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라곤의 기적 - 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 몬드라곤 시리즈 2
김성오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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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에서 배우자>과 이 책에서 읽은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발전 역사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탐욕을 극복할 수 있는 생산 및 기업운용 방식이다. '몬드라곤'은 자본가 또는 기업가 개인의 성품이나 양심이 아닌 자본의 구성, 기업의 지배구조, 회사의 목표와 운영구조의 여부에 따라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기업의 전개과정과 전혀 다른 기업의 발전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화와 역사는 바스크 지역이 특별한 지역이라고 해도 스페인을 비롯한 서구 유럽의 문화나 역사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에 나타난 것처럼 스페인 바스크 지역은 이미 18세기부터 협동조합과 유사한 협력적인 조직이나 기업이 태동한 바 있다. 그리고 스페인 내 바스크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가 '몬드라곤'의 태동과 성장의 밑받침이 된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고 돈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라는 뛰어난 사상가이자 지도자가 있었기에 '몬드라곤' 복합체의 태동과 성장이 가능한 것도 분명하다. 또한 '몬드라곤' 복합체의 시초인 '울고'가 처음 태동한 1950년대의 세계경제와 지역 내 경제사정은 21세기인 지금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몬드라곤'의 경험을 현재의 한국에 무차별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나 동양 역시 전통적으로 '계'나 '두레'처럼 마을 단위, 지역 단위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여러가지 자치조직과 경제조직이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19세말 이후 서구문물의 무차별적인 침탈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뛰어난 조직가 같은 사람의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몬드라곤' 복합체의 운영구조와 역사에서 21세기의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 있느냐일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기업의 목적과 지배구조에 따라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던 전혀 다른 기업 모델이 가능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기업가와 노동자의 분리와 대립, 기업의 소유자와 생산자의 분리와 대립, '성장만능'의 기업이 아닌 '양질의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 등이 여기에서 핵심적인 구성요소다.
 
비록 '몬드라곤' 복합체 하나의 사례를 그대로 한국에 기계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전세계적인 협동조합의 현황과 역사도 전혀 모르고 우리나라의 현실과 사례도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몬드라곤' 복합체의 사례는 내가 협동조합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 당장 하루아침에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더 연구하고 세미나를 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윌리엄 화이트의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Making Mondragon>가 1940년대의 준비과정과 1956년 '울고' 생산협동조합의 설립부터 1990년 협동조합 복합체의 설립까지의 바스크 지역의 협동조합의 성장과정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199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모습을 말해준다. 몬드라곤을 중심으로한 거대한 협동조합 복합체는 2006년 '몬드라곤'이라는 단일한 이름과 브랜드로 통일되었다.
저자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1980년대 스페인의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였듯이 1990년대 말 동아시아발 경재불황을 극복했고 2008년 미국발 전세계 금융위기, 경제위기도 극복해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몬드라곤은 실제 외형적인 수치상으로도 1990년 보다 훨씬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0년 현재 260개 개별 회사(협동조합)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기업의 전체 자산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53조원, 제조업과 유통업의 연 매출액은 약 22조원 규모다. 약 8만 4천명의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데, 그 중 3만 5천명이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고 나머지는 조합원으로 전환 중이라고 한다. 해외에 80여개의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고 제조업 매출의 약 60%가 수출을 통해 올린다.
몬드라곤 내 유통부문의 핵심기업인 '애로스키'는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 약 2,100개 매장을 갖고 있고, 금융 부문의 핵심기업인 '노동인민금고'는 스페인에서 5위 안에 드는 대형은행으로 전국에 420개 지점을 갖고 있다. 몬드라곤 대학교는 공학부, 경영학부, 인문학부를 포괄하면서 바스크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기술연구소들이 소속되어 있다.
 
저자는 몬드라곤을 좀 더 현실감 있게 설명하고자 책 속에 자산 규모가 비슷하고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된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와 비교했다.(물론 몬드라곤은 금융, 제조업, 유통, 교육·연구 부문을 포함한 기업 집단이고, 현대자동차는 단일 기업이므로 단순 비교는 무리일 수 있다.)
몬드라곤과 현대자동차는 자산 규모(몬드라곤 자산 53조 원, 현대자동차 41조 원)와 매출 규모(몬드라곤 매출 22조 원, 현대자동차 36조 원)가 비슷하고 2000년대 들어 더욱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글로벌화 전략(몬드라곤 수출 비중 60%, 현대자동차 수출 비중 62%)을 펼치는 양태도 비슷하다.
