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y Lady and the Strawberry Snatcher ()
Bang, Molly / Bt Bound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아이들 덕에 한 십년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여러 유형의 작가들의 만나게 되다보니, 그림책 작가들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이미지들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한 작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모리스 센닥은 땅딸막한 사람(<괴물이 사는 나라>에서의 숏다리의 괴물도 포함해서)을, 바바라 쿠니는 한겨울 크리스마스라도 초원같은 산위를 풍광을, 데이빗 위즈너는 하늘에서의 자유로운 부유(floating이라고 해야하나, <시간상자>의 배경은 바다지만 바다에서의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도 그가 몇 권의 그림책에 담겨진 하늘에서의 floating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를 매 그림책마다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이미지는 작가가 작품 속에 그리고자 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작가의 독특한 화풍을 결정 짓는다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독자의 눈썰미를 무디게 하지만, 친근함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그림책 작가들 대부분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되면, 후속 작품이 나오더라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변화에 대한 욕망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림책 작가 자신이 이거다 싶은 자신의 그림 스타일이 완성되면, 매 작품마다 비슷한 구성과 형식을 보여주며 독자인 우리들은 그 낯익임에 어느 새 당연하다는 듯이 익숙해 버린다. 

하지만 몰리 뱅,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그림책 작가들의 기존관행과는 다른, 변화무쌍의 기법의 도전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나 스타일을 고집스레 고수한다기보다는 매 작품마다 다른 구성과 매체 그리고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에서처럼 유화를 사용해 원색적이면서도 큼직한 화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종이학>에서는 종이 접기로 이미지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Dawn>은 화려한 색대신 수채화 기법으로 뿌연 파스텔 톤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매번 그녀의 다른 작품을 볼 때마다 그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첩적인 이미지는 없는 것이, 그녀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책을 다룰 수 있는 것이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그녀의 80년대 초반 작품인 글자 없는 그림책 <the grey lady and the strawberry snatcher>는 재미있는 구성의 그림책인데,  작가가 이 작품을 내 놨을 때, 비평가들은 너무나 우울하고 찌푸둥한 그림이라고 혹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칼데콧 위원들은 이 작품의 미래 진가를 알아채고 명예상을 수상했고 현재 우리 딸은 이 작품이라면 환장을 한다. 아이들과 이 작품을 보면서(역시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 엄마인 내가 곤혹스러운...) 이 그림책을 단편영화로 만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이차원적인 그림책안에서 이런 재미있고 스피드한 구성이 나왔다면, 단편애니로 만들어졌을 때 감독은 어떤 식으로 뜯고 고치고 덧붙여서 3차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까?

할머니가 딸기를 사 갔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가 산 딸기를 강탈(?)해 가기 위하여 할머니 뒤를 쫒는데......


써클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동일한 한 장면으로 보여지지만 이 장면은 각각의 독립적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할머니가 내리는 장면과 딸기 도둑이 할머니를 뒤쫒아 오는 장면, 버스 표지판을 잘 보면 각각의 장면은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 아이들하고 얼마나 이 장면 보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고심했던지.....아, 이런 발상은 정말이지 매력적.)















윗의 장면들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스피드하고 역동적인 장면들. 끝의 두 장면은 화면 분할로 박스도 넣어보면 어떨까...박스가 들어가면 스피드한 화면구성이 떨어질려나. 

몰리 뱅은 이차원적인 종이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재미있는 구성과 발상. 스피드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들, 이 작품이 애니로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카메라 시점과 움직임, 확장된 공간 그리고 음악효과가 어울러져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이 작품은 정지된 이미지가 연속적인 이미지로 전환되는 탄탄한 구성의 그림책이지만, 애니의 연속적인 역동적이고 스피드한 화면구성과 다양한 시점으로 그림책보다 더 재미난 구성의 작품으로 태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감독들이 애들 그림책도 좀 보고 그래야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드 앤더슨 지음, 서숙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조지 월러드란 인물을 꼭지점으로 22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인구 1800명의 작은 소도시에 살고 있는 각각의 등장인물은 어떤 식으로든 신문기자 조지 월러드와 연결되어 있고 각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과 꿈을 펼쳐보지도 못했거나 이카루스처럼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려다 추락한 사람들이다. 전체적으로 짙은 우울감이 배어있지는 않지만, 개인간의 단절과 소외감으로 꽉 차 있다. 에드워드 호퍼가 포착한 미국인들의 고독과 소외을 바라보았다고나할까. 앤서슨의 모더니즘 글쓰기 기법은 독자인 내가 그들의 소외감에 직접적인 감정이입을 대입시키는 것을 방해했고 어쩌며 이러한 글쓰기가 타인의 고통스러운 고독을 아무 감정없이 바라볼 수 있으므로 끝까지 읽어치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을 잔뜩 사 들일 때만해도 과학책을 거뜬히 읽어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었다. 돈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도킨스의 대부분의 책이 구비되어 있고 아이들도 다 커서 시간적 여유도 있고 자, 그러면 읽는 것만 남았는데 무슨 책부터 시작할까? <눈 먼 시계공>, 글쎄, 처음부터 두꺼운 책은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 <무지개를 풀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만들어진 신> !!!!  새책을, 새로운 분야를 대한다는 설레임으로 먼저 무엇을 읽을까로 고민했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에 새발의 피 정도의 과학적 데이타가 들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그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을, 수십번을 더 읽어도 문장은, 그의 진화생물학적, 유전학적 주장은 내 머릿 속에 구체화되어 이해되긴 커녕 책 안에 담겨있는 단어들만 겉돌 뿐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에게 쩔쩔 매다 할 수 없이 중간만 읽고 내려놓았다. 완전 패배였고 충격이었다. 내 지적 수준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구나하는 자조도 좀 일었고.

