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정치다 - 이헌재의 경제특강
이헌재 지음 / 로도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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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헌재는 전형적인 한국의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60년대 '명문고'로서 고교 입시전쟁을 불러온 경기고 출신이자 한국 학벌주의의 본산인 서울대 출신이며, 그 중 가장 엘리트독점이 심한 법대 출신이다. 그리고 보스턴 대학원에서 경제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거친 전형적인 미국파 관료라 할 수 있다. 60년대 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엘리트 관료로 발을 내딛었으며 엘리트 공직생활을 거쳤다. 재무부 재정금융 심의관, 국민의정부에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참여정부에서는 2005년 3월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실물경제에서 경험도 했다. 80~90년대에 대우그룹에서 대표이사를, 한국신용평가에서 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경제분야 종사자들로부터 '모피아의 대부'로 불린다. '모피아'란 재무부와 재정경제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로 재무부 (MOF, Ministry of Finance : 현 기획재정부)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이다. 재무부 출신의 인사들이 정계, 금융계 등으로 진출해 산하 기관들을 장악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MOF와 마피아의 발음이 비슷하여 마피아에 빗대어 부르는 모피아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70년대 경제정책을 실무적으로 수행했고, 경제관료로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IMF 구제금융 조건을 앞장 서서 이행했을 것이고, 참여정부에서 동북아 금융허브와 금융자유화, 부동산 거품의 급증, 공기업 민영화, 재벌우대정책, 비정규직 양산, 부자 감세에 기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국에 도입하여 이식한 실무책임 관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이 최근에 발간한 책을 읽는 이유는 안철수 후보 때문이다. 지난 9월 안철수 후보가 이헌재씨를 경제멘토로 대선 캠프에 합류시킨다는 기사를 접한 직후였다. 안철수 후보가 지난 7월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 보면, 안 후보는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와 재벌중심 경제구조, 금융자유화와 비정규직 양산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안 후보가 저자를 영입한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저자에게 무슨 '양심의 변화'나 '철학의 대혁명'이 있었던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은 9월에 발간된 것이지만, 주요 내용은 2011년 하반기에 저자가 특강한 내용을 중심이다. 책을 덮으면서 내 궁금증이 참 허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칠순에 가까운 이헌재씨의 철학이나 생각이 바뀔리가 없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아마도 안철수 후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지지가 나에게 그런 생각을 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 "공직에 있는 동안 제대로 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남지만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이 말은 군사정부 10년과 민주정부 10년 동안 엘리트 관료로서 자신이 정부에서 담당했던 경제정책이 좋은 결실을 맺었고, 그런 정책으로 인한 수 십년 간의 중산층,서민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 저자는 엉뚱하게도 '과거 시스템'의 종말을 말한다. 현재의 한국사회가 '정부 주도의 경제 정책, 일사불란한 실행, 토론 없는 문화'와 '노인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사회의 중심세력이어야 할 40~50대는 60,70대에 눌려 기회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낡은 세력은 곳곳에서 변화와 발전의 질곡이 되고 있다"라고 진단합니다. 그는 이런 주장을 직접 자신을 겨냥해서 책의 본문에서 다시 꺼낸다. "새 인재들이 새 시대에 맞는 가치관을 펼칠 수 있도록 과거의 주역들은 길을 내줘야 한다. 어쩌면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퇴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변화의 물결에 쓸려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쓸려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다가는 익사하기 딱 좋은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p.131) 이런 의견은 이 책에서 몇 개 안되는 '인정할 만한 주장'이었다.
이렇게 말했던 그가 몇 주만에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안철수 후보가 영입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자신이 책에 밝힌 생각을 잊어버린채 찾아갔는지, 안철수 캠프에 들어가기 위해 급하게 이 책을 발간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책을 읽고서 이헌재씨가 "참 두서없는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다녔고 정부에서 20년 넘게 경제관료를 엮임한 사람임에도 제대로 된 철학도, 이론도, 정책도, 계획도, 비전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듯한 단어와 개념과 사례만 나열하고 있다.
공정한 시스템을 말하지만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비판은 책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말에서부터 '창조경제' '창의기업' '열린사회'를 제시하지만 제대로 된 내용은 발견할 수 없다. 책 속에서 서로 논리적 연관성도 없는 공정한 시장질서, 도전 정신, 혁신경제,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안철수 후보의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베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관료의 사례를 접하면 과거 임창렬 부총리의 경우 처럼 한국의 '엘리트 관료'가 얼마나 허약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객관식 사지선다형 문제에 강한 엘리트,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동료와의 경쟁에서 앞서는 엘리트, 창조성보다 출제자의 의도에 따른 정답을 먼저 찾는 엘리트, 자신이 뛰어나다는 착각, 권한의 남용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엘리트, 오만과 무능...
 