그러나 몬드라곤과 현대자동차를 회사 소유구조와 급여, 그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문제로 바라보면 많이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소유구조이다. 몬드라곤의 회사 자본금은 노동자 조합원들이 소유하고 있지만,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들이 주식 지분의 큰 비율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회사 경영을 좌지우지한다. 또한 급여 측면에서 볼 때 몬드라곤은 조합원 노동자와 비조합원 노동자 간에 급여 차이가 없는 반면, 현대자동차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여 차이가 상당하다. 다시 말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몬드라곤에서만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차이는 회사의 성장과 고용의 양적, 질적 성장이 정비례하는지 그렇지 않은가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현대자동차는 최근 지난 달 대법원 판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고용의 양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수 많은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외주화는 현대자동차의 매출과 이익 증대에 관계없이 고용의 양과 질을 현격하게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사회 내에서 왜 기업이 존재하고 성장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성장이 이루어지면 고용이 확대될 것이다”라는 목표 아래 끊임없이 성장 위주의 정책이 펼쳐졌다. 이러한 '성장만능주의' 이데올로기와 신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롯하여 역대 정부의 책임자와 관료, 언론, 학자들의 지속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20년의 경제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논리는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고용 없는 성장은 죄악에 가깝다며 이를 비판한다. 그리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고용 확대를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허접한 일자리가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로! 한마디로 질 좋은 고용을 위한 성장!”이다. 저자는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고용 창출’이었음을 강조한다. 즉 몬드라곤에서는 고용 창출과 기존 조합원의 이익이 부딪칠 때면 언제나 노동자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고용 창출에 방점을 찍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역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성장의 목표를 ‘질 좋은 고용’에 둔다면 고용과 성장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제6부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협동조합 경험과 현황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생산공동체운동과 자활공동체운동, 저자의 경험에 근거하여 정리한 대안기업운동, 원주 지역에서 일어나는 ‘이종 협동조합 간 연대에 의한 지역공동체 운동’도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2012년 3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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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에서 배우자 - 해고없는 기업이 만든 세상 몬드라곤 시리즈 1
윌리엄 F. 화이트 & 캐서린 K. 화이트 지음, 김성오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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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이윤을 향한 무한경쟁'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 자체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자본'이라는 속성이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진화하면서 불려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더군다나 1990년대 초부터 가속화된 '시장경제의 세계화'는 개인이나 소집단, 개별 국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무한한 경쟁을 가져옴으로써 인간존엄성과 민주주의, 노동이나 공동체 보다 이윤과 생산,유통체계를 자본의 논리에 맞도록 강제하는 특징을 보인다.
 
예전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었다. 그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전세계적인 국가간 불평등, 자본에 의한 민주주의의 약화,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헛된 이미지, 국가내 불평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세계 무역과 금융을 쥐고 있는 독점자본이 개인과 집단, 인류 고유의 가치와 문화, 공동체와 국가, 민주주의와 평등에 전혀 관심이 없음을 고발한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기본적인 경제체제를 인정하고 그 개별 요소로서 기업과 시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아무런 책임과 의무가 없는 '무한 자유'와 '무한 권리'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전세계적으로 시장경제가 '초세계화'되는 상황에서 인류 고유의 삶과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최근에 읽은 <자본주의 새판 짜기>에서 저자 대니 로드릭이 주장한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특성으로 하는)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와 국가주권, 그리고 세계화(HyperGlobalization) 상호간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고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국가제도만으로 개인과 집단의 삶이 개선될 것인가?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가 엄청나게 큰 규모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만큼 민주주의와 국가주권이 개선된다 한들 '최소한의 규제'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현대민주주의의 주류인 '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숱하게 제기해 왔다. 대의민주주의는 개인들의 자발성과 직접적인 이해를 시스템 속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기존의 시장경제 체제 역시 개인의 삶과 협동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과 집단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당장 어떤 체제나 시스템이라고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없지만, 아마도 '성장'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인간 중심의 시장경제, 공유와 협력의 시대정신 등이 고려된 방향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반 일리히가 <성장을 멈춰라>를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 문제제기한 대로 '자율적 공생사회'가 근본적인 대안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수준에서 갑자기 도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협동조합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보통 생산자나 유통업자의 횡포로 인해 태동한 소비자협동조합을 생각한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소비자를 속이고 대상화시키는 생산자와 유통업자에 대항하여 소비자들이 뭉쳐서 저렴한 가격, 스스로의 선택, 유통 비용 축소, 환경친화적 제품 등을 목적으로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식으로 한국에서도 생활협동조합이 상당 부분 발전해 왔고 최근에는 생활협동조합 뿐 아니라 의료생협, 주택생협 등 다양한 산업분야로 협동조합이 발전하고 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대기업의 횡포와 유통업자의 횡포를 막고 생산자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기존의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아쉬운 것은 소비자 중심의 협동조합이라는 한계로 인해 '일자리'와 '노동'에 대한 가치창출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 및 성격과 더불어 협동조합의 역사가 짧은 이유 등으로 대부분 조합원의 참여가 제한적인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특히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생산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비자가 중심인 생활협동조합과 달리 노동자가 중심인 협동조합은 근본적인 성격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협동조합이 담아낼 수 없는 노동 중심의 생산시스템과 직접 참여에 의한 민주주의가 적용, 발달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몬드라곤(Mondragon)은 스페인 북동쪽 바스크 지역에 위치한 도시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1940년대부터 주임신부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의 주도로 시작된 협동조합운동과 제조업·금융·유통·연구·교육을 포괄한 협동조합 그 자체를 일컫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회사를 소유하고 경영자를 선임하며 경영 전체를 관리·감독하는 체제인 몬드라곤은 1956년 노동자생산협동조합으로 시작했지만, 오늘날 해외에까지 생산공장(2010년 현재 77개의 해외 생산공장)을 갖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책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한국에서 1992년 초판을 발행해 협동조합에 관심을 둔 사람들과 새로운 사회운동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절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몬드라곤을 배우고 그곳에서 인류 미래를 위한 희망의 불씨를 보려는 사람들의 열망은 여전했기 때문에 역자가 최근 새로 발간한 것이다.
