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글쎄, 이런 질문에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하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던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나는 이런 질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기쁘다거나, 우울하다거나, 그저 그렇다거나 하는 식으로 비교적 똑 부러지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지난해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감정을 인식하는 일에 몹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마치 여러 감정들이 한 그릇에 걸쭉하게 녹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뒤섞인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복잡한 상태에서 어느 것 하나를
콕 집어 이것입네 하고 밝힌다는 게 도무지 불가능한 듯 여겨졌다.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하나의 감정을 가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참 동안 대답도 못한 채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일라치면 대개는 '잠은 잘 주무시죠?'라거나 '힘드신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라고
하면서 내게 주었던 시선을 거두곤 한다. 이런 어색한 대화가 친숙하게 느껴졌던 책이 있다. 나와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옮겨놓은
듯한 그 소설은 다름 아닌 한강 작가의 <작별>. 제12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한 한 여인을
형상화함으로써 세월의 훈풍에 속절없이 녹아내릴 수밖에 없는 우리들 각자의 운명에 대해 반추하도록 했다.
세월의 온기에 속절없이 녹아내릴 수밖에 없는 존재. 인간의 운명은 그렇게 특정지어질지도 모른다. 눈사람처럼 서서히 녹아내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듯하다. 소설 속 그 여인처럼 집에서 기다리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옛 추억을 회상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한강의 소설 <작별>은 우리 인생이 마치 눈사람이 녹아내리는 시간처럼 아주 짧다는 걸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