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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갈색 눈 -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68년 4월 4일은 미국인들이 절대 잊지 못하는 날이다. 당시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던 흑인 차별에 대항해 싸우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담임선생이었던 제인 엘리어트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다는 것을 느꼈고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여 거의 밤을 세웠다. 그녀가 아이들과 처음 시작한 '차별 수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책은 그녀가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적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게 했던 유명한 실험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녀는 눈동자 색으로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첫 날 '갈색 눈'의 학생들이 '푸른 눈'의 학생들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하고 특혜를 주었다. 갈색 눈의 학생들은 쉬는 시간을 5분 더 가질 수 있었고, 점심을 먼저 먹으러 갔으며, 음식도 더 먹을 수 있었다. 교실 앞쪽에 앉는 것도, 줄반장을 하는 것도, 놀이 기구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놀 수 있는 것도 갈색 눈의 아이들이었다. 또한 푸른 눈의 아이들은 갈색 눈의 아이들에게 초대받지 않으면 갈색 눈의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다.
다음 날, 푸른 눈의 학생들과 갈색 눈의 학생들의 역할은 뒤바뀌었다. 푸른 눈의 학생들은 전날 갈색 눈의 아이들이 받은 특혜를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학생과 교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틀간 ‘열등하다’는 딱지가 붙은 아이들은 정말로 열등한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보였고, 성적도 형편없었다. ‘우월한’ 학생들은 성적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친구였던 아이들을 차별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다.
‘차별의 날’ 첫 번째 수업 이후 아이들은 이렇게 다양하고 솔직하게 ‘차별’에 대해 정의하는 글짓기를 했다. 아이들은 글짓기에서 자시들이 스스로 경험한 차별을 통해 차별이 얼마나 또 어떻게 나쁜지에 대해 강렬한 느낌을 받았는지 말한다. 또한 이 실험 후에 그녀는 '편견은 차별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식했다. 혐오스럽긴 할지언정 둘 중 훨씬 덜 해로운 것은 편견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녀는 편견은 주로 사람들의 삶을 그들이 살아가는 그대로 제한하고, 시야를 좁히며, 세계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반면에 차별은 다른 사람들의 삶, 수백만 명의 삶을 불구로 만든다. 마틴 루터 킹도 편견이 아니라 차별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을 학생들이 단 하루라도 살아보길 바랐다. 그리고 그 하루의 고통이 그들로 하여금 이후 평생에 걸쳐 단 한 사람에게라도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끼치기를 거부하도록 돕는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 하루의 연습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차별 수업을 통해서 그녀의 3학년 학생들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눈의 색깔 때문에, 목에 두른 깃 때문에, 또는 피부색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교사인 제인 엘리어트가 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비록 일시적이나마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끼칠 위험, 그리고 학부모와 동료 교사의 분노를 감수하는 데에는 대단한 용기와 헌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와 이후 일어난 일들은 그 모든 것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한 교사가 인종차별주의로 아이들의 마음이 불구가 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그녀가 차별 실험 수업을 시작한 뒤 몇 년간, 그녀의 네 자녀는 한 번 혹은 그 이상 다른 학생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폭력을 당하는 희생자가 되었다. 그녀의 3학년 학생들이 당했던 것처럼, 자녀 역시 종종 ‘깜둥이 애인들’이라고 불렸다. 결국 제인 엘리어트의 가족은 라이스빌을 떠나 가까운 마을로 이사를 갔고, 그녀의 아이들은 다른 학군에서 공립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엘리어트는 1970년대 중반 시카고에서 살해 협박을 당하는 바람에 한밤중에 흑인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을 탈출하기도 했고, 살해 위협도 여러 차례 받았고, 교육 도중 백인 남자에게 칼로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근까지도 기업, 정부 기관, 대학에서 다양성 교육을 해오고 있다.