이 책은 1941년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부임하여 1956년 첫 협동조합 ‘울고’의 탄생을 도운 뒤 1980년대 말까지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어떻게 설립되고 발전해갔는지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제도의 대안으로 제기된 모든 생산자 연합체는 실패하거나 생산자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전통적 통설을 극복했으며, 심지어 1980년대의 극심한 경제불황을 이겨내고 1980년대 말 100여 개의 협동조합과 19,500여 명의 노동자로 이루어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화이트 교수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밝히기 위해 몬드라곤의 경영체계, 경기침체기의 대응, 고통스럽게 단행한 조직 재편 등을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은 몬드라곤 협동조합에 관한 일종의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생산협동조합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협동조합 매뉴얼이자,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만큼 몬드라곤의 경영구조, 체계, 개편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에게 더욱 큰 감명을 주는 것은 한 가톨릭 신부와 그와 함께 몬드라곤을 만들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몬드라곤의 기적을 일궈낸 씨앗은 돈 호세 마리아 신부의 헌신적 지도력과 그의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을 설득하여 학교를 세우고 이곳 졸업생들과 함께 최초의 협동조합 ‘울고’를 세운 일, 주변 사람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 은행(노동인민금고)을 설립한 일, 사람들과 토론하고 공부하며 협동조합을 이끈 일 등 몬드라곤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면서도 한 번도 공식적인 직책을 맡지 않은 돈 호세 마리아 신부의 헌신과 열정은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1980년대 온 유럽이 경제침체를 겪는 와중에도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지켜내기 위해 혁신과 개편을 해나가는 과정 또한 눈물겹게 그려진다. 1974년 처음 파업을 겪으면서 내부 갈등을 겪고 이로 인해 해고의 아픔까지 감당했지만 끝내 그들을 복직시키고 협동조합의 원칙을 새로 깨닫는 과정, 파산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쏟아붓는 노력 등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몬드라곤으로부터의 교훈은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여 대안을 고민하였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나누고 이를 위해 기업을 경영하였던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몬드라곤의 선구적인 노동자이자 경영자인 5인은 생산협동조합의 방식으로 기업을 설립,운영하고 조합원들과 민주적 경영과 창조적 노력을 거듭하여 바스크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을 만들어냈다. 또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신부의 조언을 받아들여 생산과 마케팅을 제고시키기 위한 연구와 금융까지 스스로 창출해낸 것이다. 협동조합의 성장은 1980년대 스페인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졌다.
또 하나의 교훈은 아리스멘디 신부에게서 얻었다. 아리스멘디 신부는 프랑코 군사독재 치하의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조직인 카톨릭의 성직자였지만 스페인 내전 이후 노동자,서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실질적인 대안과 방법을 노동자들과 함께 연구한 끝에 생산협동조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그 과정에서 아리스멘디 신부는 홀로 수 백개의 개별적, 소규모, 중규모 토론모임을 조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산협동조합, 노동인민금고, 연구소, 대학 등 어느 조직과 기업에서도 공식적인 직책과 직함을 가지지 않고 끝까지 직접 나서서 일하지 않았으며 도움과 제안만 거듭하였다. 그는 언제나 먼저 공부하고 연구하고 대안을 수립한 후 구체적으로 일을 추진하면서 설득하여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의 주인공들이 새로운 조직과 일에 참여하여 익히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지도,지원했다.
 
 
몬드라곤의 창립자이자 정신적 스승인 돈 호세 마리아 신부의 주옥같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일부 사람이 자신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타인의 노동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괴물이다. 협동조합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자본주의자와 구분된다. 즉 후자가 자신에 봉사하는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자본을 이용하는 반면, 전자는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을 이용한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서로는 서로를 보충해줌으로써 완전해질 수 있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은 신이거나 짐승이라고 한다. 이 말은 사회 계급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민중과 당국이 서로 떨어져 생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 말은 공동의 선이나 모든 사람의 이익 등을 진실로 추구할 때 사회제도는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선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자들이 그 일에 참여해서 그들 사이에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느껴지고 실천되는 민주주의는 그 범위를 선거제도상의 정책이나 절차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제도적 과정을 민주화함으로써 경제와 재무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과 사회 분야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반영되어야 한다.”


