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청스러운 날씨였다. 하늘이 빼꼼하니 개는가 싶다가도 금세 어두워져 비가 쏟아지곤 했다. 기상청 예보로는 주 후반까지 이런 날씨가 길게 이어진다고 했으니 당분간은 날씨로 인한 이런 꿉꿉하고 불쾌한 느낌을 아무 소리 말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차라리 한꺼번에 확 쏟아지고 반짝 개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폭염보다는 이게 낫다는 생각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지만 어디 인간의 생각이란 게 이성적으로만 작동하던가 말이지. 하나가 좋아지면 금세 다른 것을 요구하게 마련이니...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속담이 하나 그른 게 없다. 이렇게 궂은날에는 다들 기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서 갓 부쳐낸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이 그립다고들 하는데 술을 먹지 않는 나로서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오늘도 기름진 음식이 별로 당기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취향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홀리가든>을 읽고 있다. 오랜 친구 사이인 가호와 시즈에를 통해 '우정'이라는 특권(아닌 특권)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끼어들고 있으며, 또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관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성과 함께 친구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에 대해 묻게 된다. 가족은 아니지만 남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 친구란 과연 무엇인가.

 

묘하게도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 시절 이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친구인데 그의 목소리만큼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서로의 소식이 궁금했던 까닭에 우리는 마치 십대 소녀처럼 질문을 이어갔다. 십여 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통화는 끝이 났다. 시간이 되면 자신이 사는 강원도로 놀러 오란다. 얼굴 한 번 보자며. 그러마, 대답하면서도 나는 또 묻고 있다. 친구는 과연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