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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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에 대학 몇 년 선배(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으니 선배라 칭하기는 뭐하지만...)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에 '희망버스는 희망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그룹 멤버들의 찬반 논란이 거세졌고 나 역시 며칠 동안 페이스북에 집중하여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에 50% 이상 동의할 수 없었고 일부 동의할 수 있는 주장 역시도 그런 문제를 제기할 시기나 방식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논란이 거세지던 와중에 페이스북에서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주장을 기사로 다루어주겠다는 중앙일보 기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명세를 탔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그 사람의 글에 반응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그룹 멤버들을 초대하여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하면서 나에게도 직접 참석할 것을 요청한 것도 거부하였다. 그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주류언론에 '등장'하고 싶어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변 친구들을 만나다보니 많은 친구들은 그룹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살펴보고 그냥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댓글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 그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학벌로 이야기되는 대학을 나왔고 10년이 넘는 청춘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친 바 있다.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대학에 재입학한 후 졸업하여 대우자동차에 근무하였고 이후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를 차리기도 했다. 책도 몇 권 펴냈으나 별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고 최근에는 동년배들과 모임을 갖고 자신의 주장과 이론을 알리는데 애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책 [안티조선운동사]를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7월 중순이지만 당시에는 공부모임에서 책의 분량이 많아 2부까지만 세미나의 대상이었고 이번 달에 나머지를 토론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주에 3부~6부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나머지 부분을 읽는 동안 지나간 페이스북을 통한 경험과 의문이 계속 머리 속에서 오버랩되었다. 
나는 왜 본능적으로 '조중동'을 싫어할까? 지금 시대에 지식인이 자신의 의견을 '조중동'에 표현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언론은 산업인가 아니면 사회적 기능인가?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과점상태를 이룬 '조중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란 무엇인가? 언론이 사회적인 주장의 '공론화'장이라고 하면 언론이 국민들과 소비자에게 부여받은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가? 사적 소유와 사회적 책임에서 언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21세기 언론의 새로운 기능과 책임은 어떻게 변화되었나? 현실에서의 언론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 끝없는 의문과 질문이 계속될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10년 동안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사회를 달군 화두 중 하나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운동에 참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 또한 구체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하여 활동하거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동의하여 언젠가부터 조선일보 구독을 끊었다.
또한 안티조선 운동은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언론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주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그 이외에도 '안티조선 운동'은 이 사회에 많은 것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시작을 15년 전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10년 전이라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안티조선 운동을 과거로 기억하고 다른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 이야기한다.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직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안티조선 운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들이 벌인 '조선일보' 반대 운동이다.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인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행위에는 우리 언론의 어떤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운동인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이, 그리고 [조선일보]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히 언론 운동에 그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언론 환경의 변화로 언론 권력이 분산됐지만 과거, 언론 권력이 몇몇 언론사에 집중됐을 당시에는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따라서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운동임과 동시에 정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 * 한윤형은 누구인가?
대구에서 출생했으나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 진중권과 강준만의 책을 읽으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인터넷에 접속했고 1999년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의 원년 맴버가 되었다. 서울대와 조선일보 주최의 논술경시대회를 나갔다가 대상을 받았고 당시 안타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글을 발표하고 있다. 공저로는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2008)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가 있고, 단독 저서로는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텍스트, 2009)가 있다. -----
 
 
이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담았다. 더불어 저자는 이 운동의 참여자로서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최초로 평가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과 전개, 절정의 과정은 물론이고 안티조선 운동 이전의 언론사와 언론 운동사를 살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총 6부로 구성됐다.
 
1부 ‘맥락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예비 학습’은 1920년부터 1998년까지의 한국 언론사를 간추렸다. 한국의 언론사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친일과 친미, 기득권의 세대세습으로 이어져왔다. 그 중심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고...
2부 ‘안티조선 운동의 탄생’은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의 상황을 다뤘다. 1995년 강준만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는 안티조선 운동의 맹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9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의도와 사실조작으로 '최장집 교수 사건'을 기획,실행했고 이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안티조선 운동'이 전면에 등장한다.
3부 ‘안티조선 운동의 성장’은 2000년부터 2001년까지의 사건들을 묘사하고 그 맥락과 의미를 짚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와 국민의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옥천전투' 등 안티조선 운동은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이문열의 '홍위병 논란' 등 수구기득권 세력의 도전도 만만치 않게 일어난다. 언론환경의 변화와 세무조사는 그동안 조금씩 달랐던 조중동이 하나의 기득권 집단이자 수구세력으로 결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4부 ‘혼란에 빠진 안티조선 운동’은 안티조선 운동에서 특별히 중요한 해라 할 수 있는 2002년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가 늘어나고 자체가 국민의 정부의 실정과 2002년 대선을 앞두면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조중동과 진보언론의 전쟁이 벌어지고 '언론'이란 세계는 과도한 당파성으로 얼룩진다. 안티조선 운동과 노무현 후보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점점 가까워졌다.
5부 ‘관성에 젖은 안티조선 운동’은 2003년에서 2007년까지의 안티조선 운동 진영의 문제점과 당시 참여정부의 문제점 등을 살폈다. 참여정부의 실정과 여러 세력과의 갈등을 맞이하여 또 다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을 거듭하고 조중동은 이를 틈타 역습을 가한다.
6부 ‘안티조선, 그 이후’는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언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촛불시위를 통해 안티조선의 정신은 다시 다른 주체로 부활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언론환경은 또 다시 변화하고 언론 운동은 기존 과제와 더불어 새로운 과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사를 좇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인 셈이다.




