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시대 -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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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은 통한다"라는 경구가 있다. 이 문장을 정치사상적인 관점에서 풀면 "극좌는 극우와 통한다"가 된다. 이 표현이 모든 세상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이 표현에 해당하는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목적은 당연히 '공동선'이거나 '민중들의 자유와 행복'일 것이다.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목적'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는 십중팔구 전체주의나 소수 독재체제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이 극좌 또는 극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극좌와 극우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이분법'이다.


강준만 교수는 '이분법'을 무지하게 증오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강 교수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안철수 후보가 이분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애기할 정도다. 그는 모든 사람이나 사건은 속성상 '명암'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에는 지고지순한 선(善)도 악(惡)도 없다는 말이다. "매사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속담과도 같다. 그의 그런 생각은 그의 최신 저서인 <안철수의 힘>에서도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이 책 역시 '멘토'를 무조건 지지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에 불고있는 '멘토 열풍'에 주목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멘토로 인정받는 인물 열두 명을 논의 대상으로 삼고 유형을 규정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멘토 열풍에 빠진 이유를 탐색한다. 그는 멘토 열풍의 핵심 코드로 ‘위로’를 언급한다. “그까짓 위로로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폄하하는 식자들도 있지만,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는 그 어떤 사회과학적 메시지보다 값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위로를 넘어 재미까지 추구하는 ‘멘토의 제도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멘토링을 구현하자고 제안한다. 


강 교수가 책 속에 다룬 한국의 대표 멘토는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김어준, 문성근, 박경철, 김제동, 한비야, 김난도, 공지영, 이외수, 김영희 등 12인이다. 그는 멘토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철학을 집중 분석하면서 그들이 왜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논한다. 눈여겨볼 점은 강준만식 인물비평이 늘 그래왔듯이, 각각의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예리하게 통찰하고 해부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안철수 현상', 김어준과 '는 꼼수다' 열풍, 공지영과 이외수를 둘러싼 트위터 논란, 이익공유제와 관련된 이건희와 박경철의 입장 차이, 문성근의 100만 민란 주장과 미국의 무브온 모델 분석, 김제동의 웃음과 상처의 의미, 김영희 PD와 '나는 가수다'의 대중문화 현상 등이 그것이다.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로 깊이와 차원이 다른 인물 비평과 사회 비평의 정수를 보여주는 '강준만식 글쓰기'는 이 책에서도 계속된다.


왜 한국사회에 '멘토 열풍'이 부는가? 강 교수는 "위로라도 갈구하는 '88원 세대'의 고통이 첫째 이유이지만, 동시에 이 세대가 맞은 디지털 시대의 하이테크가 남긴 하이터치 욕구가 청춘 콘서트로 대변되는 새로운 유형의 멘토링을 성장시킨 또 다른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는 청춘이 권력이나 인정 욕구 충족의 원인이라는 점도 멘토 부메 일조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보면 대표적인 멘토로 불리는 이들은 예외 없이 청춘 콘서트, 또는 비슷한 형식을 애용하고 있다.


"강준만의 안철수 지지 선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인물은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다. 아마 최근 그의 뜨거운 인기를 반영했을 것이다. 강 교수는 이문열의 “안철수는 언론이 키운 아바타”라는 말에 반박하며, 안철수 인기의 비결을 10가지 코드로 해석한다. 엔터테인먼트 소통 코드, 분배 양심 코드, 엄친아 성공 코드, 정의?공정?공생 코드, 안전 개혁 코드, 이념 양극화 혐오 코드, 뚝심/책임 윤리 코드, 디지털 혁명 코드, 특별한 역사적 기회 코드, 패러다임 비전 코드 등이 그것이다. 

강 교수는 특히 “엔터테인먼트 소통 코드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는 점에서 안철수는 다른 대선 후보들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한다. 이념 양극화에서 탈피했다는 점도 안철수의 매력으로 본 강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실 안철수를 두고 좌우니 진보-보수니 하고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아니 그런 구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실업자로 사느니 교도소 가겠다’, ‘우리에게 애국(愛國)은 없다. 우리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나라는 애국받을 가치조차 없다’고 절규하는 청춘에게 무슨 얼어죽을 좌우며 진보-보수 타령이란 말인가. 일관되게 청춘의 고통을 위로하며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안철수가 대다수 청춘에게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여겨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리라.”(p.52)


<안철수의 힘>(2012. 7)에서 이미 안철수 원장을 공개 지지했지만, 강 교수의 안철수 지지의 가능성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복선을 깔았다. 강 교수는 2011년에 출간된 화제의 책 <강남 좌파>를 논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즘 정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분법적 조악함이 너무도 한심하고 답답해 대표적인 강남 좌파일망정 이분법에서 해방된 강남좌파인 안철수의 명(明)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p.9)


이처럼 강 교수는 대한민국의 대표 멘토 열두 명이 우리 사회에서 왜 열풍을 일으키는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깊이 있게 분석했다. 책 제목처럼 가히 ‘멘토의 시대’라 할 만하다. 사람들이, 특이 왜 20~30대 청춘들이 멘토를 갈구하는지에 대한 현상 분석과, 더 나아가 그 현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도 제시한다. 

