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해야 하나요? - 똑똑한 아이들 참 좋은 생각
브리기테 라브 지음, 마누엘라 올텐 그림, 엄혜숙 옮김 / 계수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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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코엑스에서 전시된 <일러스트레이션 거장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럽 일러스트레이터의 최근 경향(그래봤자 십년 전후)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그림 그릴 때 선호하는 매체수단이 무엇인지(신세대 답게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전통적인 매체로 표현하는지에 대한), 소재와 주제가 옛날과 얼마나,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등, 유럽의 최신 경향을 여러가지 알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당시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면서 아, 단순히 일러스트레이터라기 보다는 아티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구나, 할 정도로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 방법, 근접하기 어려운 소재와 주제가 시선을 확 잡아 당겼다.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깐 아이들그림책이 막 시작하던 시기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그림책들이 쏟아졌었다.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유럽그림책 대부분이 바로 그 시기의 그림책들인데, 요즘들어 이상하게도 감탄사가 튀어나올만한, 뛰어난 유럽그림책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오프서점을 몇 달에 한 번 가서 그림책을 한번씩 점검하고 오는데, 갈 때마다 와우~ 라는 감탄사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차비만 버렸네,쩝! 미지근한 입맛을 다시며 오는 날이 더 많았다. 물론 영미그림책도 그렇고 일본그림책도 그렇기는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그림책이라면 더 뛰어난 그림책이 나와야하는데, 오히려 요즘 출판되는 그림책을 보면 그림책 시장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대체 일러스트거장전에서 본 유럽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은 다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어!

이 책도 어린이 그림책 번역가이면서 평론가인 엄혜숙 선생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림책을 접한지 어언 10년차, 그 동안 그림책을 접하면서 눈에 뜨는 몇 명의 번역가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한명이 바로 엄혜숙 선생.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인 내가,그림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그녀가 번역한 책과 그림책과 관련하여 쓴 글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인터넷 서점에서 때마다 검색하는 번역가들이 있는데, 그녀도 그 중의 한명. 독일문학이 전공인 그녀가 그림책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지극한지 영어그림책은 물론이요 일본그림책에도 손을 대고 있으니, 그녀가 발굴해내는 그림책이 어떤 것인지 어찌 궁금하지 않으리오.  

그런데 이번 그림책은 약간 실망스럽다. 독문학 전공자답게 최근의 독일에서 나온 그림책을 번역해 나온 것은 너무나 반가웠는데, 소재가 너무 진부하다고나 할까.이런 규칙적인고 규범적인 소재의 그림책은 지금까지 진절머리 날 정도로 많이 접해 보았다. 일단 그림은 아기자기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개그적인 요소가 많아서 재밌다. 딸아이는 이 그림 저 그림 보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특히나 자동차 위에서 쉬를 하는 여자 아이를 보면서 폭소를 터트렸으니깐. 그럴 때마다 큰 아이는 옆에서 현실적인 발언을 하며 딸아이의 웃음을 뭉개었지만.  

여하튼 아이들에게 장단을 맞추면서 그림책을 읽어주지만, 엄마인 난 정작 큰 감동을 받지 못 했다. 아이들도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아니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살면서 끊임없이 조정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에서 지켜야할, 가정에서 지켜야할 할 규범들을 어느 정도 안다. 차라리 이 책을 반대로 이야기했다면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 되지 않았을까. 이는 꼭 안 닦아도 되고 차 타기 전에 쉬는 안 누어도 되고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는. 스타이그식의 카타르시스를 아이들에게 제공했더라면 아이들하고 더 많이 웃고 우리들이 지켜야할 규범에 대해 다시한번 더 생각하고 아이들하고 작게나마 토론하지 않았을까. 규범이나 규칙에 관해서 직선적인 생각을 가진, 아이들에게 처음 알려주어야 하겠다는 엄마라면 강추! 나처럼 스타이그식의 규범을 선호하는 분이라면 이 책에 나온 규칙들을 반대로 읽어주어 아이들하고 재밌는 한때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우린 절대 이 안 닦을 거야, 나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야지. 하루에 백개도 먹을 수 있다~(울딸) 난 늦게 까지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고 놀거야!같은. 반대로 말하기 놀이하면서 엄마인 내가 너희들이 그럴 경우 얼마나 걱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직선적으로 너 그렇게 하지마!라고 하기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내일 되면 분명 잊어버릴 것이다. 아이 키우기 넘 어려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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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자! - 800여 장의 사진으로 함께 떠나는 리얼 문화 체험기
한상아.이다미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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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커녕 국내 여행도 힘들었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언어연수든 단순 여행이 목적이든 간에 한번쯤은 해외에 나갔다 오는 것 같다. 몇 개월 알바로 여행경비를 모아 자신이 평소 가고 싶었던 훌쩍 배낭 매고 떠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다. 젊은 시절에 여행을 하는 것이 현실적 의무에 매어있지 않는 상황인데다 심리적 부담이 덜해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여행의 목적에 접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결혼하고 애 한둘 낳으면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니.. 이 책은 두 명의 젊은이들이 일본 특히 도쿄여행을 갔다 온 후 800여장의 사진을 통해 자신들의 일본 여행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일본 여행을 갈 다른 젊은 친구들을 위해 쓴 일종의 체험여행기이다.

