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 갈색 눈 -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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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4월 4일은 미국인들이 절대 잊지 못하는 날이다. 당시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던 흑인 차별에 대항해 싸우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담임선생이었던 제인 엘리어트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다는 것을 느꼈고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여 거의 밤을 세웠다. 그녀가 아이들과 처음 시작한 '차별 수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책은 그녀가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적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게 했던 유명한 실험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녀는 눈동자 색으로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첫 날 '갈색 눈'의 학생들이 '푸른 눈'의 학생들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하고 특혜를 주었다. 갈색 눈의 학생들은 쉬는 시간을 5분 더 가질 수 있었고, 점심을 먼저 먹으러 갔으며, 음식도 더 먹을 수 있었다. 교실 앞쪽에 앉는 것도, 줄반장을 하는 것도, 놀이 기구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놀 수 있는 것도 갈색 눈의 아이들이었다. 또한 푸른 눈의 아이들은 갈색 눈의 아이들에게 초대받지 않으면 갈색 눈의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다.
다음 날, 푸른 눈의 학생들과 갈색 눈의 학생들의 역할은 뒤바뀌었다. 푸른 눈의 학생들은 전날 갈색 눈의 아이들이 받은 특혜를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학생과 교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틀간 ‘열등하다’는 딱지가 붙은 아이들은 정말로 열등한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보였고, 성적도 형편없었다. ‘우월한’ 학생들은 성적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친구였던 아이들을 차별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다.
‘차별의 날’ 첫 번째 수업 이후 아이들은 이렇게 다양하고 솔직하게 ‘차별’에 대해 정의하는 글짓기를 했다. 아이들은 글짓기에서 자시들이 스스로 경험한 차별을 통해 차별이 얼마나 또 어떻게 나쁜지에 대해 강렬한 느낌을 받았는지 말한다. 또한 이 실험 후에 그녀는 '편견은 차별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식했다. 혐오스럽긴 할지언정 둘 중 훨씬 덜 해로운 것은 편견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녀는 편견은 주로 사람들의 삶을 그들이 살아가는 그대로 제한하고, 시야를 좁히며, 세계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반면에 차별은 다른 사람들의 삶, 수백만 명의 삶을 불구로 만든다. 마틴 루터 킹도 편견이 아니라 차별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을 학생들이 단 하루라도 살아보길 바랐다. 그리고 그 하루의 고통이 그들로 하여금 이후 평생에 걸쳐 단 한 사람에게라도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끼치기를 거부하도록 돕는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 하루의 연습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차별 수업을 통해서 그녀의 3학년 학생들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눈의 색깔 때문에, 목에 두른 깃 때문에, 또는 피부색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교사인 제인 엘리어트가 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비록 일시적이나마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끼칠 위험, 그리고 학부모와 동료 교사의 분노를 감수하는 데에는 대단한 용기와 헌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와 이후 일어난 일들은 그 모든 것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한 교사가 인종차별주의로 아이들의 마음이 불구가 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그녀가 차별 실험 수업을 시작한 뒤 몇 년간, 그녀의 네 자녀는 한 번 혹은 그 이상 다른 학생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폭력을 당하는 희생자가 되었다. 그녀의 3학년 학생들이 당했던 것처럼, 자녀 역시 종종 ‘깜둥이 애인들’이라고 불렸다. 결국 제인 엘리어트의 가족은 라이스빌을 떠나 가까운 마을로 이사를 갔고, 그녀의 아이들은 다른 학군에서 공립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엘리어트는 1970년대 중반 시카고에서 살해 협박을 당하는 바람에 한밤중에 흑인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을 탈출하기도 했고, 살해 위협도 여러 차례 받았고, 교육 도중 백인 남자에게 칼로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근까지도 기업, 정부 기관, 대학에서 다양성 교육을 해오고 있다.
 