그리고 그에게는 특이하게도 80~90년대가 '잃어버린 시간'인 것 같다. '60년대식 경제체제'를 말하면서 바로 건너뛰어 2012년을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87년 체제'도 없다. 87년 이후 군사체제의 청산과 문민정부의 등장, 경제권력과 언론권력의 부상, 개방체제, 금융자유화 등에 대한 진단이나 평가없이 한국이 60년대 체제를 최근까지 지속해 온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사람에게서 제대로된 현재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평가와 대안이 나올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자신이 담당한 업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과거에 잘하든 잘못하든 간에 정부운영과 정책이 존재한다면 자신이 담당했던 구체적인 정책사안을 통해 밝여햐 하는데 몇 개 정도 언급되지만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마치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자신이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다시 꺼내어 평가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제시하는 사례는 60~70년대 국내사례와 이명박 정부정책, 그리고 해외사례 일 뿐이다. 이명박 경제체제가 문민정부와 민주정부 15년 동안의 과정에서 이어지고 자리잡힌 체제라는 것을 모르는지, 무시하는지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이헌재씨의 '경제특강'은 독자들이 읽고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말짱 황'이다. 그에게서는 따뜻한 가슴도, 뜨거운 열정도, 냉철한 이성도, 현명한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모피아의 대부로서 금융기관과 경제부처, 대기업과 연구소에 잔뜩 포진되어 있는 '이헌재 사단'의 상징으로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 책을 통해 얻은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모피아의 대부'마저 겉으로나마 시장만능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20년 가까이 자본주의 변방 한국에서 마지막 위력을 떨치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비로서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왜 이런 사람을 안철수 원장이 경제정책의 멘토로 삼고 중용했는지 더 궁금해졌다...ㅠㅠ 그는 자신의 말대로 벌써 '퇴장'했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안철수 후보가 정책과 공약을 발표할 것이다. 부디 이 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났으면 좋겠다.

[ 2012년 10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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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정치동맹 - 10인의 민주진보진영 리더에게 묻다
이상이 외 9인 지음, 김윤태 인터뷰 / 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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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2 지방선거는 한국 정치사회에서 하나의 분수령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6.2 지방선거의 쟁점 중 하나가 '복지'였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과 진보정당 뿐 아니라 국회의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씨도 본격적으로 '복지'를 정치적 의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의사가 확인된 후 시민단체들은 '복지국가 실현 연석회의'를,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개인들이 모여 2011년 5월 '복지국가 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서울본부, 노원지역 본부, 성남본부 등 지역체계를 갖추었다. 국민운동본부는 초기에 강연회, 토론회 등을 적극적으로 열고 자료집을 제작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였으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전국 각 지역단위 조직이나 활동을 전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개별적인 유권자, 풀뿌리 시민단체,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하게 논의하면서 조직체를 꾸리기 보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라는 시기에 맞추어 정당과 시민단체 등의 상층 인사들끼리 서둘러 조직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내 예상으로는 이 책이 그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 즉 서둘러 '복지국가 국민운동본부'를 출범하였으니 그 연대조직의 목표나 정책의 합의가 부족한 상태였고,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에 치중하다 보니 2012년 선거를 앞두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치적인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느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0인의 민주진보진영 리더'라는 부제에서 말해주듯이 인터뷰에 참여한 10인은 국민운동본부에 몸을 담근 조직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복지국가 국민운동본부 공동본부장), 문성근 100만 민란 국민의 명령 공동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손학규씨가 인터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한국정치의 핫이슈인 '복지국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시민사회, 민주당, 진보정당의 리더 10인의 전략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이들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에는 다양한 의견과 차이를 보인다. 또한 2012년 총선과 대선에는 반드시 '복지국가 정치동맹'이 이루어져야 다시 민주진보정부로 갈 수 있다며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 전략에서는 단일정당, 야권연대, 진보대통합 등의 다소 차이를 보인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시민정치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한국정치 재편을 모두 주장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책이 발간된 지 1년이 넘은 지금 10인의 정치적 안목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복지국가를 향한 한국정치, 정당정치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일관성만 있다면...
 누구나 생각하듯이 복지국가 건설은 매우 정치적인 과정을 거친다. 선거 때마다 정책과 공약보다 상대방의 실수와 약점으로 승패가 갈리는 한국정치에서는, 정당과 시민단체의 지도자들이 복지국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려지지 않는다. 특히 법률과 예산을 결정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민주진보개혁진영 지도자들이 복지국가 건설을 합의하고 창의적인 정치 전략을 고민하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왜 복지국가 정치동맹인가? 이상이 대표는 "한국 유권자의 99%는 민생불안을 해결해 줄 복지국가와 밥이 되는 민주주의를 바라고 있다. 모든 정치세력이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크게 단결하여 성장만능과 시장만능을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을 심판하고,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실현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집권을 갈망하고 있다. 진보개혁 정치세력은 작은 차이와 기득권을 벗어던지고 보편주의 복지국가라는 '가치와 노선'을 중심으로 단결하기를 원한다."고 그 이유를 밝힌다. 하지만 그 리더들은 정치동맹의 방법에서 서로 다르다. 10인 중 일부는 하나의 정당,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만들어 국민의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다른 일부는 야권연대를 통해 달성하기를 원한다. 전자의 입장은 야권통합, 야권단일정당 없이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야권이 '필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상이, 문성근, 김기식, 이인영, 정동영, 천정배, 정세균은 전자의 입장이고 권영길, 조승수, 이정희는 후자의 입장이다. 물론 전자의 입장의 경우에도 조금씩 내용이 다르다. 특히 정동영 최고위원과 천정배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선혁신'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민주당의 혁신 없이는 야권단일정당이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후자는 '진보대통합'과 '야권연대'를 주장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많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2011년 하반기와 2012년 상반기의 정치상황은 복지국가의 '가치'는 크게 퇴색하고, 정치공학과 선거전술만 난무한 모습이었다. '빅텐트론'과 '야권단일정당'을 결사적으로 외치던 문성근, 김기식, 이인영은 '간절한 외침'과는 달리 그다지 야권통합에 열정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정부 출신 일부 정치인과 정치성향의 시민단체 활동가, 백만민란등 몇 개의 시민단체를 묶은 '혁신과통합'을 결성한 후 민주당과 합당하였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진보정당과 야권연대를 이루어냈음에도 오만함과 무능함을 보였다. 공천실패와 리더쉽 부재, 전략전술의 실패로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과반수를 내주었다. 2011년 이 책이 발간될 당시만 하더라도 '건강보험 하나로', '복지국가 만들기 운동본부'. '100만 민란 운동', '내가 꿈꾸는 나라' 등 시민정치운동이 들불처럼 일고 있었지만, 민주통합당으로 합당한 이후 복지국가 운동은 사그라 들었다.
진보정당 역시 '진보대통합'에 실패하였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의 일부가 통합진보당으로 '소통합'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나마도 통합진보당은 지난 4.11 총선 이후 부정경선 시비와 당내 권력다툼으로 망신창이가 된 후 국민참여당측과 진보신당 탈당파측, 그리고 민노당 내 일부가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창설하느라 요즘 분주하다.
이상이 대표가 중심이 된(?)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패한 이유는? 내 생각에는 섣부르게 상층인사 중심으로 정치동맹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야권단일정당'을 시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세상이 점점 독점에서 분산으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획일화에서 다양화, 관료화에서 분권화로 가는 마당에 이념과 지지층이 다른 정치세력을 정권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만 통합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한 욕심이었다.

