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말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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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간략하게나마 도올의 사상의 정수와 현실세계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 도올은 이 책 한 권 속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를 망라하였다.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 매크로하고도 마이크로한 모든 인간상황이 제기되어 있다. 도올은 그 모든 상황에 대하여 철저히 우리의 상식과 통념을 깨버린다. 그는 "한국어로 한국인에 의하여 한국인을 위하여 쓰여진 가장 래디칼한 책. 니체의 래디칼리즘을 몇만 배 뛰어 넘는다."고 큰소리 친다.
 
도올은 이 책을 우연하게 집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사연은 <맹자, 사람의 길>을 탈고한 후에 좀 쉬는 틈에 생겼다. 저자가 낙산에서 산보하는 데 어느 젊은이가 다가와 도무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가 막막하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면서 도올에게 고전번역만 하지 마시고 선생님 자신의 언어로 쉽게 아주 기초적인 문제를 일깨워 달라고 청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책을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고 한다.
도올은 그 호소에 공감한 나머지 불과 한 달 만에 1,422매의 방대한 원고를 완성하였다. 당초의 기획보다 너무 분량이 많아지고 결코 쉽게 읽힌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출판사측은 쉽게 읽힐 수 있는 후미의 4개의 장, '청춘' '역사' '조국' '대선'을 앞으로 옮겨 편집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 만들었다. 원래 순서는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 그리고 '청춘', '역사', '조국', '대선'이었다고 한다.

먼저 '청춘'에 대한 정의와 역할이 다르다. 도올은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천명한다. 다시 말해 "노인들의 청춘에 대한 회상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추억은 아름다운 로맨스만을 추상해내고 거기에 부수된 불안, 공포, 고통은 떨쳐낸다. 청춘의 압도적인 사실은 좌절이다"고 정의를 내린다. 그에 따르면 청춘은 '모험'이며, "모험은 문명이라는 유기체의 핵심이다. 모험이 없는 문명은 문명(文明)이 아니라 문암(文暗)이다. 그것은 고착 속에서 진부해지고 부패한다. 문명의 부패를 막는 힘은 오직 청춘에서만 온다"고 '청춘'에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청춘의 모험을 불안한 것으로 바라보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청춘의 모험이 강행하는 역사진행의 부작용은 안정이나 완벽을 구가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부패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것이다"고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춘들이 쫄아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부귀의 정점이 지속된다고 믿는 청와대, 검찰계, 법조계, 조중동, 대기업... 이들은 모두 청춘의 모험을 억압하는 세력일 뿐만 아니라, 바로 한국문명 자체를 내부에서 붕괴시키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일갈하기에 이른다.
 
'역사'와 '조국'에 대한 도올의 해석은 명쾌하면서도 한국의 주류 세력에게 도발적이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중고 교과서 왜곡에 앞장선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조선민족은 분열을 사랑한다"와 "자기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라는 식민사관은 객관적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리 스스로의 생각의 질곡이다"고 규정한다. "남북분열을 획책하고 미일제국 일변도의 종속외교에 집착하는 모든 이유가 식민사관의 연장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번 대선에 승리하는 대통령은 반드시 먼저 북한에 다녀오고 난 다음에, 중국이나 러시아를 다녀오고, 그후에 미국을 가야한다"라고 단언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 특히 야권 후보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그의 미국에 대한 태도 역시 흔들림 없이 중심이 잡혀 있다. 그는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의 장을 활용하여 그 몇천배의 이득을 취해갔다. 우리가 해방이후에 미국에게 바친 저자세의 충성심은 이미 단군 이래 조선말까지 대륙중원에 바친 충성심의 합계를 몇천배 뛰어넘었다"고 미국에 대한 종속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미국 아니면 못살아! 예수 아니면 못살아! 빨갱이는 정말 미워! 바로 이 한국인의 정서가 식민사관의 최대의 승리라는 것을, 바로 일제 관변사학자들이 지금도 무덤에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고 질타한다.
 
