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 8월 초에 대학 몇 년 선배(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으니 선배라 칭하기는 뭐하지만...)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에 '희망버스는 희망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그룹 멤버들의 찬반 논란이 거세졌고 나 역시 며칠 동안 페이스북에 집중하여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에 50% 이상 동의할 수 없었고 일부 동의할 수 있는 주장 역시도 그런 문제를 제기할 시기나 방식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논란이 거세지던 와중에 페이스북에서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주장을 기사로 다루어주겠다는 중앙일보 기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명세를 탔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그 사람의 글에 반응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그룹 멤버들을 초대하여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하면서 나에게도 직접 참석할 것을 요청한 것도 거부하였다. 그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주류언론에 '등장'하고 싶어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변 친구들을 만나다보니 많은 친구들은 그룹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살펴보고 그냥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댓글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 그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학벌로 이야기되는 대학을 나왔고 10년이 넘는 청춘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친 바 있다.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대학에 재입학한 후 졸업하여 대우자동차에 근무하였고 이후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를 차리기도 했다. 책도 몇 권 펴냈으나 별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고 최근에는 동년배들과 모임을 갖고 자신의 주장과 이론을 알리는데 애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책 [안티조선운동사]를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7월 중순이지만 당시에는 공부모임에서 책의 분량이 많아 2부까지만 세미나의 대상이었고 이번 달에 나머지를 토론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주에 3부~6부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나머지 부분을 읽는 동안 지나간 페이스북을 통한 경험과 의문이 계속 머리 속에서 오버랩되었다. 
나는 왜 본능적으로 '조중동'을 싫어할까? 지금 시대에 지식인이 자신의 의견을 '조중동'에 표현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언론은 산업인가 아니면 사회적 기능인가?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과점상태를 이룬 '조중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란 무엇인가? 언론이 사회적인 주장의 '공론화'장이라고 하면 언론이 국민들과 소비자에게 부여받은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가? 사적 소유와 사회적 책임에서 언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21세기 언론의 새로운 기능과 책임은 어떻게 변화되었나? 현실에서의 언론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 끝없는 의문과 질문이 계속될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10년 동안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사회를 달군 화두 중 하나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운동에 참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 또한 구체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하여 활동하거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동의하여 언젠가부터 조선일보 구독을 끊었다.
또한 안티조선 운동은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언론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주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그 이외에도 '안티조선 운동'은 이 사회에 많은 것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시작을 15년 전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10년 전이라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안티조선 운동을 과거로 기억하고 다른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 이야기한다.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직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안티조선 운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들이 벌인 '조선일보' 반대 운동이다.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인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행위에는 우리 언론의 어떤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운동인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이, 그리고 [조선일보]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히 언론 운동에 그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언론 환경의 변화로 언론 권력이 분산됐지만 과거, 언론 권력이 몇몇 언론사에 집중됐을 당시에는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따라서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운동임과 동시에 정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 * 한윤형은 누구인가?
대구에서 출생했으나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 진중권과 강준만의 책을 읽으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인터넷에 접속했고 1999년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의 원년 맴버가 되었다. 서울대와 조선일보 주최의 논술경시대회를 나갔다가 대상을 받았고 당시 안타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글을 발표하고 있다. 공저로는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2008)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가 있고, 단독 저서로는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텍스트, 2009)가 있다. -----
 
 
이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담았다. 더불어 저자는 이 운동의 참여자로서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최초로 평가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과 전개, 절정의 과정은 물론이고 안티조선 운동 이전의 언론사와 언론 운동사를 살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총 6부로 구성됐다.
 
