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우리시대의 성인’이라는 표현을 별로 반기지 않았다. ’성인’이라는 표현 자체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4대 성인이라고 명명되는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 등이 대부분 인류에게 종교와 사상을 가져다 주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그 종교가 도그마가 되어 수 많은 살륙과 학살(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교)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성인’에 대한 정의는 "인격과 식견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인물’이라고 되어있다.
성인 자체로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받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다만, 그 ’성인’들의 가르침이 후세의 추종자들에게 도그마가 되어 왜곡되고 비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좋게 해석해본다.
 
법정스님 역시 우리나라에서 ’성인’ 또는 ’스승’으로 인정받는 분이다.
일찍이 젊어서 진리를 찾아 길을 나섰다가 삭발을 하고 출가를 했고 일반적인 승려들의 여정과는 달리 수행을 위해서 34년간(송광사 불일암에서 17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17년)을 홀로 정진하셨다.
불가의 가르침을 솔선수범하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 돌아가시는 날까지 책과 자연, 그리고 차 한 잔을 행복으로 삼으신 분이셨다.
 
하지만 스님은 불가의 경전이나 석가모니의 '말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찾아 스스로를 단련하고 참선하고 깨우치는 것이 진정한 불법이고 '도'라고 생각하시면서 평생을 '탐구'와 '정진'의 자세로 살다가 입적하셨다. 
스님의 삶과 가르침이라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널리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할까??
 
이 책은 스님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엮어낸 책이다.
지난 3월 길상사에서 스님이 돌아가시고 다비식이 거행되는 동안, 그리고 그 분의 유언으로 출간서적들이 절판되었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접하면서 언젠가 스님의 생각과 사상을 배우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지난 5월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문득 무언가에 이끌려 스님의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스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책 제목과 같은 소 단원의 글 안에 담겨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여기에서 ’마무리’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마무리’의 의미와 똑 같지는 않지만 얼핏 생각해보면 ’마무리’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스님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는 것.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숙시켜 주었음을 긍정하는 것.
-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
-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
- 내려놓음
- 비움
-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아는 것
-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
-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되찾는 것
-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와 지는 것
-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하는 것
- 단순해지는 것
-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면 과연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
내가 살아온 삶에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바로 그 때’라 함은 무엇인가...
나는 용서하고 이해하고 자비를 베푸는가...
나를 얽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은 무엇인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하는가...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가...
늘 배우고 익히고 탐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선배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희일비’한다고 핀잔을 듣고 비난을 들어온 지 어언 수십년...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던하고 일관된 삶을 살아갈 철학이 나에게 있는지... 언제나 중심을 잡으려는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업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누가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나는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치유해주어야 하는지...
무엇이 이 자리에서의 최선이고 나를 얽매는 구속과 생각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더 늦지않게 깨달음을 얻을 수는 있는지...
 
그러면서 다짐해 본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끝없이 읽고 배우는 것이리라.
스님의 말씀처럼 고전과 경전과 참다운 책을 늘 가까이 끼고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그리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베푸는 것이리라.
언제든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도록 나를 구속하지 않고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고 자연에서 배우고...  

모두가 한 번 태어나서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다. 

숨쉬면서 지내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그 만큼 더 중요한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보고 오늘의 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꼭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 2010년 7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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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 창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루쉰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분들과 글에서 접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법정스님과 리영희선생께서도 루쉰의 작품에 대한 일독을 권한 바 있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 조선 독립혁명가의 위대한 삶]에서 주인공 김산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기도 하거니와 최근에 읽은 서경식씨의 [소년의 눈물]에서도 그가 젊었던 시절에 접한 작품 중에서 큰 영향을 끼친 작가로 등장한다. 
루쉰과 그의 작품에 대해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는 봉건체제와 군벌, 악질지주 등을 비판 규탄했고, 당시 지식인의 무능을 꾸짖었으며 무지몽매한 민중이 깨우치기를 고대했던 사상가였다. 좌익 성향의 작가그룹에 속해있었기에  냉전체제를 버팀목으로 하는 한국의 위정자들과 보수학자들이 그를 배척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루쉰의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지인들 중에서 '성실한 탐구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 하다. 과 선배 한 명이 있고 비슷한 연배의 모임에서 만나는 친구가 있을 정도다.(몇 개의 독서모임 참가자들은 제외하고...ㅋ) 모두가 '밥벌이'와 인스턴트 메시지, 대중매체,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편이다. 
가끔 언론 기사에 발표되는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의 결과치는 실제로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20세기 초 혼란한 중국 근대사에서 작품 활동을 펼친 루쉰에게 주목하는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인터넷 서점의 북카트 속에 루쉰의 작품을 담았음에도 두서 없는 '다독'의 욕심에 밀려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러다가 8월 초에 문득 더 늦기 전에 나의 독서 분야에서 '고전'의 비중을 높여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이지성씨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고전 목차에서 두 권([발해고]와 [새벽에 홀로 깨어])을 고르고 루쉰의 소설집 한 편인 이 책을 구하였고 지난 주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굳이 고전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루쉰의 생애와 비슷한 시기, 즉 우리 민족의 근대사 과정 중에 작품을 발표했던 이들을 찾아 그들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루쉰은 누구인가? ---------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일찍이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한 그는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아Q정전], [고향] 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 18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
 