[ 2012년 3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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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바겐, 북한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
김광수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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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건 작년 12월 10일이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것은 그 뒤부터 대략 18~19일 뒤였다. 김정일 사망 후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루어졌고 요즘 미국과 북한 핵무기 제거와 에너지, 식량 등에 대해 협상이 한창이다. 한국정부는 예상대로 북미협상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남북대화는 올해 안에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될지 여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인 것 같고...

그럼에도 남한의 99% 민중들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간단하거나 편한 문제는 아니다. 당장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라는 정치적 견변기를 거쳐야 하는데 남한 내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들을 기초로 하여 유권자들이 정치적 선택을 해야하는 와중에 북한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천안함 사건'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으로써 우권자들이 과거에 비해 좀 더 성숙하고 냉정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에도 해방 이후 철저하게 남북대결 상황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온 냉전수구세력들은 여전히 '북한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함으로 경계한 않을 수 없고 남북관계의 정확한 진단과 올바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유권자나 정치인, 지식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응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한반도가 1945년 남북으로 갈라진 것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남북간 긴장과 대립은 지구촌 세계에서 20세기에 벌어진 특유의 '이념과잉'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남북의 99% 민중들은 지난 66년간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저버린 이념과잉에 희생된 것이나 다름 없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념과잉이 진화되어 1인 독재, 새습독재, 일당독재로 진화하면서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고 남한은 남한대로 냉전수구세력과 1% 개득권 세력에 의해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독일이나 예멘 등 이념과잉을 극복한 국가,민족들과 달리 남북 스스로 이념과잉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잘못과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책임은 정치인들과 가득권자들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2012년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아직도 이념대립의 현장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그리고 20세기 이념과잉의 대척점에서 시작된 분단은 21세기 들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체제'의 대척점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까지 든다.(대부분의 정치가들과 학자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개념이지만...) 하지만 남북의 기득권 독점자들이 서로의 협력보다 대결을 통한 정치적 욕구를 위해 대립하면서 남한은 미국에 점점 종속되고 북한은 점점 중국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가 펴낸 북한 문제 분석서다. 연구소측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남한에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3대세습, 핵개발 등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북한 정권이지만, 그에 대한 남한의 대북강경책이 현재의 북한의 대중(對中) 의존도 심화, 남한의 대미 교섭력 약화, 북한 독재체제 강화, 대중 관계 악화 등 해결하기 어려운 더 큰 문제를 야기한 현실에 주목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플리바겐식 접근법’을 통해 남북 모두가 ‘윈-윈’ 할 수 상생의 솔루션을 제안한다. 
 
북한의 정치경제 상황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발표하는 정부나 공공연소의 관련자료나 깊이와 분석력이 턱 없이 모자라는 재벌 편향의 연구소들의 부실한 자료에 비해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연구소가 정한 책의 제목은 나로서도 조금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했다. '플리바겐(Plea-Bargain, 사전형량조정제도)'은 남북관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플리바겐'은 ‘사전형량조정제도’라 불리는 법정 용어로,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거나 사건해결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할 때, 그에 대한 형량을 낮춰주는 제도이다. 미국에서는 웬만한 조직범죄나 마약 관련 사건에 플리바겐 제도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기소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수사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이 낯선 용어를 이야기하는 것은 차갑게 식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실용적, 미래지향적인 대북정책을 펴는 데 ‘플리바겐’이 적절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플리바겐'을 "인질을 숨겨놓은 연쇄 살인범에게 인질을 살리기 위해 형량을 낮추는 협상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상황을 남북 대치상황으로 대입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인질'은 남북의 99% 민중(남한경제와 국가안보도 포함해 생각해볼 수 있을 듯..)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유에 대해 북한측과 남한의 일부 사람들은 불공정하고 부당한 비유라고 반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가 생각할 때, 남북 대결상황에 대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인 남한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플리바겐'이 그나마 현실적인 관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연구소측이 정한 이 책의 목차는 연구소가 애기하고자 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1부는 '대한민국, 북한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문제를 잘못 푸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제2부는 '북한경제, 시장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 지도부가 화폐개혁 실패 등의 경제적 난관을 헤치기 위해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 밖에 없는 '시장경제'와 그로 인해 오히려 취약해지는 경제적 통제력에 대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마지막 제3부는 '북한정치, 경제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북한 지도부가 정치적인 장악력을 잃어가는 딜레마를 설명해 주고 있다.