제인 엘리어트는 읽기를 배우는 데 뒤쳐져서 특별지도가 필요하다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두 번째로 이 차별 실험 수업을 진행했으며, 세 번째 진행한 수업(학급 아이들의 여덟 명은 푸른 눈이었고, 또 다른 여덟 명은 갈색 눈이거나 녹색 눈이었다. 첫날 차별을 받는 갈색 눈의 아이들은 목에 깃을 하나씩 둘러 멀리서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했고, 다음 날에는 푸른 눈의 아이들이 목에 깃을 둘렀다.)은 저명한 상을 받은 ABC TV 다큐멘터리 [폭풍의 눈(The Eye of the Storm)]에 담겼다. 이 책 안에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당시의 제인 엘리어트와 아이들 모습, 촬영하는 모습, 동창회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인종이나 피부색 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동남아, 조선족,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이나 혼혈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의식과 행동이 자주 기사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후 미국식 문화가 주로 수입된 영향이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또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독특하다. 흑색이나 유색인종은 차별하면서 미국인이나 유럽인과 같은 백색인종에 대해서는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5월 현재 130만 명 이상의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출생하는 아이 100명 가운데 4명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통계가 발표된 바 있다. 2010년 국내에서 결혼한 부부 열 쌍 중 한 쌍이 다문화가정일 정도로 이민자와 이주자 수가 늘어나고 있고, 2011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피부색, 인종, 민족, 종교, 출신 국가 등 다문화적 요소를 이유로 차별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한 사례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두 배로 급증했다. 또 2012년 4월 여성가족부가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서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36퍼센트였다. 이는 유럽 18개국의 평균 찬성 비율인 74퍼센트의 절반 이하다.
이런 한국의 실정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번역자인 김희경 씨가 해설 및 옮긴이 후기에서 자세하게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차별이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가 극복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문제는 공동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고 세대와 세대가 거듭될 때마다 반복해서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일부러 깨우쳐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공동체가 계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숙제와 같다는 것을.
 
사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피부색이나 인종에 의한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이란 단어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불평등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우리사회는 상당히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 출신 지역에 대한 차별(지역차별)로 존재해왔고 자산의 정도에 대한 차별로도 존재해왔다. 지금까지도 재능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오로지 시험성적만으로 대우하는 교사와 학교도 아이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며, 대학 졸업장 유무에 의해 취업과 승진에 차별을 두기도 했다. '학벌(독점)만능주의'는 실력과 경쟁력이 아니라 서울대 등 일부 명문대 졸업장만으로 사회의 요직을 독점하여 전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고, 차별을 억압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재벌과 기득권에게 차별적인 혜택을 주어왔다. 동일한 업무와 동일한 업무능력을 발휘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임금과 복지에 차별을 두는 기업들의 행태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정치적, 문화적으로 차별하고 '종북'이나 '좌파'라는 식으로 억압하려는 정치권과 기득권자들의 모습은 차별이 우리사회 전체에 뿌리깊게 박혀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 인상 깊은 문장 :

“지금 당신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게 된 사연은 열한 살 소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도화지의 위쪽 절반에는 주먹만 한 글씨로 ‘다른 나라 사람을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그 아래엔 덩치 큰 아이 세 명이 나란히 서서 혼자 동떨어진 작은 아이를 향해 소리친다, “저리 가! 너는 우리랑 달라!” 작은 아이는 이 세 명의 아이에게 맞서는 모양새로 이렇게 항변한다. “아니야! 나는 너희와 같아.” 작은 아이의 모델이자 그림을 그린 소녀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다. ‘다문화’라고 놀림 받는 게 얼마나 가슴에 맺혔던지 그림을 그리고도 모자라 도화지 오른쪽 위 귀퉁이에 별표를 치고 ‘중요’라고 적어놓았던 소녀가 맺어준 인연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끈을 통해 다가온 당신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이 21세기 한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차별은 오로지 나쁜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삐뚤어진 마음일 뿐인가? 나는, 그리고 당신은 차별 따위 하지 않는 사람인데 왜 차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제인 엘리어트가 스무 명 남짓한 아이를 대상으로 ‘차별의 날’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고심을 거듭하고 번민했던 흔적이었다. 스스로 여태까지 해본 일 중 가장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면서도, 한 번의 실험이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면서도, 가족이 폭력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울지언정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을 아이들이 단 하루라도 살아보게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한 집단을 향한 다른 집단의 무분별한 차별과 증오의 두터운 관념에 균열을 내고 싶었던 그녀의 의지가 놀라웠다." 
 
[ 2012년 7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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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권리 : 폴 라파르그 글모음 - 필맥 휴대책
폴 라파르그 지음, 차영준 옮김 / 필맥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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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의 <피로사회>,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리>와 함께 읽은 책이다. 물론 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게으를 권리]가 읽을 거리였다. <피로사회>는 세계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장악한지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 자본주의의 사회문화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만능주의"를 불러왔음을 비판했고, <필경사 바틀리>는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월가를 배경으로 자본주의가 가져온 근대문명의 상식과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책 <게으를 권리>의 표제작은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유럽에서 겉으로는 '노동의 신성한 권리'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일삼고 있는 자본가들과 부르조아지 지식인들을 비판했다.