 
루쉰은 장편의 작품은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중편소설 1개, 단편소설 32개와 짧은 글, 강연, 논술, 편지글은 많았다. 역자는 루쉰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광인일기>와 <아Q정전> 등 10편을 엄선하여 번역서로 묶었다. 
작품의 배경은 작품 모두 비슷하다. 공간적 배경은 루쉰의 고향인 '소흥' 일대이고 시간적 배경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이며 1935년에 발표된 작품도 있지만 그런 작품도 역시 신해혁명의 영향아래 놓여있다고 역자는 평한다.
 
<광인일기 (1918.5)> 주인공이 피해망상증을 앓기 시작하는 시기에 시작하여 점점 증상이 심각해지면서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까지 주인공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망상에 빠진다. 겉으로는 점점 광기가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반면에 망상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심각한 진실을 담고 있다. 봉건 유교사회가 '식인(食人)'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자신의 누이 동생의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아직 봉건적인 것에 물들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을 구하자고 절규한다. "아이들을 구하라.!!" 작품 속에서는 '사람의 신체를 잡아먹는' 것을 말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사람의 의식을 잠식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식인 사회'는 현대에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역자는 작품의 구도를 봉건적 풍속과 계몽자(광인)의 대립으로 분석한다.
 
<쿵이지 (1919.4)> 작품은 구시대의 몰락한 지식인인 '쿵이지(孔乙己)'의 비참한 운명을 묘사한다. 그러나 역자는 이 작품을 단순히 봉건 과거제도의 죄악을 폭로한 작품으로 뿐 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쿵이지에 대한 사람들의 학대 행위를 통해 '민중의 왜곡된 공격성', 즉 '민중적 자해'를 고발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약 (1919.5)> 작품은 반청 혁명 봉기에 실패하여 처형당하는 신지식인과 미신에 현혹되어 아들의 폐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자의 피에 적신 만두(인혈만두)를 사서 아들에게 먹이는 민중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역자는 이 작품 역시 '민중적 자해'와 '우매함'으로 해석한다. 봉건사회의 억압과 착취에 고통받는 민중이 봉건사회의 모순을 타파하려는 혁명가를 박해하는 데 앞장선다는 이 모순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작품 후반에 혁명가의 무덤과 폐병으로 죽은 아들의 무덤에서 두 사람의 어머니들이 서로 마주치게 함으로써 두 주체가 서로 동일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혁명가의 무덤 위를 까치가 날아가는 모습을 통해 혁명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희망을 표한다. 

<고향 (1921)> 이 작품은 이십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고향에서의 상실감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고향에서 어린시절 친구 룬투와 재회하지만 룬투는 봉건사회의 잔혹한 계급적 압박 때문에 의식이 마비된 민중으로 변해버렸다. 주인공이 지니고 있던 어린 시절의 신비감과 일체감은 환멸로 바뀌었지만, 조카와 룬투의 아들이 마시 친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꿈꾼다. 이 작품에서 유명한 문장이 들어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아Q정전 (1922.2)> 루쉰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모순적이고 복잡하고 열악한 민중의 한 사람인 '아Q'의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는 승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속성을 지닌 하류층 막노동자이다.(물론, 그에게도 어쩌다 한 번씩은 인간적 절실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신승리법'이라는 처세술로 살아가던 그는 그마저도 자신이 경멸하던 왕털보와 가짜 양놈에게 당하면서 파탄난다. 혁명의 소문과 함게 강한 자들이 겁을 먹는 목격하고서 그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에게 반감을 느끼지만 그는 혁명을 금지당하고 대신 강도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다. 마지막 순간에 희미한 각성이 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역자는 아Q의 비극적 삶을 결정짓는 요소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지배계급 인물들의 가해이고 둘째는 민중적 자해이며, 셋째는 자신의 어리석음이다. 특히 첫 번째 요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 작품이 최초였다.