요즘은 블러거 세대들이라 그런지 여행서 꾸미는 것도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로 똘똘 뭉친, 그런 책들을 펴 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도쿄지만 조연은 귀엽고 엽기발랄한 캐릭터 뿌카와 가루, 자 이제 슬슬 도쿄를 도착했으니 여기저기 떠나볼까나~~~

이 지도을 보더라도 빈털털이로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닌 나름 세심하게 신경을 쓴 여행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건 어떻고! 이 책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보기에 딱 알맞게 꾸며져 있다. 복잡한 긴 글은 싫어! 하고 도리질 치는 아이들에게 이만한 정보의 여행서 흔치 않을 듯하다.

어찌나 귀엽게 사진을 찍어 올렸는지, 여행 힘들었을텐데 여행다니면서 이런 귀엽고 깜찍한 생각을 다 했을까 싶다. 삘을 너무 받아 리뷰를 안 써줄래야 안 써 줄 수 없는 상황. 뿌카와 가루를 따라 다니며 여기저기 편안하게 도쿄 여행을 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다 들 정도다.

젊은 세대답게 문화적 곳을 많이 찾아 다닌다. 일본이 볼거리가 많긴 많구나, 새삼스레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토토로 인형위의 우리 토종 캐릭터 뿌카!

이 친구들 얼마나 재기발랄한지 사진 한장한장마다 뿌카와 가루의 사진 위치까지 다 확인한 듯 하다. 젊은 친구들 참 패기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여행서 기획하고 출판한 거 보니깐 그건 내 생각일뿐이구나. 나중에 아이들하고 일본 여행 가기로 했는데, 이 책은 그 때 중요필수품이 되지 않을까. 약간만 작게 나왔으면 들고 나기기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볼거리 풍성하고 재치만점의 일본여행서가 나온 게 어디냐 싶다.
일본이 세계에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음악, 만화,영화 탓인지 요즘은 누구나 한번쯤 일본에 가 문화적인 것을 체험해 보고 싶어한다. 로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직접 배낭 매고 실천해 옮기는, 그런 세대들이다 보니 이런 책은 진작에 나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보면서 읽으면서 부럽고 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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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진화 -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크리스틴 케닐리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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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은 갈릴레오였다. 그는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한정된 알파벳만으로 무한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촘스키 사상의 향연 p167)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자음과 모음, 기껏해봐야 24개의 조각들이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다. 그 조각 모음은 실로 놀라운 무한 표현력을 발휘하면서 우리를 동물과 다른 개체로 구분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늘상 우리가 말하고 쓰는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한다. 만약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의 표현 수단은 몸짓 언어와 그림 언어로 대체될 것이고 아무래도 표현 능력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 발전은 꿈도 못 꾼 채, 어느 숲 속 나무줄기에서 늘어지게 낮잠자는 삶에 만족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일상도 나쁜 것도 아니지! 하지만 그 재미난 책을 못 읽어!). 그렇다면 언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책은 그 언어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언어학은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언어학에서는 대세이다. 그런데 지금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을 반격하는 또 다른 언어론이 등장하며 서로 언어학의 새 지형 판도를 짜려고 시도하고 있다.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은 인간은 누구나 언어문법을 타고 났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 두돌이 지나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성문법론에 반격을 가하는 사람이 스티븐 핑커와 폴 블롬 그리고 촘스키의 한 때 제자였던 필립 리버만이다. 새로 등장한 핑커와 블롬, 그리고 리버만의 언어학도 진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촘스키의 진화론적 언어와 다른 점은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은 굴드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서 있다는 것이다. 언어를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생긴 부산물로 본 것이다. 반면에 핑커와 블룸은 언어가 순차적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도킨스의 적응주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언어는 본질적으로 순차적이라고 생각한다. 순차적 의사 소통의 기초 단위는 명사와 동사, 그리고 이들을 하나로 엮을 때 사용하는 구조와 소리의 규칙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리버만은 우리의 뇌 속에 언어를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데, 퍼그슨씨병이나 뇌를 다친 사람들의 임상실험에서 그는 우리의 뇌 속의 기저핵이 언어를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나 핑커의 순차적인 언어론에 대해 어떤 이론이 맞다, 안 맞다 할 능력은 없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관찰한 결과 촘스키의 생성문법론도 그리고 순차적인 언어론도 다 일리는 있다고 본다. 아이를 기관에 맡기느니 그 돈으로 책 사자! 주의여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다른 엄마들과 많았던 나로서는 아이들의 언어를 자세히 관찰 해 볼 기회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앉고,서고, 걷고 순차적으로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는데 본능적으로 한다(아, 그럴때마다 그 환희란...)  