 

이상이 대표는 매듭말에서 "앞으로 더욱 더 국민 일반이 갖고 있는 불안을 제도적 방식으로, 사회 연대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깨어있는 국민, 시민이 많아야 하며, 이것이 시민정치운동이 할 일이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10년을 지나오면서 엄청난 변화의 조짐들이 시민사회 내부에서 일고 있다 한다. 이러한 변화의 요구를 어떻게 복지국가 건설로 모아 나갈 것인가, 앞으로 1년 동안 시민정치운동, 풀뿌리 시민운동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정치가 광범위한 국민의 움직임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 과거의 관성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는 올 2011년 말의 정치질서 재편 국면에 영향을 줄 것이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당은 이 시민적 토대 위에서 복지국가 노선을 내걸고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2011년 1년 동안 전국적 수준의 풀뿌리 시민정치운동이 굉장히 중요한데, 만약 그것이 잘 안 되면 정치질서 재편이 잘 안 될 것이고, 그러면 복지국가로 가는 것은 한동안 미뤄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앞 말은 여전히 유효하되, 뒷 말은 과도한 우려일 것이다.
'명사정당' 수준이 민주통합당과 '명망가단체' 수준인 시민단체, 정파간 갈등이 극심한 진보정당만으로 정치가 혁신되고 시민정치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날 수 없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풀뿌리에서부터 유권자들의 생각과 요구를 모아야 한다. 동네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직장에서부터 복지국가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홍보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풀뿌리 시민단체, 생활협동조합, 노동조합, 농민회, 온라인 동아리, 카페, SNS에서 꾸준히 복지 쟁점을 꺼내고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논의단위를 조금씩 광역화하고 그것이 복지국가 전국운동과 만나야 할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도 끌어들이고...
1년만에 복지국가 운동을 전국적으로, 지역에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처음부터 무모하고 욕심이었다. 유권자들의 생각이 바뀌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루이틀, 1~2년에 이루어 질 수 없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계기일 뿐이다. 어차피 현재 수준에서의 선거는 정당들의 선거 경쟁에 좌우되는 것이 중심이고, 복지국가 운동이나 시민정치운동은 그 기회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10인의 리더들이 99% 유권자의 염원이 복지국가이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이 책 속의 다짐과 약속을 잊지 않았기를 바란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복지 쟁점을 형성하고 정책과 공약으로 반영하여 다시 한 번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승리가 내년 새로운 정부에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 건설의 실행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 2012년 10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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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시대 -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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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은 통한다"라는 경구가 있다. 이 문장을 정치사상적인 관점에서 풀면 "극좌는 극우와 통한다"가 된다. 이 표현이 모든 세상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이 표현에 해당하는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목적은 당연히 '공동선'이거나 '민중들의 자유와 행복'일 것이다.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목적'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는 십중팔구 전체주의나 소수 독재체제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이 극좌 또는 극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극좌와 극우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이분법'이다.


강준만 교수는 '이분법'을 무지하게 증오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강 교수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안철수 후보가 이분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애기할 정도다. 그는 모든 사람이나 사건은 속성상 '명암'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에는 지고지순한 선(善)도 악(惡)도 없다는 말이다. "매사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속담과도 같다. 그의 그런 생각은 그의 최신 저서인 <안철수의 힘>에서도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이 책 역시 '멘토'를 무조건 지지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에 불고있는 '멘토 열풍'에 주목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멘토로 인정받는 인물 열두 명을 논의 대상으로 삼고 유형을 규정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멘토 열풍에 빠진 이유를 탐색한다. 그는 멘토 열풍의 핵심 코드로 ‘위로’를 언급한다. “그까짓 위로로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폄하하는 식자들도 있지만,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는 그 어떤 사회과학적 메시지보다 값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위로를 넘어 재미까지 추구하는 ‘멘토의 제도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멘토링을 구현하자고 제안한다. 


강 교수가 책 속에 다룬 한국의 대표 멘토는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김어준, 문성근, 박경철, 김제동, 한비야, 김난도, 공지영, 이외수, 김영희 등 12인이다. 그는 멘토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철학을 집중 분석하면서 그들이 왜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논한다. 눈여겨볼 점은 강준만식 인물비평이 늘 그래왔듯이, 각각의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예리하게 통찰하고 해부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안철수 현상', 김어준과 '는 꼼수다' 열풍, 공지영과 이외수를 둘러싼 트위터 논란, 이익공유제와 관련된 이건희와 박경철의 입장 차이, 문성근의 100만 민란 주장과 미국의 무브온 모델 분석, 김제동의 웃음과 상처의 의미, 김영희 PD와 '나는 가수다'의 대중문화 현상 등이 그것이다.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로 깊이와 차원이 다른 인물 비평과 사회 비평의 정수를 보여주는 '강준만식 글쓰기'는 이 책에서도 계속된다.


