기도 하고 또 행복한 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받아도 되는지 모를 것을 받게 되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불안은 내가 앞으로도 계속 큰 사랑을 받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됨을 알았다. 앞으로도 항상 이런 사랑을 받고 싶으니 불안한 것이었다. 그런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니 굉장히 행복해졌다." (p.186 '행복과 불안')
그렇다. 지혜는 무욕의 다른 말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제삼자의 시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까닭에 지식은 없을지언정 지혜로운 사람은 될 수 있다. 자책과 회한이 그리움의 다른 표현인 것처럼 지혜는 무욕과 쌍을 이루는 말이다. 1인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건 겉보기에는 여유롭고 행복한 듯 보이지만 그의 인생관이 지나친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저자도 말하고 있다.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의 저자 선바는 분명 별종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일 테다. 그러나 나는 그의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는 분명 자신의 분수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