그는 문재인 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인격,품위형 멘토'로, 박원순 서울시장를 '순교자형 멘토'로, 김어준 총수를 '교주형 멘토'로, 문성근 의원을 '선지자형 멘토'로, 박경철 원장을 '멀티,관리자형 멘토'로, 방송인 김제동씨를 '상향 위로형 멘토'로, 여행가 한비야씨를 '자유,개척형 멘토'로, 김난도 교수를 '경청,실무형 멘토'로, 소설가 공지영씨를 '열정형 멘토'로, 소설가 이외수씨를 '자유,도인형 멘토'로, 김영희 PD를 '재미계몽형 멘토'로 분류한다. 물론 강 교수는 각 멘토에 대한 속성 분류와 동시에 개별 멘토의 한계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도 놓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할 때, 강 교수가 '한국의 대표적인 멘토'로 지목한 이들 중, 문재인 후보와 문성근 의원은 의외다. 두 사람의 멘토 분류 내용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말해 문재인 후보와 문성근 의원이 최근 몇 년 동안 20~30대 청춘들과 소통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대통령 사후 '노무현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관련 업무에 치중했고, 정치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몇 차례 김인회 변호사와 <검찰을 생각한다>를 발간하여 콘서트를 열기는 했지만... 문성근 의원 역시 오랫동안 '국민의명령'이라는 야권통합 운동을 벌였고, 정치 콘서트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청춘 세대와 소통은 아니었다.


강 교수의 의견에 대체로 공감이 되면서도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박원순 시장에 대해 비판한 대목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최열이나 한명숙씨 등과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의 회원들, 지지자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개인적인 '결단'으로 '선택'했던 모습을 못내 아쉬워 한다. 그리고 시민운동가들이 대거 정치권에 뛰어든 2011년 하반기의 모습은 국가 - 시민사회 - 시장 사이의 상호견제라는 현대적인 질서가 '한국적 정치만능론' 때문에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박원순 이후'의 시민운동이 순수성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게 돼버렸다. 참여 민주주의의 대의를 앞세운 현실 정치 참여가 오히려 시민운동을 이기에 빠뜨리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p.121)

박경철 원장의 경우는 '안철수 후보의 경제 멘토'라는 별칭 때문에 관심 깊게 읽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 보다 재벌과 자본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눈에 띄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이 책을 읽다가 박경철 원장의 책을 신청했다.

김제동씨에 대해 강 교수가 배려하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크게 공감되었다. "(김제동씨의) 연락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김제동은 연락이 오면 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 즉 옮은 말만 해야 한다는 강박, 그건 그의 상식이 강제하는 것이며, 그 상식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초능력적 기억과 그에 따른 실천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김제동에게 연락하더라도 정치적 당파성이 없는 자리에만 부르자. 아니 모시자.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사회가 김제동이라는 탁월한 재능을 오랫동안 향유해야 하기 때문이다."(p.216)

김영희 PD에 대한 강 교수의 설명에서 진보 정당에 대해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비판도 발견된다. "사실 김영희는 진보 정당이 사부로 모셔야 할 멘토다. 진보 정당의 치명적인 약점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우월감만 하늘을 찌를 뿐, 여전히 눈에 핏발 선 이미지다. 그를 멘토로 모셔가는 단체가 제법 있는 걸 보니 시민단체들은 이미 김영희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눈치 챈 것 같다."(p.314)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강 교수가 진보세력 또는 '운동권' 출신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꼬집는 글이었다. 아래 글은 강준만 교수가 2006년에 쓴 칼럼 중 일부다. 그런데도 어제 일에 대해 애기하는 것처럼 여전히 우리에게 생각하게끔 한다. 대통령 선거를 100일 남짓한 한국사회에서 야권 내의 민주진영, 진보진영을 자처하면서도 인간애가 실종되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자주 겪에 된다. 특히 SNS 상에서... 나 역시 SNS에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면서 언어폭력을 가한 게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없는 메마른 개혁-진보 담론은 자신의 출세나 인정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일지 모른다. 스티븐 룩스는 <마르크스주의와 도덕>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망친 건 도덕의 부재라는 걸 시사했다. 마르크스주의든 개혁주의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강하거나 그런 열망으로 포장한 권력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인간적 도덕'이 결핍되기 쉽다. 나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에 자기비판을 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려보겠다. 

인간적 도덕이라 함은 정실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자기 성찰이다. 역지사지 능력이라 해도 좋겠다. 물리적 폭력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폭력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하기에 하는 말이다. 과거의 동지를 비난하고 상처를 주더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있는 법이다. 가학의 쾌감을 느끼려는 게 아니라면, 무엇보다도 상대편의 말과 글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까지 하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다.

"자신 있는 자만 돌을 들어라"라는 말은 보수 이데올로기로 악용될 수도 있지만, 참뜻은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뜻이다. 자신의 흠과 추태에 대해선 무한대로 관대할 뿐 아니라 모두 좋은 뜻이었다고 미화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의 행태에 대해선 성난 얼굴로 비난만 해서야 쓰겠는가? 남들도 자신만큼 지능과 선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자세가 아쉽다."(p.254)


[ 2012년 10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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