 

저자 폴 라파르그는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으로 19세기 중순 이후 지금까지 인류의 사상과 행동에 큰 업적을 남기고 있는 칼 마르크스의 사위다. 그는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다. 이 책은 폴 라파르그의 대표적인 글 7편을 묶은 것이다. 이들 글은 1883~1904년에 집필된 것들이다.

 

표제작인 [게으를 권리]는 '일할 권리를 앞세우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는 풍자적인 형식으로 노동자의 삶을 억압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글이다. 그는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는 과거에 부르조아 철학자와 논객들이 전개했던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서 "부르조아지는 17~18세기에 성직자들에 의해 지탱되는 봉건 귀족계급에 대항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직자들의 규범인 '금욕'과 '복종' 대신 '자유사상'과 '무신론'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러나 일단 승리를 거두자 그들은 어조와 태도를 싹 바꿔, 이제는 종교를 이용해 자신들의 경쩍, 정치적 패권을 정당화한다. 노동자들에게 금욕을 설교하기에 이른 것이다. 기독교 윤리를 천박하게 모방한 자본주의 윤리는 노동자의 육체에 파문을 설교했다. 생산자인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최소한으로만 제공하고, 그들의 기쁨과 분노를 억압하고, 그들에게 기계의 일부가 되어 휴식도, 대가도 없이 일만 하라고 선고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들이 기묘한 환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꼬집는다. 그것은 일에 대한 애착 또는 노동에 대한 처절한 열정인데, 그 열정이 개인과 그 후손의 생명력을 고갈시킬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이 상품생산을 고조시키고 노동자를 착취하여 잉여자본을 축적하고 과잉자본과 과잉상품을 해소하기 위해 상품시장과 원료를 찾아 식민지를 개척하도록 하는데 노동자들이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라파르그는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의 자연적 본능으로 돌아가 부르조아 혁명의 형이상학적 법률가들이 지어낸 무기력한 '인간의 권리'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성스러운 '게으를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하루에 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노동과 여가, 신성함과 게으름에 대한 그리스와 로마, 중세 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기도 한다.

 

두 번째 작품 [추상적 개념의 기원]은 철학적, 언어학적, 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인간의 두뇌에 형성돼있는 개념의 본질에 대해 논의한다.
세 번째 작품 [아테나신화]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유래와 아테나와 관련된 신화의 의미를 따져본다.
네 번째 작품 [마르크스에 대한 회상]는 자신의 장인이자 열정적인 학자였던 마르크스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서술한다.
다 섯번째 작품 [말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노동자의 처지를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표제작인 <게으를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
여섯 번째 작품 [사회주의와 지식인]는 지식인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당대의 지배체제에 아부하면서 생존을 구걸하는 모습은 역사를 초월하는 것 같다.
마지막 작품 [여성문제]는 여성의 능력과 지위에 관한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대안의 관점을 제시한다. 유럽 사회주의자들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에 이미 이미 사회경제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체제와 구조를 실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로의 '세기전환기'에 유럽의 혁명적 지식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마치 그 시대 사상적 운율과 정신적 풍경의 한 단면을 보고 듣는 것 같다.

 

폴 라파르그는 1842년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혼혈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하여 의학을 공부해 의사로 일하면서 아나키스트 성향의 프루동주의자로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제1인터내셔널의 프랑스지부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865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마르크스,엥겔스와 친분을 맺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는 1882년에 파리로 돌아가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새로 설립된 프랑스 노동자당을 지도했다. 그는 이때 의사로서의 일을 중단했고, 이후 죽는 날가지 프랑스 노동자당의 대표적인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중받았으며, 정치활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됐다.
1911년 69세가 된 라파르그는 노쇠함으로 인해 인생을 바쳐 운동에 더 이상 기여할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아내와 동반자살을 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 2012년 6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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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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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2주년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시키고 사회와 민족, 사람들을 양극으로 갈라 끝없이 갈등과 반목을 하도록 만들어버린 동족 간의 전쟁... 전쟁 이후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전쟁 중'이라는 빌미로 민중들의 자유로운 의사와 권리를 박탈하고 특정 계층이 부와 권력을 독점해왔다. 남북이 휴전선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한 현실은 남북 내부에서 자유로운 사상과 학문이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았고 이데올로기와 폭력의 과잉을 불러왔다. 종북과 좌빨의 냉전 이데올로기로 우울한 사회...

