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 유럽 미술관 산책
최영도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있어서 '미술'은 언제나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것이었고 어느 봄날 안개 속에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던 장면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어린 시절 운동장 바닥에, 담벼락에, 도화지에, 그리고 심지어 손바닥에도 이런 저런 그림과 기호를 그리곤 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수 십 만년 전에 존재했던 인류의 조상부터 시작된 것이고 우리의 아들, 딸과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계속될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의 딸아이는 돌이 지나고 나서 볼펜이나 크레파스 등 손에 잡히는 것마다 들고서 방바닥이나 벽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나는 아이가 어디에 어떤 것으로 낙서를 하거나 그림같은 것을 그리더라도 방해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의 나도, 10대에 접어든 아이도 여전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트나 메모지, 신문지 등에 낙서를 하거나 특별한 의미는 없는 그림을 그리곤 한다. 미술의 범주를 크게 잡는다면 이런 일반적인 '끄적거림'도 미술의 영역에 포함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평생 '미술'을 생활처럼 하다가 한 줌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미술'은 언젠가부터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고 만다.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미술'시간이란 것이 교과과정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선생들은 어떤 정형화된 그림과 '화가'라는 개념과 직업(전문)가의 그림만이 진정한 '미술', '예술'인 것처럼 교육하고 우리는 '미술'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 또는 선입관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미술'의 범주는 자기자신,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게 되고 '미술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미술가'의 그림만이 '예술'인 것처럼 사회적 의식이 조성되었다. 엄밀하고 이론적으로 따져보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과정은 이반 일리히가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에서 이야기한 '가치이 제도화'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을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언어 실력, 수학 실력, 기억력, 시력과 마찬가지로 '미술' 또는 '미술품'에 대한 공감과 감동하는 수준도 긴 스펙트럼의 연속선상에서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언어 구사력이 아주 뛰어난 수준부터 아주 모자란 수준의 연속선 상에서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이고 미술 감상력 역시 아주 민감한 수준에서 둔감한 수준 사이의 어디엔가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나 노력 없이 타고난다거나 유전적으로 그 수준이 결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최영도 선생의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미술' 작품에 대한 지식과 감상 실력에 무슨 거창한 이론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고른 원초적인 이유는 어제 진행한 공부모임의 교재였기 때문이l다..ㅋ
 
"사람들은 왜 미술품에 매혹되는가? 그 속에 자연과 역사, 예술과 문화, 종교와 철학, 이상과 현실이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_최영도

나 역시 작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랬지만,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유럽의 미술관들을 한 번쯤 가보기를 꿈꾼다. 그런데 부푼 기대로 막상 그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작품들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제대로 감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전시장 길이만 약 20km에 소장품만 37만여 점이라고 하니, 무턱대고 가면 어디부터 봐야할지 막막할 수 밖에 없다. 

런던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직접 가보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각 전시실에 어떤 작품, 누구의 작품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 ?어보면서 감상하는 동안 눈 깜짝 할 사이에 오후 반나절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미리 감상할 작품을 고르지 않은 채 무작정 박물관, 미술관에 가게 되면 후회할 수 밖에 없음을 실감했던 것이다.(영국박물관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관'이라는 전시실이 박물관의 가장 구석에 위치해 있고 그마저도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전시품이 거의 없이 피상적인 수준의 전시품만 쓸쓸하고 초라하게 놓여져 있다는 느낌이다. 실제 관람객도 '중국관'이나 '일본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저자는 "수천 점씩 전시되어 있는 큰 미술관에서 다 보려고 욕심을 냈다가는 미술관을 나올 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서 미술감상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풍부한 교양과 열정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작품을 꼼꼼히 선정한 후 미술관으로 향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그는 루브르 19점, 오르세 20점, 피티 8점, 우피치 16점, 프라도 16점만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 * 최영도는 누구인가?
193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65년 판사에 임관되고, 1973년 유신정권 시절 법관재임명이 거부되어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군사정권 하에서 시국사건들을 변론하고, 정의실천 법조인회(정법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발기인이 되었다. 1992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1996년 민변 회장 및 인권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1999년 한국인권재단 이사로 인권운동을 하였으며, 2002년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되어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저자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남다른 조예를 갖고 있는데, 이를 보여주듯 열정어린 저술 활동도 해왔다. [토기 사랑 한평생](2005, 학고재)은 토기에 대한 평생의 애정이 담긴 그의 반평생의 체취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는 다른 컬렉터와 달리 토기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수집했고, 이렇게 모은 토기 1,580점을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세간을 놀라게 했다. [참 듣기 좋은 소리](2007, 학고재)는 클래식에 취해 살아온 마니아의 50년 음악감상기이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답사기인 [앙코르·티벳·돈황](2003. 창비)을 펴내기도 했다. ---------


