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저자가 여러 해 동안 법정스님을 따르면서 스님이 법문하시고 말씀하시는 내용 중에서 가려뽑아 발간한 것이다. 스님의 뜻으로 만든  모임인 ’맑고 향기롭게’ 회원들이나 길상회 모임을 대상으로 법문하신 것, 명동성당 기념식에서 강연하신 내용, 도올 서원에서 말씀하신 내용, 그리고 사석에서 하신 말씀들을 모았다. 따라서 대략 1990년 중후반의 기록일 것이다. 저자는 스님의 말씀을 모두 녹화한 후, 녹음내용을 기록했다고 한다.
 
여기에 각 장의 서두에는 글을 엮은 저자의 경험과 감상이 때로는 일화로, 때로는 인상으로, 때로는 경구들로 담담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엮은이의 서정적인 필치에 덧붙여진 소박하고 정갈한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은 어렴풋이나마 스님의 맑고 투명한 세계를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은 어떤 묵은 데 갇혀 있으면 안된다. 꽃처럼 늘 새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런데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어디에 갇혀있는 것일까?’라고 자문하게 된다. 직장이라는 둘레에 또는 관계라는 둘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하루하루 편안한 잠자리와 남이 해준 밥을 먹고 매일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한다.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고 따뜻한 말을 나눈다든가 눈매를 나눈다든가 일을 나눈다든가, 아니면 시간을 함께 나눈다든가,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와의 유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누는 기쁨이 없다면 사는 기쁨이 없다"
나는 누구와 어떤 것을 나눌 수 있을까... 매달 시민단체에 몇 만원, 봉사단체에 몇 만원과 같이 물질을 일부 나누면서 자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족과 직장, 가끔 만나는 가까운 선후배와 동료 이외에 나에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있기나 한 걸까...
 
"온갖 욕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온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 소유물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스스로를 우주적인 생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맑은 가난, 곧 청빈이다. 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내안이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소유물을 줄이는 것이 그 출발이라면 내가 그동안 소중하게 모아서 읽고 소감을 쓰고 있는 이 책들, 내가 가장 집착을 보이는 이 책들부터 줄여야할텐데,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가슴 뜨끔한 말씀이다. 펜도 하나면 되고 가방도 하나면 되고 안경도 하나면 되고 신발도 하나면 될 것이다. 몇 개씩 가지고 있어봐야 결국 필요한 상황에서는 하나 밖에 사용할 수 없다. 많이 줄이고 버리고 주었지만 더 줄여야 하겠지...
 
"세상이 달리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달라진다. 내 자신이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들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생각나고 사티시 쿠마르도 생각나고 ’나무를 심은 사람’도 생각나고 박노해시인도 생각나다. 그들 모두 동일한 이야기를 했고 모두가 말에 앞서 실천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세상이 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나부터 달라지고자 노력할 것이다. 먼저 소유물들을 하나씩 버리고 과도한 음식과 수면을 줄여나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횟수도 점점 늘릴 것이다. 미워하기 보다 용서하고 나무라기 보다 이해하고 찾아오기 바라기보다 찾아갈 것이다. 말하기 보다 듣고 뛰기보다 걷고 분노하기 보다 공감할 것이다...
 
"나는 이 절이 부유해지거나 화려해지거나 번잡한 행사들을 벌여 나간다면 아무 미련없이 이 절을 떠날 것이다. 나는 이 절이 소박하고 가난한 절이 되기를 바란다."
성북동 길상사의 창건주이자 회주이면서도 길상사 창건 후 첫 법회에서 법정스님은 평소와 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 연휴 기간에 처음 길상사를 갔었다. 스님의 말씀과 달리 건물들이 제법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수도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지난 달 구례 화엄사를 갔을 때 느꼈던 번잡함과 화려함과 욕심이 떠오르면서 길상사와 비교되었다.
 