< 책에 대한 평가 >
이 책은 직접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저자의 체험담이자 사실관계를 토대로 10~15년간 한국의 언론개혁운동을 서술했다. 
저자는 직업 저술가도 아님에도, 그리고 젊은 나이라고 하기에는 독자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언론의 흐름을 책 속에 담아냈다. '안티조선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언론운동사만 다룬 것이 아니다. 언론운동사에 필요한 일제시대 친일 언론의 사실과 행태, 해방전후사에 대한 인식, 개별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자료들을 책 속에 담아내는 것을 보면 저자의 열정과 실력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사회적 배경, 언론 환경의 배경 속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탄생하고 어떤 계기와 과정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이 탄생했는지 독자들이 충분히 수긍이 갈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리고 초창기 '안티조선 운동'에서 강준만교수의 빼어난 역할과 기여를 밝혀냈다. (그는 스스로 강준만 교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쪽까지 읽은 후 덮고 나면 '안티조선 운동'의 10년 넘는 과정이 파노로마처럼 눈 앞에 펼쳐질 정도로 '안티조선 운동'을 정확하게 다루었다.
뿐 만 아니라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주도세력의 입장과 주장 뿐 아니라 '안티조선 운동'을 거쳐간 수 많은 개인과 단체, 정치권, 세력의 흐름과 주장까지 객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는 박정희 추종론자와 한총련, 민주당 지지자들과 노사모, 유시민과 최문순, 김대중과 노무현, 진중권과 변희재, 언론운동단체, 각 언론사까지 포함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저자가 '안티조선 운동'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평가하는데 있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만이 최선이고 그들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시민들의 의식과 언론의 모습, 각 개인과 집단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1995년에서1999년까지 이어진 기간 속에서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탄생하는 배경과 과정, 참여하는 주체와 구조, 그리고 그들의 운동과정은 '안티조선 운동'의 긍정적인 성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안티조선 운동'은 자연스럽게 운동의 상대인 조선일보와 다른 주류 언론사, 그리고 진보언론과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와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태동했던 '안티조선 운동'은 그 탄생 배경, 논리와 유사했던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면서 급격하게 대중화 되었고 스스로의 한계 속에서 참여정부의 프레임에 발목이 묶여 참여정부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갔다. 그래서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한 저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한 공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2009년 정권의 친위대를 자처했던 검찰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 과정을 통해 언론 운동이 다시 부활하고 그동안 일방적으로 폄하되었던 노무현 대통령 개인과 참여정부의 성과는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재평가의 분위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IMF 이후 사회적 양극화와 노동자, 농민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개선되지 않았다. 두 민주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구기득권 세력의 여론 호도와는 달리 사실 10년 기간 동안 수구기득권 세력과 자본가들의 이익과 권력은 늘어났지만 그 반대편에 존재하던 노동자, 농민, 빈민, 비정규직, 청년, 여성, 아동, 노인들의 권리와 이익은 줄어들었다. 특히 수구기득권 세력과 부패관료, 삼성에 가로막힌 참여정부의 경우 '때 이른 4대 개혁입법'과 한미 FTA 추진 등 실정이 만만치 않았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서술했지만, 그 속에서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 극우/보수/진보를 떠나 한국의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 진보언론의 필요성과 성장 조건에 대한 지적, 언론개혁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고민, 사회적 의견을 담아내는 '공론화'의 장으로서의 다양한 언론의 역할과 관계, 주권자로서의 국민과 소비자로서의 시민의 책임과 역할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하게 조선일보를 반대하고 없애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언론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노력인 것이고 그렇다면 단순히 조선일보만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야만적 극우선동집단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는 '조중동'을 한꺼번에 바라보아야 하고 소위 진보언론에서 나타나는문제점 역시 무시하거나 눈감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문 뿐 아니라 방송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를 모두 포함한 언론매체 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의 소비자이자 주권자인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은 한국 정치계, 관료와 교육부문에서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다른 분야에서의 그것과 비슷한 맥락을 보여주고 있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결국 저자가 1부에서 '예비 학습'으로 서술한 '해방전후사'의 언론의 모습은 한국사회 각 부분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나고 있고 현재의 수준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한 해방, 동족상잔의 비극, 남북의 이념 대결, 친일세력에서 친미세력으로의 지배세력 교체, 독재와 군사정권의 체제 장악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전과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뿐 아니라 언론 속에서도 그대로 녹아들었고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분야에서 '해방전후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민적 운동의 하나일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이기도 한 저자 한윤형은 과감히 안티조선 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던 그 지점에서 새로움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안티조선 운동사]를 통해 지금, 안티조선 운동을 다시금 돌아보며 기록한 이유는 바로 새로운 꿈을 꾸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독자들에게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며 한국 언론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꿈꾸게 해줄 수 있다.
 
저자는 상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사실 책을 모두 읽고나면 가장 명확한 결과가 하나 도출된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주인이자 언론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시민들이 어떻게 언론을 소비하고 언론운동에 참여하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여 '국민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이고 대통령과 정치인, 언론의 수준'인 것이다.
저자는 실천적인 과제도 몇 가지 제시한다. 진보언론에 대한 적극적 유료 구독과 주간지에 대한 유료구독, 진보언론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질책, 그리고 조중동과 방송 등 제 언론과 관련 제도에 대한 감시와 참여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기존 언론 이외에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소비자이고 국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자가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다하게 되면 어느 사회의 어느 집단도 국민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얻은 것들도 많다.
하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한국 언론의 지형과 역사, 언론의 환경과 구조, 언론운동의 흐름과 과제 등에 대해 많은 정보와 시사점을 얻었다. 이것 만으로도 책 값은 뽑은 셈이다.
둘. 강준만 교수와 진중권 교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에 의존하여 두 사람을 받아들였고 스스로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두 분의 가치와 실력, 주장과 논리를 접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셋.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각각에 대해서 그동안의 그들의 행위와 과정을 통해 각 수구언론의 정체에 대해 내 나름대로 개념과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넷. 한국의 인터넷 소통문화가 초기에 비해 훨씬 '집단극화'와 '사이버 발칸화'의 특징을 보였다는 설명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이는 포탈이나 카페 뿐 아니라 나아가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비슷한 정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고민은 '공론화'에 대한 장기적인 과제를 심각하게 생각토록 만든다.
다섯.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대중적인 세력과 '노사모'의 연결 가능성,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각과의 공통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여섯. 참여정부와 삼성의 '커넥션'에 대해 한 번 더 심증을 굳혔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참모진이 내뱉은 여러 가지 발언은 심증을 넘어서 물증까지 가능한 정도다.
일곱. 개혁당에 대한 유시민씨의 배신, 그동안의 발언과 달리 '당내 민주주의'와 '진성당원체제'에 대한 유시민씨의 이중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시민씨는 앞으로도 오랜 동안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보다 더 오래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저자의 글 중 비판적으로 검토한 부분
- (p.52) 저자는 1970년대 '언론자유 수호'를 외치다가 박정희 정권과 언론사주에 의해 ?겨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를 평가하면서 "그들이 제도권 내부에서 계속 투쟁할 수 있었다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훨씬 더 성숙하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시의 좀 더 구체적인 신문사 상황과 조선투위와 동아투위 주체들 입장에 처하게 되면 이런 가정법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구조 전체를 고려해보고 1988년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대안 언론' 탄생을 되돌아볼 때 역으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가 없었다면 관제언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언론 운동 및 '대안언론' 추진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8장 '한총련의 귀환' (p.152~163) 사실 저자도 그렇고 나고 그렇고 2000년을 전후하여 한총련이 검찰의 공소장대로 '북한의 통일전선' 지침에 추종하여 학생운동을 전개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 한총련이... (중략)... 이미 참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한총련의 불법행위나 북한추종의 이유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이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수구언론 조중동의 사실 왜곡과 극우적 주장을 비판하면서 국가기관의 '주장'을 토대로 학생운동 단체가 반역자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고 생각한다.


