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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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의 <피로사회>와 함께 세미나 교재였던 책. 책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세미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가 고도화되면서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누구나 성공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성과사회,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로 변화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멜빌 역시 이 책 <필경사 바틀비>에서 성과사회 혹은 피로사회의 초창기 모습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병철은 “너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지배하는 성과주의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 혹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으로 고용주인 변호사를 당혹케 하는 필경사 ‘바틀비’라는 사람이 있다.

이 작품은 1856년 처음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작품은 당시 미국 금융경제의 중심이던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상식적'이고 자부심이 강하며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변호사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타협도 하지 않는 주인공 바틀비를 대비시킨다. 변호사는 기존의 필경사들이 까탈스러워 새로운 필경사를 찾는다. 말이 없고 묵묵히 일만 하는 바틀비는 쉽게 고용된다. 하지만 바틀비는 일한 지 사흘 째부터 자신이 하는 일('필경' : 재판기록이나 변호문서에 대한 내용을 글로 옮기는 일) 이외의 다른 업무나 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특이한 말로 거부한다. 변호사는 처음에는 아주 당황해하다가 자신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참는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바틀비는 당초 자신이 하기로 했던 업무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면서 거부하기에 이른다.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해하고 결국 바틀비에게 해고를 통지하지만 이마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변호사도 독자도 그가 왜 그러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이해하려고도 하고 동정도 해보지만 결국 그가 무서워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옮겨버린다. 새로 입주한 세입자 역시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바틀비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마침내 건물주에 의해 바틀비는 구치소에 갇힌다. 마침내 사회로부터 격리된 바틀비는 음식을 거부하다가 숨진다. 

정상적이지도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 바틀비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자신의 존재 방식에 의문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변호사 역시 의문과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친 것이다. 바틀비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한 대상은 당시 시대상황에서 상식과 합리성과 제도와 계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근대적 합리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과 노동, 작가의 창조적 자유와 권리 등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우리에게 내면화된 근현대사회의 운영원리를 내면화한 우리의 존재가 과연 스스로에게 바람직하고 유익하고 행복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바틀비의 생각과 삶은 나에게도 '상식'과 '합리'에 대해 백지상태에서 생각해 볼 것을 말하는 것 같다.

[ 2012년 6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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