"무한경쟁이라니... 사람이 어떻게 무한히, 끝없이 경쟁만 할 수 있는가. 그런 구호에 속아서는 안 된다. 어떻게 경쟁만 하고 살 수 있는가. 물론 삶의 요소에 경쟁도 있지만 경쟁하지 않고 사는 그런 경우도 있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니, 우리는 일류가 아니다. 나 자신도 일류가 아니다. 삼류 사류도 있고 아류로도 살고 있다. 다들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우리는 성적의 차이를 떠나서, 빈부의 차이를 떠나서 사이좋고 우정으로 지내왔다. 지금도 그 친구들과는 성적이나 실력, 빈부나 직급과 상관없이 지낼 수 있다. 다만, 정부와 기업이, 언론과 무식한 식자층들이 우리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끌려다니고 내몰리는 대기업의 선후배와 친구들, 공무원들과 교육자들, 사업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에 이어 법정스님의 저서를 다섯 번째로 읽었다.
 
* 책 속의 문장
- 텅 비워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텅 비어야 거기 새로운 것이 들어찬다. 우리는 비울 줄을 모르고 가진 것에 집착한다.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찬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진정으로 거기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다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이다. 텅 비어 있을 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p.42)

-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한때일 뿐이다. 욕망은 새로운 자극으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을 채워 가는 삶은 결코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인생이, 내 삶의 잔고가 어디쯤에 왔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거듭거듭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p.102)

- 종교는 한마디로 사랑의 실천이다.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보살행, 자비행은 깨달은 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익혀 가는 정진이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쌓은 행의 축적이 마침내는 깨달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몰랐던 것을 아는 것, 이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본래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꽃씨를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가꾸어 나가면 그것이 시절인연을 만나 꽃피고 열매 맺는 것,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p.110)
 
[ 2011년 2월 11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장하준교수의 인연(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라 책과의 인연..)은 2008년 8월 삼청동의 어느 북카페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고 잠깐 짬이 나는 사이 우연히 책꽂이에서 뽑아든 <나쁜 사마리아인들> 몇 쪽을 읽게 되었다. 북카페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기에 제목만 적어놓고 돌아와 저녁에 인터넷을 책과 저자를 검색하였다. 그렇게 시작되어 2009년까지 장하준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터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었고, 작년에 <국가의 역할>을, 그리고 2011년에 들어 이 책 <개혁의 덫>과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었다. 이 책은 대학 동기가 선물해준 것이다.(작년까지만 해도 저자의 책 한두 권 정도는 읽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지 않겠냐 - 더군다나 이 책은 2004년 작이다 - 고 생각하였는데, 저자의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새로 읽으려고 마음 먹으니 아무래도 꺼림칙하여 먼저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격변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신문, 잡지, 그리고 인터넷 매체에 실었던 글과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책을 펼쳐들고 나서 ’읽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 책을 처음 발간한 것이 2004년 8월이다. 당시 상황은 고노무현 전대통령이 집권 2년차에 접어들었고 탄핵정국으로 안정적인 국회의석을 확보한 상태에서 한-미 FTA 등 산적한 경제현안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가 무성했던 시기였다. FTA는 전임 고김대중 대통령 임기 때부터 추진했던 정책이고 노무현정부 역시 시민사회단체와 여러 교수,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와 ’개혁’의 허울, 신흥경제국의 적합한 경제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다.
 