* 안티조선 운동의 구조와 연표









 

[ 2011년 8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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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왕국 - 피터 앳킨스가 들려주는 화학 원소 이야기 사이언스 마스터스 2
피터 앳킨스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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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섹스의 진화 >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옥스퍼드대학 물리학과 교수(물리화학 전공)로 재직 중인 저자가  주기율표에 담겨 있는 화학원소가 언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언뜻 보기에 단순한 규칙으로 정렬한 것처럼 보이는 화학원소의 배열에 숨어있는 비밀을 설명한다.
 
저자는 주기율표 속에 숨겨져 있는 온갖 리듬과 패턴을 드러내 보여준다.
초,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화학을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왔던 우리에게 화학원소의 주기율표는 마치 마술처럼 보인다.
화학의 기본 원소들을 모두 담고 있는 주기율표.
그 주기율표를 관통하는 근본 원리들과 주기율표가 형성된 역사, 그리고 원소의 내부 구조에서 대한 과학적 정보가 흥미진진한 비유와 어우러져 쉽고 정확하게 이해된다.
원자량, 원자 지름, 원자가, 전이 금속, 영족 기체 같은 어려운 화학적 개념들이 지협, 해협, 영지, 산맥 등으로 바뀌고, 원자의 기본 원리인 양자역학이 왕국의 법률, 제도, 행정 같은 일상적인 단어로 바뀌는 것들이 환상적이다.
분자에서 원자, 원자에서 소립자로, 그리고 별, 은하, 대우주로 종횡무진 이어지는 여행은 화학의 즐거움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주기율표 속 109개 화학원소는 수소를 비롯한 비금속(Non Metals)와 할로겐족 원소(Halogens)군, 전이금속군(Transition Metals), 알칼리 금속군(Alkali Metals)과 알칼리 토금속군(Alkali Earth Metals), 란타넘족 원소군(Lanthanide Series)와 악티늄족 원소군(Actinide Serie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기율표의 전체적인 구성과 성격을 들여다보면,
- 원소의 질량은 원소의 번호(원자량의 개수)대로 수소를 비롯하여 상부가 가장 가볍고 가장 아래쪽 악티늄족 원소군이 가장 무겁다.
- 원소의 부피는 전체적으로 상부 구성원소가 작고 아래쪽 원소들로 갈수록 커지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서쪽으로 갈수록 부피가 급속하게 증가하며 의 백금과 이리듐이 가장 크다.
- 밀도의 경우, 북쪽이 가장 작고 남서쪽으로 갈수록 커지는데 이리듐과 오스뮴이 가장 크다.
- 원소의 이온화 에너지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전체적으로 작고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동쪽과 북쪽으로 갈수록 에너지 수치가 올라간다. 특히, 플루오르와 네온, 그리고 헬륨의 이온화 에너지가 가장 크다. 이들 원소에서 전자를 떼어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 대신, 플루오르와 네온, 헬륨과 질소, 산소, 염소는 전자에 대한 친화력이 높아서 전자를 잘 끌어와서 음이온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 원소의 부피와 밀도, 이온화 에너지와 친화력은 원자와 양성자의 개수, 전자의 개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 이들은 양자역학에 따른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의하여 결정된다. ’배타원리’는 하나의 전자 궤도에 2개 이상의 전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 현재 원소 내 전자들의 궤도는 주기1에서 주기6까지 가능하다. 각 원소의 전자 개수와 궤도에 배정할 수 있는 전자의 수, 전자의 주기성에 따라 부피와 밀도, 이온화 에너지, 전자 친화력이 달라진다.
- 주기율표에 숨겨져있는 배치원리는 양자역학으로만 규명이 가능하다.
 
우리 몸과 자연과 물질의 모든 것들을 구성하고 있는 화학원소의 세계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원소들의 오묘한 집합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고...
 
