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끄느름하던 하늘은 비 한 방울 뿌리지 않고 하루 종일 후텁지근한 열기만 더했다. 여름도 이제 막바지, 지난달에 비하면 해가 무척이나 짧아졌다. 그런 느낌은 오늘처럼 햇살 한 점 없는 날이면 더욱 짙어졌다. 아침 산행을 하기 위해 새벽 5시 30분이면 집을 나서는 나로서는 해가 짧아지고 길어지는 느낌에 유독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산의 능선에 오를라치면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곤 했었는데 이제는 맑은 날에도 새벽의 푸른 기운만 감돌뿐 환한 느낌은 숫제 없다.
오전에 며칠 전 한국을 방문했다는 프랑스인과 차를 한 잔 했다. 가뜩이나 무더운 한국의 여름 날씨에 그는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이따금 자신도 모르게 프랑스어가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그의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프랑스어를 전공한 지인도 옆에 있었지만 그가 영어로 말을 하는 바람에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지인도 떠듬떠듬 영어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나눈 대화 중에 압권은 이것이었다. 차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승용차의 뒷유리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 또는 Baby in car)라는 글자를 붙인 자동차가 수도 없이 보이던데 어떻게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지 믿을 수 없다는 거였다. 통계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이 분이 도대체 뭔 말을 하는지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보았던 것은 초보 운전 스티커였던가 보다. 아기가 차 안에 있다는 문구를 도로를 통행하는 차량 수십 대에서 보았으니 그로서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게 다 초보운전 스티커라고 하자 그분이 말하기를 그냥 'New driver'라고 하면 되지 왜 아기 핑계를 대는 것이냐며 따지는 바람에 대답이 궁색했던 나로서는 우물쭈물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개성이랍시고 내세우는 것도 그 정도가 과하면 오해를 부를 수 있고, 괜한 시비를 일으킬 수 있음이다. 더구나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작금의 세태에 개인의 과한 주장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음을 그분과의 대화에서 새삼 느꼈다. 과유불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