제인 엘리어트는 읽기를 배우는 데 뒤쳐져서 특별지도가 필요하다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두 번째로 이 차별 실험 수업을 진행했으며, 세 번째 진행한 수업(학급 아이들의 여덟 명은 푸른 눈이었고, 또 다른 여덟 명은 갈색 눈이거나 녹색 눈이었다. 첫날 차별을 받는 갈색 눈의 아이들은 목에 깃을 하나씩 둘러 멀리서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했고, 다음 날에는 푸른 눈의 아이들이 목에 깃을 둘렀다.)은 저명한 상을 받은 ABC TV 다큐멘터리 [폭풍의 눈(The Eye of the Storm)]에 담겼다. 이 책 안에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당시의 제인 엘리어트와 아이들 모습, 촬영하는 모습, 동창회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인종이나 피부색 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동남아, 조선족,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이나 혼혈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의식과 행동이 자주 기사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후 미국식 문화가 주로 수입된 영향이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또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독특하다. 흑색이나 유색인종은 차별하면서 미국인이나 유럽인과 같은 백색인종에 대해서는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5월 현재 130만 명 이상의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출생하는 아이 100명 가운데 4명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통계가 발표된 바 있다. 2010년 국내에서 결혼한 부부 열 쌍 중 한 쌍이 다문화가정일 정도로 이민자와 이주자 수가 늘어나고 있고, 2011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피부색, 인종, 민족, 종교, 출신 국가 등 다문화적 요소를 이유로 차별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한 사례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두 배로 급증했다. 또 2012년 4월 여성가족부가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서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36퍼센트였다. 이는 유럽 18개국의 평균 찬성 비율인 74퍼센트의 절반 이하다.
이런 한국의 실정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번역자인 김희경 씨가 해설 및 옮긴이 후기에서 자세하게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차별이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가 극복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문제는 공동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고 세대와 세대가 거듭될 때마다 반복해서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일부러 깨우쳐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공동체가 계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숙제와 같다는 것을.
사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피부색이나 인종에 의한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이란 단어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불평등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우리사회는 상당히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 출신 지역에 대한 차별(지역차별)로 존재해왔고 자산의 정도에 대한 차별로도 존재해왔다. 지금까지도 재능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오로지 시험성적만으로 대우하는 교사와 학교도 아이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며, 대학 졸업장 유무에 의해 취업과 승진에 차별을 두기도 했다. '학벌(독점)만능주의'는 실력과 경쟁력이 아니라 서울대 등 일부 명문대 졸업장만으로 사회의 요직을 독점하여 전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고, 차별을 억압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재벌과 기득권에게 차별적인 혜택을 주어왔다. 동일한 업무와 동일한 업무능력을 발휘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임금과 복지에 차별을 두는 기업들의 행태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정치적, 문화적으로 차별하고 '종북'이나 '좌파'라는 식으로 억압하려는 정치권과 기득권자들의 모습은 차별이 우리사회 전체에 뿌리깊게 박혀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 인상 깊은 문장 :
“지금 당신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게 된 사연은 열한 살 소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도화지의 위쪽 절반에는 주먹만 한 글씨로 ‘다른 나라 사람을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그 아래엔 덩치 큰 아이 세 명이 나란히 서서 혼자 동떨어진 작은 아이를 향해 소리친다, “저리 가! 너는 우리랑 달라!” 작은 아이는 이 세 명의 아이에게 맞서는 모양새로 이렇게 항변한다. “아니야! 나는 너희와 같아.” 작은 아이의 모델이자 그림을 그린 소녀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다. ‘다문화’라고 놀림 받는 게 얼마나 가슴에 맺혔던지 그림을 그리고도 모자라 도화지 오른쪽 위 귀퉁이에 별표를 치고 ‘중요’라고 적어놓았던 소녀가 맺어준 인연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끈을 통해 다가온 당신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이 21세기 한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차별은 오로지 나쁜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삐뚤어진 마음일 뿐인가? 나는, 그리고 당신은 차별 따위 하지 않는 사람인데 왜 차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제인 엘리어트가 스무 명 남짓한 아이를 대상으로 ‘차별의 날’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고심을 거듭하고 번민했던 흔적이었다. 스스로 여태까지 해본 일 중 가장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면서도, 한 번의 실험이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면서도, 가족이 폭력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울지언정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을 아이들이 단 하루라도 살아보게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한 집단을 향한 다른 집단의 무분별한 차별과 증오의 두터운 관념에 균열을 내고 싶었던 그녀의 의지가 놀라웠다."
[ 2012년 7월 0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