아쉬운 점...
화학원소의 집합을 왕국이라 명명한 아이디어는 나름 신선했지만, 이 책은 ’왕국’이 사람들에게 주는 화려하고 활력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3차원 지도 정도로 기술되어 있다. 책 속의 비유는 제목만큼 신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 2010년 7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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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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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편력'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을 읽는다는 것도 별다른 경험일 것이다. 보통 인간의 성장 과정 중에서 소위 '청소년기'가 그 사람의 세계관의 틀이 현성되는데 있어 상당 부분 기여한다고 보았을 때, 청소년기의 독서와 인생 경험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보통의 삶'에서 벗어난 인생의 궤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재일동포 2세(또는 3세)라는 것만 가지고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에 더하여 그의 형 두 명이 모두 1971년 재일동포로서 한국에 유학을 왔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되어 장기간 옥고를 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전체 재일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평범한 '재일동포'일 수도 있고 두 형이 한국에서 옥고를 치른 '양심수'의 동생일 수도 있다.(한국 내에서는 그의 둘째 형인 서준식씨가 인권운동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관계'와 더불어 그 역시 문학가이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부터 수 많은 시와 소설, 수필과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던 과정이 있었기에 그는 일본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고 현재는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책으로 '에세이스트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생각해 보아도 일반인들 중에서 소년과 학생 시절 저자만큼 많은 독서량(독서의 질을 고려하지 않더라도)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체가 흔치 않다.
그의 현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 그 과정의 결과로서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즉, 이 책은 '재일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사회적 정체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형성해온 과정을 소년 시절 읽은 책들에 대한 사색 및 비평과 함께 기록한 글이다.
밖에서 친구들과 뛰노는 일보다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서경식은 어린시절 책을 읽기 위해 꾀병을 부리고 학교를 빠질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고작 초등학교 3~4학년인 열 살 나이에 “아내의 죽음이라는 구슬픈 사건”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가는 '데라다 도라히코'의 에세이를 읽고 불가사의한 매력을 느꼈던 이 조숙한 소년은 독서를 통해 유년기 성장의 자양분을 얻는다.
데라다 도라히코에서 '프란츠 파농'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10년에 걸친 독서 편력 기간은, 그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기간과 정확히 중첩된다. 그렇듯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은 성장의 기간 내내 존재를 짓누르는 무거운 틀이었다. 그것은 때로 남과 조금 다르다는 막연한 불행감으로, 소외감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서경식 고유의 성찰적인 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그의 독특한 정체성에서 비롯한다. 그의 글쓰기에서 우리는 일상의 균열, 곧 한국사회와 일본사회의 허위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따뜻한 감성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서준식씨의 책과 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내가 서준식의 동생 서경식씨의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후배가 이 책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선물로 받았을 때 '서경식'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단지 책이 '독서를 통한 영혼 성장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호기심 때문에 읽었다.
물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의 성장배경과 환경, 가족사, 재일동포 소년의 삶과 갈등, 독서에 대한 비평 등에 줄곧 이끌려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 서경식은 누구인가? ------------------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오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쎄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시대에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
 
 
책은 성장기의 생각과 고민을 대변하는 작품 12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저자에게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색을 갖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통찰하는 법도 가르치고 인생과 자연을 느끼고 배우고 돌아보도록 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주요 작품은 데라다 도라히코의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 엘리자베스 루이스의 『양쯔 강 소년』,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 요시카와 에이지의『삼국지』, 다자이 오사무의 「추억」, ‘현대시인전집’ ,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허남기의 『조선의 겨울이야기』, 김소운의 『조선시집』,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등이다.
 
저자가 특별히 책의 목차에 내놓은 것들 중에서 초등학교 이후 내가 읽은 것이라고는 [삼국지]와 루쉰의 [고향] 정도다. 저자가 재일동포로서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읽었던 일본 내 문학작품의 수준에 해당하는 한국 문인들의 작품도 일부 읽었을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읽었던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던 책 중에서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 안델센 동화집, [죄와 벌]과 같은 세계문학전집 몇 권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어린 시절 저자와 달리 '운동'이나 '놀기'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책에 그렇게 많은 흥미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데라다 도라히코의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 저자는 이 책을 '내 독서 인생 최초의 책다운 책'이라고 소개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아이가 도토리를 주우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아내의 운명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장면을 통해 저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문장의 유려한 흐름과 좋은 어조가 전해주는 율동감의 매력을 처음 경험했다고 말한다.
- 엘리자베스 루이스의『양쯔 강 소년』, 니콜라이 바이코프의『위대한 왕』 에리히 케스트너의『하늘을 나는 교실』:『양쯔 강 소년』은 저자가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 앉아 늘 책을 읽던 습관을 벗어나게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저자는『위대한 왕』에 푹 빠져 지내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이코프가 묘사한 동물 대 동물, 인간 대 동물의 무자비하고도 타협 없는 투쟁 속에 '아이들의 허구를 넘어서는 리얼리티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교실』은 저자에게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문맹이었기에 그것을 잘 아는 저자는 학창시절 급식비를 내지 못하여 선생이 어머니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그는 어머니가 문맹이라고 말을 못하고 '집안 형편이 어렵다'라고 울면서 답한 적이 있었고 장사를 하는 아버지의 직업 특성 때문에 자신의 집안의 사정이 들쑥날쑥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저자가 『위대한 왕』에서 가장 마음이 끌렸던 글은 '제2서문' 이었다. 케스트너는 서문에서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만 만들면서 아이들을 기만하고 재미로 아이들 정신을 흘리려 애쓰는 아동서 작가들에게 분개했다고 한다. 저자는 말미에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p.85)
- 요시카와 에이지의『삼국지』: 저자는 자신의 둘째 형 서준식의 『삼국지』에 대한 암기와 이해, 놀이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둘째 형은 어린 저자에게 '천하삼분지계'나 '읍참마속' 같은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거나 소설 속의 명장면을 이야기하며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동네 꼬마 녀석들과 전쟁놀이를 할라치면 삼국지의 배역을 나누면서 놀았다고 한다.
저자가『삼국지』에서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조조의 장남 조비가 동생 조식을 제거하려 할 때 조비가 읊은 '칠보시'였다. '콩을 삶으려 콩깍지를 태우니, / 가마솥 안 콩은 소리없이 눈물 흘리네 / 본디 한 뿌리에서 자라났건만 / 무슨 이유로 이리도 다급하게 서로 볶아대는고'... (p.100)
- 다자이 오사무의「추억」: 저자는 그 전까지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다가 중학교 입학을 계기로 성(姓)만은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는 4.19 운동이, 일본에서는 '북조선귀국운동'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저자는「추억」속의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작품은 '위태로울 정도로 예민해져가는 소년기의 자의식과 불균형한 자기애의 양상'을 능숙하게 그려내고 있었다.(p.121)
- ‘현대시인전집’ : 이 시집은 저자가 '시'와 '시집'에 대해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되었고 저자가 시를 지어 노트에 남기는 것을 시도하도록 유도하기 했다. 시집 속의 여러 일본 시인들의 시를 접하면서 저자는 조금씩 스스로가 어른으로, 남자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 토마스 만의『마의 산』: 이 책은 저자가 중학생 시절 난생 처음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던 시기에 상대 이성에게 호기를 부리면서 읽었다고 자랑했다가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끝내 읽지 못한 책'이 되었다.(저자는 이 책을 발간할 때까지도 결국 이 책을 읽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사춘기 콤플렉스의 상징이요 끝까지 등정할 수 없었던, 영원한 미답의 봉우리같은 존재'라고 부른다.(p.163)
- 루쉰의『고향』: 저자는 이미 중학생 시절에 루쉰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루쉰은 저자가 오랫동안 기대고 의지했던 작가였다. 아마도 그것은 루쉰의 소설과 루쉰의 글들이 동아시아라는 비슷한 지역에서 가까운 '동시대'의 아픔과 희망, 지식인의 선함과 올바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아Q정전]과 『고향』에서 희망을 읽었다.
- 허남기의『조선의 겨울이야기』, 김소운의『조선시집』: 저자는 지금도 한글을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그는 스스로 '모국어상실자'라고 자조한다. 두 권의 조선 시집은 저자가 중학생 시절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다. 한글과 한국어는 저자에게 있어 '한국인(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지만 그 상징이자 중심인 말과 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한다.
- 프란츠 파농의『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저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파농의 '저작집'을 읽었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작은 형으로부터 '조선을 위해서는 건축가나 토목기사가 되라'라고 지적당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실제 파농이 그 작품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달랐다.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p.226)
 
