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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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의 몇몇 장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여름방학 숙제와 관련된 것인데 당시에는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과제가 있었다. 예컨대 방학 생활 계획표 작성하기, 일기 쓰기, 식물 채집, 곤충 채집 등은 전 학년의 공통과제이기도 했다. 물론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숙제 등 다른 과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름방학의 단골 과제가 그랬다는 얘기다. 지금이야 과제를 좀 안 해가기로서니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체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당시에는 개학과 동시에 과제물을 제출하였고, 혹여라도 깜빡 잊고 가져오지 못한 학생들이 있는 경우를 대비해 개학일로부터 2~3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만일 그때까지도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을 시에는 심한 체벌과 함께 화장실 청소 한 달과 같은 벌칙이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니 웬만한 배짱으로는 숙제를 하지 않는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꽤나 소심했던 나는 남들보다 잘하겠다는 욕심은 없었지만 선생님의 체벌은 어찌나 두려워했던지 식물 채집이든 곤충 채집이든 시늉만 겨우 했다. 문제는 과제물을 제출할 때였다. 혹시라도 남들이 볼까 봐 다른 친구의 과제물 밑에 숨겨 놓거나 가장 늦게 제출함으로써 창피한 순간을 모면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초등학교 6년 중 딱 한 차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그것도 가장 먼저 과제물을 제출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곤충 채집 때문에 한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자신의 곤충 채집 과제물을 선뜻 내주는 게 아닌가. 자신은 방학이 끝나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면서 이별 선물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압축 스티로폼 위에 갖가지 곤충을 종류별로 고정시킨 후 액자와 같은 나무틀에 넣고 유리를 끼워 만든 너무나 멋진 곤충 표본이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친구의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마리씩 잡아 말리고 고정하였다고 했다. 어찌나 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보였던지 선뜻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나는 친구가 준 곤충 채집을 자랑스럽게 제출했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고, 내가 제출했던 과제물은 한동안 학습 교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20대 초반에 월리스는 찰스 다윈의『비글호 항해기』를 읽고 탐험의 꿈을 키웠다. 그는 영국 내의 곤충과 식물에 대해서는 분류 작업을 모두 마쳤기에 새로운 종을 찾고 싶었다. 철도 열풍이 가라앉고 측량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월리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탐험 지역을 고민했다. 그곳에 가서 당시 과학계의 가장 큰 미스터리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p.34)

 

커크 월리스 존슨의 저서 <깃털 도둑>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2009년 6월에 있었던 영국 자연사박물관 소장품 중 새 가죽 299점이 도난당했던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뉴욕타임스'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저자는 그 당시 뉴멕시코주의 레드강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낚시 가이드인 스펜서 세임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낚시도 내팽개친 채 도대체 트링의 자연사박물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저자는 결국 트링박물관에 있던 새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한 5년에 걸친 긴 추적을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된 <깃털 도둑>은 깃털에 얽힌 인류사의 궤적을 좇으며 에세이가 아닌 어떤 추리소설과 같은 긴박감을 제공한다.

 

"나는 남는 시간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자료를 조사하고 플라이 타잉 커뮤니티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즐겁게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트링을 방문한 뒤에 이 범죄가 진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과학계에 어떤 손실을 입혔는지를 깨닫고는, 그리고 여전히 많은 새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언가가 달라졌다. 부업으로 시작한 취미 활동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범죄 사건에서 정의를 찾는 임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p.249)

 

마리 앙투아네트가 새의 깃털을 패션의 수단으로 사용한 이래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지구 상의 수억 마리 새가 인간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한다. 루이 16세로부터 받은 다이아몬드 장식의 왜가리 깃털을 올림머리 위에 꽂고 다녔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죽고 100년도 되지 않아 새 깃털은 전 세계 여성이 사랑하는 모자 패션의 아이템이 됐고 그에 따라 모자 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890년대 프랑스에는 4만 5000t에 이르는 깃털이 수입됐고 런던 경매장에서는 4년간 극락조 15만 5000마리가 거래됐다고 한다. 어느 영국인 딜러는 1년간 새 가죽 200만 장을 팔기도 했다. 미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북미 지역에서만 매년 2억 마리 새들이 죽어갔다.

 

그러나 깃털을 향한 인간의 욕심만 증가했던 건 아니어서 무분별한 깃털의 소비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일기도 했고, 그에 따라 새의 멸종을 막기 위한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깃털의 선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1세기인 지금도 깃털에 대한 선호와 집착은 줄지 않았고 새의 밀거래 역시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겁이 많은 소심한 사람들은 방충제와 함께 서랍 깊숙한 곳에 깃털을 숨겨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박물관과 경찰도 더는 찾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사고팔기를 반복했다. 자신들의 깃털이 세상에 완전히 녹아들 때까지." (p.354)

 

생각해보면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식물과 곤충을 무분별하게 채집하도록 시킨다는 게 과연 목적에 부합하는 일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 시절의 선생님이나 학생들 공히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등교육이 일반화된 작금의 선진국에서도 깃털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는 간 데 없고 소유에 대한 집착만 키워가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인간의 영혼마저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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