1부 ‘맥락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예비 학습’은 1920년부터 1998년까지의 한국 언론사를 간추렸다. 한국의 언론사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친일과 친미, 기득권의 세대세습으로 이어져왔다. 그 중심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고...
2부 ‘안티조선 운동의 탄생’은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의 상황을 다뤘다. 1995년 강준만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는 안티조선 운동의 맹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9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의도와 사실조작으로 '최장집 교수 사건'을 기획,실행했고 이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안티조선 운동'이 전면에 등장한다.
3부 ‘안티조선 운동의 성장’은 2000년부터 2001년까지의 사건들을 묘사하고 그 맥락과 의미를 짚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와 국민의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옥천전투' 등 안티조선 운동은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이문열의 '홍위병 논란' 등 수구기득권 세력의 도전도 만만치 않게 일어난다. 언론환경의 변화와 세무조사는 그동안 조금씩 달랐던 조중동이 하나의 기득권 집단이자 수구세력으로 결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4부 ‘혼란에 빠진 안티조선 운동’은 안티조선 운동에서 특별히 중요한 해라 할 수 있는 2002년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가 늘어나고 자체가 국민의 정부의 실정과 2002년 대선을 앞두면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조중동과 진보언론의 전쟁이 벌어지고 '언론'이란 세계는 과도한 당파성으로 얼룩진다. 안티조선 운동과 노무현 후보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점점 가까워졌다.
5부 ‘관성에 젖은 안티조선 운동’은 2003년에서 2007년까지의 안티조선 운동 진영의 문제점과 당시 참여정부의 문제점 등을 살폈다. 참여정부의 실정과 여러 세력과의 갈등을 맞이하여 또 다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을 거듭하고 조중동은 이를 틈타 역습을 가한다.
6부 ‘안티조선, 그 이후’는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언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촛불시위를 통해 안티조선의 정신은 다시 다른 주체로 부활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언론환경은 또 다시 변화하고 언론 운동은 기존 과제와 더불어 새로운 과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사를 좇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인 셈이다.




< 책에 대한 평가 >
이 책은 직접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저자의 체험담이자 사실관계를 토대로 10~15년간 한국의 언론개혁운동을 서술했다. 
저자는 직업 저술가도 아님에도, 그리고 젊은 나이라고 하기에는 독자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언론의 흐름을 책 속에 담아냈다. '안티조선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언론운동사만 다룬 것이 아니다. 언론운동사에 필요한 일제시대 친일 언론의 사실과 행태, 해방전후사에 대한 인식, 개별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자료들을 책 속에 담아내는 것을 보면 저자의 열정과 실력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사회적 배경, 언론 환경의 배경 속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탄생하고 어떤 계기와 과정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이 탄생했는지 독자들이 충분히 수긍이 갈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리고 초창기 '안티조선 운동'에서 강준만교수의 빼어난 역할과 기여를 밝혀냈다. (그는 스스로 강준만 교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쪽까지 읽은 후 덮고 나면 '안티조선 운동'의 10년 넘는 과정이 파노로마처럼 눈 앞에 펼쳐질 정도로 '안티조선 운동'을 정확하게 다루었다.
뿐 만 아니라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주도세력의 입장과 주장 뿐 아니라 '안티조선 운동'을 거쳐간 수 많은 개인과 단체, 정치권, 세력의 흐름과 주장까지 객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는 박정희 추종론자와 한총련, 민주당 지지자들과 노사모, 유시민과 최문순, 김대중과 노무현, 진중권과 변희재, 언론운동단체, 각 언론사까지 포함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저자가 '안티조선 운동'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평가하는데 있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만이 최선이고 그들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시민들의 의식과 언론의 모습, 각 개인과 집단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1995년에서1999년까지 이어진 기간 속에서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탄생하는 배경과 과정, 참여하는 주체와 구조, 그리고 그들의 운동과정은 '안티조선 운동'의 긍정적인 성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안티조선 운동'은 자연스럽게 운동의 상대인 조선일보와 다른 주류 언론사, 그리고 진보언론과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와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태동했던 '안티조선 운동'은 그 탄생 배경, 논리와 유사했던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면서 급격하게 대중화 되었고 스스로의 한계 속에서 참여정부의 프레임에 발목이 묶여 참여정부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갔다. 그래서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한 저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한 공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2009년 정권의 친위대를 자처했던 검찰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 과정을 통해 언론 운동이 다시 부활하고 그동안 일방적으로 폄하되었던 노무현 대통령 개인과 참여정부의 성과는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재평가의 분위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IMF 이후 사회적 양극화와 노동자, 농민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개선되지 않았다. 두 민주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구기득권 세력의 여론 호도와는 달리 사실 10년 기간 동안 수구기득권 세력과 자본가들의 이익과 권력은 늘어났지만 그 반대편에 존재하던 노동자, 농민, 빈민, 비정규직, 청년, 여성, 아동, 노인들의 권리와 이익은 줄어들었다. 특히 수구기득권 세력과 부패관료, 삼성에 가로막힌 참여정부의 경우 '때 이른 4대 개혁입법'과 한미 FTA 추진 등 실정이 만만치 않았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서술했지만, 그 속에서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 극우/보수/진보를 떠나 한국의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 진보언론의 필요성과 성장 조건에 대한 지적, 언론개혁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고민, 사회적 의견을 담아내는 '공론화'의 장으로서의 다양한 언론의 역할과 관계, 주권자로서의 국민과 소비자로서의 시민의 책임과 역할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하게 조선일보를 반대하고 없애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언론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노력인 것이고 그렇다면 단순히 조선일보만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야만적 극우선동집단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는 '조중동'을 한꺼번에 바라보아야 하고 소위 진보언론에서 나타나는문제점 역시 무시하거나 눈감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문 뿐 아니라 방송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를 모두 포함한 언론매체 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의 소비자이자 주권자인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은 한국 정치계, 관료와 교육부문에서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다른 분야에서의 그것과 비슷한 맥락을 보여주고 있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결국 저자가 1부에서 '예비 학습'으로 서술한 '해방전후사'의 언론의 모습은 한국사회 각 부분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나고 있고 현재의 수준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한 해방, 동족상잔의 비극, 남북의 이념 대결, 친일세력에서 친미세력으로의 지배세력 교체, 독재와 군사정권의 체제 장악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전과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뿐 아니라 언론 속에서도 그대로 녹아들었고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분야에서 '해방전후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민적 운동의 하나일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이기도 한 저자 한윤형은 과감히 안티조선 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던 그 지점에서 새로움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안티조선 운동사]를 통해 지금, 안티조선 운동을 다시금 돌아보며 기록한 이유는 바로 새로운 꿈을 꾸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독자들에게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며 한국 언론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꿈꾸게 해줄 수 있다.
 