그리고 언어를 하는 데 있어서 정말이지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을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한살 무렵부터 엄마라는 한단어를 시작해 불과 몇 달 사이에 신기하게도 문법적으로 체계를 갖춘 언어를 말한다. 빠른 아이들은 두 돌이 되기도 전에 어른을 능가하는 말들을 한다. 말이 늦는 아이들은 몇년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갑작스레 말문이 터지면 완벽하게 문법적으로 맞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다가 점차 자라면서 순차적으로 언어의 단순한 의미에서 추상적인 사고의 언어가 가능해 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세심한 리스닝의 세계가 열려 있다고 보는데, 이 책의 저자에게서 그런 추론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기는 부모의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이 노출된 언어에 맞게 소리의 레퍼토리를 조정한다. 그들은 모국어의 소리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억양패턴도 구사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다재다능한 발음능력을 확실히 잃어버리므로 결국 어떤 언어의 소리는 발음할 수 없게 된다(p217)"  

아이하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더욱더 촘스키의 생성문법을 실감하는 것이 아이에게 처음엔 파닉스 위주의 영어를 공부하게 하였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그림책으로 통문장 위주로 영어공부를 함께 하는데 이게 명사 위주의 파닉스보다 휠씬 더 효과적이었다. 길어서 혹시 잘 따라오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는데, 문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듣는 것도 더 효과적으로 영어문장을 더 잘 이해한다. 리스닝도 그렇고 문장을 따라 읽는 것도 파닉스보다 더 세심하게 듣고 잘 읽는데, 얼핏 아이하고 영어공부를 하며서 아이들에게는 언어를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짧은 문장에서 긴 문장으로 옮겨가는 데 있어서 아이가 받아들이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촘스키와 핑커 이론을 반반씩 이해가 되었다는. 

문제는 이 책이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 가지고 있는 오류, 즉 언어는 어쩌다 우연히 획득한 부산물이라는 관점을 촘스키 자신이 수정하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리 촘스키의 거대한 벽을 함부로 하지 허물어 트리지는 못했다.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 미국 언어학의 막강한 지배 이데올로기인데다 영향력이 큰 좌파 정치학자라는 점을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단지 촘스키가 이제 그의 고집을 꺽고 언어의 진화를 말하자고 한다고 한다. 향후 그의 이론이 그가 스키너의 이론을 허물어뜨린 것처럼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의 이론을 뛰어넘지 않는 언어학이 나오지 않는 이상 그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굴드의 발생학 진화가 흔들리는 이상, 그의 언어학도 수정을 가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 무지 재밌게 읽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말문이 틔였을때의 그 신기함때문에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알파벳 그림책에 관심을 가져 수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호기심이나 의문을 해결해 준 책이었다. 만약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그림도 그리고 음악 같은 문화를 심오하게 추상적으로 표현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 언어는 극궁적으로 소통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언어세계의 생물학적 진화에 혹은 언어에 관심을 갖는 분이라면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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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를 리뷰해주세요.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과학과 역사를 통해 파헤친 1,500년 기후 변동주기론
프레드 싱거.데니스 에이버리 지음, 김민정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지배적인 이론에 대해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는 대안 이론은 언제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수 십년 아니 수백년을 지배한 이론(예로 천동설 같은)이 굴러 오는 새 이론(예로 지동설)의 과학적인 증명을 통해 굴복함으로써 인류 역사는 거듭 비약적인 발전을 해 왔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이론에 대한 의심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떠한 지배적인 이론에 대한 의심은 문제를 제기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지배 이론을 낳았고, 그러한 사이클은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시대에 지배적인 환경이데올로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 온난화는 우리가 지구를 오염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지구 역사의 사이클상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의 따뜻한 온난화는 적어도 백만 년 전부터 1,500여년(+-500년) 주기를 가지고 나타나는 자연적 기후 변동 현상의 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p11).