왜 한국사회에 '멘토 열풍'이 부는가? 강 교수는 "위로라도 갈구하는 '88원 세대'의 고통이 첫째 이유이지만, 동시에 이 세대가 맞은 디지털 시대의 하이테크가 남긴 하이터치 욕구가 청춘 콘서트로 대변되는 새로운 유형의 멘토링을 성장시킨 또 다른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는 청춘이 권력이나 인정 욕구 충족의 원인이라는 점도 멘토 부메 일조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보면 대표적인 멘토로 불리는 이들은 예외 없이 청춘 콘서트, 또는 비슷한 형식을 애용하고 있다.


"강준만의 안철수 지지 선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인물은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다. 아마 최근 그의 뜨거운 인기를 반영했을 것이다. 강 교수는 이문열의 “안철수는 언론이 키운 아바타”라는 말에 반박하며, 안철수 인기의 비결을 10가지 코드로 해석한다. 엔터테인먼트 소통 코드, 분배 양심 코드, 엄친아 성공 코드, 정의?공정?공생 코드, 안전 개혁 코드, 이념 양극화 혐오 코드, 뚝심/책임 윤리 코드, 디지털 혁명 코드, 특별한 역사적 기회 코드, 패러다임 비전 코드 등이 그것이다. 

강 교수는 특히 “엔터테인먼트 소통 코드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는 점에서 안철수는 다른 대선 후보들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한다. 이념 양극화에서 탈피했다는 점도 안철수의 매력으로 본 강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실 안철수를 두고 좌우니 진보-보수니 하고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아니 그런 구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실업자로 사느니 교도소 가겠다’, ‘우리에게 애국(愛國)은 없다. 우리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나라는 애국받을 가치조차 없다’고 절규하는 청춘에게 무슨 얼어죽을 좌우며 진보-보수 타령이란 말인가. 일관되게 청춘의 고통을 위로하며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안철수가 대다수 청춘에게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여겨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리라.”(p.52)


<안철수의 힘>(2012. 7)에서 이미 안철수 원장을 공개 지지했지만, 강 교수의 안철수 지지의 가능성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복선을 깔았다. 강 교수는 2011년에 출간된 화제의 책 <강남 좌파>를 논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즘 정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분법적 조악함이 너무도 한심하고 답답해 대표적인 강남 좌파일망정 이분법에서 해방된 강남좌파인 안철수의 명(明)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p.9)


이처럼 강 교수는 대한민국의 대표 멘토 열두 명이 우리 사회에서 왜 열풍을 일으키는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깊이 있게 분석했다. 책 제목처럼 가히 ‘멘토의 시대’라 할 만하다. 사람들이, 특이 왜 20~30대 청춘들이 멘토를 갈구하는지에 대한 현상 분석과, 더 나아가 그 현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도 제시한다. 

그는 문재인 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인격,품위형 멘토'로, 박원순 서울시장를 '순교자형 멘토'로, 김어준 총수를 '교주형 멘토'로, 문성근 의원을 '선지자형 멘토'로, 박경철 원장을 '멀티,관리자형 멘토'로, 방송인 김제동씨를 '상향 위로형 멘토'로, 여행가 한비야씨를 '자유,개척형 멘토'로, 김난도 교수를 '경청,실무형 멘토'로, 소설가 공지영씨를 '열정형 멘토'로, 소설가 이외수씨를 '자유,도인형 멘토'로, 김영희 PD를 '재미계몽형 멘토'로 분류한다. 물론 강 교수는 각 멘토에 대한 속성 분류와 동시에 개별 멘토의 한계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도 놓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할 때, 강 교수가 '한국의 대표적인 멘토'로 지목한 이들 중, 문재인 후보와 문성근 의원은 의외다. 두 사람의 멘토 분류 내용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말해 문재인 후보와 문성근 의원이 최근 몇 년 동안 20~30대 청춘들과 소통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대통령 사후 '노무현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관련 업무에 치중했고, 정치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몇 차례 김인회 변호사와 <검찰을 생각한다>를 발간하여 콘서트를 열기는 했지만... 문성근 의원 역시 오랫동안 '국민의명령'이라는 야권통합 운동을 벌였고, 정치 콘서트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청춘 세대와 소통은 아니었다.


강 교수의 의견에 대체로 공감이 되면서도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박원순 시장에 대해 비판한 대목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최열이나 한명숙씨 등과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의 회원들, 지지자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개인적인 '결단'으로 '선택'했던 모습을 못내 아쉬워 한다. 그리고 시민운동가들이 대거 정치권에 뛰어든 2011년 하반기의 모습은 국가 - 시민사회 - 시장 사이의 상호견제라는 현대적인 질서가 '한국적 정치만능론' 때문에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박원순 이후'의 시민운동이 순수성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게 돼버렸다. 참여 민주주의의 대의를 앞세운 현실 정치 참여가 오히려 시민운동을 이기에 빠뜨리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p.121)

박경철 원장의 경우는 '안철수 후보의 경제 멘토'라는 별칭 때문에 관심 깊게 읽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 보다 재벌과 자본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눈에 띄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이 책을 읽다가 박경철 원장의 책을 신청했다.

