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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평점 :
지금은 전문직 여성들이 오히려 결혼보다는 비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는 전문직 여성과의 결혼을 남성 측에서 먼저 꺼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똑똑하면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전문직에 진출하려는 여성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로 현저히 적었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전문직에 진출한 여성들도 많은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적응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문직 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사회적 편견 탓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학생들의 선호 학과는 대개 유아교육과나 식품영양학과 등 육아나 요리와 관련되는 학과가 주였다. 말하자면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전문직뿐만 아니라 교직에 진출한 여성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를테면 나이 50이 넘었는데 교장 진급도 하지 못한 채 평교사 신분으로 꾸역꾸역 출근하는 여교사들에 대한 편견은 대단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출근한다는 둥 아들이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빚을 졌다는 둥 확인도 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고 그런 뒷담화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그런 까닭에 집안에 이렇다 할 우환이 없는데도 쉰 살이 되기 전에 서둘러 사직서를 제출하는 여교사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일본에서 정신과 의사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야마 리카의 신작 <나이 듦의 심리학>을 읽는 독자라면 여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비혼의 전문직 여성으로 살아왔고, 구체적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처럼 싱글로 사는 여성들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정년과 연애와 나이 듦과 주거와 건강과 자아 찾기와 심지어 패션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독신으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곁들여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지 묻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과학과 의료기술이 진보한다고 한들 예순은 예순이다. 에순이 열아홉이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예순 살이니 저건 못 해'라든가, '이제 예순 살이니 이건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뭔가 시작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그만두고 싶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시작하다'와 '그만두다'는 완전히 반대말이지만, 어떤 것을 택하든 그걸 결정할 권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이 사실은 나이 때문에 달라지는 게 아니다." (p.237~p.238)
그렇다면 이 책의 독자는 싱글의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남성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순탄치 않은 여성들의 삶에 대해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별을 떠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남성과 여성을 무 자르듯 극명하게 편가름 하는 그런 책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반면 이렇게 해라, 강한 어조로 지시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살아보니 이렇더라 그러니 저렇게 사는 게 좀 더 나아 보인다는 식의 부드러운 조언일 뿐이다.
"아무리 나이 따위 상관없다고 생각해도, 남자와의 관계 문제에서는 아주 조금 나이를 의식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책임감 없는 남자에게 휘둘려 상처받거나 시간과 돈을 헛되이 써버리기에는 자신의 소중한 현재가 너무 아까우니 말이다." (p.157)
저자는 지금 80대의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고 썼다. 함께 사는 건 아니고 저자는 도쿄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홋카이도에서 살고 있는데 '어머니 돌봄 문제는 어떻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고 쓰고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자식이 시골에 사는 부모님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만 태우는 현실. 저자는 부모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책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관해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p.44)
세월에 의한 관성의 힘은 꽤나 오랫동안 그 힘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과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여성 차별의 문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법적으로 어느 정도 정비되었다고 할지라도 세월의 관성에 의한 여파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성들의 머릿속 생각마저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싱글로 살아간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주변 환경과 마주쳐야 한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할까. 그보다는 외면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정답일지 모른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든다는 건 주변보다는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해도 된다는 사회로부터의 암묵적인 허락이자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