두 저자는  그 예로 1984년 덴마크의 윌리 단스고르와 스위스의 한스 외슈거가 그린란드에서 처음으로 채취한 빙하 코어에서 나온 산소 동위원소를 분석한 발표 - 이 25,000여년 동안의 지구 기후 역사는 뚜렷한 주기를 가지고 기후가 변해왔다는 것이다- 와 역사적 지역적 문헌을 통한 기후 사이클를 예로 들었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1,500여년의 주기에 해당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온난화 덕에 우리는 질병에 걸린 위험이 줄어들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150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드는 교토의정서를 파기하면 제 3세계 국가에게 보건, 교육, 수자원, 위생시설을 공급할 수 있고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 우리의 삶은 더욱 더 편리해지고 유기농을 고집하는 대신 화학비료를 쓴 덕에 우리는 더 많은 식량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그들이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산업화 덕에 우리의 삶은 윤택해졌고 식량 걱정 없으며 테크롤노지적 삶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편리한 삶을 포기할 만한 용기도 가지도 있지 않을 것이다. 어쩡쩡한 환경보호주의자들에게는 이들의 말은 솔깃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온난화가 1500여년 주기론의 한 부분일지라고 환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환경주의자들을 보조금이나 더 타내려고, 온난화를 뻥튀기 했다고 애쓰는 부류들로 분류하는 저자들의 시각엔 심한 반발을 일으킨다. 너무 근시안적이고 환경오염에 대해 낙관적이며 우파적 탐욕이 그래도 여과되지 않고 드러난 주장이다. 

저자들의 이론대로 지금의 온난화가 1500년 주기설이라고 치자. 지구가 탄생한 이후 18세기 전까지 지구의 환경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어떠한 변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올 초에 읽은 18세기에 최초로 미국 땅 원정에 올랐던 루이스와 클락의 <불굴의 용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수 천년동안 변하지 않은 땅을 처음으로 밟고 간다고 한 대목이었다. 그 때 그 문장 읽으면서 든 생각이 아, 우리 인류가 이렇게 세계를 누비고 지형을 바꾸고 한 것이 일세기도 되지 않았구나, 였다. 사실 우리가 지구를 성형하기 시작한 것이 일세기 조금 넘어서이다. 산업화의 시작으로 지구와 인류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오염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지구 수십억의 역사상 오염이라는 변수가 나타난 것은 일세기 남짓이다. 산업화가 가져온 오염이 지구의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1500년 주기설을 뒷바침한다 치더라도 지금 지구는 심한 오염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더운 여름에 에어콘을 켜지 않고 살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라는 뉘앙스의 글은 이 책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내주고 있다. 아프리카 여인의 비참한 삶을 이야기하면서 교토의정서를 파기하면 교토의정서를 지키는데 드는 비용 1500억달러를 보조할 수 있다라는 인도주의적 발언에 감흥하기 보다는 그들의 입 발린 립서비스에 짜증이 날 정도였다.  

물론 나는 물리학자도 아니고 기후학자도 아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맞을 지도 모르는 이론에 너무 반발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설사 그들의 1500년 주기설이 맞다하더라도 지구 환경을 지키자는 환경주의자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고 좀 불편하더라도 화학연료 덜 떼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싶다. 이 책은 미국의 우파가 어떻게 그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인도주의적 운운, 립서비스 해 가며 탐욕스럽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제발 이 이론이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그들에게 북극 곰에 관한 다큐멘타리 영화나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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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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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과학이든 역사든 소설이든 간에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중세를 암흑시대로 만든 종교도(신 자체가 상상력의 소산이므로), 코난 도일이 처음 등장한 추리소설도,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빅뱅이론과 같은 과학이론들의 시발점이었다. 한사람의 상상력이 수 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사로 잡아 믿음이 되어 종교가 되기도 하고 이론적 정설로 자리 잡아 학문이 되기도 하며 발명품이 되어 문명의 이기를 생산해 되기도 하였다. 상상력이 없다면 세상에 변화란 것은 없었을 것이면 변화가 없다면 세상은 유인원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상상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대의 힘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서술하는 역사서도 단순한 기록 작업 이상의 그 무엇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사라진 과거의 시간을 더듬는 작업에서 필요한 도구는 현재 남아 있는 문서와 유적 그리고 상상력이다. 과거의 플래쉬백을 터트리기 위해서 역사학자는 문서를 들척이면서 머릿 속에서는 당시의 사람이 되어 그 시대를 고찰하고 객관적이면서 자의적인 해석을 내린다. 시오노 나나미가 위대한 역사학자로 자리 매김한 것은 누구나 다 알듯히 그녀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보여준 놀라우리만큼 뛰어난 소설적 상상력이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그 때 어쩜 나나미의 일상은 반은 20세기를 살고 있는 역사서술가요 반은 기원전 로마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더랬다. 세기를 뛰어넘어 전지적 시점으로 그 시대를 볼 수 있는 그녀의 뛰어난 상상력이 부러웠다.

