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몰락 - 미국의 패권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가브리엘 콜코 지음, 지소철 옮김 / 비아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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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제국의 몰락]처럼 미국이 언젠가 몰락한다는데에 나도 이견이 없다. 옛말에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고 했거늘, 미국이라는 제국 역시 몰락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도, 비잔틴제국도, 대영제국도, 징기스칸제국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몰락했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미국이 지배했던 세기는 막을 내리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쇠락의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저자 '가브리엘 콜코'를 한국에 소개하는 첫 책이자 저자의 최신작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인 미국의 패권이 어떻게 약화되고 쇠락의 길을 가는지를 저자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제국의 필수요소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중심으로 미국이 더 이상 초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권국이 아님라고 말한다. 즉, 핵확산의 세계화와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중앙은행이 통제 불가능한 국제 금융시스템, 미국 엘리트 그룹의 부조리와 하드파워의 비극적인 종말 등 저자는 정치학과 경제학, 역사학과 철학을 넘나들면서 군사력 만능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양심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공산주의가 사라지자, 미국은 급격히 쇠퇴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자 뿐 아니라 몇몇 학자들은 구소련이 멸망한 후에 미국의 패권이 급격히 막을 내리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콜코는 주적(主敵)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91년 구소련이 사라지고 사회주의 이념이 무너진 후, 미국은 더 이상 평화 유지라는 명분으로 국제 사회를 통제하고 무기를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주적이 사라지자 헤게모니에 굶주린 미국은 적들을 마음대로 선택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남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들, 국경선을 따라 활동하고 국적이 모호한 소규모의 비밀조직들 .... 그러나 미국이 온갖 명분을 만들어 임의의 적들을 상정하고 그들의 무력을 뿜어대는 동안 세계의 군사기술은 빠른 속도로 저렴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핵무기의 확산과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한계 등... 최첨단 군사 기술은 중동 국가들을 넘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국가뿐 아니라 게릴라 조직에게로 확산되었다. 결국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졌으며, 군사력만으로 패권을 휘두르는 시대는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 엘리트 그룹은 무기 판매상들과 결탁하여 여전히 전쟁을 부추기고 권력과 야망을 위해 국제 사회를 무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미국 내부에서도 '실패'임을 인정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미국사회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지만, 정치엘리트와 무기판매상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이스라엘에게 시리아 침공을 부추기고 있다.

정치 엘리트와 무기 판매상의 결탁이 세계 군사체제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미국의 금융 투기꾼들은 '탐욕'에 물들어 세계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을 초래했다. 고위험 고수익에 투자하는 이들은 전통적인 경제 메커니즘과는 무관하게 거액의 돈을 벌고 잃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국제 금융을 창조낸 것이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으며, 199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의 수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큰 만큼 위험성 역시 훨씬 커졌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출채권이나 채무담보의 위험성으로 인해 안정성이 흔들리고 상당한 규모의 은행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 진단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새롭게 재편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고,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러한 붕괴를 대처할 힘과 지식이 없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가브리엘 콜코는 1932년 미국 뉴저지 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뉴욕주립대에서 강의했다. 이후 캐나다로 이주해 1970년 요크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동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임 중이다. 윌리엄 애플먼 윌리엄스, 하워드 진 등과 더불어 초기 신좌파New Left를 주도한 역사학자로 인정받았으며, 특히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연구해 '정치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그는 행동하는 학자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중에 그는 프랑스와 남베트남, 북베트남을 수차례 방문해 직접 공산주의자들과 만나 대화했으며, 구호물자를 모아 베트남에 보내기도 했다.
냉전의 기원, 20세기 미국의 대외 정책, 베트남전쟁, 중동 문제 등을 연구해 14권의 책을 발표했는데, 그의 역사 관점과 주장은 토머스 매코믹, 로이드 가드너, 브루스 커밍스 등 진보적 역사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석학인 노암 촘스키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많은 저서에서 가브리엘 콜코의 주장과 논거를 인용하면서 그의 연구 업적과 논점에 대해 경의를 표해왔다.
[미국의 부와 힘:사회 계급과 소득 분배 분석], [보수주의의 승리], [전쟁의 정치학:세계와 미국의 대외정책, 1943-1945], [힘의 한계:세계와 미국의 대외 정책 1945-1954], [전쟁의 세기:1914년 이후의 정치, 분쟁, 사회], [전쟁의 시대:세계와 맞선 미국] 등의 주요 저서에는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철학을 아우르는 그의 넓고 깊은 학문,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 인류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덫에 걸린 자본 - 미국의 금융 위기>, 2부 <소멸하는 패권 - 불안한 미국의 대내외 정책>, 3부 <준비된 재앙 - 중동 정책의 한계>, 4부 <정보와 기술, 그리고 미래의 전쟁 - 향후 국제 관계의 미래>
 