'대선'에 대한 도올의 평가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일으키며 언론에 알려졌다. 나 역시 그 언론 기사를 접하고서 이 책을 알게 된 셈이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에 대해서는 "학력과 경륜과 정책컨텐츠를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소유한 새 시대의 인물"이라는 점이 장점이되, "뜨거운 가슴이 좀 부족"한 것을 단점으로 평가한다. 김두관 후보에 대해서는 "공사가 분명하고, 자기 삶에 부정의 요소라고는 한 오라기도 없을 만큼 공직생활을 사는 건실한 인물"이며 "결단력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고 외관이 출중하며, 인품이 신비로울 정도로 듬직하다"리안 점이 장점이되, "거대 담론을 소화해낼 수 있는 집약적 학습이 더 필요하다"는 점이 단점이라고 평가한다.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사심이 없고 대의에 대한 헌신이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매우 훌륭한 인격구조를 가지고 있다"면서 "성품이 선량하여 사물의 정도를 학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노무현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극복해야"하며 "생각이 너무 단순"하고 "깊이와 지도력을 갖춘 담론을 개발해야"함을 충고한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는 독특하다. 그는 "안철수라는 에너지를 키워 잘 활용하면 이길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진다"고 말한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안철수는 이 시점에 한민족에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축복이다. 안철수는 우리 민중의 진실표출의 상징이다. 안철수는 하늘이다!"고 정의를 내린다. 그의 이런 해석이 자칫 안철수 후보에 대한 과도한 평가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도올의 그러한 평가가 안철수 개인이라기 보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평가로 생각한다. 그는 민중들이 과거의 대통령들, 이승만에서부터 김대중, 노무현을 거쳐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정치인 출신들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정치인이 아닌 사람에게 권좌를 부여해보고 싶은 근원적으로 새로운 갈망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명박 현정권의 행태와 존재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에 대한 도올의 평가는 엄정하다. 나는 민주정부 10년이 군사독재 시대에서 시민주권 시대로 이행되는 과도기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통해 유권자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성과적으로 치르지 못하면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를 해소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명박이 희대의 악정(惡政)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고 있는 것은 그가 국민에게 수용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의미한다. 국민은 그의 악정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
국민이 그를 사랑해서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을 감내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의 악정(惡政)이 아직 이명박의 악정을 상쇄하지 않을 정도로 추악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에서 이미 다 뿌리를 내린 것들이다.
이명박의 신자유주의적인 친미,친일,친대기업의 경제정책의 기본 노선은 김대중이 IMF를 극복한다고 성급하게 추진한 모든 방식의 노선들을 더 추악하게 발전시킨 것일 뿐이다. 김대중의 비전이 이 민족의 미래를 더 도덕적으로 더 민주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은 아무 것도 우리 뇌리에 남는 것이 없다. 모두 진부한 판에 박힌 정책일 뿐이다. 그의 지방자치제에 관한 구상도 이 민족의 산하와 국가의 재정구조를 더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이 그 선업의 측면보다 더 많다. 시작은 노태우 정권이 하였지만, 그 실현의 원동력은 DJ로부터 온 것이다. 어차피 빈핍하게 되어가고 있던 지방문화를 근원적으로 개선하는 보다 현명한 단계적 자치화 방안이 있을 수 있는데도 그는 그의 정치적 이권의 구상에 따라 성급하게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전라도'라는 위대한 민중의 고난의 에너지를 사유화하여 특수한 로칼권력의 보루로 전락시켰다. 그가 잘한 것, 지속적으로 추진한 성공적인 사업의 사례로서 대북 햇빛정책을 들 수 있겠으나 그것도 레토릭에 그쳤을 뿐 구조적 변화를 이룩하지 못했고, 노벨상을 독식하면서 빛을 바랬다. 지금 국민 누구가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영예롭게 기억하는가? 노벨상 그 자체의 기만적 성격만 국민에게 부각시키면서 노벨상의 권위를 추락시켰을 뿐이다. 물론 기나긴 세월, 우리 민족의 민주투쟁의 고난을 대변한 그의 삶의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만금만 막지 않았어도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정비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할 수 있는 국민적 인식의 기초가 마련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지 않고 집권 초기부터 남북문제를 구조적으로 조정했더라면 이명박의 야비한 대북 봉쇄정책은 있을 수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성사시킨 말기의 방문은 코스메틱에 그쳤다. 이명박의 FTA 추진은 노무현의 정책의 연장일 뿐이다.
보수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썼지만, 좌-우를 떠나 가장 정직한 역사적 사실은 김대중,노무현의 10년 치세야말로 "국민의 진보에 대한 열망을 처참하게 좌절시킨 10년"이라는 것이다.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기나긴 독재의 세월 동안 형성된 국민정서의 정화가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적 치세를 허락했지만, 그들은 그 갈망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 좌절감의 백크래쉬(backklash)로 태어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며, 따라서 MB정권은 그 이전이 모든 죄악을 마음놓고 재현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절망감이 깊고, 그 절망감이 파생시킨 가치의 혼란이 MB 죄악의 여백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판에 학생들의 보이스가 조직화될 역사의 모멘텀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없이는 이명박, 새누리당은 극복될 것이 없다."(p.28)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에 대한 도올의 해석과 이론 역시 우리의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각각의 도올 사상 개념도 독특하고 깨달음을 주지만, 그것들보다 중요한 맥락은 '청춘' '역사' '조국' '대선' 등을 포함하여 이러한 문제들이야말로 현재 한국인들의 진정한 철학적 과제상황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우주', '천지', 그리고 '종교', '역사'의 제 문제로부터 근원적으로 파헤쳐 들어가지 않으면 전혀 그 총체적인 모습(총상總相)의 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올의 '바른 인식'이란 관념적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다.
 