과학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한 두줄 짜리 과학 토막 상식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이 과학 천재라고는 알고 있어도 그가 왜 천재소리를 듣는지 공식만 알았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리처드 파인만의 에피소드나 실린 책이나 읽으며 끽끽거리거나 과학사의 뒷 이야기정도만 읽었지 개략적이나마 과학 역사나 과학 이론 자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전무후무했다. 그런 상태에서 생물진화라는 과학적 주장이 담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몇 권의 과학책을 읽으면서 구분한 것이 있다. 과학책은 독자에게 리처드 도킨스처럼 자신의 연구 학문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과학적 창조자 maker와 그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giver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일반 독자에게 메이커의 책은 쉽게 접근할 만 분야는 아니다. 메이커가 생각해낸 창조적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마침내 과학적으로 해결되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의 결과물들을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공자들에게 쉽지만, 일반 독자에겐 고대 고전을 읽는 것만큼이나 지루하고 뜻 모를 말로 나열된 외계어나 다름 없다. 그렇다고 일반독자가 그들만의 성에 들어가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언제 어디서든지 그 성을 이어지는 다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넘지 못할 이론들의 해제와 쉬운 설명으로 무장하고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무수히 노력하는 사람들, 바로 지식 전달자 기버들이 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지식전달자 giver이다. 그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과학사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의 과학적 이론,공식, 발견들을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원자의 무대 위에서,고전적 수수께끼들, 무한과의 만남, 생명의 복잡한 규칙들, 인간의 본성, 과학사의 흥미로운 사실들이라는 6개의 소분류를 나누고 그 카테고리안에서 그는 그것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주장과 반박 그리고 업적등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과학사의 간략한 보고서라고 할 만 하다. 짧은 글에서 그는 과학이론이나 업적을 최대한 핵심만을 다루려고 했고 그의 글을 통해 과학사의 전체적이면서도 개략적인 모습을 훏어 볼 수 있었다. (뒷장에 다룬 인간이 본성이나 흥미로운 사실들 경우는 실제 너무 짧막하게 다뤄 맛보기정도에 그쳐 이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특히나 프로이드에 심리학 이론이 조작되었다는 설명은 따로 크게 다뤘으면 했을 정도다)

이런 지식 전달자의 역활은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보더니스, 싱, 브라이슨, 정재승, 홍성욱,이은희 그리고 무수히 많은 번역가들등등)은 일반 독자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과학 지식의 이해를 충족시켜주고 더 나아가  상상력으로  출발한 자신의 과학적 이론이 발전, 이론화될 수 있는 과학 창조자(maker)를 양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버들은 메이커들을 만들 수 있는 엔진과 같은 역활을 한다. 과학책을 단순히 읽는 다는 것은 흥미나 호기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기본적인 과학사나 이론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않다면 더 깊은 과학의 세계로 나아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과학사와 과학이론책을 접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 세상이 그 어떤 이론도 따로 홀로 단절된 채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에게 영향을 받았고 맥스웰은 페더웨이의 실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빅뱅이론으로 이어진, 상호연관성으로 과학사는 촘촘히 짜여지며 서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우리 생활의 가장 큰 변화의 주역은 과학이다. 과학이란 저 머나먼 우주에 인공 위성을 쏘아올리고 달에 착륙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드는 것 같은, 고도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알 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과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창조물들이다. 가깝지만 멀고 먼 과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쉽게 도움을 주는 수많은 기버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뉴톤의 고전 역학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플랑크와 보어의 양자이론을, 튜링의 알레고리를, 이 모든 이론을 한단계 거쳐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의 해제을 읽은 그 누군가는  언제가 우리도 뉴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 칼 세이건, 도킨스, 굴드같은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과학 창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같은 과학하수가 그들의 입담에 빠져 과학책을 옆에 끼고 또 다른 과학책을 찾아 읽게 해준 것은 분명 이런 기버들이 덕이니깐.  그들이 쓴 글을 찾아 읽다보면 언제가는 고차원의 과학 이론이 쉽게 이해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느 정도 대략적이나마 과학적 이론의 체계가 머리 속에 잡히면, 위에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 쉽게 읽혀질 날이 분명 올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라이 투 더 문 -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우주과학 에세이
마이클 콜린스 지음, 최상구 옮김 / 뜨인돌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과학적 토막 상식 가운데 하나인 지구 밖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중국의 만리장성이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작가도 출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 이런 오류가 어떻게 상식으로 굳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 진실은 이렇다.  