<복을 비는 제사 (1924.2)>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샹린댁을 만나고 나서 다음 날 샹린댁이 자살하고 사람들에게 샹린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줄거리다. 선량하고 성실하던 그녀가 어떻게 불행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를 그린 작품이며, 기존의 '민중적 자해'라는 주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역자는 이 작품이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인간적 덕성을 지닌 샹린댁이라는 인물의 부각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력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반성이다.

<술집에서 (1924.2)> 이 작품 역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옛 친구 뤼웨이푸를 만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줄거리다. 여기서 친구와 주인공은 젊은 시절 추구하던 진보와 변혁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상실하고 좌절의 늪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 대해 동시대 중국 문학인들이 '패배주의'로 규정하면서 루쉰을 비판하였다고 하나 역자는 이 작품이 루쉰의 패배주의라기 보다 우울하지만 정직한 자기 성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누 (1924)> 보수적인 지식인이 주인공으로 유교적 덕목을 고수하며 신문화를 거부하면서도 아들에게는 영어를 배우게 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그는 거지에게서 '비누'를 사는데, 이는 의식의 차원에서는 거지 소녀의 효행에 감동하는 것이지만 무의식에서는 소녀에게서 성적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문학계에서는 보수적 지식인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역자는 이를 달리 보면 인간적 진실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린다. '의식 차원의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해체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수를 다스리다 (1935)> 이 작품과 다음 작품은 루쉰이 타계하기 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한다. 우(禹)임금의 치수(治水)신화를 제재로 취했다. '우의 치수'는 여기서 낡은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가치, 관념적이고 허위적인 구정치가에 대한 실천적이고 진실한 신정치가의 승리로 해석된다.

<관문 밖으로 (1935)> 노자(老子)의 출관(出關) 전설을 제재로 취했다. 노자가 공자의 위협을 피하여 세상 밖으로 은둔하는 이야기를 골격으로 하면서 공자와 함곡관의 관리들을 풍자한다. 역자는 이 작품을 공자에 대한 풍자가 루쉰의 적대자에 대한 풍자로 해석하기 보다 루쉰 자신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 해석한다. 즉, '사막으로 가는 신발'과 '조정으로 오르는 신발' 사이의 자신의 갈등이 형상화된 것으로 본 것이다.

 
역자는 루쉰의 작품이 중국 내에서 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에서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로 루쉰이 단지 중국적인 인물이기라기 보다는 동아시아적 인물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을 펼친다. 루쉰이 다루는 작품 속 주제가 중국의 특수성 뿐 아니라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기를 조금씩 달리하고 나중에 좀 더 앞섰던 일본이 서구 열강과 다투면서 중국과 조선을 침탈했다는 점만 빼고는 봉건 유교사회, 농업사회, 왕조시대, 지주계급, 무지몽매한 민중, 빈약한 지식인과 시민계급, 민중혁명의 실패, 서구 열강의 침탈 등의 모습은 3국 모두에서 비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역자의 해석에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겠다.
 
10편의  작품을 읽고 역자의 해석을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루쉰의 작품이 20세기 현대사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루쉰이 비판하고 깨우치고자 했던 지식인의 허위의식, 무력감, 민중의 우매함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광인일기>에서 나타나는 '식인사회'는 근대의 사회 현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특히, 21세기 지금의 사회에서도 한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의 의식을 좀먹는' 사회 분위기와 대중매체, 파편화된 사회, 극도의 이기주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늘 현재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도하고 있는 바를 인지하지 못하면서 '무상급식을 위하여 8.24 투표에의 참여'를 허위의식을 심어주는 관제 언론과 보수단체의 홍보에 설득당하는 서울시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투표 결과 투표율이 얼마나 될 지, 개표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우려스럽다. 
광인이 마지막으로 절규한 "아이들을 지켜라!!"는 지금도 여전한 구호인 것 같다...
<쿵이지>, <약>, <아Q정전>, <복을 비는 제사>, <술집에서>는 공통적으로  '민중적 자해'의 모습이 들어있다. 각 작품 속에 표현되는 민중들의 모습이 21세기 현대 민중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지...
<술집에서>에서 나타나는 진보와 변혁에 대한 비관주의, 패배주의의 모습(술집의 분위기와 술집에서 두 친구가 나누는 이야기)은 1980~1990년대를 살아온 이 땅의 486세대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는 장면이다. 나 역시 많은 술자리와 모임에서, 동시대 사람들과의 대면에서 자주 부딪히는 장면이다.
 