"해탈과 열반은 고고한 방장의 좌선에 있지않다. 주변 동료들의 고통에 항거하기 위하여 고통의 현장인 시장한복판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죽는 순간까지 달려가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러져간 전태일의 무아적 행위야말로 해탈, 열반이다"
"깨달음이란 꼭 무엇을 아는 것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꼭 몰라야 할 것을 정확하게 모르는 것, 다시 말해서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출발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은 서구적 가치의 총화이다. '사랑'은 조선시대 언어에 없었던 단어는 아니지만, 조선말기에나 유행한 말로써 기독교 경전이 유입되면서 크게 의미가 왜곡되었다. "기독교는 성을 천지음양의 자연스러운 조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죄악시하였다. 그 죄악시함으로 발생한, 문명 속에서 축적된 의식의 콤플렉스가 프로이드의 리비도 이론의 기초가 되었고, 그것이 모든 싸구려 팬섹슈얼리즘(pan-sexualism)적인 20세기 성문화를 생산해낸 것이다."(p.299)
도올은 한자문명권에서 성립한 '천지코스몰로지'를 소개하면서, 그 틀에 따라 청춘의 의미, 그리고 섹스, 사랑, 일상적 삶의 방식, 음식에 관하여 매우 자상하게 그 처방을 소개해 준다. 인간이 웅혼한 생명의 존엄성을 깨달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원리를 터득케 해 준다. "가장 건강한 방법은 성으로부터의 절제를 배워서, 다시 말해서 하초로부터 정(精)을 축척하여 상초에까지 올라차게 만듦으로써 위기(衛氣)를 강화시키고 영기(營氣)를 건강케 만드는 것이다."(p.300) "리비도는 욕망과 쾌락의 근원으로서 죄악과 억압의 대상이 되지만, 효는 사랑의 근원으로서 도덕의 원천이 된다"(p.208) 그렇기 때문에 도올은 책의 제목을 <사랑하지 말자>고 정한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이미 서구적 가치로 이루어진 욕망과 쾌락, 죄악과 억압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역사를 그 뿌리로부터 가르쳐준다. 우리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그 히스토리오그라피의 충격적 실상을 드러내어 역사의 근원적 문제점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현대사의 세부적인 뒷골목들을 샅샅이 분석해 들어간다. 

[ 2012년 9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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