 
책을 읽고난 다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나의 "재일동포에 대한 무관심"이었고 그로 인한 죄스러움이었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나 위안부 사건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음에도 내 머리 속에서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그동안 재일동포라는 단어는 내게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조선인 차별'과 '지문날인'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찾아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그 피해자들이자 재일동포였던 서승씨와 서준식씨에 대해서도, 그들이 발간한 책도 찾이 않았다.
굳이 민족적, 동포적 관심과 애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그동안 서유럽 민중에 대한 관심, 근대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관심, 인도네시아 쓰나미로 희생당한 아체인들에 대한 관심, 전세계 곳곳에서 '매춘산업'에 희생당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니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비슷하게 인간적인 삶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재일동포에 대한 관심도 일어났어야 했다.
다행하게도 더 늦지 않은 시기에 이 책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삶과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이 책을 선물해 준 후배가 새삼 다시 고마워졌다.
 
이 책은 저자의 성장의 중요한 대목, 인상적인 장면마다 그 시절에 읽은 책의 기억이 오버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 서경식의 영혼의 성장기이다. 자기 앞에 놓인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책읽기의 의미를 깨쳐가는 과정, 유년기의 고통과 슬픔, 생에 대한 불안한 매혹의 순간들이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게 되으면서 나 역시 나에게 있어 독서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 성장사를 되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한참 자라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책'과 '독서'에 대해 여러가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과 책 읽기'의 중요성이다. 아니 가정 내에서, 가족 관계에서 '책읽는 문화'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가 재일동포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 어려운 일본 사회 내에서 도쿄 지역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것도, 그 까다로운 일본 문학계의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 중의 하나가 성장기에 늘 가까이 했던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독서는 우리 아이들, 청소년들의 영혼이 성장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아이들의 독서가 '영혼의 성장'이 아닌 '성적을 위한 도구'로 자리잡게 되면 아이들은 책을 멀리할 수 밖에 없고 '편법'이나 '요행'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진실로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부모로서 무책임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린 시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들이 가정의 경제사정이나 문화와 상관없이 '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대하게 대했다는 것과 위의 형 둘이 먼저 책과 가까이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항상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들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거나 주입하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인터넷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여러가지 정보를 통해 아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정도만 역할을 해도 될 것이다. 아이들은 책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찾아 나가고 배우고 깨닫고 느끼게 된다. 절대 '돈'으로 아이들의 영혼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으로 '돈'은 아이들에게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 내에서 일상적으로 책을 가까이 하는 문화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엄마와 아빠가 늘 책과 가까이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이들은 저절로 책과 친해질 수 있다. 아이들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과 책 속의 세계를 공유하기도 한다. 물론, 부모라 해서 책과 멀어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한국사회의 독서 통계를 보면 부모 세대의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모들이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늘 공부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 자신들에게도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이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TV 앞에 앉아 드라마나 연예프로그램을 보면서 넋이 나가 있으면 아이들 역시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모들이여... 지금이라도 집에서 TV를 꺼버리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기를....
 
[ 2011년 8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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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분 - 폴 데이비스가 들려주는 우주의 탄생과 종말 사이언스 마스터스 3
폴 데이비스 지음, 박배식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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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의 세 번째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대표적인 장르가 재난영화다. 그 중 1998년에 한국에도 개봉했던 <딥 임팩트, Deep Impact >라는 영화가 기억난다. 우주에서 아무 생각없이 날아온 혜성이 시속 56,000km 즉 초속 16킬로미터로 지구로 돌진한다. 1조 톤의 얼음과 바위가 음속의 47배나 되는 속도로 지구와 충돌한다.
 
이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지구 표면 바로 위의 하늘이 갈라져 열리고 수천 세제곱 킬로미터의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한바탕 휘몰아쳐 지나간다. 도시의 둘레보다도 더 넓은 불기둥이 지상으로 내려와 15초 뒤에 지구를 덮친다. 무수한 지진이 동시에 발생할 저도로 큰 충격으로 행성 지구 전체가 진동한다. 밀려난 공기의 충격파가 지구의 표면을 스쳐 지나갈 때 마주치는 모든 구조물을 휩쓸어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뒤에는 분화구, 녹아내린 암벽, 허공으로 튀어나가는 바위들, 거대한 해일, 먼지로 인한 암흑...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전에 위와 같은 충돌로 공룡이 멸망했다고 과학자들은 믿고있다.
 
종교에서는 <아마겟돈>으로 부르는 지구의 대종말... 그리고 우주의 최후...
 