한국전쟁에 대한 학문적 평가 역시 남북 모두에서 객관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고 권력층의 '결론'와 다르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매장당해 왔다. 따라서 한국 내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 학술적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 모두 권력층에 의해 전쟁사와 현대사 연구가 통제되었음과 더불어 그 마저도 통사적 시각과 전쟁 전략전술적 측면, 가술적 측면, 인과측면만 다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실제 전쟁에 자원하거나 끌려가 전쟁터 현장에서 죽어간 수 백 만명의 일선 병사들의 이야기는 거의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 병사들의 부모형제, 친척 지인들의 삶과 생활 역시 공식적으로 남아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참상을 구체적으로 견뎌낸 이들의 이야기가 빠진 전쟁사, 현대사가 '역사'로서, '연구'로써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우리가 거의 모르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군인들의 생각과 생활, 그 가족들의 삶과 혼란이 생생하게 그리고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책을 엮은 이흥환은 KISON(Korea Information Service on Net) 프로젝트 선임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2008년 11월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열람실에서 한국전 당시 미군이 노획한 북한 문서의 목록을 작성하다가 이 편지들을 처음 만났다. 문서 상자 1,100여 개를 이미 들여다본 상태였다. 편지들은 문서 상자 1,138번과 1,139번 두 곳에 들어 있었다. 두 문서 상자에는 편지 728통과 엽서 344매가 들어 있었다. 노획 후 비밀로 분류해놓았던 것을 미 국립문서보관소가 1977년 비밀을 해제해 일반에 공개했으니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자료가 된 지 30년이 넘었다. 
 
편지는 대부분 1950년에 쓰인 것들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또는 직후이다. 인민군대에 간 남편에게 곧 면회를 가겠다며 쓴 편지, 폭격이 쏟아지는 와중에 살아 있다는 소식만을 긴급하게 휘갈겨 쓴 편지, 자식 셋을 군에 보낸 어머니를 위로해달라고 동네 형에게 부탁하는 편지, 어떻게든 아이들 죽이지 말고 잘 키워달라고, 살아만 있어 달라고 아내에게 당부하는 편지, 폭격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놀라지 말라”면서 전한 편지, 속옷, 양말, 발싸개 등을 사가지고 빨리 면회와주십사 아버지에게 떼쓰는 인민군 특무장 아들의 편지, 결혼 날짜 받아놨으니 속히 집으로 오라고 아들을 호출한 아버지의 편지 등 갖가지 사연을 담은 이 편지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편지를 보낸 지 62년이 흐른 지금까지 수신인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군이 노획한 문서 가운데 꽤 많은 문서들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이 편지 뭉치들은 누군가 손댄 흔적 없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평양중앙우체국 소인이 찍힌 것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1950년 10월 미군이 평양을 점령했을 때 평양중앙우체국에서 미처 배달하지 못한 편지들을 대량 노획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는 북한 안에서만 오간 것들이 아니다. 남북을 넘나들었음은 물론, 흑룡강성, 산동성 등 중국과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등 소련과도 오간 사연들이다. 편지는 노획했을 때 상태 그대로 편지 봉투에 들어 있었다. 편지지와 편지 봉투는 신문지를 자르거나 찢어 만든 것부터 누런 마분지 등 겨우 종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흥환은 1,068통의 편지를 샅샅이 살피면서 그 가운데 113통을 골랐다. 그중 68건은 편지글을 옮겨 쓰고 이해를 돕고자 편지에 대한 설명글도 적었고 45건은 설명 없이 화보로 구성해 이 책을 엮었다. 어느 것은 편지 원본을 다 싣기도 했고, 여러 장 가운데 한두 장만 골라 실은 것도 있다. 내용도 일부만 옮겨 적은 것도 있고 전체 내용을 다 옮긴 것도 있다. 