1940년 모택동은 루쉰을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주장)"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위대한 문학가 일 뿐 아니라 사상가이자 혁명가로 규정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중국 내부에서 그리고 동아시아와 서구에서까지 그의 작품이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해석되면서 지금은 모택동의 시각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있다고 한다.
나 스스로가 루쉰을 이해하고 루쉰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철학과 사상, 문학적 가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 선집 이외의 루쉰의 다른 작품과 글을 추가로 읽어야 할 것 같다. 또한 <광인일기>와 <아Q정전>도 몇 번이고 더 읽어야 하고...
그럼에도 한 번 읽은 루쉰의 작품은 인상적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울림이 크니까...
 
[ 2011년 8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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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 리처드 리키가 들려주는 최초의 인간 이야기 사이언스 마스터스 4
리차드 리키 지음, 황현숙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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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 < 마지막 3분 >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의 네 번째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전인 1785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그의 책 < 자연의 체계, System Naturae >에서, 인간을 속명과 종명을 합쳐 표기하는 ’이명법’의 체계에 따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이름 붙이고 하나의 종으로 분류했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 후인 1859년 다윈은 < 종의 기원 >에서 인간도 다른 생물로부터 진화해 왔음을, 다시 말해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임을 암시하였다. 그 이후 편견으로 가득 찬 고매한 인간 대신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다윈의 열렬한 추종자인 토머스 헉슬리와 그 후예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은 진화론의 역사나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더구나 창조론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비밀을 감춘 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지구가 감질나게 토해내는, 확률 1천만분의 1이라는 호미니드 화석을 찾아 뜨거운 사막과 동굴을 탐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실낱 같은 근거로부터 인류 진화의 대장정을 설명해 보려는 노력이 담겨있다. 그리고 현생 인류의 진화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정신세계의 탄생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예술과 언어, 그리고 인간 정신의 기원까지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흔히 인류학자들은 인류 진화의 연구가 과학의 엄밀성과 탐정 소설의 낭만성이 어우러진 탐험 소설과도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고고학과 지질학, 자연인류학, 고생물학, 분자생물학 등의 빈틈없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언어와 예술, 인간 정신에 대한 폭넓은 해석과, 더러는 풍부한 상상력이 어우러진 한 편의 대서사시라고 설명하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세기 현재,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선사 시대의 전반적인 모습 중 네 가지 주요한 단계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최초의 단계는 ’사람과’의 기원으로, 두 발을 가지고 직립 보행하는 유인원 종이 진화한 것은 약700만 년 전의 일이다. (1980년대 초 터키에서 발견된 라마피테쿠스 화석)
두번째 단계는 두 발을 가진 종들의 분화로서 생물학자들이 ’적응 발살’이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700만 년 전과 200만 년 전 사이에 두 발을 가진 여러 유인원 종들이 진화했으며, 각기 조금씩 다른 생태 환경에 적응해 갔다.
세번째 단계는 300만 년전과 200만 년 전 사이에 상당히 큰 뇌를 가진 종이 나타났다.(현대 인간의 뇌 용량 1,359cc, 호모 하빌리스 800~900cc, 오스트랄로피테쿠스 300~400cc) 이는 ’사람속’의 기원을 의미한다. 사람속은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궁극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간 인류라는 나무의 한 가지이다.
네번째 단계는 현생 인류의 기원으로, 달리 찾아볼 수 없는 언어와 의식, 예술적 상상력, 그리고 기술 혁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갖춘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진화한 것이다. (현대형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불연속적인 진화를 통해 등장하여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호모 하빌리스를 대체해 현재에 이르렀다.)
 
결국 현대 인류는 수백만 년 전부터 경쟁관계에 있는 포유류나 파충류,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 등 사람과의 다른 종족, 호모 사피엔스 내의 다른 종과 집단, 같은 집단 내부의 개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그것은 자연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현대 인류는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집단을 구성하였고 그 집단이 의사소통을 하고 힘을 모으고 대를 이어가면서 자연선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언어와 의식, 예술, 도구와 기술혁신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인류는 자연선택을 받음과 동시에 스스로를 창조해왔다.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전부터 인류는 서로 경쟁하면서 살육함과 동시에 서로 협동하고 상생하는 방법을 터득해 온 것이다.
100만 년이 흘러 21세기가 되었다.
이제 인류는 서로 경쟁하고 살육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유전자에 더 강하게 남길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서로 협조하고 상생하는 것을 유전자에 더 남길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인류에게 달려있고 그 결과는 수 만 년, 수 십만 년 후의 인류의 모습을 규정할 것이다.

 

[ 2010년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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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2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혹자는 이 [열하일기]를 읽고서 50대의 뒤늦은 나이에 연암 박지원 선생을 '인생의 멘토'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 사람은 단지 보리출판사에서 완역하여 출간한 [열하일기 세트] 3권을 읽었고 그 이외에 열하일기나 박지원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추가로 공부했을 뿐이다. [열하일기]의 무엇이 그 중년의 직장인을 '열하광인' 또는 '연암광인'으로 만들었을까?
 
