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종영이 되어 볼 수 없지만 KBS의 주말 간판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아무 말 대잔치'를 종종 챙겨 보곤 했었다. 두 명의 사회자를 비롯한 여러 명의 출연자들이 상황에도 맞지 않는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것인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빠져들면 그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되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애시청자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 코너는 논리도 없고, 의미도 없는 말들이 무대 위에서 난무하고, 현장을 지켜보는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은 코너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내뱉는 황당한 말의 향연에 그저 킥킥대다가 코너가 막을 내리곤 했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시청 횟수가 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들이야 과장된 몸짓과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는 게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는 행동이라고
하겠지만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쏟아내는 의미 없는 말들은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
코칭 심리 전문가
김윤나의 <말 그릇>을 읽는 사람들은 어쩌면 나처럼 '아무 말 대잔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상황을 수시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화에서 상대방에 대한 공감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픈 말만
일방적으로 내뱉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돌아서서 씩씩대거나 있지도 않은 험담을 늘어놓게 되는 코미디와 같은 상황. 이런 관계가 싫어 숫제 만남
자체를 꺼리거나 온라인에서의 관계만 허락하는 작금의 현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말 그릇'이 작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탄생한 곳, 말이 살아온 역사, 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p.31)
누구의 말은 듣는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그 사람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고, 어떤 이의 말은 분노만
유발하여 끝내 관계마저 위태롭게 하는 이와 같은 차이는 단순한 말 한마디의 차이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우리가 대화에 서툰 이유를
저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감정, 공식, 습관이 그것이다. 우리는 대개 어려서부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살뜰히 보듬어주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서툴 수밖에 없고 대화에 앞서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도 못한 채 화부터 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체험된 경험을 통해 행동 양식을 공식화하기도 하고, 자주 듣고 보고 배운 말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자신의 말 습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체화된 '말 그릇'을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핵심은 우리가 가진 '말 그릇'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는 그 대답으로 '경청'과 '질문하기'를 제안한다. 상대방의 말을 단순히 참고 들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에 관심을
두면서 진심을 다해 듣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상대방을 마음을 열 수 있는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말 그릇'은 한층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 그릇을 다듬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살면서 반드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거나,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거나, 대단한 업적을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말 그릇을 매만지고 보듬는 일만큼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움직임을 의식하고, 살피고, 책임을 지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p.304)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관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곧 '말'이다.
말을 잘 못한다거나 말 때문에 관계가 어그러졌던 경험이 있다고 해서 관계를 끊고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말
그릇'을 키워 세상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게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말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