이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개의 미술관은 각각 일본의 마쓰카타 미술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 마르코탕 미술관, 이탈리라의 피티 미술관과 우피치 미술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다.
 
일본의 마스카타 미술관(국립서양미술관)은 소위 '마스카타 컬렉션'을 일본인들에게 물려준 마스카타 고지로의 이름을 딴 곳이다. 저자는 1910년대 유럽 전역을 돌면서 유럽 유명화가들의 미술작품을 사들인 카와사키조선소 사장 마스카타 고지로의 '미술품 수집과 그 이후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마스카타 미술관에는 로댕, 밀레, 쿠르베, 피사로, 마네, 드가, 모네, 르누와르, 세잔, 시슬리, 반고흐 등의 회화 수 백점과 로댕, 부르뎅, 마이욜의 조각 수 십점이 보관되어 있다. 
저자는 작품 중에서 로댕의 조각 '지옥의 문', 몰리리아니의 '앉아있는 잔 에뷔테른', 르느와르의 '알제리아 풍의 파리 여인들', 반 고흐의 '붓꽃', 피카소의 '곡예사와 어린 알레퀸'을 소개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런던의 영국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스 미술관, 러시아 생트페테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박물관 중 하나라고 한다. 1998년에만 년간 690만 명이 관람했다. 하지만 루브르의 소장품은 런던의 영국박물관과 더불어 그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나 약소국가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이기 때문에 감동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프랑스와 영국은 피해 당사국들의 반환 요구를 계속 묵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올해 초에 조선시대 문화재 '외규장각 조선왕조 귀례'를 정식으로 반환하지 않고 '대여'한 사실이 있어 한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일이 있다.
아무튼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 카르통의 '아비뇽의 피에타', 루벤스의 '마리드 메디시스의 초상'과 '마리 드 메디시스의 마르세유 상륙', 라 투르의 '목수 성 요셉'과 '작은 등불 앞의 마들렌',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출발', 조각상 '사코트라케의 니케',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을 소개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의 퐁피두 대통령이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당시 철도역사로 건축하여 사용하다가 1939년부터 폐역으로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1973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고 미술관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하여 탄생한 곳이다. 이 미술관에는 근대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상징주의 미술작품 위주로 전시되고 있다.
이곳에서 저자는 앵그르의 '샘',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드가의 '무대 위의 무희',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칼레트의 무도회',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등에 대해 감상평을 남겼다. 그리고 각 화가의 미술작품의 양식과 특징, 화가들의 생애, 화가들과 작품들 사이의 연관 등에 대해 설명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1827년 개관되었고 저자는 르누와르, 세잔, 드랭, 루소, 피카소, 모딜리아니, 로랑생, 위틀릴로 등 인상파에서 1930년대까지의 근대회화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저자는 모네의 '수련' 작품 수 백점이 전시되어 있는 '수련의 방'에 크게 감동하였다고 설명한다.

