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산문집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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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취임 2주년을 맞는 문재인 대통령의 일대일 대담이 있었던 날입니다. 저녁에 일이 있었던 나는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대담을 보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고, 진행자로 나섰던 모 기자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장악한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뭔 일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사에 실린 내용은 각 신문사의 이념 성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했으나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터뷰어로서의 자질 부족이거나 태도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당사자는 억울한 면도 없지 않을 듯합니다.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닌데 괜한 시빗거리에 휘말리는 결과가 되고 말았으니 말이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간절히 원하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만남이 죽는 것보다 더 싫었던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만남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유익한 경험으로 축적되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삶의 지혜로 대체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현재 자신이 교류하고 있는 인적 구성의 틀, 경제적 여건, 인성이나 사상의 바탕, 타고 태어난 그릇의 크기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자신의 경험은 여러 번 걸러지고 최종적으로 남는 것들로 자신의 됨됨이를 꾸려가게 마련이니까 말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성장 배경과 타고난 성품을 평생 간직한 채 사는 까닭에 자신의 삶으로부터 아주 조금의 진전만 획득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대체 몇 번의 윤회를 거쳐야만 극락왕생할 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 <나를 뺀 세상의 전부>를 읽어보면 어제 대담자로 나섰던 모 기자에 대한 논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천성에서 조금의 진전밖에 성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는 데 유리한 기능이나 재능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만나는 사람에 대한 외형적 조건이나 배경 등 우리가 휘둘릴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배제한 채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단 한 번의 삶으로도 끝없는 윤회의 굴레를 거뜬히 벗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의 주장을 듣고 있을 때보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에 더 크게 설득되고 더 큰 경이감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도, 되도록 생각한 바와 주장하는 바를 글로 쓰지 않고, 다만 내가 직접 만났거나 직접 겪었던 일들만을 글로 써보고 싶어졌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내가 만난 접촉면이 내가 받은 영향이며, 나의 입장이자 나의 사유라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p.10 '책머리에' 중에서)

 

시인은 자신이 직접 만나고 보고 느꼈던 것들을 계절별로 나누어 책에 80여 꼭지의 글을 실었습니다. <마음 사전>에서 보여주었던 적확하고 세밀한 글쓰기와는 다소 거리가 먼 듯합니다. 시인의 나이 듦에 대한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의 어릴 적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살면서 자신이 여러 번 겪었던 일들은 모두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뻔히 아는 일쯤으로 지레짐작한다는 사실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쓰는 말과 글이 두루뭉술 분명하지 않게 변해간다는 건 자신도 나이가 들었다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쓸 때에 자주 떠올린다. 낯선 것을 낯익도록 낯익은 것을 낯설도록 궁리를 하게 된다. 내 시를 읽어줄 누군가가 내 시 속에서 혹독한 기시감에 시달려 길을 잃고 미아가 되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미아가 되어 울음보를 터트려주길 욕망하는지도 모르겠다. 꿈 끝의 골목으로 갈 수 있게 길안내를 하려는 걸 수도 있다. 꿈 끝의 골목에 도착하면 어쨌거나 출발이란 걸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p.202)   

 

그림책을 선물했을 때, 책을 받아 든 이의 표정을 지켜보며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된다는 걸 가장 짧은 시간에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려보기도 하고, 서로 익히 아는 오래된 상처를 꺼내어 내밀한 관계임을 새삼 확인하기보다는 다음 달에 무얼 할지, 내년에 무얼 할지, 새롭게 꾸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 묻는 건강한 호기심을, 두 사람을 사랑으로 에워싸는 의미 없는 대화를 시인은 그리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까닭에, 오롯이 서로를 응시하지 못하는 까닭에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므로 완성되어간다'는 시인의 주장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신화시대의 전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영악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이미 비루함과 지루함,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하기 때문이다." (p.252)

 

'한 발 앞서간다'는 말이 더 이상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뒷모습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뒷모습만 보인다는 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실수가 많아진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앞서간다는 건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의 뒷모습만 보여주는 까닭에 뒷사람보다 더욱 조심하고 안 보이는 데서도 세밀히 살펴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삶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완성은 아닐지라도 조금 더 큰 진전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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