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 자폐인의 내면 세계에 관한 모든 것
템플 그랜딘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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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0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면 1911년 조선에서 대다수와 조선사람과 나(21세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중에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일까... 유대인 중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현재의 중국에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2011년 현재 '가카'를 조롱하는 사람이 정상일까 아니면 비정상일까... 정상고 비정상의 기준이 뭘까...

1988년배리 레벤슨 감독의 영화 [레인맨](더스틴 호프만 주연)을 볼 때는 자폐증보다 형제간의 우애에 대해 더 생각했었다. 그 뒤 Cable TV에서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2년작, 러셀 크로우 주연) 보면서 처음 정상인과 비정상인, 정신이상의 기준과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20대 초반에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천재였던 수학자 '존 내쉬'의 생애를 다룬 영화였다.

사람들이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서 '평균' 또는 '중간'이 되고 싶은 것은 사회심리학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전과 더불어 '안정'적인 느낌을 갖고 싶은 것은 모두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평균'에서 벗어나고 '중간' 아래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균에 속한' '중간' 사람들의 태도다. 평균에서 벗어나거나 중간보다 못한 사람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사실 한국사회 뿐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사회에서도 사회적,문화적으로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차별과 배척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현상이고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심리적,문화적 잔재이기도 하고 '동등한 인권'의 과점에서는 '폭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차별의 대상에 따라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가장 근대적이면서도 불법적인 차별은 수십억 횡령을 해도 구속하지 않지만 2억에 대한 의혹만 있어도 구속하는 검찰과 법원의 차별, 재벌과 대기업의 민원은 일사천리로 해결하면서 중소기업의 민원은 '세월아 네월아' 질질 끄는 관료들의 차별,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니면 말고'식으로 기사를 써대지만 사주와 친하거나 재벌/대기업의 부당행위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조중동' 등 정치적,법적인 차별도 있다. 
사회 저변에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면 자신의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중산층 아줌마'의 차별도 있고 자신들의 일거리를 빼앗는다고 외국인 근로자를 바라보면서 눈에 쌍심지를 차별도 있고 명절 때만 되면 뒷짐지고 도망다니는 이 땅의 '남편'들의 차별도 있다.
 
이 책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자폐증'이라는 신체적 장애는 그동안 사회에서 신체적 장애라기 보다 '정신병'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즉, 이 책은 사람들이 누구나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신체적 결함' 중 하나인 '자폐증'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자폐증을 앓았던 사람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자폐증과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빈센트 반 고흐 등은 어린 시절에 발달 장애를 보였다고 한다. 자폐증은 의학적으로 ‘성장 초기에 시작되는 이상’으로 정의되어 있어, 전문가들은 자폐 성향이 있다는 판정을 받으려면 더딘 언어 발달이나 이상한 행동 등의 문제가 어릴 때에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때 아인슈타인은 이런 성향을 많이 보였다. 그는 세 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전세계에 유명인사로 등장한 이후 한 자폐아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자기가 말을 너무 더디게 배워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었다고 썼다. 아인슈타인이 일곱 살까지도 속으로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야 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되어 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천재성이 발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 아무런 천재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를 바보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철자법 실력도 엉망이었고, 외국어도 형편없었다. 자폐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아인슈타인도 조각 그림 퍼즐을 아주 잘했고 몇 시간씩이고 카드로 집을 지으며 놀았다. 목적한 것에 대해서는 외곬이었고, 사생활에 관련된 것 등 흥미 없는 것은 거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폐증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다른 장애와 구분되는 '뇌 이상'이 나타나는 '신경계 장애'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소뇌와 변연계(limbic system)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이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연구자들이 자폐증, 우울증, 불안증, 실독증, 주의력 결핍 장애 등을 포함한 여러 장애를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유전자 뭉치가 존재한다는 가설에 주목한다고 한다.(p.59)
자폐증이 유전되는 경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자폐증 유전자라는 것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다. 자폐인은 자폐아를 낳은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높다. 또 자폐아의 형제자매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습 장애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뇌의 발달이 유전만으로 결정되지는 않기 때문에 확정적인 결론은 없는 상태다. 최근의 연구 사례들은 유아기의 신체 내적, 외적 영향이 뇌와 신경계를 구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다.
 