마르코탕 미술관은 18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1882년 주식과 석탄광산으로 부자가 된 '쥘 마르모탕'이 매수하여 저택 겸 수집품 보관소로 사용하다가 아들에게 상속었고 아들인 폴이 1932년 저택과 미술품을 박물관 설립을 목적으로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에게 유증하여 1934년 미술관으로 탄생했다고 한다.(이 시점에서 한국 최고의 재벌가인 삼성 이병? 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유럽 부자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 회장과 그의 마누라는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자식에게 상속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데다가 미술품을 '뇌물' 용으로 수집하여 사용하고 있으니 같은 국가와 민족의 일원으로 참으로 한심하고 수치스러운 현실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모네의 '인상, 해돋이', 모리조의 '부지발 정원의 외젠 마네와 그의 딸'을 가장 감명깊게 감상했음을 이야기하면서 마네, 모네, 그리고 모리조의 인생 이야기와 작품 활동에 대해 설명한다.

피티 미술관은 15세기에 필리포 브루넬리스키가 피렌체에서 가장 화려한 궁을 건축하다가 실패하고 이후 코지모 1세 데 메디치의 대공비 엘레오노라가 16세기에 이를 매수하여 완성시켰다. 미술관은 피티 궁 안에 있는 팔라티나 미술관을 비롯하여 7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곳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은 라파엘로의 작품인 '작은 의자 위의 성모'와 '포르나리아', '시스타나의 성모'와 '아테네 학당', 티치아노의 작품인 '연주'와 '라 벨라', 루벤스의 '전쟁의 참화', 반 다이크의 '추기경 귀도 벤티볼리오' 등에 대해 설명하고 피렌체의 시뇨리아 과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등 걸작 조각품들을 소개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저자는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설명하고 보티첼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까지 이야기했다. 이어 조토의 '장엄한 성모', 마사초의 '성 안나와 성모자', 프라 필라포 리피의 '성모자와 두 천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램브란트의 '자화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자연과학박물관으로 착공한 것을 1819년 페르디난도 7세가 왕립 프라도 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처음 개관했을 때에는 스페인의 신고전주의 작품 일부만 소장되었으나 그 이후 이사벨라 여왕, 카를로스 1세, 펠리페 2세, 펠리페 4세, 카를로스 4세 등 역대 왕들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작품들이 추가되면서 이제는 '세계 최고의 회화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는 이 곳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감동하여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라파엘로의 '추기경의 초상', 티치아노의 '다나에', 엘 그레코의 '삼위일체',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 고야의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들'와 '마드리드 1808년 5월 2일'과 '5월 3일',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마하' 시리즈 등에 대해 설명한다.(고야의 생애와 작품은 지난 번 공부모임 때 다룬 적이 있어서 그런지 저자의 주장대로 쉽고 빠르게 이해했다....^^) 
   
저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발기인과 회장, 그리고 1992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까지 역임한 분이기 때문에 서양 미술을 감상하는데 있어 일반적인 미술전문가와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감상한 후 저자는 "그림 앞에 서면, 나는 4.19, 5.18, 6.10 등 총탄이 난무하고 최루탄 연기 자욱한 거리에서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치달았던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상기하며 그날의 감격과 비탄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p.82)라고 썼다. 



피렌체의 피뇨리나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등의 조각품을 감상한 후 저자는 "따지고 보면 이 광장에 있는 조각상들은 사람의 머리를 자르거나 여인을 약탈하는 등 하나같이 혐오스러운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훌륭한 공간에 사랑과 평화를 주제로 한 조각상을 세우지 못하는 서양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호전적이고 잔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p.255)라고 썼다.



또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을 감상한 후 저자는 "평등주의자였던 벨라스케스와 자유주의자였던 고야는 모두 시대를 앞서간 민주화 운동의 선각자들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서둘러 프라도를 빠져나왔다."(p.370)라고 썼다.



저자가 책의 부제를 '유럽미술관 산책'이라고 달아놓고 이와 어울리지 않는 미술관을 다루고 있는데 바로 일본국립서양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는 19세기 중엽 사실주의에서부터 20세기 초 프랑스 근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에 속하는 작품 365점이 전시되어 있다. 아마도 같은 동양의 국가이면서 미술작품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기 위해서일 것이라 추측한다. 마스카타의 미술작품에 대한 수집 및 유증, 일본인들의 미술품에 대한 열정 등이 부러웠던 것일까?
 