6년이 지난 후 결과로만 보면, 저자의 지적과 비판,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 현재의 경제 위기(이명박정권과 보수언론은 위기라고 인정하지 않지만...)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경제정책 방향이 수 년간 정부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위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개혁’에 대해 진보세력도, 시민단체도, 일반인들도 여전히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대안과 정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이 책은 아직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2004년에 한국사회와 경제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하면서 의견을 피력한다. 2004년의 한국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경제라는 변수 외에 정치라는 변수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변수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했다. 당시 한국 경제가 ‘개혁’이라는 ‘덫’에 걸린 상태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7년 개혁론자들(김대중정부와 민주당, 진보세력)은 ‘개혁’을 내걸고 집권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의 부정적 유산, 특히 권위적,폭압적 정권의 제도 및 정책과 절연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적절한 대안을 세우지 못하였고 상당히 무의식적으로, 맹목적으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물론, IMF 구제금융에 따라 IMF와 IBRD, 그리고 그들의 배후인 미국의 요구와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음을 인정하더라도 김대중정부, 그리고 진보세력이 주체적인 장단기 정책과 계획이 없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겉으로 신자유주의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방식이였다. 시장 중심적 접근 방식은 개발연대의 정부 개입적 접근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그 골치 아픈 재벌 문제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는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투명 경영, 주주 자본주의를 통해 가공 자본의 창출에 의한 1인 소유 및 문어발식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김대중정부의 개혁의 결과가 무엇인가?
우선 ’투자가 붕괴’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실업난’이 이어졌다. ’청년 실업’이 국가적 고민으로 떠오르고, 구조 조정 과정에서 물러난 중년층 실업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일찌감치 퇴출되거나 소자본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 소비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소비 진작 정책은 ’신용 불량자’만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가중시킨 것은 물론 가정 파괴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또 노동 시장을 유연화한다고 ’비정규직’을 늘린 탓에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커졌다. 반면 주식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주주들의 영향력이 강해진 결과 기업들의 ’배당률’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기업들의 이익이 과거와 같이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 대체로 상류층에 속하는 - 주주들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절대 ’빈곤층’의 급증이다. 외환 위기 이후 절대 빈곤층은 국민의 5.9%에서 11.5%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과거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평등한 수준에 속하던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가 이제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게 되었고, 자칫 잘못하면 미국을 제치고 멕시코 등 남미 국가의 대열에 끼게 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이다. 저자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고 묻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혁론자들은 진보를 표방했다. 진보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상징한다. 그런데 현재의 개혁은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약육강식의 시장으로 몰아내고 있다. ‘개혁’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과거와의 절연만을 서두른 결과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2004년 전후의 한국이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했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 채택했던 경제 정책을 다시 채택하면 된다. 문제점만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말이다. 그에 대해 쏟아지는 무수한 반론의 요지는 한 가지,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그게 말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경제사적으로 제시한다.

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은이가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 하나에 답해야 한다. ’과거의 우리 경제가 과연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느냐’는 질문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선진국들의 소득이 2배가 되는데 7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다. 반면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 위기 때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6% 가량으로, 40여 년이 지나면 소득이 8배가 되는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물론 이런 성장률 하나만으로 우리의 개발연대를 무조건 미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소득이 가나의 반이 채 안 되고, 아르헨티나의 5분의 1밖에 안 되던 나라, 텅스텐·생선·해조류 등 1차 산품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던 나라가 이제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2배 가량 되는 소득에,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 등의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출국임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소득 분배가 어느 정도 평등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민 전반의 생활이 향상되었다. 저자는 그와 같은 성과는 제대로 평가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재벌 문제에 있어, 재벌들의 체질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저자 역시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재벌 = 공공의 적’이라는 무모한 일반화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 비판의 요지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과다한 차입 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 구조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런 인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비율로 따져 볼 때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보다 더 많은 자금을 주식 시장을 통해 동원했다고 한다.(이 반론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 것. 저자는 차입경영이 문제가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또 350~400%라는 우리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병적으로 높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고도 성장기 일본이나 1980년대 유럽과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이 책은 끝까지 이런 식의 반박이 거듭되면서 거의 모든 경제 문제를 다룬다. 세계화나 금융 허브, FTA 협정, 서비스업 육성,  인플레이션 문제, 정치 논리의 개입의 필요성, 다국적 기업의 존재 여부 등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과거 경제 성장 정책을 수정하여 재도입함으로써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개혁론자들이 자신이 주장하던 개혁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흑백논리’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과거의 성장정책(결국 몇 가지 박정희식 핵심 경제정책을 이야기함)이 자칫 잘못하면 진보세력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그래서 격렬한 반대도 있을 수 있다.) 한국경제를 회복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한국의 진보세력과 시민들의 정치사회 의식수준을 너무 얕본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에 누가 했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어떤 것이 더 국민을 위한 최적의 정책이 될 것인가, 10년이나 50년 후를 바라볼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 책 속의 문장
- 1997년의 외환위기는 지나친 정부개인 때문이 아니라 금융규제의 미비 등 지나친 자유방임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 미국 MIT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시아 경제위기는 국내적 제도의 결함보다는 세계 자본시장의 불안정성과 국내 금융규제의 미비에서 찾아야 한다고 받아들인다.(1999. 12 / 한국일보 / p.26)