김제동씨에 대해 강 교수가 배려하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크게 공감되었다. "(김제동씨의) 연락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김제동은 연락이 오면 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 즉 옮은 말만 해야 한다는 강박, 그건 그의 상식이 강제하는 것이며, 그 상식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초능력적 기억과 그에 따른 실천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김제동에게 연락하더라도 정치적 당파성이 없는 자리에만 부르자. 아니 모시자.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사회가 김제동이라는 탁월한 재능을 오랫동안 향유해야 하기 때문이다."(p.216)

김영희 PD에 대한 강 교수의 설명에서 진보 정당에 대해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비판도 발견된다. "사실 김영희는 진보 정당이 사부로 모셔야 할 멘토다. 진보 정당의 치명적인 약점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우월감만 하늘을 찌를 뿐, 여전히 눈에 핏발 선 이미지다. 그를 멘토로 모셔가는 단체가 제법 있는 걸 보니 시민단체들은 이미 김영희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눈치 챈 것 같다."(p.314)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강 교수가 진보세력 또는 '운동권' 출신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꼬집는 글이었다. 아래 글은 강준만 교수가 2006년에 쓴 칼럼 중 일부다. 그런데도 어제 일에 대해 애기하는 것처럼 여전히 우리에게 생각하게끔 한다. 대통령 선거를 100일 남짓한 한국사회에서 야권 내의 민주진영, 진보진영을 자처하면서도 인간애가 실종되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자주 겪에 된다. 특히 SNS 상에서... 나 역시 SNS에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면서 언어폭력을 가한 게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없는 메마른 개혁-진보 담론은 자신의 출세나 인정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일지 모른다. 스티븐 룩스는 <마르크스주의와 도덕>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망친 건 도덕의 부재라는 걸 시사했다. 마르크스주의든 개혁주의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강하거나 그런 열망으로 포장한 권력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인간적 도덕'이 결핍되기 쉽다. 나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에 자기비판을 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려보겠다. 

인간적 도덕이라 함은 정실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자기 성찰이다. 역지사지 능력이라 해도 좋겠다. 물리적 폭력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폭력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하기에 하는 말이다. 과거의 동지를 비난하고 상처를 주더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있는 법이다. 가학의 쾌감을 느끼려는 게 아니라면, 무엇보다도 상대편의 말과 글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까지 하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다.

"자신 있는 자만 돌을 들어라"라는 말은 보수 이데올로기로 악용될 수도 있지만, 참뜻은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뜻이다. 자신의 흠과 추태에 대해선 무한대로 관대할 뿐 아니라 모두 좋은 뜻이었다고 미화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의 행태에 대해선 성난 얼굴로 비난만 해서야 쓰겠는가? 남들도 자신만큼 지능과 선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자세가 아쉽다."(p.254)


[ 2012년 10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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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학력 학벌주의
이정규 지음 / 집문당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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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전 부분에서 갈수록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불공정'과 '불평등'은 특히 경제와 사회문화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불공정'과 '불평등'은 쉽게 '차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분야에서의 불공정과 불평등의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특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생산자 및 공급자의 소비자에 대한 불공정 거래, 조세 및 재정에서의 불균형,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빈부격차의 심화로 나타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분야도 경제문제다.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불공정과 불평등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과 지방간의 불평등, 대도시와 중소도시간의 불평등, 국세와 지방세의 불평등, 지방자치제도의 미흡함, 전문가 집단의 일반직종에 대한 불공정과 불평등, 학력차별과 성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지방대 및 지방 출신에 대한 차별, 지역주의에 근거한 차별, 학벌만능주의에 따른 차별과 대학서열체제 등이 문제다.
 