이 편지들은 한 개인이 개인에게 보낸 사신(私信)이다. 공문서도 아니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기록도 아니다. 그러나 엮은이는 이 편지들이 헝클어졌던 한국 현대사의 한 시기를 보여주는 1차 사료로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판단했다. 이 편지들이 남북한 체제 연구, 한국전 전후 시기의 사회상 연구에 꼭 필요한 사료가 아니라고 한다면 사학이란 것은 공허하고 맹목적인 학문일 것이다. 또한 이 편지들은 ‘전쟁 문학’이라는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다. 딱딱한 역사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생생한 육성 증언의 목소리가 담긴 한 시대의 증언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남한에서도 이러한 기록과 증언들을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전쟁터 현장에 있었던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이승으로 떠나기 전에...

현재 편지의 원본은 모두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서고 밖으로 가지고 나오지 못하는, 미 정부의 소유물이다.(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미국이 북한에 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는 모른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가능할지...)  이 책에 실린 편지 사진들은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편지 원본을 현지에서 디지털 복사한 것이다.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은 이 편지를 포함한 노획 북한 문서 전량과 다른 한국 관련 문서를 수집하는 사업을 2004년부터 해오고 있다. 엮은이가 이 편지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국립중앙도서관의 이 문서 수집 작업에 참여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편지들은 개인의 쓴 글로, 글에 대한 권리(literary right)는 글쓴이, 즉 발신인이나 편지 수신인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엮은이는 이 편지의 존재를 알고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의 몇몇 주소지를 들고 수신인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이 책을 보고서 편지의 주인공이 직접 나타나준다면,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든 민간 차원에서든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이 편지 묶음의 반환을 요청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출간 의미는 한층 더 커질 것이다. 
전쟁은 남과 북을 가로막았으나 편지는 전선과 국경을 넘나들었다. 

전사(戰史)보다 더 생생하고 소설보다 더 감동적인, 전쟁이 써낸 이 편지들은 반세기가 넘도록 미 국립문서보관소 창고 안에서 수취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역사학자가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정치는 개개인의 삶과 행복을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개개인을 보살피지 못하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다. 따라서 전쟁은 정치는 커녕 "특정한 세력의 이익을 위한 광기에 개인들이 희생되는 것"일 뿐이다.
 
* 기억에 남는 편지 :
"어머님 전 상서. 어머님 그동안 어린 자식들을 시중하시기에 얼마나 큰 고생을 하십니까. 그간 어머님 위태만안하시오며, 동생 전환, 순복, 순옥, 무남, 충남, 용남, 영실이도 또 우리 처도 몸이 다 무사하며 건강한지요. 저는 남포 집에서 염려하여 주시는 덕으로 오날것(오늘까지) 건강히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중략) 제 부탁은 어머님 어린 자식들 잘 기르시기에 힘드시겠지만 공습에 몸들을 주의하시고 병에 걸리지 않게 하고 있다 평화가 오면 씩씩한 몸으로 돌아갈 때는 반가히 만나길 꼭 약속합니다. 림해 형님이나 수림한테 저는 만경대 문화군관학교로 갔다고 알리시요. 그리고 쌀 배급은 꼭 수속하세요. 리장한테도 부탁하였습니다. 증선 동무와 원섭 동무에게 소식을 전하시요."(‘자식을 서이나 전선에 보낸 우리 어머님’ 중에서)

"…… 이곳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시우. 생각을 하여 봤자 도움이 없으니까. 춘길이 춘덕이를 잘 성장시켜 기르기를 바라우. 아모쪼록 춘길과 춘덕을 죽이지 말고 길러주시우. 만약 먹을 것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잘 길러주시우. 이 몸은 언제나 그리운 춘길과 춘덕이를 볼까. 금일 밤에도 춘길과 춘덕이를 보았는데 눈을 뜨니 꿈이었습니다. 생각은 더 말할 수 없고. …… 춘덕이는 수개월 전에는 병으로 고생한다고 하더니 죽지는 않았는데 금일은 별 생각 다 납니다. 그리운 춘길과 춘덕이를 언제나 보리우. 춘길과 춘덕이여, 절대로 앓지 말고 자라라. 끝으로 도시로 나가지 마시우, 절대로."(‘아이들 죽이지 말고 잘 길러주시우’ 중에서)

