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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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편력'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을 읽는다는 것도 별다른 경험일 것이다. 보통 인간의 성장 과정 중에서 소위 '청소년기'가 그 사람의 세계관의 틀이 현성되는데 있어 상당 부분 기여한다고 보았을 때, 청소년기의 독서와 인생 경험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보통의 삶'에서 벗어난 인생의 궤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재일동포 2세(또는 3세)라는 것만 가지고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에 더하여 그의 형 두 명이 모두 1971년 재일동포로서 한국에 유학을 왔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되어 장기간 옥고를 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전체 재일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평범한 '재일동포'일 수도 있고 두 형이 한국에서 옥고를 치른 '양심수'의 동생일 수도 있다.(한국 내에서는 그의 둘째 형인 서준식씨가 인권운동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관계'와 더불어 그 역시 문학가이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부터 수 많은 시와 소설, 수필과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던 과정이 있었기에 그는 일본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고 현재는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책으로 '에세이스트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생각해 보아도 일반인들 중에서 소년과 학생 시절 저자만큼 많은 독서량(독서의 질을 고려하지 않더라도)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체가 흔치 않다.
그의 현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 그 과정의 결과로서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즉, 이 책은 '재일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사회적 정체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형성해온 과정을 소년 시절 읽은 책들에 대한 사색 및 비평과 함께 기록한 글이다.
밖에서 친구들과 뛰노는 일보다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서경식은 어린시절 책을 읽기 위해 꾀병을 부리고 학교를 빠질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고작 초등학교 3~4학년인 열 살 나이에 “아내의 죽음이라는 구슬픈 사건”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가는 '데라다 도라히코'의 에세이를 읽고 불가사의한 매력을 느꼈던 이 조숙한 소년은 독서를 통해 유년기 성장의 자양분을 얻는다.
데라다 도라히코에서 '프란츠 파농'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10년에 걸친 독서 편력 기간은, 그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기간과 정확히 중첩된다. 그렇듯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은 성장의 기간 내내 존재를 짓누르는 무거운 틀이었다. 그것은 때로 남과 조금 다르다는 막연한 불행감으로, 소외감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서경식 고유의 성찰적인 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그의 독특한 정체성에서 비롯한다. 그의 글쓰기에서 우리는 일상의 균열, 곧 한국사회와 일본사회의 허위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따뜻한 감성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서준식씨의 책과 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내가 서준식의 동생 서경식씨의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후배가 이 책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선물로 받았을 때 '서경식'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단지 책이 '독서를 통한 영혼 성장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호기심 때문에 읽었다.
물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의 성장배경과 환경, 가족사, 재일동포 소년의 삶과 갈등, 독서에 대한 비평 등에 줄곧 이끌려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 서경식은 누구인가? ------------------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오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쎄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시대에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
 
 
책은 성장기의 생각과 고민을 대변하는 작품 12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저자에게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색을 갖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통찰하는 법도 가르치고 인생과 자연을 느끼고 배우고 돌아보도록 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주요 작품은 데라다 도라히코의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 엘리자베스 루이스의 『양쯔 강 소년』,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 요시카와 에이지의『삼국지』, 다자이 오사무의 「추억」, ‘현대시인전집’ ,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허남기의 『조선의 겨울이야기』, 김소운의 『조선시집』,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등이다.
 