저자 역시 두 살 때 평생을 보호시설에서 살 것이라고 진단받은 자폐아였다. 하지만 저자는 자폐증을 하나의 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극복했다. 그녀는 뒤에 애리조나 대학에서 동물학 석사와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가축 시설의 3분의 1을 설계했다. 2005년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동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과 전 세계를 순회하며 자폐증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자폐’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떠올릴 것이다. 말은 못 하고, 온몸을 흔들어대며, 소리를 지르고, 대화를 나누는 게 불가능하고, 사람들과의 접촉으로부터 단절된 아이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폐아’라고 하지 ‘자폐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마치 이런 아이들은 영영 자라지 않거나, 이 세상, 이 사회에서 비밀스럽게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아니면 자폐인 ‘사방(savant)’을 떠올린다. 기묘한 버릇에다 반복적 행동을 보이고,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나 영화 <레인 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처럼 계산, 기억력, 그림 그리기 등에 있어 불가사의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폐에 대한 인식은 아주 협소하고 지엽적인 현상에 대한 묘사일 뿐, 자폐인의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것이고, 자폐인의 내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도 아니다.

자폐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반응한다.
모든 자폐인이 그러하지는 않지만, 저자 템플 그랜딘은 그림으로 사고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언어에 기초해 사고하지만 그녀는 모든 언어를 시각적인 연상으로 대체해서 사고하며, 특정 단어에 대한 회화적 연상이 연속적인 화면으로 이어져서 사고하는 것이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언어는 나한테는 외국어와도 같다. 말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 나는 사운드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총천연색 영화로 번역을 해서 머릿속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돌리듯 돌린다. 언어에 기반해서 사고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힘들어하지만, 누군가 나한테 이야기를 하면 그 말도 그 즉시 그림으로 번역된다."(p.17)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영상에서 일반적 개념으로 사고가 이동한다.

이를테면 개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그녀가 본 모든 개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금까지 본 개 전부를 사진 목록으로 만들어 머리 속에 보관하는 것과 같다. 이 목록은 비디오 도서관에 사례를 추가하면서 계속 늘어난다. 그레이트데인 종(種)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기르던 그레이트데인 종의 개 댄스크의 모습이다. 그리고 댄스크 다음에 선생님이 기른 헬가가 떠오른다. 그 다음은 애리조나에 사는 그녀의 이모네 개고, 마지막으로 그 종 개가 나온 핏웰 시트커버 광고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런 기억은 대개 시간 순서에 따라 떠오르고, 항상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따라서 그녀에게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그레이트데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폐인 모두가 시각적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각화 기술에 있어서 제로에 가까운 사람부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 반쯤 구체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 그녀처럼 아주 구체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까지 연속체를 이룬다. 하얀색과 검정색을 무차별로 섞어 놓았을 때 그 중간에 존재하는 회색은 수 백, 수 천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인식 체계의 다름으로 인해 자폐인은 그림으로 떠올릴 수 없는 것을 배우기가 제일 힘들다. 자폐아는 단어 중에서 명사를 가장 쉽게 익히는데, 이미지와 일 대 일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높은 수준의 언어능력을 가진 자폐아는 음성으로 읽는 법을 익히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능력이 더 떨어지는 아이들은 더 구체적인 연상을 통해 익히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주변 사물에 이름표를 달아 놓는 식으로 단어를 익히는 것이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자폐아는 손으로 만져 보고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글자로 단어를 써 줄 때 더 쉽게 배우기도 한다. 자폐아의 경우 시각, 촉각, 청각, 맛, 냄새 등 감각에 대한 민감한 정도가 다르므로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언어에 대한 연상을 도와 바깥 세계를 인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이 공동체 속에서 같은 인간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배려해야 한다.


저자는 자폐 아동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연상적 사고 패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폐아는 단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할 때가 많다. 이런 부적절한 단어는 말하고자 하는 바와 논리적 · 연상적 연관이 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자폐아는 밖에 나가고 싶을 때 "개."라고 말한다. 그 아이에게는 '개'라는 단어가 밖에 나가는 것과 연관이 되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경우나 다른 자폐인도 커다란 범주에서는 '인류'의 공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눈이 나빠 안경을 쓰고 생활하거나 목발을 집고 생활하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신체 장애인이 살아가는 방식이 일반인과 조금 다를 뿐인 것처럼 그들은 뇌와 신경계에 이상이 있을 뿐이다.

 
자폐인의 인식세계가 그러하기에 자폐인이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다.