2008년 2월 대통령 취임 후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형적인 적대정책으로써 지난 정권 시기 어렵게 만들어온 남북관계를 몇 걸음 뒤로 후퇴시켰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은 대부분 중단되었고, 금강산 관광 사업도 멈추었으며, 대북지원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와 적대적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북한 정권과의 협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은 인민들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음에도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김정일 부자를 중심으로 한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금강산에서는 남한의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했고, 연평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포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요구한 채, 남북 협력과 대북 지원을 대부분 중단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시도는 남한에게도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김정일 체제는 결국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였으며,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여전히 통제되지 않고 있다. 우리 최대의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북한의 중국 의존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FTA 추가협상에서 보듯, 대미협상력도 급격이 약화되었다. 만에 하나, 현재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의도한 대로 김정일-김정은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도, 쏟아지는 난민과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남북한 모두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소와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딜레마의 빠진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점진적인 남북 협력의 확대와 북한의 개혁/개방, 그리고 남북 격차 해소와 남북통일로 이르는 경로이다. 이를 위해 세계정세 속에서 북한 정권의 지속 가능성, 북한 지하자원 개발, 대중 의존도 심화, 북한 내부의 변화 압력, 통일비용의 실체 등 다양한 북한 관련 현안들을 연구하여 그 근거들을 제시하는 한편, 북한 경제의 흐름과 메커니즘, 북한 주민들의 경제생활과 2000년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 분석을 통해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 가능성을 엿본다.
이와 같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플리바겐'식 접근법은 남북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여-야, 진보-보수가 대북정책을 두고 벌이는 지루한 대립을 끝내고 발전적 내일을 그릴 수 있는 확실한 대안임을 강조한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남북통일에 대해 찬반의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5천년의 동질성을 간직한 같은 민족이기에,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후손들이 더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경제와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통일이 지상목적이 됨으로써 과정에 무심해지는 불안정한 인간으로서의 본성에 대한 우려, 통일방안이나 방식에 대한 논란과 이해관계로 인해 그 속에 담겨있는 정작 제일 중요한 인간과 평화가 무시되는 것 때문에, 통일이라는 형식 보다 평화와 화해, 협력, 안정, 상호존중, 자립 등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애 앞으로 적어도 100년 정도는 평화체제 속에서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통일을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은 서너 세대 이후의 후손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현재의 구성원들은 남북분단과 남북대립의 당사자이자 희생자들이고 통일에 대한 결정에 따른 장단점은 고스란히 후손들이 감당할 몫이기 때문에...
 
[ 2012년 3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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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재구성 - 글로벌 경제위기 제2막의 도래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 3월 3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Ca'에서 'C'로 한 단계 내렸다. C등급은 무디스가 평가하는 투기 등급 채권 가운데서도 최하에 해당한다. 무디스는 민권 채권단이 그리스 채무를 천 70억 유로 낮춰 주기로 한 채무조정 합의로 인해 그리스 국채의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등급을 낮췄다. 앞서 그리스 민간채권단은 2천억 유로의 그리스 국채에 53.5%의 손실률을 적용해 천 70억 유로를 탕감해주고 나머지를 새로운 장기채권으로 교환하기로 그리스와 합의했다. 이번 사태는 유럽 주요국들이 그리스의 디폴트를 염려한 결과이도 하고 역으로 이러한 구제금융이 주요국의 금융기관에 부담을 주어 주요국의 재정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유럽의 경제위기가 전개될 수 있을 지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지난 1997~1998년 동아시아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가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억한다면 현재 유럽발 금융위기, 재정위기는 자칫하면 히로시마 핵폭탄이나 쓰나미 수준의 파괴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정부, 정당과 기업 뿐 아니라 언론,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도 이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도, 정당도, 언론도, 학계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괜찮다'만 연발할게 아니다. 언론 역시 커다란 사건이 발생할 때에만 간헐적으로 기사로 다룰 뿐 심층적인 분석기사를 내보내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이 책은 반갑고 고맙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정부연구소나 재벌연구소의 자료를 불신하는 내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 비'와 같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예전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대외 불균형과 달러 기축통화제의 모순이 해결되어야 하며, 금융시장을 포함한 자산경제 부문에 대한 규제가 적절한 수준으로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시스템의 문제와 함께 '사람의 문제'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즉 이념에 빠져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잘못된 정책실패를 남발해온 각국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 역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정치권의 무능과 부정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2011년 뉴욕의 '오큐파이' 시위가 이에 대한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민주주와 시장경제가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결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이다.
 
 
연구소는 이 책을 통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전이된 이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위기로, 실물경제위기가 재정위기로, 재정위기가 통화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분석하여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폭발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대니 로드릭의 <자본주의 새판짜기>와 함께 읽으면 좀 더 풍부하고 효과적으로 현재의 세계 경제위기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 그리고 그 한계와 대응방향에 대해 알 수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세 의해 '위기의 재구성'은 어떻게 분석되었을까?
100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지 불과 3년 만에 또 다른 금융위기의 파고가 전세계를 덮치고 있다. 지난 번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전세계가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지자, 각국은 실물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과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의 재정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했다.