저자는 상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사실 책을 모두 읽고나면 가장 명확한 결과가 하나 도출된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주인이자 언론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시민들이 어떻게 언론을 소비하고 언론운동에 참여하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여 '국민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이고 대통령과 정치인, 언론의 수준'인 것이다.
저자는 실천적인 과제도 몇 가지 제시한다. 진보언론에 대한 적극적 유료 구독과 주간지에 대한 유료구독, 진보언론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질책, 그리고 조중동과 방송 등 제 언론과 관련 제도에 대한 감시와 참여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기존 언론 이외에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소비자이고 국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자가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다하게 되면 어느 사회의 어느 집단도 국민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얻은 것들도 많다.
하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한국 언론의 지형과 역사, 언론의 환경과 구조, 언론운동의 흐름과 과제 등에 대해 많은 정보와 시사점을 얻었다. 이것 만으로도 책 값은 뽑은 셈이다.
둘. 강준만 교수와 진중권 교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에 의존하여 두 사람을 받아들였고 스스로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두 분의 가치와 실력, 주장과 논리를 접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셋.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각각에 대해서 그동안의 그들의 행위와 과정을 통해 각 수구언론의 정체에 대해 내 나름대로 개념과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넷. 한국의 인터넷 소통문화가 초기에 비해 훨씬 '집단극화'와 '사이버 발칸화'의 특징을 보였다는 설명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이는 포탈이나 카페 뿐 아니라 나아가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비슷한 정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고민은 '공론화'에 대한 장기적인 과제를 심각하게 생각토록 만든다.
다섯.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대중적인 세력과 '노사모'의 연결 가능성,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각과의 공통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여섯. 참여정부와 삼성의 '커넥션'에 대해 한 번 더 심증을 굳혔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참모진이 내뱉은 여러 가지 발언은 심증을 넘어서 물증까지 가능한 정도다.
일곱. 개혁당에 대한 유시민씨의 배신, 그동안의 발언과 달리 '당내 민주주의'와 '진성당원체제'에 대한 유시민씨의 이중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시민씨는 앞으로도 오랜 동안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보다 더 오래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저자의 글 중 비판적으로 검토한 부분
- (p.52) 저자는 1970년대 '언론자유 수호'를 외치다가 박정희 정권과 언론사주에 의해 ?겨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를 평가하면서 "그들이 제도권 내부에서 계속 투쟁할 수 있었다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훨씬 더 성숙하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시의 좀 더 구체적인 신문사 상황과 조선투위와 동아투위 주체들 입장에 처하게 되면 이런 가정법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구조 전체를 고려해보고 1988년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대안 언론' 탄생을 되돌아볼 때 역으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가 없었다면 관제언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언론 운동 및 '대안언론' 추진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8장 '한총련의 귀환' (p.152~163) 사실 저자도 그렇고 나고 그렇고 2000년을 전후하여 한총련이 검찰의 공소장대로 '북한의 통일전선' 지침에 추종하여 학생운동을 전개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 한총련이... (중략)... 이미 참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한총련의 불법행위나 북한추종의 이유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이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수구언론 조중동의 사실 왜곡과 극우적 주장을 비판하면서 국가기관의 '주장'을 토대로 학생운동 단체가 반역자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고 생각한다.


* 안티조선 운동의 구조와 연표









 

[ 2011년 8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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