저자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인간관계’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문과 창문’이라는 시각적 상징을 만들어 내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 상징들을 만들어 내고 난 다음에야 그녀는 관계에서 서로 주고받는 법을 익히는 것 등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폐인이 사용하는 이런 상징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지만 자폐인은 이런 상징을 통해서만 현실을 실제적으로 느끼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면서 행복했었다면 ‘프렌치토스트’는 행복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아이는 프렌치토스트를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나 단어는 경험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자폐증이 심한 경우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자폐증이 심한 테드 하트라는 아이는 일반화 능력이 거의 없고 행동에 융통성이 전혀 없다. 그의 아버지 찰스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는 건조기가 고장 나자 테드가 젖은 빨래를 그냥 옷장에 넣었다고 한다. 익히 알고 있는 빨래 순서에 따라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테드한테는 상식이라는 게 없다. 이런 경직된 행동이나 일반화 능력 결여는 시각적 기억을 바꾸거나 수정할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따라서 저자는 '천재성도 비정상성'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자폐증이나 조울증을 앓았고, 그러한 증상이 가지는 사방으로 인해 과학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연구에 기초해 볼 때, 만약 자폐증이나 조울증 등의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한다고 하여 이를 제거한다면 이 세상에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줄 모르는 따분하고 틀에 박힌 사람들만 가득할 것이라는 템플 그랜딘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자폐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유전자 뭉치는 적은 분량으로 존재할 때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심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성향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과 과학적 발견을 가져온 재능과 천재성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뚜렷한 경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자폐증, 심한 조울증, 정신분열증 같은 장애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도 우리 유전자 안에 계속 남아 있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회계사의 사고 방식과 예술가의 사고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세상에서 공존해 살아가고 있고, 그 사이에는 경계의 선이 있기 보다는 사고방식의 경향에 따른 연속체가 있다는 것이다. 자폐인의 범주에서 저기능 자폐인과 고기능 자폐인이 연속체의 양쪽 끝에서 연결되어 있듯이 인간의 영역에서 자폐인과 비자폐인은 경계를 가지기보다는 연속체의 한 선상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정신 세계와 인식 방법을 이해하고 서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정하기가 어렵다. 100년 전에는 비정상인이라 치부되는 현상이나 모습이 현대에 와서 정상이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주관적인 판단 기준이나 '다수'라는 기준으로 정상/비정상을 나누게 되면 인류나 사회라는 공동체가 공존할 수 없다. 가장 극단에 위치한 사람에게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비정상일 것이고 가운데에 위치한 사람은 양 쪽이 비정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이고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폐증과 여러가지 뇌와 신경계 이상에 의한 장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인식체계와 사고방식이 나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어떻게 대처해야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초보적인 것들도 배웠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고 상대방 처지에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일반론도 여기서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 주변에는 자페인이나 자폐아는 없다. 오래 전에 조울증을 앓던 조카는 하나 있다. 사실, 조카가 조울증을 앓던 때에는 내가 자폐증이나 우울증, 학습장애 등에 대해 아무런 정보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누나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하여 내가 자폐증이나 각종 장애에 대해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그런 장애나 증상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얻은 셈일 뿐이다.
 
그리고 신체적인 장애를 둘러싼 '정상과 비정상'은 인간의 다른 활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의 공통된 생각이나 의견이 모든 것을, 특히 다른 사람들을 얽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수'의 횡포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심지어 51%나 67%를 '다수'라 하여 소수의 의견과 처지를 무시하고 다수의 의견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가 99%라 하더라도 나머지 1%의 생각과 처지를 존중해야 사회라는 공동체는 건강해지고 활력이 있게 된다. 
중세 기독교에서 '지동설'은 1%도 안되는 의견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큰 교훈이다. '많다'는 것과 '옳다'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P.S) 이 책은 몇 개월 전 공부모임에서 [고야, 영혼의 거울]을 교재로 하여 세미나하던 중 참석자 한 분으로부터 소개받았다. 이 책을 접하게 해준 그 분에게 감사드린다.
 
[ 2011년 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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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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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여러사람들을 보면 ’밥벌이’에 대해 생각나게끔 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노동의 신성함’ 또는 ’전문성’과 더불어 ’밥벌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노동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 노동에 대한 인식은 ’인간다움’보다 ’지겨움’ 쪽이 더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역으로 노동이 ’밥벌이’로서만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직접 논밭에서 농산물을 재배해야만이 ’인간다운 노동’이고 ’소외되지 않는 노동’일까?
처음 책 제목에 이끌려 인터파크에서 주문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 밥벌이의 지겨움 >이 나를 ’혹’했던 것보다는 다소 다른, 저자의 에세이가 주로 담겨있었다. 약간의 서운함...??
 