원래 미국과 유럽 각국은 재정적자를 감수해서라도 경기를 부양시킨 후 경기가 회복되면 늘어난 세수로 구멍난 재정을 메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회복세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강도도 너무나 미약했다. 실업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실물경제의 회복세도 미미한 상황이다. 문제는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도 전에 나중에 터졌어야 할 재정 문제가 너무나 일찍 터져버렸다는데 있다. 말하자면 금융기관과 가계 및 기업 등 민간부문의 엄청난 손실을 정부가 재정적자로 한꺼번에 떠안는 바람에 공적채무가 폭증하여 국가마저 파산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특히 유럽의 PIIGS(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국가들이 대외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재정위기(sovereign risk)에 처하게 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제2막이 열리고 있다. 각국은 유럽발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또 다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앞날을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론 사태를 계기로 국내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한다는 신념이 깨어진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은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 가계의 과다차입과 과소비 및 부동산투기, 자유방임적 금융자유화를 배경으로 한 증권화 파생상품의 남발, 달러 기축통화제 유지를 위해 무리한 달러 강세정책 남발에 기인하는 대외 불균형 심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2007년 여름에 이 세 가지 요인들의 모순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서브프라임론 사태로 불리는 부동산투기 버블 붕괴가 시작됐고, 이것이 글로벌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2008년에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금융위기가 터진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융위기, 실물경제 위기, 재정위기, 통화위기 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미국은 비록 글로벌 민간금융기관들이 빠르게 이익을 회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은행들의 가계 및 기업대출은 줄고 있고 주택 시장은 더블딥에 빠져 있는 양상이다.
눈을 유럽으로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PIIGS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여전히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 등 상당수 국가들도 떠받치고 있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경우 언제든지 유럽발 제2차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로부터 2011년 이후 세계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정부의 재정동원 능력이 사실상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다. 공적채무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해 더 이상 정부 재정적자 확대에 의존해 경기를 떠받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에 최후 수단으로 2010년 후반부터 FRB와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이 통화증발을 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통화증발책이 기대한 만큼의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통화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화증발책은 각국의 인플레이션과 물가위기를 가져오게 되고 물가위기가 심화되면 각국의 경제 자체가 무너지고 정치권 마저 붕괴될 가능성을 높인다.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면 그 다음에는 손 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경제 전체로 막대한 차입을 통해 부동산투기 거품이 발생한 것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등이 과다차입을 통해 부동산에 자전(自轉)거래 투기를 한 결과 부동산자산 과잉으로 2007년부터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하여 더 이상의 가격상승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장부상으로는 차입한 만큼의 부동산자산이 있지만, 실제로는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가치가 하락하여 90년대 재벌 대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인 등 부동산 투기자들도 파산위기로 몰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거품붕괴는 2008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이를 정부와 공기업 등 공적부문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문학적인 채무 증발을 통해 억지로 떠받쳐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계속 떠받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나 명분이 거의 소진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한국경제는 거품 붕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벌써 거품붕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과다채무의 대가로 경제 전체로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공공요금이나 가격인상, 증세 등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인플레의 역습 그것이 바로 과다채무에 의존한 거품 붕괴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경제 전체의 총 금융채무 분석 결과를 종합해보면, 한국 경제의 총 금융채무는 2010년 9월말 현재 6,840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명목GDP의 6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심각한 채무과다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채무 증가 추이를 보면, 정부부문은 2009년부터, 공기업은 2008년부터 부채가 폭증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개인과 민간기업의 부채는 2008년까지 급증한 후 2009년부터 정체를 보이고 있어 공적부문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경제가 2009년부터 공적부문의 부채 증가에 의존하여 성장해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민간부문의 부채가 2005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8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한 후 2009년부터 정체하고 있는 것은 부동산투기 및 거품 붕괴와 맞물려 있음을 의미한다. 2009년부터 민간부문의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됨에 따라 공적부문이 채무 증가를 통해 거품 붕괴를 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경제대통령'이라는 포퓰리즘으로 당선되었지만 그 이전의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보다 더 무능하고 부정한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일본은 환율방어를 통해 국내 물가를 안정시켜 왔음에 비해 이명박 정권은 통화량을 부불펴 화폐가치를 떨어지게 만들고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율방어를 방치하여 국내물가의 폭등을 불렀다. 결국 일반 국민들은 그동안 물가인상이라는 '간접 세금'으로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준 것 뿐이다. 그런 국민들의 희생에 대해 수출 대기업은 매출과 순이익을 높여 주주와 오너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고용은 늘리지 않고 비정규직만 양산하여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들을 배신해왔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제1야당인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할 지 갈피를 못잡고...
 
그렇다면 결국 일반국민들, 유권자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하여 정부정책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조직할 수 밖에 없다.
 
* 인상 깊은 문단 :
"한국은행의 5만원권 발행은 화폐가치와 관련한 정부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09년 6월 5만원권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부와 정치권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주요 화폐경제 지표들이 조 단위를 넘어 경 단위로 넘어갈 형편이고 기존의 1만원권 화폐로는 화폐 발행비용 및 관리비가 많이 소요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5만원권 발행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거액의 현찰 뇌물수수가 용이해져 부패가 심해질 수 있고,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는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5만원권 발행은 물가관리와 화폐가치 방어 실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고 원...