저자가 특별히 책의 목차에 내놓은 것들 중에서 초등학교 이후 내가 읽은 것이라고는 [삼국지]와 루쉰의 [고향] 정도다. 저자가 재일동포로서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읽었던 일본 내 문학작품의 수준에 해당하는 한국 문인들의 작품도 일부 읽었을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읽었던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던 책 중에서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 안델센 동화집, [죄와 벌]과 같은 세계문학전집 몇 권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어린 시절 저자와 달리 '운동'이나 '놀기'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책에 그렇게 많은 흥미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데라다 도라히코의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 저자는 이 책을 '내 독서 인생 최초의 책다운 책'이라고 소개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아이가 도토리를 주우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아내의 운명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장면을 통해 저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문장의 유려한 흐름과 좋은 어조가 전해주는 율동감의 매력을 처음 경험했다고 말한다.
- 엘리자베스 루이스의『양쯔 강 소년』, 니콜라이 바이코프의『위대한 왕』 에리히 케스트너의『하늘을 나는 교실』:『양쯔 강 소년』은 저자가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 앉아 늘 책을 읽던 습관을 벗어나게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저자는『위대한 왕』에 푹 빠져 지내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이코프가 묘사한 동물 대 동물, 인간 대 동물의 무자비하고도 타협 없는 투쟁 속에 '아이들의 허구를 넘어서는 리얼리티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교실』은 저자에게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문맹이었기에 그것을 잘 아는 저자는 학창시절 급식비를 내지 못하여 선생이 어머니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그는 어머니가 문맹이라고 말을 못하고 '집안 형편이 어렵다'라고 울면서 답한 적이 있었고 장사를 하는 아버지의 직업 특성 때문에 자신의 집안의 사정이 들쑥날쑥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저자가 『위대한 왕』에서 가장 마음이 끌렸던 글은 '제2서문' 이었다. 케스트너는 서문에서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만 만들면서 아이들을 기만하고 재미로 아이들 정신을 흘리려 애쓰는 아동서 작가들에게 분개했다고 한다. 저자는 말미에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p.85)
- 요시카와 에이지의『삼국지』: 저자는 자신의 둘째 형 서준식의 『삼국지』에 대한 암기와 이해, 놀이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둘째 형은 어린 저자에게 '천하삼분지계'나 '읍참마속' 같은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거나 소설 속의 명장면을 이야기하며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동네 꼬마 녀석들과 전쟁놀이를 할라치면 삼국지의 배역을 나누면서 놀았다고 한다.
저자가『삼국지』에서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조조의 장남 조비가 동생 조식을 제거하려 할 때 조비가 읊은 '칠보시'였다. '콩을 삶으려 콩깍지를 태우니, / 가마솥 안 콩은 소리없이 눈물 흘리네 / 본디 한 뿌리에서 자라났건만 / 무슨 이유로 이리도 다급하게 서로 볶아대는고'... (p.100)
- 다자이 오사무의「추억」: 저자는 그 전까지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다가 중학교 입학을 계기로 성(姓)만은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는 4.19 운동이, 일본에서는 '북조선귀국운동'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저자는「추억」속의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작품은 '위태로울 정도로 예민해져가는 소년기의 자의식과 불균형한 자기애의 양상'을 능숙하게 그려내고 있었다.(p.121)
- ‘현대시인전집’ : 이 시집은 저자가 '시'와 '시집'에 대해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되었고 저자가 시를 지어 노트에 남기는 것을 시도하도록 유도하기 했다. 시집 속의 여러 일본 시인들의 시를 접하면서 저자는 조금씩 스스로가 어른으로, 남자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 토마스 만의『마의 산』: 이 책은 저자가 중학생 시절 난생 처음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던 시기에 상대 이성에게 호기를 부리면서 읽었다고 자랑했다가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끝내 읽지 못한 책'이 되었다.(저자는 이 책을 발간할 때까지도 결국 이 책을 읽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사춘기 콤플렉스의 상징이요 끝까지 등정할 수 없었던, 영원한 미답의 봉우리같은 존재'라고 부른다.(p.163)
- 루쉰의『고향』: 저자는 이미 중학생 시절에 루쉰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루쉰은 저자가 오랫동안 기대고 의지했던 작가였다. 아마도 그것은 루쉰의 소설과 루쉰의 글들이 동아시아라는 비슷한 지역에서 가까운 '동시대'의 아픔과 희망, 지식인의 선함과 올바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아Q정전]과 『고향』에서 희망을 읽었다.
- 허남기의『조선의 겨울이야기』, 김소운의『조선시집』: 저자는 지금도 한글을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그는 스스로 '모국어상실자'라고 자조한다. 두 권의 조선 시집은 저자가 중학생 시절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다. 한글과 한국어는 저자에게 있어 '한국인(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지만 그 상징이자 중심인 말과 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한다.
- 프란츠 파농의『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저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파농의 '저작집'을 읽었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작은 형으로부터 '조선을 위해서는 건축가나 토목기사가 되라'라고 지적당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실제 파농이 그 작품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달랐다.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p.226)
 
 
책을 읽고난 다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나의 "재일동포에 대한 무관심"이었고 그로 인한 죄스러움이었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나 위안부 사건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음에도 내 머리 속에서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그동안 재일동포라는 단어는 내게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조선인 차별'과 '지문날인'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찾아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그 피해자들이자 재일동포였던 서승씨와 서준식씨에 대해서도, 그들이 발간한 책도 찾이 않았다.
굳이 민족적, 동포적 관심과 애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그동안 서유럽 민중에 대한 관심, 근대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관심, 인도네시아 쓰나미로 희생당한 아체인들에 대한 관심, 전세계 곳곳에서 '매춘산업'에 희생당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니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비슷하게 인간적인 삶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재일동포에 대한 관심도 일어났어야 했다.
다행하게도 더 늦지 않은 시기에 이 책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삶과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이 책을 선물해 준 후배가 새삼 다시 고마워졌다.
 
이 책은 저자의 성장의 중요한 대목, 인상적인 장면마다 그 시절에 읽은 책의 기억이 오버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 서경식의 영혼의 성장기이다. 자기 앞에 놓인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책읽기의 의미를 깨쳐가는 과정, 유년기의 고통과 슬픔, 생에 대한 불안한 매혹의 순간들이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게 되으면서 나 역시 나에게 있어 독서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 성장사를 되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한참 자라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책'과 '독서'에 대해 여러가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과 책 읽기'의 중요성이다. 아니 가정 내에서, 가족 관계에서 '책읽는 문화'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가 재일동포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 어려운 일본 사회 내에서 도쿄 지역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것도, 그 까다로운 일본 문학계의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 중의 하나가 성장기에 늘 가까이 했던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독서는 우리 아이들, 청소년들의 영혼이 성장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아이들의 독서가 '영혼의 성장'이 아닌 '성적을 위한 도구'로 자리잡게 되면 아이들은 책을 멀리할 수 밖에 없고 '편법'이나 '요행'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진실로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부모로서 무책임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린 시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들이 가정의 경제사정이나 문화와 상관없이 '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대하게 대했다는 것과 위의 형 둘이 먼저 책과 가까이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항상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들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거나 주입하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인터넷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여러가지 정보를 통해 아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정도만 역할을 해도 될 것이다. 아이들은 책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찾아 나가고 배우고 깨닫고 느끼게 된다. 절대 '돈'으로 아이들의 영혼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으로 '돈'은 아이들에게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 내에서 일상적으로 책을 가까이 하는 문화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엄마와 아빠가 늘 책과 가까이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이들은 저절로 책과 친해질 수 있다. 아이들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과 책 속의 세계를 공유하기도 한다. 물론, 부모라 해서 책과 멀어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한국사회의 독서 통계를 보면 부모 세대의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모들이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늘 공부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 자신들에게도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이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TV 앞에 앉아 드라마나 연예프로그램을 보면서 넋이 나가 있으면 아이들 역시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모들이여... 지금이라도 집에서 TV를 꺼버리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기를....
 
[ 2011년 8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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