1960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로 발사하는데 성공하자, 미국은 이에 충격을 받고 부랴부랴 나사를 설립하고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 우주로 내보내는 머큐리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치열한 미소간의 우주전쟁은 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우주에 쏘아보내 그가 "하늘은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라는 소감을 인류에 전하면서 짐짓, 미소간의 우주전쟁 초기에는 소련이 패권을 쥐는 듯 보였다. 게다가 가가린의 우주비행의 성공보다 23일 뒤진 1961년 5월에 미국도 앨런 세퍼드를 미국 최초 우주인으로 쏘아올렸지만, 지상 160킬로미터 상공에서 탄도곡선을 그리며 지구를 돌아 바다로 다시 떨어지는 고공비행일뿐이었다. 여러차례의 우주 비행이 시도됬고 어느 정도의 머큐리 계획은 최종 목표를 완수했다. 하지만, 미국이 인류역사에 커다란 성공의 발자국을 찍은 것은 1969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가 달착륙의 위협을 달성하면였고, 60년대 미소간의 우주전쟁 최종 승리는 미국임이 판명되었다. 

1969년 7월 20일,  우주인이 되기 위해 닐 암스토롱, 버즈 올드린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는 수 년간의 훈련을 쌓은 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을 향해 날아갔다. 마이클 콜린즈의 경우, 비행기 조정사였다가 우주인 채용공고에 지원해 합격함으로써, 고된 훈련(예를 들어 무중력 상태에서 견딜 수 있는 훈련이라든가 별자리 연구, 우주선 시뮬레이션 조정같은) 과정을 거쳐 아폴로 11호에 탑승하게 되었다. 이 트리오가 지구를 떠난 첫날, 콜린스는 암흑의 우주 공간에서 본 지구에 대해 " 아주 밝은 색을 띄었다. 녹빛이 나는 사막은 희미하게나마 보였지만 녹색의 정글 지역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바다는 맑은 다이아몬드와 같이 반짝거리면 밝게 빛난다(p186-187)"라는 아름다운 푸른 빛의 구의 지구만 보인다고 할 뿐, 중국의 만리장성같은 건축물이 육안으로 보인다고 기록은 쓰여있지 않는다.

하지만 오류는 지구밖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이 보인다라는 것뿐만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우주과학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플라이 투 더 문>이라는 이 책에도 오류는 있다. 이 책은 얼핏보면 저자인 마이클 콜린스 또한 닐과 버즈와 함께 인류 최초로 달착륙의 위업을 달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이클 콜린스는 닐과 함께 달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그는 달의 궤도에 남아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사령탑을 지키고 있었다. 아폴로 11호가 달의 궤도에 무사히 진입한 후, 닐과 버즈는 아폴로 11호에 부착된 거미모양의 비행물체 이글호를 타고 달의 표면으로 하강한 후, 인류 최초로 달표면을 밟은 것이다. 우주선에 혼자 남겨진 마이클은 "우주선에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느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며 내가 없다면 닐과 버즈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닐과 버즈의 귀환을 기다리며 달궤도를 비행 중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외로움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만큼 강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달이라는 산에 도전할 수 하는 두명의 등반가는 컬럼비아라는 베이스켐프가 있기에 안심하고 등정할 수 있는 것이다(p200)" 라고 적고 있는데, 비록 달의 땅을 밟을 수는 없지만 사령탑에 남아 자신의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 각오와 동시에 씁쓸함을 읽을 수 있었다.   

닐과 함께 달을 밟을 수 없었던 탓에 그의 업적은 사실 거의 묻힌 것이나 다름 없다. 그 누구도 닐과 버즈의 달을 밟고 성조기를 꽂는 모습은 기억해도 아폴로11호에 남아 닐과 버즈의 무사귀환을 염원했던 마이클이 노고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우주선 사령탑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어쩜 닐과 버즈는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라는 노랫말처럼 무한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우주미아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우주를 떠돌아 다닌다고 상상해보라.  깜깜한 우주속에서 떠돌아 다니며 죽음을 홀로 맞이한다면, 인류 최최로 달을 밟았다는 것이 뭐 그리 커다란 업적으로 남았겠는가. 마이클 콜린스가 주어진 업무를 소홀히 하고, 만약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 닐과 버즈를 구조하지 못하고 혼자 지구로 귀환했다고 한다면, 지금과같이 인류 최초의 달의 착륙이라는 수식어는 역사의 오점으로 빛이 바랬을 것이다. 

