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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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책에서 풍기는 분위기로 인해 책을 읽기도 전에 압도되거나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책의 볼륨이나 권수에 상관없이 말이다. 문장이나 주제에서 오는 장중한 느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장대한 서사가 인간에게 주는 깊은 울림은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연대감과 함께 유구한 역사에서 개인의 삶은 얼마나 작고 사소한 것인가 깨닫게 한다. 장편소설 <오버스토리>를 썼던 리처드 파워스 역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타크루즈 산에 100년도 더 된 삼나무 군락지 인근에 살던 작가는 산을 오르다 마주하게 된 거대한 삼나무 앞에서 '그동안 나는 이렇게 경이로운 존재를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맹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대한 경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로키 산맥과 그레이트스모키 산맥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나무에 관한 책만 120권 넘게 읽었으며, 급기야 아직 원시림이 남아 있는 산기슭으로 집까지 옮겼다고 하니, '문학과 소설이 꿈꾸는 경이로움'을 담기 위한 작가의 열정에 그만 숙연해질 뿐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는 우리 곁에서 언제나 존재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풍경이 아니라 보면 볼수록 놀라운 기적이자 경이로움이다.

 

"고개를 들자 파수꾼 나무의 가지가 외롭게, 거대하게, 사방으로, 바람 속에 헐벗은 채 뻗어서 아래쪽 가지들을 들어 올리고 그 두툼한 몸통을 으쓱인다. 사방으로 자라난 수많은 잔가지들은 너무나도 사소하고 너무나 덧없는 이 순간을 그 나이테에 새기고, 새파란 중서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수기신호를 보내는 기자들이 가지들이 기도해줄 거라는 듯이 바람 속에서 잘그락거린다." (p.39)

 

702쪽의 장대한 서사인 <오버스토리>는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닌 무려 9명에 이른다. 비극적인 운명의 밤나무 초상사진 백 년치를 호엘가(家)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화가 니컬러스 호엘, 이민자 아버지로부터 뜻 모를 아라한의 족자와 나무가 세공된 반지를 물려받은 엔지니어 미미 마, 네 명의 어피치가(家) 아이들 중 막내로 태어난 애덤 어피치는 유년시절 집 앞에는 각자의 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었고, 린덴나무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레이 브링크먼과 도러시 카잘리, 개벌(皆伐)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나무를 하나씩 심을 때마다 작별 인사를 한다는 더글러스 파블리첵.

 

"버텨. 100년에서 200년 정도만. 너희들한테는 어린애 장난 같은 거지. 너희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해. 그러면 너희를 건드릴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거야." (p.131)

 

이야기는 닐리 메타를 지나 청각과 언어 장애가 있던 식물학자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로 이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답지만 식물학자인 패트리샤 웨스터퍼드의 이야기는 유독 눈길을 끈다. 불편한 몸으로 그녀가 찾아냈던 놀라운 발견들. 이를테면 식물들이 스스로의 몸에서 내뿜는 화학물질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하며, 때로는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놀라운 연구 성과. 그러나 그녀의 이론은 무시되었고 한동안 묻혔지만 그녀를 존경하던 또 다른 식물학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는데 그 장면은 대단히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수년의 연구에서 그녀가 알아챈 더글러스전나무의 행동은 그녀에게 기쁨을 준다. 더글러스전나무 두 그루의 측면 뿌리들이 지하에서 만나자 서로 달라붙는다. 스스로 접 붙은 이 뿌리를 통해서 두 나무는 관다발계가 합쳐지며 하나의 나무가 된다. 수천 킬로미터의 살아 있는 균사로 지하에서 서로 연결된 그녀의 나무들은 서로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서로 치료해주고, 어린 나무들과 아픈 나무들의 목숨을 유지해주고, 자원과 대사산물들을 공용 보관함에 저장한다……." (p.203)

 

젖은 손으로 램프를 만지는 바람에 죽다 살아난 올리비아 밴더그리프의 이야기, 파티광의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공기와 빛의 존재들에 의해 되살아나고... 소설은 그렇게 한 그루의 나무로 상징되는 아홉 인물의 개별적인 삶을 보여주며 유려하게 흘러간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숲의 부름을 받았고, 예기치 못했던 어떤 순간에 서로에게 연결되었으며,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소설은 각기 한 그루의 나무로 상징되는 아홉 인물의 개별적인 삶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무의 부름을 받는다. 숲이 그러하듯, 이들의 삶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서로 연결되며 또 다른 거대한 이야기 숲을 이룬다.

 

"그는 다음 프로젝트가 손짓하는 북쪽 숲을 쳐다본다. 햇살을 가르는 가지들이 중력을 향해 웃어대며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꼼짝하지 않는 나무 몸통 기단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다. 이것, 목소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속삭인다. 이것.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것.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것. 이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예요." (p.702)

 

나는 오래전에 일본 야쿠시마에 있는 조몬 삼나무를 보러 갔던 적이 있다. 수천 년 동안 생명을 이어온 나무의 자태도 감탄을 자아냈지만 그 숲에서 느꼈던 편안함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역사의 작은 파편에 불과한 나의 삶 역시 거대한 자연 속에서 교류하고 내게 허락된 시공간을 지키며 묵묵히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 숲의 돌멩이 하나, 물 한 방울, 이름 없는 풀 한 포기까지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게 있을 수 없으며 각각의 쓰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인해 나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었다.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산길을 걷는다. 새벽에 만나는 숲의 나무와 온갖 동물들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이따금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겨우 그것뿐임을 자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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