이 책은 저자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꼈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잔잔한 소회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에세이’다.
그리고 그 소회는 독자들에게 저자가 나이들어 감에 따라 과거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다시금 보여지고 느껴지는 생각과 느낌을 담담하게 전해진다.
"하류의 강은 늙은 강이다. 큰 강의 하구 쪽은 흐려진 시간과 닿아있고 그 강은 느리게 흘러서 순하게 소멸한다. 흐르는 강물 옆에 살면서 여생의 시간이 저와 같기를 바란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노는 아이들의 몸놀림과 지껄임은 늘 나를 기쁘게 하는데, 혼자서 바라보는 자의 기쁨은 쓸쓸하였다."
"빛이 성긴 저녁, 사물의 안쪽은 드러나는데, 그때 대낮의 빛들은 모두 하늘로 불러 올라가 한강 어귀의 노을로 퍼진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빛과 노릉과 쥐와 새에게로 건너가지 못하고 마루에 주저앉아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21세기 첨단 산업시대에도 저자는 ’아나로그’적인 삶을 즐기고 추구한다. 아나로그만이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므로...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고 지우개로 수정,편집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느낀다.
목수들의 손놀림에서 창조와 예술성을 발견하고 걷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땅(대지)와 직접 맞닿아 있음으로 해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밥을 먹기 위하여 밥벌이를 하는 것인데, 밥벌이에 얽매여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삶...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제네바 협정에 대한 비판적 인식, 현대사회에서 인의예지에 대한 새로운 입장, 히딩크 열풍의 교훈, 국수주의 유감, 수몰민 할머니의 남은 삶... 
저자의 삶과 문학에 대한 자세와 접근법은 독특하다.
저자는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하다가 다시 사회부 경찰 출입기자를 자처하여 다시 한겨레에 입사한 경력이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관념과 추상의 세계에 너무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학계에서 저자의 문체는 ’칼로 조각’하는 것 같다는 표현이 많다고 한다. 
’숨막힌다’라는 반론도 있고... 하지만, 나는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 그다지 그런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간결하게 끊어지는 저자의 문체가 나름 다가오는 느낌도 있고 저자의 글은 ’그렇다’라고 인정하고 읽을 뿐이다.

’아나로그적인 삶’...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은 나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이 책에 대해 유감이 있다.
몇 번을 생각해보아도 이 책은 저자의 지겨운 '밥벌이'를 위해 그동안 신문 및 인터넷 등에 실린 글을 묶어서 출판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 이런 책들이 서점가에서 자주 보인다.
한국 문학계, 소설계를 이끌어온 몇몇 50~60대 대가들이 벌써 창의성이 메마르고 사람들의 삶과 사회변화의 모습에서 멀어진 것일까??
 

[ 2010년 6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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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해학과 재치가 어루러진 생생한 과학이야기
최무영 지음 / 책갈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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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저자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2008년에는 인터넷 신문에 연재하여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꾸준히 읽기 시작했을 때, 처음 그런 독서습관에 동기부여를 해준 책이 브라이언 그린의 < 우주의 구조 >와 김탁환의 팩션소설 < 백탑파 시리즈 :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이었다. < 우주의 구조 > 이후 지금까지 220권이 넘게 읽은 책 중에서 수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책은 61권 정도였다. 그 61권 중 해당 학문분야에 대해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가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책은 별로 없었다.
 
책 속의 글은 복잡하고 난해한 현대물리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차원을 넘어서, 과학이 현대인들의 세계 인식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나는 그의 글을 통해 피카소 등 현대 미술가의 작품 세계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교육제도나 유전자 조작, 경부고속철도의 문제점 등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통해 참다운 과학은 결코 물질적 번영을 위한 도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
첫째, 과학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만들어 준다. 과학적 사고란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말한다. 특히, 과학의 중요성은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과학정신'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둘째, 과학을 통해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할 수 있다. 자연과학이란, 자연현상, 즉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주 전체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을 탐구하다 보면 인간과 우주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므로 세계관 자체가 바뀌게 된다.
셋째, 과학의 현실적 의미... 특히 과학 지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용하면 과학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지만, 그 반대로 잘못 이용하게 되면 엉청난 재앙을 가져다 준다.
넷째, 과학은 문화의 중요한 근간이다. 장군총, 가야고분, 첨성대, 팔만대장경과 같은 문화유산과 마찬가지로 그런 유산을 만들어내는 인간과 과학활동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과학은 공학이 아니라 인문학에 더 가깝다.
 
