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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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모르는 체 일러주는 어떤 예고는 물론 직접적인 언질이나 귀띔도 없이 벌어지는 갑작스러운 일이야 말로 우리들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역사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삶이든 역사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은 예정된 것, 예상 가능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 통제 가능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금융분석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말하는 '블랙 스완'이 그런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변화를 이끌었던 것들 대부분이 그처럼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았던, 갑작스럽거나 느닷없던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딜런 에번스가 쓴 <유토피아 실험> 역시 자신의 내부에서 일었던 갑작스러운 생각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지 가늠케 한다. 영국의 한 대학 교수였던 저자는 2005년 멕시코에 갔다가 마야 문명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문득 마야의 붕괴와 현재 우리 지구가 봉착한 난관이 아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지금의 문명도 마야 문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저자는 현재의 문명이 파괴된 후의 삶을 준비하기에 앞서 준비 차원에서의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우리는 만에 하나 문명이 붕괴될 때 지구상의 사람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알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문명이 이미 붕괴된 것처럼  행동했다. 일종의 협업적 스토리텔링 내지 실생활 역할극을 펼친 셈이었다." (p.17)

 

딜런 에번스의 '유토피아 실험'은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1년여의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도 파는 등 실험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진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실험에 동참할 지원자를 모집한다. 저자는 지원자들한테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모든 비용을 자신의 돈으로 감당한다.

 

"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돈으로 친구를 산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돈으로 친구를 산다니 상당히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괜찮은 거래도 아니었다. 자원자들은 내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실험실의 쥐, 그러니까 내 실험의 재료에 불과했다. 로봇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실험을 하는 나는 누구일까? 진정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아무렇지 않게 갖고 노는 소시오패스일까? 더 깊이 생각할수록 혹시 후자일까봐 불안해졌다." (p.135)

 

저자는 런던 중심가에 사는 동생에게도 석유가 바닥났을 때를 대비하여 교통수단으로 쓸 말 한 마리를 사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농사라고는 '호기심으로 기른 대마초가 전부'였던 저자가 아마추어인 동료들과 함께 몽골식 이동주택인 유르트를 세우고 장작을 패고 밭을 갈고 물을 긷는 등 자급적 삶을 시작했으니 실패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철학박사이자 로봇공학자로 안정적인 삶을 살던 저자가 '지구 종말론'과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빠져 파국의 길로 들어섰던 건 아니었지만 그가 계획하고 실행한 엉뚱한 실험으로 인해 그는 결국 정신보건법에 의거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실험이 끝나고도 내가 계속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실험이 진행되는 중에 정말로 문명이 붕괴될 테고, 그다음엔 그곳에 계속 머무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일을 생각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든 실험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2007년 봄이 되자 점점 줄어드는 자금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처음에는 약하게, 그다음부터는 점점 극심히 나를 괴롭혔다." (p.220)

 

'지구 종말론'은 잊을만하면 끝없이 우리 기억을 환기시키며 되살아나는 불사조의 음모론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수명이 있게 마련이고 지구 역시 예외일 리 없는 까닭에 가장 믿을 만한 신앙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시기는 특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지구 종말론'은 논리와 근거를 바꿔가며 우리 주변을 끝없이 배회하는 것이다.

 

"그거 아는가? 난 이 실험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깔보며 무시했던 귀중한 것들을 배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컨대 나는 결함 많은 사회 제도가 수백 년 동안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진화해온 산물임을 배웠다. 화장지부터 치약까지 우리의 삶을 조상들의 삶보다 훨씬 안락하게 만드는 사소한 기술적 진보들이 무수히 많음을 배웠다. 실험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스코틀랜드의 허허벌판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만도 아니다. 나는 더 귀중한 것을 배웠다. 비록 내가 무적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p.310)

 

삶이란 결국 경험의 총체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에 건지는 건 경험에서 건져 올린 한 줌의 기억뿐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기쁘고 슬프고 힘들고 가볍고 하는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우리가 어떠한 일에 두려움 없이 뛰어든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많이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를지라도 타고난 인내력으로 잘 견디기만 하면 된다는 걸 저자는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선택은 그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많이 배우거나 아니면 아무리 힘든 상황도 너끈히 견딜 수 있는 인내력을 키우거나.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는 말자. 엉뚱한 일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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