"사랑하는 오빠에게. 그동안 몸 건강하여 군대에 열중하고 있겠지? 우리 집안 인간들은 다 안녕히 있으니 그 걱정은 말고 오래비 네는 힘껏 마음껏 우리 조국에 바치어 완전 동립(독립)을 위하여 싸우라. …… 오래비 네 덕택으로 배급을 타 먹는다. 배급은 한 달에 3번씩 탄다. 오래비 네 편지를 받아보고 얼마나 깊어(기뻐)했는지 모르겠다. 오래비 네 여섯 동무가 다 함께 있다는 것을 보고 더 한층 깊어했다. 네 편지를 받아보니 노일이 형님한테도 편지를 하고 다 잘 있기를 써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일이, 일섭이는 인민군대를 안 나가구 집에서 논다."(‘오래비 네 덕택에 배급을 타 먹는다’ 중에서)

"사랑하는 귀란 동지 앞 …… 그동안 많이 섭섭하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자, 일 년이 넘도록 편지 한 장 하지도 않고 애인 말뿐이지 자, 동에가 있는지 서에가 있는지 주소라도 알면 편지라도 하겠는데, 또 그동안 저에게 편지 수차 했는지도 모르겠으나 회답도 오지 않지, 퍽 궁금도 하며 섭섭도 하였겠다 생각됩니다. 전번 주소는 내가 출장 갈 때 비슷하게 듣고 간 것이라 부대에 와서 본 즉 주소 번호가 틀렸습니다. 이번 치는 명확한 것입니다. 
…… 귀란 동무, 내가 조국 강토에 와서 있을망정 나의 어머니를 모르거나 귀란이를 모르거나 있던 곳을 모르거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요. 동무가 수고를 얼마나 많이 한다는 것을 내가 다 파악하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하루를 천추 같이 여기실 어머님을 부디부디 동무가 나를 대신하여 마음 끝 봉양하여주옵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부탁은, 어머님의 기념사진 동무와 같이 찍어두기를 바랍니다. 부쳐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동무 자서로서 이 편지 회답을 혁명자 입장에서 잘 써서 한 장 회답하시요. 나의 기념사진 한 장을 동무에게 보냅니다. 이것으로 철필을 놓습니다."(‘내가 떠나와 있을망정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오’ 중에서) 

"승요 좀 똑똑히 보아라. 금일이 양 10월 11일인데 편지는 10월 15일에(9월 15일의 잘못인 듯: 편집자 주) 보낸 것과 25일에 보낸 것이 오날이야(오늘에서야) 함께 와닷다(와 닿았다). 그런데 다름이 안이와(아니라) 네 말이 한마디도 깨다라 알 수가 없써서(깨달아 알 수가 없어서) 곤테(고쳐서) 똑똑히 외견한 말을 원문으로 써서 보내라. 

"…… 반드시 모(母) 내가 보래는 뜻은(꼭 어미인 내가 봐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무슨 삭건인지(사건인지) 알 수가 잇니. 니불을 지고 가볼내도 네 말 한마디 디더 보고 갈낸다(이불을 짊어지고 가보려 해도 우선 정확한 네 말 한마디를 먼저 들어보고 가겠다)."(‘도무지 한마디도 깨달아 알 수가 없으니’ 중에서)
 
[ 2012년 6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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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한알 속의 우주 -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개정판
장일순 지음 / 녹색평론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장일순 선생은 한국전쟁 이후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고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테타 이후에는 사회운동가로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꾸준하게 반독재 사회운동을 하던 그는 1977년 "종래의 방향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때까지 해오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1983년 도시 농촌 직거래조직인 '한살림'을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생명운동을 전개했다. '한살림'은 한국 내 협동조합운동의 첫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장선생은 1955년 원주시 봉산동에 직접 토담집을 만든 이후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이 책은 선생이 돌아가신(1994년 영면) 후 주변사람들이 뜻을 모아 선생의 문집을 내기로 하여 발간된 것이다. 장선생은 평소에 명징하고 삶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를 주변인들에게 많이 했지만, 글을 남기지는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본인이 스스로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박정희 군사통치 시절에 '글'을 남기면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이현주씨가 서문에 밝혔듯이 사색을 많이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좋은 말과 교훈과 모범을 보여준 과거 성인들(공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의 삶을 본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집은 198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장선생이 몇 잡지에 실은 글과 한살림공동체의 각종 모임에서의 강연록, 농민회나 대학교 특강록 등과 대담록으로 엮어져 있다. 쉽고 평이한 말과 글로 채워져 있는 강연이나 기고문 속에는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인간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햇빛과 물과 공기와 음식물(풀과 쌀)이다. 풀 한 포기가 싹이 터서 자라고 쌀 한 톨이 자라 벼가 되고 곡식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햇빛과 공기와 흙이다. 즉 지구상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 조건은 지구와 해와 달이고 곧 우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일순 선생은 우주와 인간과 지구상의 생명체는 한 몸이라고 말한다.