더군다나 저자는 자연과학 내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인문학, 철학 등이 어떻게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인간과 지구를 위한 자연과학을 위하여 어떤 관점과 과정이 필요한 지,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한 해답과 방향을 제시한다. 늘 답답하고 막연하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 한 줄기 서광이 비추는 느낌이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랑스럽게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한국인임에도 외국의 학자나 교수보다 탁월한 감각으로 어려운 자연과학, 물리학의 정의와 개념, 방법론과 이론에 대해 설명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적지않는 자연과학 분야의 서적, 대학시절 배웠던 교수들의 강의에서 어렴풋하게 이해하고 암기하고 말았던 자연과학이 피부 속으로, 머리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이다.
비록 한국 자연과학 전문가들이 아직 자연과학분야의 노벨상을 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앞으로 한국의 자연과학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저자가 이야기했듯이 앞으로 한국의 정치,행정,교육,사회,문화 등 전분야에서 발상의 전환과 끊임없는 도전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외래어나 일본식 표기가 아닌 순수한 '한국식'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하면서 국내의 학자들과 교수들, 지식인들이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용어'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나 역시 서평이나 일상적인 대화에서 영어식, 일본식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했던 것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후회했다.
 

장회익교수가 쓴 추천사에는 저자가 얼마나 뛰어난 전문가이자 참된 학자인지 말해준다.
"물리학의 정수를 그 안에 담아내면서도 이것을 쉽게, 재미있게, 그리고 간결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학을 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물리학의 내용에 대한 완벽한 파악은 물론이고 이것을 마음대로 반죽하여 원하는 형태로 얼마든지 변형해 내는 마술가적 소양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물리학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며, 여기에 다시 이를 말로 표현해 낼 언어적 구사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소양을 갖춘 사람을 찾아보기가 우선 쉽지 않다. 그리고 설혹 이러한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학문 세계에서 별로 큰 보상이 따르지 않는 이러한 작업에 선뜻 뛰어들어 이를 하나의 책으로 완결시켜 나가기까지의 노력과 인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정상급 물리학자로 손꼽히는 최무영 교수가 이 일을 해 주었고 그것도 아주 잘 해내었다는 것은 우리 학계 그리고 문화계로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010년 6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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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몰락 - 미국의 패권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가브리엘 콜코 지음, 지소철 옮김 / 비아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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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제국의 몰락]처럼 미국이 언젠가 몰락한다는데에 나도 이견이 없다. 옛말에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고 했거늘, 미국이라는 제국 역시 몰락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도, 비잔틴제국도, 대영제국도, 징기스칸제국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몰락했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미국이 지배했던 세기는 막을 내리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쇠락의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저자 '가브리엘 콜코'를 한국에 소개하는 첫 책이자 저자의 최신작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인 미국의 패권이 어떻게 약화되고 쇠락의 길을 가는지를 저자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제국의 필수요소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중심으로 미국이 더 이상 초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권국이 아님라고 말한다. 즉, 핵확산의 세계화와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중앙은행이 통제 불가능한 국제 금융시스템, 미국 엘리트 그룹의 부조리와 하드파워의 비극적인 종말 등 저자는 정치학과 경제학, 역사학과 철학을 넘나들면서 군사력 만능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양심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공산주의가 사라지자, 미국은 급격히 쇠퇴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자 뿐 아니라 몇몇 학자들은 구소련이 멸망한 후에 미국의 패권이 급격히 막을 내리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콜코는 주적(主敵)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91년 구소련이 사라지고 사회주의 이념이 무너진 후, 미국은 더 이상 평화 유지라는 명분으로 국제 사회를 통제하고 무기를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주적이 사라지자 헤게모니에 굶주린 미국은 적들을 마음대로 선택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남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들, 국경선을 따라 활동하고 국적이 모호한 소규모의 비밀조직들 .... 그러나 미국이 온갖 명분을 만들어 임의의 적들을 상정하고 그들의 무력을 뿜어대는 동안 세계의 군사기술은 빠른 속도로 저렴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핵무기의 확산과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한계 등... 최첨단 군사 기술은 중동 국가들을 넘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국가뿐 아니라 게릴라 조직에게로 확산되었다. 결국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졌으며, 군사력만으로 패권을 휘두르는 시대는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 엘리트 그룹은 무기 판매상들과 결탁하여 여전히 전쟁을 부추기고 권력과 야망을 위해 국제 사회를 무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미국 내부에서도 '실패'임을 인정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미국사회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지만, 정치엘리트와 무기판매상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이스라엘에게 시리아 침공을 부추기고 있다.