고미숙씨의 이야기처럼 [열하일기]에는 유머와 우정, 유목이 가득하다.
'유머'와 관련한 두 가지 내용. 첫 번째는 산해관에 들어서서 연암은 옥전현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된다. 무심하게 거리를 쏘다니다 한 점포에 들러 벽에 쓰여 진 기이한 문장을 발견하고는 촛불 아래 ‘열나게’ 베껴 쓴다. 이 문장이 바로 그 유명한 [호질]이다. 점포 주인이 연암에게 묻는다. “선생은 이걸 베껴 대체 무얼 하시려오?” 연암은 이렇게 답한다.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 모두 허리를 잡고 크게 웃게 할 작정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다들 웃느라고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튀어 나오고,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줄처럼 툭 끊어질 겁니다.” 연암은 고국에 돌아간 후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연경에 도착하여 태평하게 쉬고 있다가 느닷없이 열하로 떠나게  되어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칠 때였다. 연암과 같이 자던 수행원들이 일어나 연암에게 물었다. “불이 났소?” 순간 악동 기질이 발동한 연암은 이렇게 대답한다. “황제가 열하로 가는 바람에 연경이 비어서 몽고 기병 십만 명이 쳐들어 왔다는구먼.” 수행원들은 기절초풍하기 직전이다. “아이고!”

'우정'과 관련해서는 북경과 열하로의 여행일정 내내 연암이 만인이나 한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던지 지필묵을 들고 상대방과 통성명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연암의 이러한 태도는 산해관까지 가는 길에 어느 술집이나 찻집에 들러서도 자신의 글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청나라 학자나 선비를 만나면 사서삼경과 중국의 역사, 시와 고문, 철학과 학문, 이용후생 등에 대해 거리낌 없이 대화하고 정을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연암의 열린 자세와 태도는 비슷한 중국인 학자들로부터도 크게 환영을 받아 서로 동등하게 논의하고 우정을 쌓게된다.
 
'유목'과 관련한 것은 연암 박지원이 아무런 공적 지위가 없음에도 사신단의 수장인 정사 박명원의 친척임을 내세워 일행 중에 합류한 것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공식적인 지위와 역할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연암이 자유롭게 활보하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때로는 사신단 본진에 앞서서 한참을 앞서 여행길을 달려가서 마음껏 새로운 경치를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다음 날 공식 일정이 없기 때문에 중국인 학자들과 밤을 세워가며 필담을 나누고 술을 마시다가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연암이 진정한 '유목인'이었음은 그가 여행기간 동안 취한 행동보다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인 1780년 봉건시대에 자신이 살고 있던 좁은 세상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맛보고 겪어보고 사귀어보고 싶은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몸을 움직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 * 연암 박지원(1737~1805) 일대기 --------
1737년 2월, 박사유와 함평 이씨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출생
1752년  월 :관례를 올리고 유안재 이보천의 딸과 결혼
1757년  월 : 시정의 기이한 인물이나 사건을 듣고 '방경각외전'을 쓰다.
1766년  월 : 장남이 태어나다.
1767년  월 : 아버지 사망. 장지 문제로 녹천 집안과 시비가 벌어짐. 벼슬길을 단념함.
1768년  월 : 백탑 근처로 이사하고 이덕무, 이서구, 유금, 유득공과 가까이 지내다.
1770년  월 : 감시의 양장에서 모두 일등으로 뽑혔다. 입궐하여 영조에게 극찬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박지원을 급제시켜 공을 세우고자 했으나 회시에 응하지 않거나 응시한다 하더라도 시권을 제출하지 않거나 제출하더라도 노송과 괴석을 그린 그림을 제출하여 벼슬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1772년  월 : 식솔들을 처가로 보내고 서울 전의감동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다.
1778년  월 : 사은진주사 일원으로 북경으로 떠나는 이덕무와 박제가를 전송하다.
1780년 5월 : 진하사 겸 사은사 박명원과 동행하여 북경 등지를 여행
1786년 7월 : 유언호가 천거하여 선공감역에 임명되다
1787년  월 : 부인이 죽었다. 연암은 그 뒤로 죽 혼자 지냈다.
1791년 월 : 한성부판관, 안의현감으로 부임하다.

