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떤 목적을 갖고 흘러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이를테면 목적을 가진 인간 군상들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만의 시간을 걸어가는 게 아니라 도구화된 인간이 목적을 가진 시간에 의해 움직여지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라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능을 다한 인간이 죽음과 함께 폐기된다는 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진다. 시간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물론 인간이 무엇엔가 종속되어 도구로 변한다는 게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차를 몰아 도시 근교를 잠시 다녀왔다. 폭염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계절은, 산천은, 나아가 모든 자연이 시간을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허덕일 때면 꼼짝달싹할 수 없는 자신처럼 세상 모든 사물이 시간 앞에 납작 엎드린 채 정지될 것이라 믿는다. 나 외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도무지 헤어날 방법이 없는 듯한 참담한 심정이 들면 그런 느낌은 점점 더 가중되게 마련이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순간에도 우주의 삼라만상이 시나브로 조금씩 변해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한 달여 지속되었던 폭염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이기주의 산문집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읽고 있다. 작가가 경험했던 소소한 일상들을 짧은 글로 풀어 쓴 산문집이다. 그러나 <언어의 온도>를 통해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렸지만 그 후로는 이렇다 할 책을 못 내고 있는 걸 보면 그도 아마 '서퍼모어 증후군'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언어의 온도> 이후 2017년에 출간한 <말의 품격>이나 최근에 나온 이 책 <한때 소중했던 것들> 역시 <언어의 온도>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작가라는 직업은 대기만성형일 때 비로소 그 생명이 오래 지속되는 듯하다. 그러므로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갑자기 유명해졌다'는 말은 작가들에게는 그닥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삶이 처절하면 처절할수록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은 독자의 가슴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오래 기억되는 대부분의 책은 작가의 삶이 기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자는 작가의 불행을 인기로 대체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시간의 농간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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