정치 엘리트와 무기 판매상의 결탁이 세계 군사체제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미국의 금융 투기꾼들은 '탐욕'에 물들어 세계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을 초래했다. 고위험 고수익에 투자하는 이들은 전통적인 경제 메커니즘과는 무관하게 거액의 돈을 벌고 잃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국제 금융을 창조낸 것이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으며, 199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의 수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큰 만큼 위험성 역시 훨씬 커졌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출채권이나 채무담보의 위험성으로 인해 안정성이 흔들리고 상당한 규모의 은행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 진단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새롭게 재편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고,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러한 붕괴를 대처할 힘과 지식이 없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가브리엘 콜코는 1932년 미국 뉴저지 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뉴욕주립대에서 강의했다. 이후 캐나다로 이주해 1970년 요크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동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임 중이다. 윌리엄 애플먼 윌리엄스, 하워드 진 등과 더불어 초기 신좌파New Left를 주도한 역사학자로 인정받았으며, 특히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연구해 '정치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그는 행동하는 학자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중에 그는 프랑스와 남베트남, 북베트남을 수차례 방문해 직접 공산주의자들과 만나 대화했으며, 구호물자를 모아 베트남에 보내기도 했다.
냉전의 기원, 20세기 미국의 대외 정책, 베트남전쟁, 중동 문제 등을 연구해 14권의 책을 발표했는데, 그의 역사 관점과 주장은 토머스 매코믹, 로이드 가드너, 브루스 커밍스 등 진보적 역사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석학인 노암 촘스키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많은 저서에서 가브리엘 콜코의 주장과 논거를 인용하면서 그의 연구 업적과 논점에 대해 경의를 표해왔다.
[미국의 부와 힘:사회 계급과 소득 분배 분석], [보수주의의 승리], [전쟁의 정치학:세계와 미국의 대외정책, 1943-1945], [힘의 한계:세계와 미국의 대외 정책 1945-1954], [전쟁의 세기:1914년 이후의 정치, 분쟁, 사회], [전쟁의 시대:세계와 맞선 미국] 등의 주요 저서에는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철학을 아우르는 그의 넓고 깊은 학문,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 인류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덫에 걸린 자본 - 미국의 금융 위기>, 2부 <소멸하는 패권 - 불안한 미국의 대내외 정책>, 3부 <준비된 재앙 - 중동 정책의 한계>, 4부 <정보와 기술, 그리고 미래의 전쟁 - 향후 국제 관계의 미래>
 
