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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한알 속의 우주 -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개정판
장일순 지음 / 녹색평론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장일순 선생은 한국전쟁 이후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고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테타 이후에는 사회운동가로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꾸준하게 반독재 사회운동을 하던 그는 1977년 "종래의 방향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때까지 해오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1983년 도시 농촌 직거래조직인 '한살림'을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생명운동을 전개했다. '한살림'은 한국 내 협동조합운동의 첫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장선생은 1955년 원주시 봉산동에 직접 토담집을 만든 이후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이 책은 선생이 돌아가신(1994년 영면) 후 주변사람들이 뜻을 모아 선생의 문집을 내기로 하여 발간된 것이다. 장선생은 평소에 명징하고 삶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를 주변인들에게 많이 했지만, 글을 남기지는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본인이 스스로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박정희 군사통치 시절에 '글'을 남기면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이현주씨가 서문에 밝혔듯이 사색을 많이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좋은 말과 교훈과 모범을 보여준 과거 성인들(공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의 삶을 본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집은 198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장선생이 몇 잡지에 실은 글과 한살림공동체의 각종 모임에서의 강연록, 농민회나 대학교 특강록 등과 대담록으로 엮어져 있다. 쉽고 평이한 말과 글로 채워져 있는 강연이나 기고문 속에는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인간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햇빛과 물과 공기와 음식물(풀과 쌀)이다. 풀 한 포기가 싹이 터서 자라고 쌀 한 톨이 자라 벼가 되고 곡식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햇빛과 공기와 흙이다. 즉 지구상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 조건은 지구와 해와 달이고 곧 우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일순 선생은 우주와 인간과 지구상의 생명체는 한 몸이라고 말한다.
나락 한 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그 속에는 무수한 생명의 싹이 들어있고 그 싹들은 우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고 '축소된 우주'인 셈이다. 인류의 현대과학이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로써 이론적으로 '추측'하는 원자와 미립자의 존재양식은 우주의 존재양식과 다름이 없다.
장선생은 이 단순한 원리와 연결하여 인간의 삶과 행동, 종교, 공동체, 협동조합운동, 생명운동을 이야기한다. 인간중심, 인간지배 그리고 이분법과 경쟁으로 이루어진 서구사상이 지구와 자연을 파괴, 고갈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 자신들의 삶과 사회까지도 파멸시켜 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기독교 하느님과 불타 석가모니는 보이지 않는 곳이나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 세상만물 속에, 사람들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특히 그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사상과 천도교에서 서구의 기독교 사상과 동양의 유,불,선 사상을 아우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장선생은 말이나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실천과 삶으로서 한살림 공동체를 시작하고 운영했던 경험을 설명한다. 그에게 한살림운동은 생명사상이자 공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장선생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에 대해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나꼼수 김어준의 말처럼 "정치가 내 생활의 스트레스"라고 생각되어 내가 평소보다 조금 더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져온지 1년이 되어간다. '관심'이라 하기에는 좀 우습기는 하다. 과거와 달리 신문방송 정치란을 좀 더 관심있게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정치분야와 관련한 책도 읽어보고, SNS에 사회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내 생각을 밝히고, 정당 가입하여 가끔 활동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자원봉사한 정도다.
작년부터 계속 느껴왔던 것이지만, 지난 4월 총선과 5월부터 시작된 통합진보당 사태를 전후한 소위 진보적 시민이나 진보적 정치세력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삶과 유리된 정치, 개개인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동떨어진 진보운동, 담론이나 이론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지식인, 공동체 의식과 협력 정신이 사라진 대중정서 등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나 스스로도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하고 하루하루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고 바람직한 생활을 해나가지 않은 채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고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 2012년 6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