화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면 굳이 교역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주부들의 체감물가를 들 수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장을 보러 나갈 때 10만원 정도만 있으면 시장이든 할인점에서든 어느 정도 넉넉하게 물건을 살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물가가 폭등하여 몇년 전에 살 수 있었던 물건의 절반 밖에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5만원권 발행은 한국은행과 정부가 물가관리와 화폐가치 방어에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5만원권 발행이 정책적인 업적으로 선전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물가가 낮아져 적은 돈으로도 보다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고액권이 만들어져 비싸진 물건을 편리하게 지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0~90년대 부동산 버블붕괴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환율방어에 성공해 낮은 물가를 유지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230엔 전후 수준에서 1995년 플라자 합의로 145엔으로 급락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는 평균 111엔 전후 수준을 유지했으며, 2010년부터는 80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한때 일본 내 물가상승으로 사용하지 않게 된 1엔짜리 동전도 1980년대 소비세 시행과 함께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장기불황이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를 꾸준히 상승시켜온 것이 일본 경제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정부와 관료, 정치권은 말로는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거 무시하면서도 정부정책의 수준은 일본 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원화는 8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484원 수준이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IMF사태 직전까지는 평균 783원 수준으로 올랐고, 1999년부터 2009년까지는 이전에 비해 약50% 가량 올라 달러당 1,157원을 기록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원화 환율 인상으로 도망가는 경제운용 형태를 바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2003년 이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환율 약세 정책은 양적 경제성장을 보다 쉽게 실현시켜 준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상당한 부작용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율 약세정책은 통화량 증발정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가상승과 분배문제, 성장잠재력 저하 등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출 기업이 유리해지는 대신 수입물가가 비싸져 장기적으로 내수침체가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환율 약세정책은 사실상 소비자인 국민들로부터 (물가상승이라는)세금을 걷어 수출기업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지, 경제규모에 걸맞는 고액권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2012년 3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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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 토지 문제의 해법
김윤상 외 5인 지음, 토지+자유 연구소 기획 / 평사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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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롯데그룹과 GS그룹의 재벌 총수와 일가족 22명이 2005년~2009년 사이에 평창 동계올림필 개최지 인근의 요충지 토지 19만7,063㎡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언론과 시민단체에 못매를 맞고 있다. 이들은 전원주택이나 동호인 주택을 짓기 위해 매입했다고 변명했지만 그들이 지금껏 해온 행위들에 비추어보면 말 그대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당 토지의 시세는 5년 만에 평균 10배 이상 뛰어올랐다고 한다. 올해 들어 재벌들이 소규모 자영업자의 업종인 떡복이와 빵집까지 업종을 확대하여 언론과 시민들에게 비난을 받았었다.
 
작년 '나꼼수'를 통해 시사인의 주진우기자가 폭로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의 사례나 이명박 정권에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나타난 결과를 종합해 보면 한국 특권층의 '토지'에 대한 탐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곡동 사저'의 경우 사저의 매입자금과 차명의혹 뿐 아니라 사저 인근의 적지 않은 토지를 이명박, 이상득 형제 일가가 매입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땅의 특권층들은 공정한 기업활동이나 정직한 치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자신과 지인의 지위를 이용하여 개발정보를 캐내어 토지에 대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을 가장 중요한 치부의 전략으로 삼고있는 듯하다. 몇 년 전 효성물산에 근무하던 친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당시 효성의 조석래회장은 직원들에게 "돈벌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 아니다. 너희들은 손해만 보지 마라. 돈은 내가 부동산으로 번다"고 큰소리까지 쳤다고 친구는 전했다. 재계 25위의 효성그룹 총수가 이 정도 철학이니 그 위와 아래의 그룹 총수 일가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1980년 이후 기업인, 특히 재벌 총수 일가족이나 고급 공무원, 언론인, 교수 등 특권층들이 얼마나 많은 부동산, 즉 토지와 APT를 사고 팔았을까? 지금껏 이에 관한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유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손낙구씨는 <부동산 계급사회>(2008, 후마니타스)를 통해 지난 2005년 행정자치부에서 토지현황과 주택현황을 집계한 결과만 보면 한국에서 '부동산 독점'은 지나치게 과다한 상황이다. 통계를 보면,
- 한국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택의 수가 바로 1천83채인 것이다. 전체 상위 10명이 소유한 집은 모두 5,508채로 한 사람 평균 550채다. 이들을 포함하여 상위 30명이 갖고 있는 집은 9,923채로 1인당 330채씩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 가구의 1%가 전체 주택수의 10%를, 전체 가구의 5%가 전체 주택수의 20%를 소유하고 있다. 당시 전체 주택수는 1,370만채였다.