1부에서는 금융 투기꾼들의 등장과 그 결과를 이야기한다. 고위험 고수익에 투자하는 이들은 미국의 금리가 아주 낮을 때 은행에서 돈을 빌렸으며, 전통적인 금융 엘리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자금을 제공했다. 결국 금융 투기꾼들은 전통적인 경제 메커니즘과는 무관하게 거액의 돈을 벌고 잃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국제 금융을 창조해냈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으며, 199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의 수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큰 만큼 위험성 역시 훨씬 커졌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불안정해졌다. 전문가들은 투명성의 결여, 복잡성, 리스크의 불명료성, 보편적인 불확실성, 특히 대출채권이나 채무담보의 위험성으로 인해 안정성이 흔들리고 상당한 규모의 은행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 진단했는데 일련의 사건들로 그 진단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새롭게 재편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시작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중앙은행들이 지금과 같은 현실에 대처할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으며, 현실을 통제할 법적인 힘과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금융 불안과 함께 미국의 패권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는 자살의 길로 향하고 있고 그 길에 다른 나라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2부에서는 불안한 미국의 대내외 정책을 거론한다. 미국의 패권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쇠락해졌다. 그들의 값비싼 최첨단 무기들은 베트남전쟁에서 효력이 없었고, 이러한 문제를 전쟁 후에 해결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기술적 기반을 강화하면서 최대 55만 명이 파견되었던 베트남전쟁보다 약 14만 명의 병력이 파견된 이라크전쟁에 5배나 많은 전쟁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라크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군은 또 한번 무너지고 있다. 왜 그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무기업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의 뿌리 깊은 이해관계를 들 수 있다. 무기업자들은 대부분의 주(州)에서 주요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군비는 경제를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무기업자들은 국방부가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돈을 번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다. 또한 권력과 야망에 불타는 정치인들과 병적으로 전쟁을 선호하는 국방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경험 많은 CIA의 국제정보를 무시하면서까지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전쟁이 벌이고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종종 여론을 부적절하게 만들면서 결과적으로는 미국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군수산업이 중심인 미국 자본주의의 자기파멸적인 구조, 그 구조에서 나오는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부에서는 중동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미국은 1954년 이후 수차례 이란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고 이 지역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중동 지역 국가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석유 생산국인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력을 보강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감이 증대되면서 연대가 강력해졌다. 단적으로 미국의 첨단 기술력을 이어받은 이스라엘군이 2006년 7월 레바논을 공격했을 때, 당시 헤즈볼라의 로켓은 이스라엘의 최신 전차 20대를 파손했고, 결국 이스라엘군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후퇴했다. 또한 2008년 3월 라이스 국무장관이 걸프 지역을 방문했을 때 우호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는 더 이상 이란에 대한 미국의 모험을 지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스라엘의 학력이 높은 유대인들은 전쟁의 혐오를 느끼며 이민 가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제 이스라엘은 이슬람의 위협뿐 아니라 줄어드는 인구 문제로 인해 국가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그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행한 대외정책의 열악한 현실이다. 그들의 수많은 개입은 그 지역에 평화가 아닌 반목과 혼란만을 낳았다. 미국의 중동 정책 실패만큼 미국의 힘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저지른 이라크 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중동지역 전체에 상존하던 혼란과 무질서의 '판도라 상자'를 다시 열었다는 점이다.

4부에서는 향후 국제 관계의 미래를 진단한다. 1991년 소련이 사라진 후 미국에는 유난히 값비싼 무기, 핵폭탄, 지나치게 파괴적인 무기들로 무장한, 비용이 많이 드는 공군이 남았다. 실질적인 적들의 부재는 재앙이었다. 목적을 상실한 미국은 이제 적들을 마음대로 선택하게 되었다. 가난한 아프가니스탄의 부족민들, 이라크인들, 어쩌면 중국, 볼셰비키가 사라진 러시아, 남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들, 국경선을 따라 활동하고 국적이 모호한 소규모의 비밀조직들 .... 그러나 미국이 온갖 명분을 만들어 임의의 적들을 상정하고 그들의 무력을 뿜어대는 동안 세계의 군사기술은 빠른 속도로 저렴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핵무기의 확산과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휴대성과 정밀성이 향상된 대인·대차량 폭탄들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 등.... 이제 최첨단 무기와 군사기술은 중동의 몇몇 국가들을 넘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북한, 이란, 타이완, 베네수엘라 등에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국가 간의 관계를 넘어 소규모의 비밀 조직부터 대규모의 게릴라 조직에 이르기까지 국가 내에 존재하는 집단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첨단 군사기술의 보급으로 이제 세계 어느 곳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이는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군사 등 모든 영역에서 미국의 힘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지배하던 세기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세계 금융위기까지, 저자는 패권국인 미국의 국제관계와 경제를 살피면서 정치 엘리트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금융 투기꾼의 위험한 투기가 미국사회를 얼마나 악화시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충격과 공포'로 대변되는 그들의 하드파워 전략이 낳은 국제사회의 외면과 냉대, EU와 이슬람 그리고 중국 등 새로운 세력의 출현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패권이 현재 사라지거나 이미 사라졌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을 일다보면 올해 5월에 읽은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 백 (2003. 삼인)]과 지난 해 11월에 읽은 자크 사피르의 [제국은 무너졌다 (2009. 책보세)]와 가 생각난다. 찰머스 존슨(미국)은 2002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계기로 그동안 미국에 대해 서서히 쌓여오던 '역풍'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에게 불어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제국의 몰락'을 예견한 바 있다. 자크 사피르(프랑스) 역시 가브리엘 콜코(미국)와 비슷한 이유를 들어 미국이라는 제국이 무너졌음을 선언한 바 있다. 서구 학계 중 적지 않은 학자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미국의 정책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흐름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유럽과 미국 내부의 상당수 학자들이 '미국'의 위험한 질주와 '몰락'을 지적함에도 우리나라 내부의 수구기득권 세력과 보수층들, 그리고 현 정부가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라하고 미국의 우산 속으로 기어들어 가려고만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미국은 더 이상 지구상의 '모범'도 아닌데다가 전세계의 '적'으로 규정되고 있는데...
미국을 따라가다가 자신들만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절대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5천만 국민들이 볼모로 잡혀서 미국의 '몰락'에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2011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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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기술 1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3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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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정립한 후, 그 많은 정보를 선별하고 분류하고 종합한 후 선택하거나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먹고 살기 위해서든, 게으르거나 귀찮기 때문이든...