우연히 들춰 본 <운명의 날>도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에 반해 이틀 동안 단숨에 읽은 역사서이다. 이 책에 대해 상상력 운운해서 헷갈리지 모르겠지만 팩션은 아니다. 니콜라스 시라디기라는 건축비평가가 확대경을 꺼내들고 역사의 한 곳을 파헤친 지점은 1755년 11월 1일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이다.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며 리스본 대지진을 객관적으로 조명했는데, 스페인내에서의 개혁세력(카르발류 총리)과 카톨릭 세력과의 권력 투쟁,  지진의 파생이 유럽의 근대화의 불씨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해석은 기존의 역사와는 다른 독특하고 참신한 역사의 재구성이었다.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나자 망연자실하여 어쩔 줄 몰라했던 당시 왕이었던 주제 1세 앞에, 후세에는 폼발후작이라고 알려진 카르발류가 나타나 수도를 옮기는 대신 리스본을 재건하자고 강력 주장하자 그에게 왕은 그 자리에서 리스본을 재건하기 위한 전권을 주었다.  피달구(지방 유지)  출신인 카르발류가 총리의 신분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의 가문 좋은 집안과의 결혼과 외교관으로서의 뛰어난 자질 덕에 한단계 한단계 권력의 요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오자 과감하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게 된다. 여하튼 기적적으로 리스본을 재건하기 위해 그가 총리직에 오르자 그를 괴롭힌 것은 지진이 하느님의 벌이라는 카톨릭 구교와의 권력싸움이었고 굶주림과 인구 부족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도시 설계였다. 종교와의 권력 싸움은 그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고 유럽을 휩쓸었던 계몽주의적 낙관주의는 큰 타격을 입었다. 사람들이 절대적인 종교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대 지진후, 카르발류의 등장과 리스본 대지진 전후 스페인의 대략적인 역사 배경을 소개하고 있고 우리가 몰랐던 스페인의 역사를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 항구의 융성과  노예 시장 그리고 브라질 정복과 왕조의 화려한 삶과 대조적인스페인 민중의 피폐한 삶등. 작가가 상당히 진보적인 시점에서 카르발류의 업적과 스페인 상업의 몰락등을 유대인의 종교 탄압과 연결하여 해석하는데, 그의 뛰어난 상상력이 없었다면 유추해 낼 수 없는 해석이다. 이 책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카르발류의 묘사는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보여준 캐릭터의 묘사 못지 않다. 카르발류는 그 시대가 낳은 독재자이면서 시민계몽을 위한 학교 설립과 대학 개혁등, 상당히 자유로운 인물로 정의 하고 있다. 후대에 역사학자들에 의한 평가는 상반된다 하는데, 사실 민주적 개념조차 없는 시대에 태어나 왕의 권한 대리로 나라를 통치한 사람이기에 그를 독재적 성격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작가는 그의 상반된 평가 모두 지적하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의 통치 능력이 오늘 날의 史가들에게 못 마땅 할지라도 저자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카르발류를 능가할 만한 개혁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주제 1세가 죽자 총리직에서 물러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의 업적은 상반된 평가를 내릴 지언정 역사사가들에 의해 다시 조명되고 발굴될 것 같다. 

이 책의 분량은 다른 역사서에 비해 적다. 한 250페이지 정도. 개인적으로 이런 역사서를 좋아한다. 연대순으로 나열된 역사도 가치가 있지만, 어느 한 시점의 흥미로운 사건이 불러 일으켜 이 작가처럼 그 시대를 공부하고 그 시대를 사는 사람처럼 상상하고 그 시대를 해석하는. 이런 역사서는 독자인 우리들에게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좀 더 넓은 시야와 역사적 안목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역사의 해석이 오독이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역사적 관점도 좋지만 부분의 역사 해석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이 책은 몸소 실천하고 있다. 작가의 역사에 대한 열정과 독특한 역사적 해석이 부러운 책이다. 

덧 : 이 책은 번역이 무지 매끄럽다. 개인적으로 번역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데, 또 한명의 좋은 번역가를 발굴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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