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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의 기적 - 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 ㅣ 몬드라곤 시리즈 2
김성오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월
평점 :
<몬드라곤에서 배우자>과 이 책에서 읽은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발전 역사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탐욕을 극복할 수 있는 생산 및 기업운용 방식이다. '몬드라곤'은 자본가 또는 기업가 개인의 성품이나 양심이 아닌 자본의 구성, 기업의 지배구조, 회사의 목표와 운영구조의 여부에 따라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기업의 전개과정과 전혀 다른 기업의 발전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화와 역사는 바스크 지역이 특별한 지역이라고 해도 스페인을 비롯한 서구 유럽의 문화나 역사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에 나타난 것처럼 스페인 바스크 지역은 이미 18세기부터 협동조합과 유사한 협력적인 조직이나 기업이 태동한 바 있다. 그리고 스페인 내 바스크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가 '몬드라곤'의 태동과 성장의 밑받침이 된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고 돈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라는 뛰어난 사상가이자 지도자가 있었기에 '몬드라곤' 복합체의 태동과 성장이 가능한 것도 분명하다. 또한 '몬드라곤' 복합체의 시초인 '울고'가 처음 태동한 1950년대의 세계경제와 지역 내 경제사정은 21세기인 지금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몬드라곤'의 경험을 현재의 한국에 무차별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나 동양 역시 전통적으로 '계'나 '두레'처럼 마을 단위, 지역 단위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여러가지 자치조직과 경제조직이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19세말 이후 서구문물의 무차별적인 침탈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뛰어난 조직가 같은 사람의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몬드라곤' 복합체의 운영구조와 역사에서 21세기의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 있느냐일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기업의 목적과 지배구조에 따라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던 전혀 다른 기업 모델이 가능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기업가와 노동자의 분리와 대립, 기업의 소유자와 생산자의 분리와 대립, '성장만능'의 기업이 아닌 '양질의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 등이 여기에서 핵심적인 구성요소다.
비록 '몬드라곤' 복합체 하나의 사례를 그대로 한국에 기계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전세계적인 협동조합의 현황과 역사도 전혀 모르고 우리나라의 현실과 사례도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몬드라곤' 복합체의 사례는 내가 협동조합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 당장 하루아침에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더 연구하고 세미나를 하고 실험하고 실패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윌리엄 화이트의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Making Mondragon>가 1940년대의 준비과정과 1956년 '울고' 생산협동조합의 설립부터 1990년 협동조합 복합체의 설립까지의 바스크 지역의 협동조합의 성장과정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199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모습을 말해준다. 몬드라곤을 중심으로한 거대한 협동조합 복합체는 2006년 '몬드라곤'이라는 단일한 이름과 브랜드로 통일되었다.
저자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1980년대 스페인의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였듯이 1990년대 말 동아시아발 경재불황을 극복했고 2008년 미국발 전세계 금융위기, 경제위기도 극복해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몬드라곤은 실제 외형적인 수치상으로도 1990년 보다 훨씬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0년 현재 260개 개별 회사(협동조합)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기업의 전체 자산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53조원, 제조업과 유통업의 연 매출액은 약 22조원 규모다. 약 8만 4천명의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데, 그 중 3만 5천명이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고 나머지는 조합원으로 전환 중이라고 한다. 해외에 80여개의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고 제조업 매출의 약 60%가 수출을 통해 올린다.
몬드라곤 내 유통부문의 핵심기업인 '애로스키'는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 약 2,100개 매장을 갖고 있고, 금융 부문의 핵심기업인 '노동인민금고'는 스페인에서 5위 안에 드는 대형은행으로 전국에 420개 지점을 갖고 있다. 몬드라곤 대학교는 공학부, 경영학부, 인문학부를 포괄하면서 바스크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기술연구소들이 소속되어 있다.
저자는 몬드라곤을 좀 더 현실감 있게 설명하고자 책 속에 자산 규모가 비슷하고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된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와 비교했다.(물론 몬드라곤은 금융, 제조업, 유통, 교육·연구 부문을 포함한 기업 집단이고, 현대자동차는 단일 기업이므로 단순 비교는 무리일 수 있다.)
몬드라곤과 현대자동차는 자산 규모(몬드라곤 자산 53조 원, 현대자동차 41조 원)와 매출 규모(몬드라곤 매출 22조 원, 현대자동차 36조 원)가 비슷하고 2000년대 들어 더욱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글로벌화 전략(몬드라곤 수출 비중 60%, 현대자동차 수출 비중 62%)을 펼치는 양태도 비슷하다.
그러나 몬드라곤과 현대자동차를 회사 소유구조와 급여, 그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문제로 바라보면 많이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소유구조이다. 몬드라곤의 회사 자본금은 노동자 조합원들이 소유하고 있지만,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들이 주식 지분의 큰 비율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회사 경영을 좌지우지한다. 또한 급여 측면에서 볼 때 몬드라곤은 조합원 노동자와 비조합원 노동자 간에 급여 차이가 없는 반면, 현대자동차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여 차이가 상당하다. 다시 말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몬드라곤에서만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차이는 회사의 성장과 고용의 양적, 질적 성장이 정비례하는지 그렇지 않은가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현대자동차는 최근 지난 달 대법원 판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고용의 양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수 많은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외주화는 현대자동차의 매출과 이익 증대에 관계없이 고용의 양과 질을 현격하게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사회 내에서 왜 기업이 존재하고 성장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성장이 이루어지면 고용이 확대될 것이다”라는 목표 아래 끊임없이 성장 위주의 정책이 펼쳐졌다. 이러한 '성장만능주의' 이데올로기와 신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롯하여 역대 정부의 책임자와 관료, 언론, 학자들의 지속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20년의 경제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논리는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고용 없는 성장은 죄악에 가깝다며 이를 비판한다. 그리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고용 확대를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허접한 일자리가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로! 한마디로 질 좋은 고용을 위한 성장!”이다. 저자는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고용 창출’이었음을 강조한다. 즉 몬드라곤에서는 고용 창출과 기존 조합원의 이익이 부딪칠 때면 언제나 노동자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고용 창출에 방점을 찍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역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성장의 목표를 ‘질 좋은 고용’에 둔다면 고용과 성장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제6부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협동조합 경험과 현황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생산공동체운동과 자활공동체운동, 저자의 경험에 근거하여 정리한 대안기업운동, 원주 지역에서 일어나는 ‘이종 협동조합 간 연대에 의한 지역공동체 운동’도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2012년 3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