1793년 월 : <열하일기>의 잘못된 문체에 대해 속죄하라는 정조의 하교를 받고 반성문을 제출하다.
1797년 월 : 면천군수에 임명되다.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집필하다.
1799년 월 : <과농소초>를 집필하다.
1800년 월 : 정조 승하하다. 양양부사로 승진하다.
1802년 월 : 아버지 묘를 이장하려다 유한준이 방해하여 좌절되다.
1805년 월 : 가회동 집에서 향년 69세로 죽다. ---------
 
 
고미숙씨가 번역, 편집하여 발간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하)]는 크게 관내정사, 막북행정록, 태학유관록, 환연도중록 4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박지원의 원본에 별도의 권으로 분리되어 있던 황도기략, 황교문답, 곡정필담, 환유기, 옥갑야화 등을 4개의 장 속에 편집하여 삽입하였다. 역자는 [열하일기] 원본 중에서 독자들이 난해하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할만 한 부분들을 생략한 것이었고 그것은 책의 서문에 기술되었듯이 보리출판사에서 [열하일기 3세트] 완역본이 이 책 출간 직전에 출판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권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관내정사(關內程史) > 7월 24일 / 7월 25일 / 7월 26일 / 백이 숙제 묘당을 둘러보며 / 난하를 건너며 / 석호석기 / 7월 27일 / 7월 28일 / 범의 꾸중(虎叱) / 7월 29일 / 7월 30일 / 8월 1일 / 8월 2일 / 8월 3일 / 8월 4일 / 북경의 이모저모(黃圖記略) / 공자묘를 다녀와서(謁聖退述)
-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기행을 담았다. 북경까지의 여행 중에 느꼈던 몇 가지와 북경에서의 특이한 여행기를 기사체 형식으로 별도로 정리했다.
- 호질 : 역자는 연암이 '열하일기' 속에 기록한대로 '호질'이 연암의 창작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자는 연암이 연행 기간 중에 많은 이야기를 구한 것 자체만으로 연암의 역할이 크다고 주장한다. 호질의 줄거리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사람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범(호랑이)에게 졸개인 창귀들이 사이비 유학자인 북곽선생과 수절과부로 소문난 동리지를 추천하면서 전개된다.- 황도기략 : 북경의 이모저모를 관람한 소감을 적었다. 황성의 아홉 개 문, 서관, 만수산, 체인각, 황제의 마구간, 종묘와 사직, 천단, 범의 우리, 풍금, 서양화, 코끼리 우리(상방), 황금대, 황금대기, 옹화궁, 개우리(구방), 공작포, 오룡정, 구룡벽, 남해자, 회자관, 유리창- 알성퇴술 : 공자묘를 구경한 소감을 적었다. 태학, 학사, 관상대, 시원, 조선관
 









 
< 막북행정록(漠北行程論) > 막북행정록 서 / 8월 5일 / 8월 6일 / 8월 7일 /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口記) /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一夜九渡河記) / 8월 8일 / 만국진공기(萬國進貢記) / 8월 9일
-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길이다. 청나라 황제의 독촉으로 인하여 400리 넘는 여정을 단 5일만에 도달했다. 휴식도 잠도 없는 강행군을 별도로 정리했다.- 야출고북구기 : 고북구는 예로부터 전쟁의 중심터였다. 후당의 장종, 거란의 태종, 여진의 희윤, 원나라 문종 등이 고북구에서의 승전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연암은 고북구의 장성에 붓을 꺼내 (물이 없어서) 술을 부어 먹을 간 후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야삼경, 조선의 박지원, 이곳을 지나노라"라고 적는다.- 일야구도하기 : 연암 일행은 하루 밤에 하나의 강을 아홉 번 건너게 된다. 그만큼 강이 굽이쳐 흐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연암은 도를 깨우친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거난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만국진공기 : 청나라 황제의 천추절을 맞아 주변 국가들이 사방으로부터 공물을 바치기 위해 열하를 향해 몰려들었다.