나락 한 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그 속에는 무수한 생명의 싹이 들어있고 그 싹들은 우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고 '축소된 우주'인 셈이다. 인류의 현대과학이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로써 이론적으로 '추측'하는 원자와 미립자의 존재양식은 우주의 존재양식과 다름이 없다.

장선생은 이 단순한 원리와 연결하여 인간의 삶과 행동, 종교, 공동체, 협동조합운동, 생명운동을 이야기한다. 인간중심, 인간지배 그리고 이분법과 경쟁으로 이루어진 서구사상이 지구와 자연을 파괴, 고갈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 자신들의 삶과 사회까지도 파멸시켜 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기독교 하느님과 불타 석가모니는 보이지 않는 곳이나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 세상만물 속에, 사람들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특히 그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사상과 천도교에서 서구의 기독교 사상과 동양의 유,불,선 사상을 아우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장선생은 말이나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실천과 삶으로서 한살림 공동체를 시작하고 운영했던 경험을 설명한다. 그에게 한살림운동은 생명사상이자 공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장선생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에 대해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나꼼수 김어준의 말처럼 "정치가 내 생활의 스트레스"라고 생각되어 내가 평소보다 조금 더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져온지 1년이 되어간다. '관심'이라 하기에는 좀 우습기는 하다. 과거와 달리 신문방송 정치란을 좀 더 관심있게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정치분야와 관련한 책도 읽어보고, SNS에 사회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내 생각을 밝히고, 정당 가입하여 가끔 활동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자원봉사한 정도다.
작년부터 계속 느껴왔던 것이지만, 지난 4월 총선과 5월부터 시작된 통합진보당 사태를 전후한 소위 진보적 시민이나 진보적 정치세력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삶과 유리된 정치, 개개인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동떨어진 진보운동, 담론이나 이론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지식인, 공동체 의식과 협력 정신이 사라진 대중정서 등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나 스스로도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하고 하루하루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고 바람직한 생활을 해나가지 않은 채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고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 2012년 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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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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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의 <피로사회>와 함께 세미나 교재였던 책. 책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세미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가 고도화되면서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누구나 성공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성과사회,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로 변화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멜빌 역시 이 책 <필경사 바틀비>에서 성과사회 혹은 피로사회의 초창기 모습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병철은 “너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지배하는 성과주의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 혹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으로 고용주인 변호사를 당혹케 하는 필경사 ‘바틀비’라는 사람이 있다.

이 작품은 1856년 처음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작품은 당시 미국 금융경제의 중심이던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상식적'이고 자부심이 강하며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변호사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타협도 하지 않는 주인공 바틀비를 대비시킨다. 변호사는 기존의 필경사들이 까탈스러워 새로운 필경사를 찾는다. 말이 없고 묵묵히 일만 하는 바틀비는 쉽게 고용된다. 하지만 바틀비는 일한 지 사흘 째부터 자신이 하는 일('필경' : 재판기록이나 변호문서에 대한 내용을 글로 옮기는 일) 이외의 다른 업무나 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특이한 말로 거부한다. 변호사는 처음에는 아주 당황해하다가 자신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참는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바틀비는 당초 자신이 하기로 했던 업무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면서 거부하기에 이른다.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해하고 결국 바틀비에게 해고를 통지하지만 이마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변호사도 독자도 그가 왜 그러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이해하려고도 하고 동정도 해보지만 결국 그가 무서워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옮겨버린다. 새로 입주한 세입자 역시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바틀비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마침내 건물주에 의해 바틀비는 구치소에 갇힌다. 마침내 사회로부터 격리된 바틀비는 음식을 거부하다가 숨진다. 

정상적이지도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 바틀비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자신의 존재 방식에 의문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변호사 역시 의문과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친 것이다. 바틀비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한 대상은 당시 시대상황에서 상식과 합리성과 제도와 계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근대적 합리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과 노동, 작가의 창조적 자유와 권리 등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우리에게 내면화된 근현대사회의 운영원리를 내면화한 우리의 존재가 과연 스스로에게 바람직하고 유익하고 행복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바틀비의 생각과 삶은 나에게도 '상식'과 '합리'에 대해 백지상태에서 생각해 볼 것을 말하는 것 같다.

[ 2012년 6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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