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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ㅣ 코스톨라니 투자총서 1
앙드레 코스톨라니 지음, 한윤진 옮김 / 미래의창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세계 3대 투자가 중 한 명인 짐 로저스의 인터뷰를 감명 깊게 보았다. 2015년에도 자신의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던 그는 앞으로 20년 동안 한반도가 세상에서 제일 주목받는 나라가 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통일과 관련된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한반도에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공무원 하지 말고 민간 기업에서 일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북한이 개방된다면 향후 수십 년간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큰 금액의 돈을 투자할 만한 능력이 되는 그로서는 더더구나 관심이 가는 투자처일 테고 말이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그의 예측보다는 내가 관심 있게 들었던 내용은 따로 있다. 글로벌 경제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치명적인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며 이에 대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핫팁'(족집게 조언)을 듣지 말라는 대목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곰곰 되새겨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AI(인공지능)나 빅데이터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주체성을 잃고 종속화되거나 패턴화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AI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러한 경향은 한층 뚜렷해질 것이다. 그러나 투자에 있어서 AI를 믿고 종속화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패를 겪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투자에서 수익을 챙기는 사람은 대중의 편에 속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큰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소수의 몇몇이라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정보의 대중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정보는 대개 소수의 몇몇에게만 집중되었고 정보는 곧 수익이라는 등가가 형성되기도 했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정보의 대중화는 인간이 판단력을 잃고 무엇인가에 종속화되거나 패턴에 따라 움직이도록 부추긴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보가 돈이라는 등가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패턴화 된 대중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몇몇의 사람들에게 부가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서의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는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다수의 증권시장 예측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이용하여 주가를 조작한다."라는 말은 사실이다. 책의 저자인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그의 투자 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투자 유형이라고 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은행이나 기관투자가들이 대중에게 돈을 우려내려는 수작"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9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코스톨라니는 80년이라는 긴 투자 경험을 가진 '주식의 신'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주식에 매몰되어 돈만 좇던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돈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끝없이 공부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로맨티시스트였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그의 명언은 수없이 많다. 예컨대 "빨리 부자가 되는 방법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빨리 가난해지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다. 그것은 빨리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다."라거나 "투자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을 취하는 것보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들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바보보다 주식이 많으면 주식을 사야할 때고, 주식보다 바보가 많으면 주식을 팔아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세운 4가지 덕목을 잊지 않았다. 돈, 생각, 인내, 행운이 바로 그것인데, 자신의 여윳돈으로 투자를 하고,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을 따르며, 그것을 믿고 유지하려는 인내심을 지녀야 하며, 그 모든 것과 더불어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1917년 이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돈과 주식에 몰두했으나 결코 금전숭배주의자는 아니었다. 그가 투자할 때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결정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상당한 기쁨이기도 했다. 그는 기꺼이 스스로를 주식투자자라고 칭했는데, 그에게 투자 행위는 '지적인 도전 행위'였다. 그는 항상 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으며, 이러한 태도야말로 투자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말했다." (p.9 '서문' 중에서)
책은 서문에 이어 '돈의 매력', '증권 동물원', '투자, 무엇으로 할 것인가', '증권거래소-시장경제의 신경 체계', '주가를 움직이는 것들',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중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증권 심리학', '정보의 숲', '어떤 주식을 살 것인가', '머니매니저', '모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라는 소제목으로 주식 투자에 대한 전반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식 차트와 같은 기술적 분석을 말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저자의 인생관이나 투자에 관한 일화를 담은 에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저녁에 돈을 좀 따면 기분이 부풀대로 부풀어서 자신들이 '백발백중 정확한' 수학적 규칙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벽 3시경이 되면 몇 푼이라도 구걸해 다시 시작해 보겠다고 나선다. 대부분의 차트숭배자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p.274)
짐 로저스의 인터뷰를 보고 1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던 건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은 어느 한쪽 분야에서는 더욱 의존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 든다. 디지털 치매도 그와 같은 맥락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무엇엔가 종속되어 누구나 유추 가능한 일정한 패턴을 가진 존재로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그런 패턴을 역으로 이용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당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나 주체적인 가치판단도 없이 말이다. 신문물을 멀리하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어떤 대상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나 종속화가 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판단력을 잃는다는 건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수시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