- 토지의 경우 더욱 심하다. 전체 가구의 27%(500만 가구)가 사유지의 99%를 소유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전체 가구의 5.5%(100만 가구)가 사유지의 74%를 소유하고 있고 상위 10만 가구(전체의 0.5%)는 사유지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주택보다 토지의 편중이 훨씬 극심한 상황인 것이다. 아마도 2012년 현재는 그 비율이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 2000년부터 2006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6년간 집값 상승 총액은 648조원으로 매년 108조원 이상 올랐다. 그중 87%인 566조원이 아파트값이 올라서 생긴 것이고 서울지역 아파트값이 전체의 57%에 해당한다.(참여정부 인사들은 이 통계를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정직한 지식인형' 부동산 전문들이 솔직하게 공개하는 관련 정보다. 내가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토지 및 주택의 독점과 편중현상, 그리고 이러한 토지, 주택의 문제가 사회경제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연관성 분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전문가들 역시 부동산 문제 자체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수준에 따라 대안은 종합적으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김광수경제연구소와 선대인씨 정도가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아주 도발적이다. 저자들은 한국 사회경제구조의 총체적인 문제점의 근원을 '토지'에서 찾는다.  
‘공정사회’를 만들자는데 아무도 믿고 따르지 않는 이유도, 온 국민이 반대하고 사업 타당성도 약한 4대강 사업에 목을 맨 이유도, 고위공직자 후보들마다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재개발 재건축을 둘러싸고 개발주체와 세입자가 격렬하게 대립하는 이유도, 뼈 빠지게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바치는데도 내게는 땅 한 평 없는 이유도, 국민소득이 오르고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데도 분배는 악화되고 있는 이유도, 그 원인은 바로 토지정의 부재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사분규, 행정수도 이전, 부동산 가격 폭등, 4대강 사업, 용산참사 문제 등 한국 사회의 온갖 사회적, 경제적 문제는 "정의에 입각한 토지원리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필자들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사회 전 영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토지의 독자성과 중요성을 드러냄으로써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밝힌다. 또한 토지가 주택, 금융, 세금, 분배, 사회갈등, 복지, 도시계획, 통일, 대안모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정의를 세우는 핵심 요소임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경제학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사회과학이 토지의 독특성과 중요성을 무시하게 된 원인을 지적한다. 오늘날 주류경제사상인 신고전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클라크(John Bates Clark)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토지는 자본의 하나로만 간주되었다. 클라크라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태두가 토지의 독자성을 무시하자 후대의 경제학자들도 따라서 무시했고, 토지로 인해 생긴 수많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엉뚱한 원인진단을 하자 후대의 학자들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 것이다. 경제학의 기본 교과서들인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재정학, 금융경제학 등에서 토지가 등장하지 않게 되자, 이후 경제 분석에 있어서 토지 때문에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들의 주장대로 이 책은 대한민국 최초의 [토지의 정치경제학]이라고 할 만하다. 재화와 용역의 생산.분배.소비를 다루는 경제학이 번성해 있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며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토지를 중심으로 주택, 금융, 세금, 분배, 사회갈등, 복지, 도시계획, 통일, 대안모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 책은, 여러 경제적·사회적 문제가 토지원리를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밝힌다. 토지는 생산수단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자본과 뚜렷이 구별된다. 그리고 자본과 달리 재생산이 불가능하므로 한 사람의 소유는 타인의 손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토지 가치는 내부가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불로소득이며, 또한 그 가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투기가 일어나기 너무 쉽다. 자본투자와 달리 토지투자는 비생산적이다. 이러한 토지원리를 존중하고 특히 토지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하면 우리가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2012년 현재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는 복지강화다. 복지에 인색했던 한나라당도 세금을 더 많이 거둬서 복지에 투입하자는 대책을 내놓을 정도다. 그러나 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왜 한국 사회에 이렇게 복지수요가 커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부정의(不正義)한 토지제도가 핵심 원인임을 밝히고, 토지정의를 확립하면 거대한 복지수요의 상당부분이 줄어들 수 있음을 증명한다. 필자들은 잘못된 토지제도가 어떻게 시장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며 얼마나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밝히고, 정의로운 토지제도를 수립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99%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한국 사회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당과 정치인이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내걸어야 하는 국가 정책의 핵심은 토지 불로소득의 사유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논리적으로 경제학에서 토지를 자본과 동급의 '생산수단'으로 격하시킨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신선하고 긍정적이었다. 금융 불안정과 지대신용화폐의 연관성, 토지에 대한 불로소득의 환수를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 정책대안, 북한의 토지문제 해결책 등은 여러 정당과 정책당국이 참고할 만 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불로소득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관심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다만 저자들의 문제제기와 대안이 사뭇 도발적이고 획기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컸다. 토지를 중심으로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과점에서, 금융불안정과 지대신용화폐의 관계, 토지불로소득의 문제점 등 저자들의 이론과 대안을 수립하는데 있어 근본이 되는 주장에 있어 구체적인 통계와 분석이 많이 부족했다. 주로 논리적인 주장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불로소득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그 금액이 얼마나 되며 어떤 과정으로 어떤 계층에게 돌아갔는지, 그 사이 GDP나 근로소득, 사업소득, 정부예산은 어떻게 발생하고 투입되었는지, 이자율이나 물가상승율 등 거시경제까지 고려하여 저자들의 주장을 펼쳤다면 신뢰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의 방향이 타당하다는 데 공감한다. 저자들이 이어나가던, 다른 사람이 진행하던 추가 연구와 발표를 기대해 본다.
 
[ 2012년 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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