 
<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 8월 9일 / 8월 10일 / 8월 11일 / 찰십륜포(札什倫布) / 황교에 대한 특별 보고서(黃敎問答) / 8월 12일 / 8월 13일 / 8월 14일 / 천하의 형세를 논하다(審勢篇) / 왕민호와 나눈 말들(鵠汀筆談) / 코끼리를 통해 본 우주의 비의(象記) / 환타지아(幻戱記)
- 열하에서의 일정이다. 황교(라마불교)의 반서(달라이 라마)를 접견한 것, 황교에 대한 탐문 결과, 중국 학자들과의 밤을 세운 필담, 기타 열하에서 보고 들은 특이한 것들을 별도로 정리했다.- 연암은 조선이 가난한 까닭을 대체로 목축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목축과 관련한 조선의 한심한 상황을 여섯 가지로 정리하면서 그 이유가 '말을 다루는 솜씨가 틀렸고 말을 먹이는 방법이 옳지 못하며 좋은 종자를 받을 줄 모르고 관원들이 말 기르는 방법에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황교문답 : 연암은 '적국을 염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형상을 통해 상대국을 제대로 분석해야 함을 역설한다. 연암은 열하에 이르러 자신이 헤아려 본 천하의 형세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또한 황교와 관련하여 청나라 관료나 학자인 학성, 추사시, 왕민호, 윤가전, 기풍액 등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곡정필담 : 이 글에는 연암의 우주관과 철학이 나타나 있다. 조선 후기에 한반도에서도 빛에 대한 학설, 지동설, 티끌을 통한 우주만물 생성론, 자연과 인간의 동일성, 제3세계설 등에 대한 주장과 이론이 있었다는 것은 뜻밖이었고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그 이후에는 왕조와 사대부들에 의해 싹이 말라 버렸지만...


 

<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 8월 15일 / 8월 16일 / 8월 17일 / 8월 18일 / 8월 19일 / 8월 20일 / 옥갑에서 밤들이 주고받은 이야기(玉匣夜話)
-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 옥갑야화 중에 그 유명한 '허생전(許生傳)'이 들어 있다. 연암은 청나라 학자들과 변승업이라는 조선 갑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윤영'이라는 사람에게서 허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역자는 글들을 일상적인 여행기 뒤에 두어 시간의 흐름을 따름으로써 이해와 감정의 효율을 최대치로 올리려는 시도를 했다. 왕민호와 기풍액과의 인상적인 만남 이후 연암이 따로 「경개록」에 엮어 둔 그들에 대한 글을 「태학유관록」속에 넣은 것, 고북구를 떠나는 여정에「야출고북구기」가 따라 나오는 것, 열하에서 성승을 만나고 티베트 불교(황교)를 접하면서 그 뒤로 「찰십륜포」와 「황교문답」이 이어지는 배치.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배치는 자신의 호흡으로 직접 읽어본 이들만이 느끼고 행복해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가 갖는 편집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자는 편집 과정에서 연암과 이국 친구들과의 길고 긴 밤샘 필담 부분은 희곡 형식으로 처리했다. “형식적 구속 때문에 가슴속의 말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없다” 하여 시(詩)를 멀리했던 연암의 글답게, 형식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희곡으로 엮은 것이다. 그리하여 예속재와 가상루에서 연암이 나누었던 필담의 희곡버전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박진감 넘치고 리드미컬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질적 존재들의 시끌벅적한 향연을 즐긴 건 에피쿠로스를 닮았고, ‘친구에 살고 친구에 죽는’ 우정의 정치학을 설파한 건 스피노자를 닮았으며, 웃음이야말로 삶과 사유의 동력임을 보여준 것은 니체를 닮았으며, ‘투창과 비수’의 아포리즘으로 통념의 기반을 가차 없이 뒤흔든 건 루쉰을 닮았구나!”
역자 고미숙이 박지원의 묘비명으로 바치고 싶다는 이 헌사에서 우리는 연암이 자신의 삶을 통해 그가 구현하고자 한 철학적 실천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철저하게 비타협적인 연암, 그는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굴려가는 것, 그러니까 ‘내 멋대로’ 하는 거라는 진실은 현대의 경쟁 속에서,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천편일률의 일상 속에서그래도 좀 괜찮은 삶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역자는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이들, 지루한 삶의 해독제가 필요한 이들에게 '연암과의 접속'을 강추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를 다 읽고 보니 역자 고미숙씨를 비롯하여 그토록 많은 이들이 한반도의 수 많은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당부하는 뜻을 조금 알 수 있겠다.
 [열하일기]만 하더라도 당시 조선이 세상의 흐름에 닫혀있는 상태에서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명나라의 후계국임을 자임하고 유학의 고리타분함만을 암송하는 새태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고리타분한 유학에서 벗어나거나 서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조선이 벽돌, 구들, 수레, 목축, 축성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청나라의 '이용후생'을 도입하여 백성들의 후생과 복지를 위해 노력했다면 역사는 지금까지와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지적하는 상당수 논거와 주장의 큰 틀은 연암이 연행기를 쓴 이후 2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사방이 바다와 대륙에 막혀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사방의 효과적인 문물을 도입하고 내세를 강화한다면 21세기 지금에서도 한국은 더욱 강력한 공동체와 국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 공동체의 정책입안자,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기득권'에 안주하여 과거의 잘못과 병폐를 고치지 못하고 미래를 향해 손에 움켜진 것을 내던지고 과감하게 나서지 못한다면 단기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이 유지될 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마저 아지랑이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서 말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고통받는 것이 조선의 백성들과 뜻있는 지사들이었다면 앞으로 21세기의 남은 기간 역시 잘못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중산층 이하 민중들과 뜻있는 사람들이 쓰러지고 고통받을 것이 자명하지 않을까???
 