현대과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물리적 활동이 열역학적 평형인 최종 상태, 즉 최대값의 엔트로피를 가진 다음에는 영원히 엔트로피 값의 변화가 없는 상태를 향해 진행한다. 평형을 향한 이런 일방통행은 우주의 ’열적 죽음(heat death)’로 알려져 있다. 우주가 열역학 법칙들의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죽어 간다는 발견은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암울한 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 과학의 결론은 대폭발이 모든 물리적 공간, 시간, 물질, 에너지의 궁극적인 출발이라는 사실이다. 대폭발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대폭발을 일으킨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이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적인 의미에서 원인은 존재할 수 없다.
 
우주가 탄생한 이래 핵반응을 통해 원자핵을 형성하면 결합한 것, 물질이 생성된 것은 탄생 후 3분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우주는 급팽창을 통해 엄청나게 확장된 이후 지금처럼 서서히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0억년 이후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들의 대부분은 열역학 제2법칙의 희생물이 되어 소멸될 것이다. 태양도 지구도 함께...
 
과연 현대의 과학은 우주 종말 말고 다른 시나리오를 보여줄 수 없을까?
저자는 현재 과학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다른 시나리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폭발로 탄생한 다음, 팽창하고 냉각되다가 물리적 퇴화를 맞게 되거나, 아니면 대붕괴로 사라진다는 우주의 기초적인 시나리오는 과학적으로 꽤 잘 정립되었다. 하지만 길고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물리적 과정들은 거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이제 어느 정도 별들의 일반적인 운명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으며, 중성자별들이나 블랙홀들의 기초적인 성질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 우주가 수조 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면 현재의 미묘한 물리적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혀 모르고 있다. 다만 궁극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되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자연현상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우리가 해 왔듯이, 우리는 우주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문제는 우주의 운명을 논의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몇 가지 개념 혹은 물리적 과정들 - 중력파 방출, 양성자 붕괴, 블랙홀 복사 - 이 이론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아직 관측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말해서, 여기서 제시된 아이디어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물리적 과정들의 발견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뒤집어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불확실성들은 지능을 가진 생물이 있어 우주에 살고 있어 우주의 운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더욱 커진다. 여기서 우리는 공상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영원 무궁한 시간에 걸쳐서 생물이 물리적 시스템의 운동을 거대 규모로 현저하게 수정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저자는 많은 독자들이 갖는 우주의 운명에 대한 환상이 인류, 또는 먼 후손의 운명에 대한 관심사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의 생명체라는 주제를 포함시켰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과학자들이 인간 의식의 본성을 진실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우주의 먼 미래까지 지속될 의식적 활동을 허용할 수 있는 물리적 요구 조건들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점을 상기시키려 한다.
 
언제나 우주론, 천문학은 거대하고 담대하다.
언제나 나를 기죽이게 하고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저 광활한 우주, 그 우주의 역사와 미래...  나는 그 속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 2010년 7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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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 유럽 미술관 산책
최영도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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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미술'은 언제나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것이었고 어느 봄날 안개 속에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던 장면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어린 시절 운동장 바닥에, 담벼락에, 도화지에, 그리고 심지어 손바닥에도 이런 저런 그림과 기호를 그리곤 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수 십 만년 전에 존재했던 인류의 조상부터 시작된 것이고 우리의 아들, 딸과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계속될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의 딸아이는 돌이 지나고 나서 볼펜이나 크레파스 등 손에 잡히는 것마다 들고서 방바닥이나 벽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나는 아이가 어디에 어떤 것으로 낙서를 하거나 그림같은 것을 그리더라도 방해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의 나도, 10대에 접어든 아이도 여전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트나 메모지, 신문지 등에 낙서를 하거나 특별한 의미는 없는 그림을 그리곤 한다. 미술의 범주를 크게 잡는다면 이런 일반적인 '끄적거림'도 미술의 영역에 포함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평생 '미술'을 생활처럼 하다가 한 줌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미술'은 언젠가부터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고 만다.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미술'시간이란 것이 교과과정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선생들은 어떤 정형화된 그림과 '화가'라는 개념과 직업(전문)가의 그림만이 진정한 '미술', '예술'인 것처럼 교육하고 우리는 '미술'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 또는 선입관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미술'의 범주는 자기자신,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게 되고 '미술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미술가'의 그림만이 '예술'인 것처럼 사회적 의식이 조성되었다. 엄밀하고 이론적으로 따져보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과정은 이반 일리히가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에서 이야기한 '가치이 제도화'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을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언어 실력, 수학 실력, 기억력, 시력과 마찬가지로 '미술' 또는 '미술품'에 대한 공감과 감동하는 수준도 긴 스펙트럼의 연속선상에서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언어 구사력이 아주 뛰어난 수준부터 아주 모자란 수준의 연속선 상에서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이고 미술 감상력 역시 아주 민감한 수준에서 둔감한 수준 사이의 어디엔가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나 노력 없이 타고난다거나 유전적으로 그 수준이 결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최영도 선생의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미술' 작품에 대한 지식과 감상 실력에 무슨 거창한 이론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고른 원초적인 이유는 어제 진행한 공부모임의 교재였기 때문이l다..ㅋ
 
"사람들은 왜 미술품에 매혹되는가? 그 속에 자연과 역사, 예술과 문화, 종교와 철학, 이상과 현실이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_최영도

나 역시 작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랬지만,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유럽의 미술관들을 한 번쯤 가보기를 꿈꾼다. 그런데 부푼 기대로 막상 그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작품들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제대로 감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전시장 길이만 약 20km에 소장품만 37만여 점이라고 하니, 무턱대고 가면 어디부터 봐야할지 막막할 수 밖에 없다. 