결과적으로 수 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돌프 히틀러.. 그가 중앙집권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쿠테타가 아닌 1932년과 1934년 독일(바이마르공화국) 선거였다.  당시 유럽과 독일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은 나치당과 히틀러에게 권력을 몰아주었다. 

2007년 12월. 동아시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명박씨가 압도적인 표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투표하였고 다음 해 4월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2010년 들어 이명박씨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명박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으며 일방주의와 밀어붙이기, 생태계 파괴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왜 독일 국민들과 한국 국민들은 히틀러와 이명박을 지지했을까? 과연 그들은 히틀러와 이명박, 나치당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떻게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엄청난 전쟁배상금에 휘청이고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던 독일... 민주주의도 자유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언론과 미디어마저 변변치 못했던 1930년대 독일 국민들이 나치당과 히틀러의 선전과 선동에 넘어간 것은 그렇다 치고 21세기 한국의 유권자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판단을 내릴까?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들과 밥벌이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이성보다 감정이, 논리보다 심리가 앞선다고 하면, 과연 그들에게 선택과 판단을 유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 중 나라를 ’유혹’이라고 주장하며,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에 대해 장황한 사례와 기술을 제시한다.

21세기 초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유혹에 대하여>에서 현대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유혹’을 제시한다. 그만큼 유혹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남녀관계 등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심리적인 기술이다.

유혹의 기술은 원래 힘없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물리적인 힘이 우세하던 시절,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권력을 얻어내기 위해 유혹의 기술을 활용했다. 중국 오나라의 왕 부차가 한순간에 무너졌던 ’서시’, 위대한 정복자 나폴레옹을 요리한 ’조제핀 보나파르트’, 루이 15세의 영원한 여인 ’퐁파두르 부인’, 클레오파트라, 카사노바, 마릴린 먼로, 프로이트, 앤디워홀, 바이런, 오스카와일드, 찰리채플린, 에바 페론, 말콤 엑스, 등...

이 책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적 기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유혹의 기술’을 다루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관계는 심리 게임’이라는 시대와 도덕을 초월한 가치전환적 사고의 토대 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혹자들의 성공전략과 사상가들의 유혹의 개념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이 책에서 의미하는 유혹은 크게 성적인 유혹, 경영/처세적인 유혹, 정치적인 유혹의 세 가지이다. 

하지만, 처음 서문을 읽으면서 가졌던 기대와 호기심은 1부를 읽으면서 사라지고 만다. 이 책에서 경영/처세적인 유혹과 정치적인 유혹의 사례와 분석은 포장지 정도에 불과하다. 저자가 대부분 다루고 있는 유혹은 ’성적인 유혹’에 할애된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Temptation’이 아니라 ’Seduction’이 아닌가 싶다...^^

[ 목차 ]
 
1부 유혹자의 9가지 유형
1장 냉담한 나르시시스트형 코케트
2장 열정적인 신념가형 카리스마
3장 신비로운 우상형 스타
4장 요부형 세이렌
5장 바람둥이형 레이크
6장 헌신적인 연인형 아이디얼 러버
7장 창조적 스타일리스트형 댄디
8장 천진난만형 내추럴
9장 능란한 외교가형 차머
10장 반(反)유혹자
유혹의 대상-18가지 유형

2부 유혹의 24가지 전략과 전술
1단계 관심과 욕망을 자극하라
2단계 괘락과 혼란을 창출하라
3단계 유혹의 효과를 극대화하라
4단계 유혹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라

부록1 상대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법
부록2 대중을 사로잡는 법
 

[ 2010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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