그렇다면 학력과 학벌은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개인의 삶의 기회 선택 뿐 아니라 개인가 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특권과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고, "학력과 학벌은 우리사회 불평등의 핵심 요인이자 공교육 위기와 혼란의 근원으로 질타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학력과 학벌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인류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동의하는 가치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 안락하고 행복한 사회라 한다면, 이러한 사회를 유지하고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기회의 균등'이다. '기회의 균등'에서의 핵심 요소는 '동일한 출발선'이라 할 수 있는데, 정치경제적 지위와 능력을 이용하거나 학력과 학벌을 이용하여 출발선이 다르게 된다면 기회의 균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21세기의 시대정신 중 하나가 공정과 공평이라면,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학력,학벌주의의 청산 역시 사회 전체적으로 힘을 쏟아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언론에서 다루는 사회문제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학력주의나 학벌주의에 대해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언론이나 여론을 주도하는 중산층들이 대부분 대학 이상의 학력과 서울대, 연대, 고대 이상의 학벌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초중고생을 아이로 둔 학부모 중에서 학력이 전문대졸 이하인 경우, 오히려 학부모들이 학력주의나 학벌주의에 심취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소득과 자산이 학력이나 학벌 때문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직이나 서비스직, 비정규직이나 영세상공인의 경우 언론이나 여론을 형성할 자신감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력, 학벌주의에 직접적인 희생자인 아이들과 학생들은 직접 주체가 되기 어려운 성장시기이며, 대학입시전쟁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는 가족, 학교, 사회적인 조건이 작용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1987년 이후 사회가 민주화되었다는 인식 아래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성공'과 '부자'를 향해 각개약진 방식으로 흩어졌다. 그 이후 약 25년간 사회 전체를 '승자독식 무한경쟁 사회'가 지배해 버렸다. 개인들의 이러한 인식과 행동에는 정부와 기득권층, 여론주도층의 이데올로기 분위기도 한 몫 거들었다. 쉽게 예들들어 TV와 라디오, 신문과 출판물에서는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전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비판 없이 전파되고 받아들여졌다. 처세술과 자기계발, 경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학력과 학벌이 우리의 문화사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 분석한다. 그는 한국의 역사문화적인 관점에서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형성과정과 동인을 추적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저자는 '학력주의'란 "학력의 실질적인 가치보다는 상징적인 가치가 능력과 실력으로 간주되어 과도하게 중시되는 관행과 경향"으로, 학벌(만능)주의란 "학연에 바탕을 두고 파벌을 이루어 정치적 파당이나 붕당, 사회경제적 독과점, 문화적 편견과 갈등 및 소외를 야기하는 관행이나 경향"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학력과 학벌,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저서로서는 두 번째다. 김상봉 교수의 <학벌사회 :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2004, 한길사)는 학력과 학연, 학벌(주의)를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저서였다. 참고로 강준만 교수의 <입시전쟁잔혹사>는 조선 후기 이후의 과거제도와 교육제도, 그리고 입시제도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학력, 학벌주의가 발생된 시점을 고려 초기 광종이 실시한 '과거제도'로 삼는다. 광종은 "당시 왕권을 위협하던 공신과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 내지는 억제함은 물론, 왕권을 강화하고 군주에 충복할 수 있는 인재를 관리로 선발, 채용하기 위하여 과거제도를 실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학력의 가치는 과거를 통하여 관직을 획득하는 것에 그 극대점을 두었다"고 분석한다.
그는 조선시대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발육기'로 규정한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왕권의 강화를 위한 관리 선발의 수단일 뿐 아니라 양반집단의 세력 신장을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는 유생양반을 중심으로 당파가 성행하였다. "학연과 파벌로 이루어진 당파 혹은 붕당은 현대판 학벌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말 개화기 및 일제시대는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태동기'였다. 조선말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도와 과거제도가 철폐되었으며, 신분에 관계 없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구양반 계층은 관학교육기관에서, 상민이나 평민계층은 선교사들이 세운 사립학교에 입학하였다. 일본제국주의는 한반도의 식민 통치와 더불어 학력의 제도화를 구축하였다. 일제의 학력의 제도화는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당시 관공립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대부분 구양반 계층이었다. 그리고 일제의 관공립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사회 주요 분야의 요직을 차지했고, 이러한 위치는 해방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미군정기 및 대한민국 시대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형성,정착기'로 규정한다. 특히 미군정이 재기용한 대부분의 고위공직자들은 "일제하에서 고학력과 학벌을 통하여 사회경제적 지위와 이익을 획득하였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는 "현대 한국사회의 학벌주의의 뿌리는 일제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으나 학벌주의의 발동은 미군정시대에 그 기회를 맞게 되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학력주의를 강화시키고 학력의 가치를 극대화시킨 주요 요인들은 "분단국가로서의 정치 상황, 피폐한 경제 현실, 미비한 제반 사회제도, 전통문화와 식민문화의 유산, 공교육체제 강화, 국민의 교육열 등의 복합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1990년대~2000년대 정부 및 공공기관 등의 자료를 토대로 학력과 학벌의 가치, 흐름, 격차 등을 분석한다. 그는 학력별 공무원 합격자, 학력별 직종별 취업자 수, 학력에 따른 산업별 종사자 수, 연도별 학력별 임금격차, 직종별 평균임금 격차, 산업별 학력별 임금격차 등의 데이터를 통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학력은 "사회지위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직업 선택뿐만 아니라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기제로 인식되어, 더욱 더 높고 나은 사회경제적 보상을 위해 학력의 종,횡적 분화와 경쟁의 심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런 흐름은 고학력 경쟁이 유발되고 학력 인플레이션이 진행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또한 출세주의에서 파생된 현재의 서울대를 정점으로 여타 몇몇 출신대학을 위주로 한 학벌주의 역시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준신분화되고 있는 학벌주의는 업적주의 내지 능력주의에 기인한 학력의 순기능보다도 형식주의 혹은 명목주의에 기인한 역기능을 우리사회에 파급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단 한 번의 대학입시 결과에 의하여 개인의 학력만을 검정받은 후에, 그 결과 학연에 근거한 학벌주의에 의하여 일생동안의 삶에 프리미엄을 얻어 자신의 개인적 영달과 영화를 위해서 소아적인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간다면, 그것은 이생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에 대한 보상의 평가방법과 과정이 불합리하고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식인은 사회공익성을 위하는 진정한 엘리트가 아닌 소위 출세지향적이며 기회주의적인 '기능적 지식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p.160)
 
"이미 학력은 사회평등화의 기제로서의 순기능보다 사회불평등을 조장하는 역기능의 도구로 전환되었으며, 학벌은 공공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엘리트의 상징성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동류 집단의 이익추구를 위한 '소아적 식자(識者)의 간판'으로 전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p.167)
 
저자가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제시하는 정책 방안은 기존 연구자들과 대체로 비슷하다. 따라서 여기에서 또 다시 열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가치는 현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인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제도교육이 정착된 해방 이전에, 즉 과거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역사적, 문화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라는 불평등 의식과 문화가 한국인들의 문화적 유전자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의미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어떤 문제인지 아는 것부터 해결은 시작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모두가 인식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로부터 피해를 받는 이들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고 있는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 역시 책임을 통감하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 2012년 9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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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말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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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간략하게나마 도올의 사상의 정수와 현실세계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 도올은 이 책 한 권 속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를 망라하였다.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 매크로하고도 마이크로한 모든 인간상황이 제기되어 있다. 도올은 그 모든 상황에 대하여 철저히 우리의 상식과 통념을 깨버린다. 그는 "한국어로 한국인에 의하여 한국인을 위하여 쓰여진 가장 래디칼한 책. 니체의 래디칼리즘을 몇만 배 뛰어 넘는다."고 큰소리 친다.
 