런던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직접 가보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각 전시실에 어떤 작품, 누구의 작품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 ?어보면서 감상하는 동안 눈 깜짝 할 사이에 오후 반나절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미리 감상할 작품을 고르지 않은 채 무작정 박물관, 미술관에 가게 되면 후회할 수 밖에 없음을 실감했던 것이다.(영국박물관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관'이라는 전시실이 박물관의 가장 구석에 위치해 있고 그마저도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전시품이 거의 없이 피상적인 수준의 전시품만 쓸쓸하고 초라하게 놓여져 있다는 느낌이다. 실제 관람객도 '중국관'이나 '일본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저자는 "수천 점씩 전시되어 있는 큰 미술관에서 다 보려고 욕심을 냈다가는 미술관을 나올 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서 미술감상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풍부한 교양과 열정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작품을 꼼꼼히 선정한 후 미술관으로 향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그는 루브르 19점, 오르세 20점, 피티 8점, 우피치 16점, 프라도 16점만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 * 최영도는 누구인가?
193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65년 판사에 임관되고, 1973년 유신정권 시절 법관재임명이 거부되어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군사정권 하에서 시국사건들을 변론하고, 정의실천 법조인회(정법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발기인이 되었다. 1992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1996년 민변 회장 및 인권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1999년 한국인권재단 이사로 인권운동을 하였으며, 2002년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되어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저자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남다른 조예를 갖고 있는데, 이를 보여주듯 열정어린 저술 활동도 해왔다. [토기 사랑 한평생](2005, 학고재)은 토기에 대한 평생의 애정이 담긴 그의 반평생의 체취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는 다른 컬렉터와 달리 토기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수집했고, 이렇게 모은 토기 1,580점을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세간을 놀라게 했다. [참 듣기 좋은 소리](2007, 학고재)는 클래식에 취해 살아온 마니아의 50년 음악감상기이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답사기인 [앙코르·티벳·돈황](2003. 창비)을 펴내기도 했다. ---------


이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개의 미술관은 각각 일본의 마쓰카타 미술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 마르코탕 미술관, 이탈리라의 피티 미술관과 우피치 미술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다.
 
일본의 마스카타 미술관(국립서양미술관)은 소위 '마스카타 컬렉션'을 일본인들에게 물려준 마스카타 고지로의 이름을 딴 곳이다. 저자는 1910년대 유럽 전역을 돌면서 유럽 유명화가들의 미술작품을 사들인 카와사키조선소 사장 마스카타 고지로의 '미술품 수집과 그 이후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마스카타 미술관에는 로댕, 밀레, 쿠르베, 피사로, 마네, 드가, 모네, 르누와르, 세잔, 시슬리, 반고흐 등의 회화 수 백점과 로댕, 부르뎅, 마이욜의 조각 수 십점이 보관되어 있다. 
저자는 작품 중에서 로댕의 조각 '지옥의 문', 몰리리아니의 '앉아있는 잔 에뷔테른', 르느와르의 '알제리아 풍의 파리 여인들', 반 고흐의 '붓꽃', 피카소의 '곡예사와 어린 알레퀸'을 소개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런던의 영국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스 미술관, 러시아 생트페테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박물관 중 하나라고 한다. 1998년에만 년간 690만 명이 관람했다. 하지만 루브르의 소장품은 런던의 영국박물관과 더불어 그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나 약소국가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이기 때문에 감동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프랑스와 영국은 피해 당사국들의 반환 요구를 계속 묵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올해 초에 조선시대 문화재 '외규장각 조선왕조 귀례'를 정식으로 반환하지 않고 '대여'한 사실이 있어 한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일이 있다.
아무튼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 카르통의 '아비뇽의 피에타', 루벤스의 '마리드 메디시스의 초상'과 '마리 드 메디시스의 마르세유 상륙', 라 투르의 '목수 성 요셉'과 '작은 등불 앞의 마들렌',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출발', 조각상 '사코트라케의 니케',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을 소개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의 퐁피두 대통령이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당시 철도역사로 건축하여 사용하다가 1939년부터 폐역으로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1973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고 미술관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하여 탄생한 곳이다. 이 미술관에는 근대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상징주의 미술작품 위주로 전시되고 있다.
이곳에서 저자는 앵그르의 '샘',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드가의 '무대 위의 무희',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칼레트의 무도회',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등에 대해 감상평을 남겼다. 그리고 각 화가의 미술작품의 양식과 특징, 화가들의 생애, 화가들과 작품들 사이의 연관 등에 대해 설명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1827년 개관되었고 저자는 르누와르, 세잔, 드랭, 루소, 피카소, 모딜리아니, 로랑생, 위틀릴로 등 인상파에서 1930년대까지의 근대회화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저자는 모네의 '수련' 작품 수 백점이 전시되어 있는 '수련의 방'에 크게 감동하였다고 설명한다.

마르코탕 미술관은 18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1882년 주식과 석탄광산으로 부자가 된 '쥘 마르모탕'이 매수하여 저택 겸 수집품 보관소로 사용하다가 아들에게 상속었고 아들인 폴이 1932년 저택과 미술품을 박물관 설립을 목적으로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에게 유증하여 1934년 미술관으로 탄생했다고 한다.(이 시점에서 한국 최고의 재벌가인 삼성 이병? 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유럽 부자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 회장과 그의 마누라는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자식에게 상속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데다가 미술품을 '뇌물' 용으로 수집하여 사용하고 있으니 같은 국가와 민족의 일원으로 참으로 한심하고 수치스러운 현실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모네의 '인상, 해돋이', 모리조의 '부지발 정원의 외젠 마네와 그의 딸'을 가장 감명깊게 감상했음을 이야기하면서 마네, 모네, 그리고 모리조의 인생 이야기와 작품 활동에 대해 설명한다.

피티 미술관은 15세기에 필리포 브루넬리스키가 피렌체에서 가장 화려한 궁을 건축하다가 실패하고 이후 코지모 1세 데 메디치의 대공비 엘레오노라가 16세기에 이를 매수하여 완성시켰다. 미술관은 피티 궁 안에 있는 팔라티나 미술관을 비롯하여 7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곳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은 라파엘로의 작품인 '작은 의자 위의 성모'와 '포르나리아', '시스타나의 성모'와 '아테네 학당', 티치아노의 작품인 '연주'와 '라 벨라', 루벤스의 '전쟁의 참화', 반 다이크의 '추기경 귀도 벤티볼리오' 등에 대해 설명하고 피렌체의 시뇨리아 과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등 걸작 조각품들을 소개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저자는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설명하고 보티첼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까지 이야기했다. 이어 조토의 '장엄한 성모', 마사초의 '성 안나와 성모자', 프라 필라포 리피의 '성모자와 두 천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램브란트의 '자화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자연과학박물관으로 착공한 것을 1819년 페르디난도 7세가 왕립 프라도 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처음 개관했을 때에는 스페인의 신고전주의 작품 일부만 소장되었으나 그 이후 이사벨라 여왕, 카를로스 1세, 펠리페 2세, 펠리페 4세, 카를로스 4세 등 역대 왕들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작품들이 추가되면서 이제는 '세계 최고의 회화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는 이 곳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감동하여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라파엘로의 '추기경의 초상', 티치아노의 '다나에', 엘 그레코의 '삼위일체',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 고야의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들'와 '마드리드 1808년 5월 2일'과 '5월 3일',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마하' 시리즈 등에 대해 설명한다.(고야의 생애와 작품은 지난 번 공부모임 때 다룬 적이 있어서 그런지 저자의 주장대로 쉽고 빠르게 이해했다....^^) 
   