1부에서는 금융 투기꾼들의 등장과 그 결과를 이야기한다. 고위험 고수익에 투자하는 이들은 미국의 금리가 아주 낮을 때 은행에서 돈을 빌렸으며, 전통적인 금융 엘리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자금을 제공했다. 결국 금융 투기꾼들은 전통적인 경제 메커니즘과는 무관하게 거액의 돈을 벌고 잃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국제 금융을 창조해냈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으며, 199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의 수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큰 만큼 위험성 역시 훨씬 커졌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불안정해졌다. 전문가들은 투명성의 결여, 복잡성, 리스크의 불명료성, 보편적인 불확실성, 특히 대출채권이나 채무담보의 위험성으로 인해 안정성이 흔들리고 상당한 규모의 은행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 진단했는데 일련의 사건들로 그 진단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새롭게 재편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시작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중앙은행들이 지금과 같은 현실에 대처할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으며, 현실을 통제할 법적인 힘과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금융 불안과 함께 미국의 패권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는 자살의 길로 향하고 있고 그 길에 다른 나라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2부에서는 불안한 미국의 대내외 정책을 거론한다. 미국의 패권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쇠락해졌다. 그들의 값비싼 최첨단 무기들은 베트남전쟁에서 효력이 없었고, 이러한 문제를 전쟁 후에 해결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기술적 기반을 강화하면서 최대 55만 명이 파견되었던 베트남전쟁보다 약 14만 명의 병력이 파견된 이라크전쟁에 5배나 많은 전쟁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라크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군은 또 한번 무너지고 있다. 왜 그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무기업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의 뿌리 깊은 이해관계를 들 수 있다. 무기업자들은 대부분의 주(州)에서 주요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군비는 경제를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무기업자들은 국방부가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돈을 번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다. 또한 권력과 야망에 불타는 정치인들과 병적으로 전쟁을 선호하는 국방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경험 많은 CIA의 국제정보를 무시하면서까지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전쟁이 벌이고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종종 여론을 부적절하게 만들면서 결과적으로는 미국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군수산업이 중심인 미국 자본주의의 자기파멸적인 구조, 그 구조에서 나오는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부에서는 중동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미국은 1954년 이후 수차례 이란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고 이 지역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중동 지역 국가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석유 생산국인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력을 보강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감이 증대되면서 연대가 강력해졌다. 단적으로 미국의 첨단 기술력을 이어받은 이스라엘군이 2006년 7월 레바논을 공격했을 때, 당시 헤즈볼라의 로켓은 이스라엘의 최신 전차 20대를 파손했고, 결국 이스라엘군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후퇴했다. 또한 2008년 3월 라이스 국무장관이 걸프 지역을 방문했을 때 우호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는 더 이상 이란에 대한 미국의 모험을 지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스라엘의 학력이 높은 유대인들은 전쟁의 혐오를 느끼며 이민 가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제 이스라엘은 이슬람의 위협뿐 아니라 줄어드는 인구 문제로 인해 국가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그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행한 대외정책의 열악한 현실이다. 그들의 수많은 개입은 그 지역에 평화가 아닌 반목과 혼란만을 낳았다. 미국의 중동 정책 실패만큼 미국의 힘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저지른 이라크 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중동지역 전체에 상존하던 혼란과 무질서의 '판도라 상자'를 다시 열었다는 점이다.

4부에서는 향후 국제 관계의 미래를 진단한다. 1991년 소련이 사라진 후 미국에는 유난히 값비싼 무기, 핵폭탄, 지나치게 파괴적인 무기들로 무장한, 비용이 많이 드는 공군이 남았다. 실질적인 적들의 부재는 재앙이었다. 목적을 상실한 미국은 이제 적들을 마음대로 선택하게 되었다. 가난한 아프가니스탄의 부족민들, 이라크인들, 어쩌면 중국, 볼셰비키가 사라진 러시아, 남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들, 국경선을 따라 활동하고 국적이 모호한 소규모의 비밀조직들 .... 그러나 미국이 온갖 명분을 만들어 임의의 적들을 상정하고 그들의 무력을 뿜어대는 동안 세계의 군사기술은 빠른 속도로 저렴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핵무기의 확산과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휴대성과 정밀성이 향상된 대인·대차량 폭탄들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 등.... 이제 최첨단 무기와 군사기술은 중동의 몇몇 국가들을 넘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북한, 이란, 타이완, 베네수엘라 등에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국가 간의 관계를 넘어 소규모의 비밀 조직부터 대규모의 게릴라 조직에 이르기까지 국가 내에 존재하는 집단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첨단 군사기술의 보급으로 이제 세계 어느 곳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이는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군사 등 모든 영역에서 미국의 힘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지배하던 세기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세계 금융위기까지, 저자는 패권국인 미국의 국제관계와 경제를 살피면서 정치 엘리트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금융 투기꾼의 위험한 투기가 미국사회를 얼마나 악화시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충격과 공포'로 대변되는 그들의 하드파워 전략이 낳은 국제사회의 외면과 냉대, EU와 이슬람 그리고 중국 등 새로운 세력의 출현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패권이 현재 사라지거나 이미 사라졌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을 일다보면 올해 5월에 읽은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 백 (2003. 삼인)]과 지난 해 11월에 읽은 자크 사피르의 [제국은 무너졌다 (2009. 책보세)]와 가 생각난다. 찰머스 존슨(미국)은 2002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계기로 그동안 미국에 대해 서서히 쌓여오던 '역풍'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에게 불어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제국의 몰락'을 예견한 바 있다. 자크 사피르(프랑스) 역시 가브리엘 콜코(미국)와 비슷한 이유를 들어 미국이라는 제국이 무너졌음을 선언한 바 있다. 서구 학계 중 적지 않은 학자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미국의 정책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흐름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유럽과 미국 내부의 상당수 학자들이 '미국'의 위험한 질주와 '몰락'을 지적함에도 우리나라 내부의 수구기득권 세력과 보수층들, 그리고 현 정부가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라하고 미국의 우산 속으로 기어들어 가려고만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미국은 더 이상 지구상의 '모범'도 아닌데다가 전세계의 '적'으로 규정되고 있는데...
미국을 따라가다가 자신들만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절대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5천만 국민들이 볼모로 잡혀서 미국의 '몰락'에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2011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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