도올은 이 책을 우연하게 집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사연은 <맹자, 사람의 길>을 탈고한 후에 좀 쉬는 틈에 생겼다. 저자가 낙산에서 산보하는 데 어느 젊은이가 다가와 도무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가 막막하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면서 도올에게 고전번역만 하지 마시고 선생님 자신의 언어로 쉽게 아주 기초적인 문제를 일깨워 달라고 청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책을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고 한다.
도올은 그 호소에 공감한 나머지 불과 한 달 만에 1,422매의 방대한 원고를 완성하였다. 당초의 기획보다 너무 분량이 많아지고 결코 쉽게 읽힌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출판사측은 쉽게 읽힐 수 있는 후미의 4개의 장, '청춘' '역사' '조국' '대선'을 앞으로 옮겨 편집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 만들었다. 원래 순서는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 그리고 '청춘', '역사', '조국', '대선'이었다고 한다.

먼저 '청춘'에 대한 정의와 역할이 다르다. 도올은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천명한다. 다시 말해 "노인들의 청춘에 대한 회상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추억은 아름다운 로맨스만을 추상해내고 거기에 부수된 불안, 공포, 고통은 떨쳐낸다. 청춘의 압도적인 사실은 좌절이다"고 정의를 내린다. 그에 따르면 청춘은 '모험'이며, "모험은 문명이라는 유기체의 핵심이다. 모험이 없는 문명은 문명(文明)이 아니라 문암(文暗)이다. 그것은 고착 속에서 진부해지고 부패한다. 문명의 부패를 막는 힘은 오직 청춘에서만 온다"고 '청춘'에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청춘의 모험을 불안한 것으로 바라보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청춘의 모험이 강행하는 역사진행의 부작용은 안정이나 완벽을 구가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부패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것이다"고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춘들이 쫄아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부귀의 정점이 지속된다고 믿는 청와대, 검찰계, 법조계, 조중동, 대기업... 이들은 모두 청춘의 모험을 억압하는 세력일 뿐만 아니라, 바로 한국문명 자체를 내부에서 붕괴시키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일갈하기에 이른다.
 
'역사'와 '조국'에 대한 도올의 해석은 명쾌하면서도 한국의 주류 세력에게 도발적이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중고 교과서 왜곡에 앞장선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조선민족은 분열을 사랑한다"와 "자기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라는 식민사관은 객관적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리 스스로의 생각의 질곡이다"고 규정한다. "남북분열을 획책하고 미일제국 일변도의 종속외교에 집착하는 모든 이유가 식민사관의 연장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번 대선에 승리하는 대통령은 반드시 먼저 북한에 다녀오고 난 다음에, 중국이나 러시아를 다녀오고, 그후에 미국을 가야한다"라고 단언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 특히 야권 후보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그의 미국에 대한 태도 역시 흔들림 없이 중심이 잡혀 있다. 그는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의 장을 활용하여 그 몇천배의 이득을 취해갔다. 우리가 해방이후에 미국에게 바친 저자세의 충성심은 이미 단군 이래 조선말까지 대륙중원에 바친 충성심의 합계를 몇천배 뛰어넘었다"고 미국에 대한 종속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미국 아니면 못살아! 예수 아니면 못살아! 빨갱이는 정말 미워! 바로 이 한국인의 정서가 식민사관의 최대의 승리라는 것을, 바로 일제 관변사학자들이 지금도 무덤에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고 질타한다.
 