저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발기인과 회장, 그리고 1992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까지 역임한 분이기 때문에 서양 미술을 감상하는데 있어 일반적인 미술전문가와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감상한 후 저자는 "그림 앞에 서면, 나는 4.19, 5.18, 6.10 등 총탄이 난무하고 최루탄 연기 자욱한 거리에서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치달았던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상기하며 그날의 감격과 비탄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p.82)라고 썼다. 



피렌체의 피뇨리나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등의 조각품을 감상한 후 저자는 "따지고 보면 이 광장에 있는 조각상들은 사람의 머리를 자르거나 여인을 약탈하는 등 하나같이 혐오스러운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훌륭한 공간에 사랑과 평화를 주제로 한 조각상을 세우지 못하는 서양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호전적이고 잔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p.255)라고 썼다.



또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을 감상한 후 저자는 "평등주의자였던 벨라스케스와 자유주의자였던 고야는 모두 시대를 앞서간 민주화 운동의 선각자들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서둘러 프라도를 빠져나왔다."(p.370)라고 썼다.



저자가 책의 부제를 '유럽미술관 산책'이라고 달아놓고 이와 어울리지 않는 미술관을 다루고 있는데 바로 일본국립서양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는 19세기 중엽 사실주의에서부터 20세기 초 프랑스 근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에 속하는 작품 365점이 전시되어 있다. 아마도 같은 동양의 국가이면서 미술작품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기 위해서일 것이라 추측한다. 마스카타의 미술작품에 대한 수집 및 유증, 일본인들의 미술품에 대한 열정 등이 부러웠던 것일까?
 
저자는 애정과 학식을 가지고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해설을 하면서도 현학적인 표현이나 전문적인 용어는 삼가고 대신 다양한 주제와 솔깃한 이야기들로 독자의 귀를 만족시키고 동시에 180컷에 달하는 도판으로 눈까지 즐겁게 해준다. 물론 '무엇을 그린 걸까', '어떤 화가였을까', '어떤 시대였을까', '어떻게 그린 걸까',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시선' 등 미술감상의 기본적인 덕목도 두루 갖추고 있다.
 
"삶을 아름답게 살고자 한다면, 아름다움을 찾아나서야 한다. 정성을 다해 갈구하고 준비하고 기억하는 사람에게 비로소 깊고 섬세한 아름다운 세계가 열린다." (강금실 변호사, 전 법무부 장관) "나는 최 변호사님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가 얼마나 예술에 깊이 심취하는지 목격하였다. 그가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낯설었던 예술이 이 한 권의 책을 통하여 가까이 다가온다." (박원순 변호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영도 변호사의 유럽 미술관 기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명언을 새삼 실감케 하지만, 동시에 아는 일과 보는 일 모두 애호의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일깨워준다." (백낙청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저자가 일찍이 [토기 사랑 한평생]과, [참 듣기 좋은 소리]를 냈을 때, 그 지은이를 동명이인으로 알던 사람이 많았다. 험난한 시대를 인권운동, 시민운동, 변호활동으로 벅차게 살아온 그가 우리 토기문화와 클래식 음악의 영역을 두루 섭렵한 것도 놀라운데, 이번에는 유럽 미술관 순례기까지 상재(上梓)하였으니, 나 같은 예술 문외한으로서는 부럽다 못해 배가 아프다. 꾸준한 탐구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한승헌 변호사, 전 감사원장) 
모두 이 책에 대해 추천서를 쓴 분들의 글이다. 나는 추천자들의 말처럼 저자의 열정과 노력, 탐구정신과 더불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저자의 인생관과 각오, '시간의 만들어 내는' 정신적 여유, 그리고 실행의 경제적 토대도 부럽다...ㅎ
 
저자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미술작품에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을까? 내가 직접 노력해보지도 실천해보지도 않아 무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읽고나서 그의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고야에 대한 책 [고야]와 [고야, 영혼의 거울]을 읽은 후에 고야의 작품을 대할 때 아무래도 작품 자체와 작품과 관련한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 등을 알았던 것이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 또는 '감동'은 별개였다. 인간에게 이성과 감정이 따로 존재하고 머리와 가슴이 따로 느끼고 인식하듯이...
 
저자의 말이 맞다면 저자 만큼 나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 대한 전후 관계와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와 미술사 등 전반적으로 '아는' 내용을 풍부하게 한 후 저자처럼 하나의 작품에 많은 시간을 들여 때론 작품 자체의 느낌을, 때로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작품의 느낌을, 때로는 화가의 생애 속에서 작품을 오랜 시간, 여러 번에 걸쳐 접하면 조금 감동이 일으켜지려나??? 
 
(어제 공부모임에서는 이 책의 저자인 최영도 선생님이 직접 참석하시어 책에 대한 설명과 유럽 미술관 기행 뿐 아니라 그 이외에 세계문화유산 기행 등에 나섰던 자신의 경험과 미술작품 이해에 대한 고견을 들려주셨다. 세미나를 진행하고 보니 최 선생님은 미술 뿐 아니라 음악과 영화, 토기 등 다방면에 엄청난 수준을 쌓은 분이신 것 같다.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품을 직접 '소장'해야 함을 강조하시기도 했다. 쩝... 나 같은 사람은 생각하기도 어렵고 능력도 되지 않는 꿈같은...^^)
 
[ 2011년 8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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