저자는 애정과 학식을 가지고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해설을 하면서도 현학적인 표현이나 전문적인 용어는 삼가고 대신 다양한 주제와 솔깃한 이야기들로 독자의 귀를 만족시키고 동시에 180컷에 달하는 도판으로 눈까지 즐겁게 해준다. 물론 '무엇을 그린 걸까', '어떤 화가였을까', '어떤 시대였을까', '어떻게 그린 걸까',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시선' 등 미술감상의 기본적인 덕목도 두루 갖추고 있다.
 
"삶을 아름답게 살고자 한다면, 아름다움을 찾아나서야 한다. 정성을 다해 갈구하고 준비하고 기억하는 사람에게 비로소 깊고 섬세한 아름다운 세계가 열린다." (강금실 변호사, 전 법무부 장관) "나는 최 변호사님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가 얼마나 예술에 깊이 심취하는지 목격하였다. 그가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낯설었던 예술이 이 한 권의 책을 통하여 가까이 다가온다." (박원순 변호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영도 변호사의 유럽 미술관 기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명언을 새삼 실감케 하지만, 동시에 아는 일과 보는 일 모두 애호의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일깨워준다." (백낙청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저자가 일찍이 [토기 사랑 한평생]과, [참 듣기 좋은 소리]를 냈을 때, 그 지은이를 동명이인으로 알던 사람이 많았다. 험난한 시대를 인권운동, 시민운동, 변호활동으로 벅차게 살아온 그가 우리 토기문화와 클래식 음악의 영역을 두루 섭렵한 것도 놀라운데, 이번에는 유럽 미술관 순례기까지 상재(上梓)하였으니, 나 같은 예술 문외한으로서는 부럽다 못해 배가 아프다. 꾸준한 탐구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한승헌 변호사, 전 감사원장) 
모두 이 책에 대해 추천서를 쓴 분들의 글이다. 나는 추천자들의 말처럼 저자의 열정과 노력, 탐구정신과 더불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저자의 인생관과 각오, '시간의 만들어 내는' 정신적 여유, 그리고 실행의 경제적 토대도 부럽다...ㅎ
 
저자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미술작품에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을까? 내가 직접 노력해보지도 실천해보지도 않아 무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읽고나서 그의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고야에 대한 책 [고야]와 [고야, 영혼의 거울]을 읽은 후에 고야의 작품을 대할 때 아무래도 작품 자체와 작품과 관련한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 등을 알았던 것이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 또는 '감동'은 별개였다. 인간에게 이성과 감정이 따로 존재하고 머리와 가슴이 따로 느끼고 인식하듯이...
 
저자의 말이 맞다면 저자 만큼 나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 대한 전후 관계와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와 미술사 등 전반적으로 '아는' 내용을 풍부하게 한 후 저자처럼 하나의 작품에 많은 시간을 들여 때론 작품 자체의 느낌을, 때로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작품의 느낌을, 때로는 화가의 생애 속에서 작품을 오랜 시간, 여러 번에 걸쳐 접하면 조금 감동이 일으켜지려나??? 
 
(어제 공부모임에서는 이 책의 저자인 최영도 선생님이 직접 참석하시어 책에 대한 설명과 유럽 미술관 기행 뿐 아니라 그 이외에 세계문화유산 기행 등에 나섰던 자신의 경험과 미술작품 이해에 대한 고견을 들려주셨다. 세미나를 진행하고 보니 최 선생님은 미술 뿐 아니라 음악과 영화, 토기 등 다방면에 엄청난 수준을 쌓은 분이신 것 같다.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품을 직접 '소장'해야 함을 강조하시기도 했다. 쩝... 나 같은 사람은 생각하기도 어렵고 능력도 되지 않는 꿈같은...^^)
 
[ 2011년 8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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