달과 지구의 거리는 약 38만킬로미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킬로미터이므로, 만약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달세계를 여행한다고 가정한다면, 1,2초안에 도착 가능하다는 이론은 성립이 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가 말한 대로 우리는 빛의 속도를 영원히 따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토끼가 산다고 믿었던 달에 가기 위하여 수 많은 기술이론과 연구, 실수와 착오를 거듭해가며 인공 위성을 쏘아올리고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선을 진수할 수 있는 로켓을 만들었다. 마이클 콜린스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이론들을, 우주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나사의 역사와 무엇을, 어떻게 그들이 진행했었는지에 대해 에세이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에 대한 탐사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은 무인 탐사선을 화성에 보내고 생명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이론은 지금의 물질 문명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구 밖 우주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어떤 별은 공룡이 탄생하기 시작되기 휠씬 전에, 출발한 빛을 이제 보고 있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지금 돌이켜보면, 1969년에 달표면의 도착은, 드 넓은 우주 공간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신비의  매듭을 풀기 위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시작이었던 셈이었던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출간된 책이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달을 향해 가기 위한 과정과 과학적 지식이 충분히 담겨져 있다. 닐과 버즈와 함께 마이클 콜린스라는 이름을 기억해야하는 이유가 여기 담겨져 있고 닐과 버즈가 달표면을 밟은 것만큼이나 가치있는 책임에는 틀림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리케인 미래그림책 33
데이비드 위스너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애니매이션 <빨강머리 앤>에서 내가 가장 탐낸 것은 앤의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의 창문에 걸터 앉아 ,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 바람에 날리던 벚꽃눈, 비오는 날의 우울, 하얗게 눈 내리는 풍경, 밤하늘의 무수히 찍혀 있는 별, 다이안과의 통신등 앤이 나에게 보여준 이 모든 것들은  다락방이 주는 환상 체험이었다. 그때,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던, 방 세칸짜리 좁은 단독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앤의 다락방은 부러움의 공간이자 상상의 세계에 머무는, 현실 불가능한 공간이기에 더욱더 간절하게 탐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다락방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남아있다. 현실적으로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울 것이 분명한, 그 곳에 대한 갈망이 주책스럽기는 하지만, 다락방을 꿈꾸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어쩜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곳이 아닐까. 누군가는 현실에서 탈피하고 싶은 피난처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험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장소로 말이다.

며칠 전에 아이에게 데이빗 위즈너의 <허리케인>을 읽어주면서, 큰 애는 시큰둥하게 넘어간 대목이었지만 어른인 내가 더 깊이 와 닿는 글귀가 있었다.  허리케인으로 자신들의 집 앞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자 두 형제는 그 곳을 무대로 온갖 상상력(아프리카 탐험놀이, 우주에서의 항해, 드 넓은 바다에서의 역경)을 동원하여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삼는다.  결국 그 커다란 쓰러진 나무는 조각조각 장작처럼 토막내  다른 곳으로 보내졌지만, 형과 함께 한 자신의 어린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한 그 그림책에서 데이빗 위즈너는 그 장소에 대해,  이제는 사라져 버린, 하지만 영원히 기억에 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공간적 노스탤지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둘은 가끔 가만히 앉아서 경치를 구경했습니다. 나무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둘만의 장소였지요. 그 곳은 비밀스러운 꿈을 펼칠 수 있을 만큼 컸고, 또 모험이 두렵지 않을 만큼 작기도 했어요."(Sometimes they just sat and enjoyed the view. The tree a private place, big enough for secret dreams, small enough for shared adventure.) 라고.

내가 꿈꾸는 다락방이 타인을 배제하고 공유보다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자폐기능이 강했던 것에 비해, 위즈너의 공간은 추억이고 상상력을 나누었던 공간이라는 것이 다를 뿐, 비밀스러운 꿈을 펼치고 모험과 공상의 세계가 두렵지 않았던 작은 왕국이었던 점은 나와 그, 아니 적어도 다락방이나 아지트를 꿈꾼 사람들에게 그 장소가 가져다 주는 세계는 동일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깊이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회색의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도 다락방을 실제로 사용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단지  이미지나 공상 속 또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나만의 벚꽃 날리는 다락방을 꿈꾸는 것처럼,  누구든지  당신이 체험했던 어린시절의 아지트였던 비밀 장소든, 지금 현재가 힘들어 공상속의 피난처든 난 누구든지 이런 작은 모험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마음 한 켠에 언제나 간직하길 바란다.


ps- 번역판은 형에게 헌사한다는 글이 없는데, 원서는 캐롤,바바라,조지에게라고 써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