[ 2011년 8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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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새로 쓴 물리교과서
최원석 지음 / 이치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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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소년용 과학교양서다.
저자는 한국에서 상영하였거나 알려진 영화 속 스토리와 장면을 통해 청소년들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연결하고자 한다.
 
저자는 책 서문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안방극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사극들 - ’이산’, ’대조영’, ’주몽’, ’태왕사신기’ -에서 국사시간에 배웠던 시전이나 난전, 금난전권 등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다.
그런 드라마를 통해 저자는 잘 만든 드라마 하나가 역사 교과서 역할을 해낼 수 있고 청소년과 일반인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업 매체가 영화라고 판단한 것이다.
단순히 과학에 대한 흥미를 넘어 과학-기술-사회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까지...
 
학생들의 질문을 끌어내고 대답을 끌어내어 과학에 유도하는...
사람을 극저온으로 냉동시킨 후 살려낼 수 있을까?
슈퍼맨이 공을 던지면 우주까지 날아갈까?
실제로 제다이의 광선검을 만들 수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처럼 전기에 감전되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구의 발명자가 에디슨이 아니라면?
날아가는 로켓을 기어 올라갈 수 있을까?
 
[힘과 에너지]를 배울 수 있는 영화 -
1. 운동의 기술 : 진주만, 슈퍼맨, 아폴로 13호, 80일간의 세계일주, 딥불루씨, 매트릭스3, 스피드, 아마겟돈, 터미네이터2, 슈퍼맨4, 투루라이즈, 사하라, 인크레더블,
2. 힘과 운동의 법칙 : 토이스토리2,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 헐크, 신세기 에반게리온, 툼레이더, 스파이더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트맨4, 스파이더냄2, 원피스, 라이터를 켜라, 트리플X, 아폴로13, 슈퍼맨2, 아마겟돈, 옥토버 스카이, 블랙호크다운, 슈퍼맨, 스타쉽 트루퍼스, 진주만,
3. 운동량과 충격량 : 엑스맨3, 슈퍼맨, 매트릭스, 플러버, 러쉬아워2, 아마겟돈, 툼레이더
4. 일과 에너지 : 반지의제왕3, 인크레더블, 터미네이터2, 블레이드3, 윔블던,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
5. 열역학 : 배트맨4, 투모로우, 매트릭스, 어비스, 타이타닉, 슈퍼맨3,
 
[전기와 자기]를 배울 수 있는 영화
1. 전류와 전압 : 슈퍼맨4, 신세기 에반게리온, 80일간의 세계일주, 스파이게임, 할루우맨, 미션임파서블3, 백투더픽처, 스타워즈-에피소드3,
2. 전기 에너지 : 아폴로13, 나홀로집에, 헐크, 미션임파서블3, 쥬라기공원
3. 전류에 의한 자기장 : 스파이키드2, 엑스맨, 터미네이터3, 스파이더맨2, 할로우맨,
4. 전자기 유도 :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대결, 한반도, 아는여자, 고공침투,
 
[파동과 입자]를 배울 수 있는 영화
1. 파동의 발생과 전파 :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타워즈, 쿵푸허슬
2. 파동의 반사와 굴절 : 미션임파서블3, 할로우맨, 어비스, 더 록, 블루스톰, 쿵푸허슬, 로드 투 퍼디션, 판타스틱,
미녀삼총사2,
3. 파동의 간섭과 회절 : 에너미라인스, 엑스맨3, 신세기 에반게리온, 아마겟돈, 더 록, 아이 로봇,
4. 빛과 물질의 이중성 : 엑스맨3,
 
[영화를 과학으로 생각하기]
80일간의 세계일주, 밀리언달러 베이비, 매트릭스, 아이로봇, 스타워즈 에피소드3, 마스터 앤드 커먼더, 스팀보이, 신화-진시황릉의 비밀, 나비 효과
 
조금 아쉬운 것은 저자가 영화를 보고 영화 속에서 과학을 이끌어 낼 때,  ’과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 이상의 교육자적 자질을 갖추지 못하는 것...
저자는 과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학생들에게 한 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고 왜 학생들이 과학을 배우는지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저자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과학’ 그 자체만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저자 세대마저도 불완전하고 낮은 수준의 교육철학과 교수들을 접했기 때문이리라...
 

[ 2010년 7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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