'대선'에 대한 도올의 평가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일으키며 언론에 알려졌다. 나 역시 그 언론 기사를 접하고서 이 책을 알게 된 셈이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에 대해서는 "학력과 경륜과 정책컨텐츠를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소유한 새 시대의 인물"이라는 점이 장점이되, "뜨거운 가슴이 좀 부족"한 것을 단점으로 평가한다. 김두관 후보에 대해서는 "공사가 분명하고, 자기 삶에 부정의 요소라고는 한 오라기도 없을 만큼 공직생활을 사는 건실한 인물"이며 "결단력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고 외관이 출중하며, 인품이 신비로울 정도로 듬직하다"리안 점이 장점이되, "거대 담론을 소화해낼 수 있는 집약적 학습이 더 필요하다"는 점이 단점이라고 평가한다.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사심이 없고 대의에 대한 헌신이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매우 훌륭한 인격구조를 가지고 있다"면서 "성품이 선량하여 사물의 정도를 학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노무현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극복해야"하며 "생각이 너무 단순"하고 "깊이와 지도력을 갖춘 담론을 개발해야"함을 충고한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는 독특하다. 그는 "안철수라는 에너지를 키워 잘 활용하면 이길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진다"고 말한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안철수는 이 시점에 한민족에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축복이다. 안철수는 우리 민중의 진실표출의 상징이다. 안철수는 하늘이다!"고 정의를 내린다. 그의 이런 해석이 자칫 안철수 후보에 대한 과도한 평가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도올의 그러한 평가가 안철수 개인이라기 보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평가로 생각한다. 그는 민중들이 과거의 대통령들, 이승만에서부터 김대중, 노무현을 거쳐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정치인 출신들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정치인이 아닌 사람에게 권좌를 부여해보고 싶은 근원적으로 새로운 갈망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명박 현정권의 행태와 존재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에 대한 도올의 평가는 엄정하다. 나는 민주정부 10년이 군사독재 시대에서 시민주권 시대로 이행되는 과도기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통해 유권자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성과적으로 치르지 못하면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를 해소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명박이 희대의 악정(惡政)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고 있는 것은 그가 국민에게 수용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의미한다. 국민은 그의 악정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
국민이 그를 사랑해서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을 감내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의 악정(惡政)이 아직 이명박의 악정을 상쇄하지 않을 정도로 추악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에서 이미 다 뿌리를 내린 것들이다.
이명박의 신자유주의적인 친미,친일,친대기업의 경제정책의 기본 노선은 김대중이 IMF를 극복한다고 성급하게 추진한 모든 방식의 노선들을 더 추악하게 발전시킨 것일 뿐이다. 김대중의 비전이 이 민족의 미래를 더 도덕적으로 더 민주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은 아무 것도 우리 뇌리에 남는 것이 없다. 모두 진부한 판에 박힌 정책일 뿐이다. 그의 지방자치제에 관한 구상도 이 민족의 산하와 국가의 재정구조를 더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이 그 선업의 측면보다 더 많다. 시작은 노태우 정권이 하였지만, 그 실현의 원동력은 DJ로부터 온 것이다. 어차피 빈핍하게 되어가고 있던 지방문화를 근원적으로 개선하는 보다 현명한 단계적 자치화 방안이 있을 수 있는데도 그는 그의 정치적 이권의 구상에 따라 성급하게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전라도'라는 위대한 민중의 고난의 에너지를 사유화하여 특수한 로칼권력의 보루로 전락시켰다. 그가 잘한 것, 지속적으로 추진한 성공적인 사업의 사례로서 대북 햇빛정책을 들 수 있겠으나 그것도 레토릭에 그쳤을 뿐 구조적 변화를 이룩하지 못했고, 노벨상을 독식하면서 빛을 바랬다. 지금 국민 누구가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영예롭게 기억하는가? 노벨상 그 자체의 기만적 성격만 국민에게 부각시키면서 노벨상의 권위를 추락시켰을 뿐이다. 물론 기나긴 세월, 우리 민족의 민주투쟁의 고난을 대변한 그의 삶의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만금만 막지 않았어도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정비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할 수 있는 국민적 인식의 기초가 마련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지 않고 집권 초기부터 남북문제를 구조적으로 조정했더라면 이명박의 야비한 대북 봉쇄정책은 있을 수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성사시킨 말기의 방문은 코스메틱에 그쳤다. 이명박의 FTA 추진은 노무현의 정책의 연장일 뿐이다.
보수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썼지만, 좌-우를 떠나 가장 정직한 역사적 사실은 김대중,노무현의 10년 치세야말로 "국민의 진보에 대한 열망을 처참하게 좌절시킨 10년"이라는 것이다.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기나긴 독재의 세월 동안 형성된 국민정서의 정화가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적 치세를 허락했지만, 그들은 그 갈망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 좌절감의 백크래쉬(backklash)로 태어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며, 따라서 MB정권은 그 이전이 모든 죄악을 마음놓고 재현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절망감이 깊고, 그 절망감이 파생시킨 가치의 혼란이 MB 죄악의 여백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판에 학생들의 보이스가 조직화될 역사의 모멘텀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없이는 이명박, 새누리당은 극복될 것이 없다."(p.28)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에 대한 도올의 해석과 이론 역시 우리의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각각의 도올 사상 개념도 독특하고 깨달음을 주지만, 그것들보다 중요한 맥락은 '청춘' '역사' '조국' '대선' 등을 포함하여 이러한 문제들이야말로 현재 한국인들의 진정한 철학적 과제상황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우주', '천지', 그리고 '종교', '역사'의 제 문제로부터 근원적으로 파헤쳐 들어가지 않으면 전혀 그 총체적인 모습(총상總相)의 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올의 '바른 인식'이란 관념적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다.
 
"해탈과 열반은 고고한 방장의 좌선에 있지않다. 주변 동료들의 고통에 항거하기 위하여 고통의 현장인 시장한복판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죽는 순간까지 달려가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러져간 전태일의 무아적 행위야말로 해탈, 열반이다"
"깨달음이란 꼭 무엇을 아는 것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꼭 몰라야 할 것을 정확하게 모르는 것, 다시 말해서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출발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은 서구적 가치의 총화이다. '사랑'은 조선시대 언어에 없었던 단어는 아니지만, 조선말기에나 유행한 말로써 기독교 경전이 유입되면서 크게 의미가 왜곡되었다. "기독교는 성을 천지음양의 자연스러운 조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죄악시하였다. 그 죄악시함으로 발생한, 문명 속에서 축적된 의식의 콤플렉스가 프로이드의 리비도 이론의 기초가 되었고, 그것이 모든 싸구려 팬섹슈얼리즘(pan-sexualism)적인 20세기 성문화를 생산해낸 것이다."(p.299)
도올은 한자문명권에서 성립한 '천지코스몰로지'를 소개하면서, 그 틀에 따라 청춘의 의미, 그리고 섹스, 사랑, 일상적 삶의 방식, 음식에 관하여 매우 자상하게 그 처방을 소개해 준다. 인간이 웅혼한 생명의 존엄성을 깨달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원리를 터득케 해 준다. "가장 건강한 방법은 성으로부터의 절제를 배워서, 다시 말해서 하초로부터 정(精)을 축척하여 상초에까지 올라차게 만듦으로써 위기(衛氣)를 강화시키고 영기(營氣)를 건강케 만드는 것이다."(p.300) "리비도는 욕망과 쾌락의 근원으로서 죄악과 억압의 대상이 되지만, 효는 사랑의 근원으로서 도덕의 원천이 된다"(p.208) 그렇기 때문에 도올은 책의 제목을 <사랑하지 말자>고 정한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이미 서구적 가치로 이루어진 욕망과 쾌락, 죄악과 억압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역사를 그 뿌리로부터 가르쳐준다. 우리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그 히스토리오그라피의 충격적 실상을 드러내어 역사의 근원적 문제점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현대사의 세부적인 뒷골목들을 샅샅이 분석해 들어간다. 

[ 2012년 9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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