- 우리가 흔히 선진경제라고 하면 연상하는 주주 지상주의, 자유방임주의 그리고 작은정부를 이상으로 삼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전체 선진국을 기준으로 볼 때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다.(1999. 4 / 한국일보 / p.128)

- 결론적으로 말해 주주 자본주의의 추구는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좋지 않다. 대부분의 주주들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따른 이익보다 단기적 배당이나 주가 차액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주 이익의 추구가 과연 국민 경제 전체에 득이 되느냐는 점이다.(월간 ’말’ / 2003. 6 / p.161)

- 경제성장의 저하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자본 자유화는 투기 자본의 이동을 활발하게 하여 경젱환경을 불안하게 만들며 투자를 저하시킨다. 아울러 규제 완화로 말미암아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생산적인 투자가 줄어든다. 그 결과 야기되는 투자 축소는 고용감소와 수요위축을 불러오게 되고, 수요 위축은 다시 투자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동아일보 / 2003. 7 / p.175)

- 진정으로 이공계에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려면 투자를 가로막는 제도와 정책을 고쳐 제조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고 노동 시장 유연화를 빙자한 고용의 불안정성을 시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공계 일자리가 장래성 있고,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지 않으면 이공계 기피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동아일보 / 2003. 11 / p.208)
 
[ 2011년 2월 12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 - 원자력 르네상스의 실체와 에너지 정책의 미래
김수진 외 지음 / 도요새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해안지대에서 발생한 강도 9.0의 대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로 인해 일본에 사상 유례 없는 피해가 발생한 지 벌써 40일이 지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막아낼 수 없는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는 차치하더라도 후쿠시마현 해안가에 설치되어 이번 쓰나미로 인해 문제가 된 원자력발전소가 일본 전역과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 정부와 토교전력측의 기밀주의와 안이한 대응으로 원자력 발전소 문제 대응에 시기를 놓친데다가 원자력 통제기술의 한계로 인하여 앞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태가 어떻게 확산되고 악화될지 예측도 불가능한 상태라 할 수 있어 전인류가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역시 쓰나미 발생 후 얼마 동안은 일본의 피해와 동향에 대해서 언론에 보도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뿐이었다. 일부 반핵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의 연장에 대해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원자력발전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대책을 비판하는 수준에 그치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급속하게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국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제(4월 19일) 경향신문 1면 머릿기사에는 [부산,울산,경주 ... 봇물 터진 "원전 반대"]가 실려있다. 기사에 따르면, 부산시장과 부산시 구의회, 울산시의회, 경주시의회 등은 고리와 월성의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시키고 사용 연장을 반대하는 결의를 잇달아 내렸고 울산시와 울주군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4호기 주변 지역에 방사선 측정기를 대폭 설치할 것을 정부측에 요구하고 있다. 이는 1978년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처음 가동된 이후 정부와 전문가, 원자력발전소가 주도하여 진행해오던 원자력 발전소 정책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이 직접 정책과 의견을 표명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녹색성장’을 정책의 중심 화두로 제시하면서 ’녹색성장’의 주된 방향을 원자력 발전으로 규정한 이후 현재까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삼척시의 경우 삼척시청의 발표와 달리 전화 설문조사 결과 삼척시에 원전 유치보다 반대하는 응답이 훨씬 높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SBS 기사에서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재가동을 무기한 연기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서초동 공부모임]의 오늘 주제가 바로 ’원자력’이다 일본의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붕괴 위험사태를 맞이하여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원자력에 대한 국내외 저서를 읽고 토론하기로 한 것이다. 공부모임 주체들이 원자력의 장점과 단점의 실체를 가급적 정확하게 알기 위한 것이고 향후 원자력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행동방향을 정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교재로는 이 책과 더불어 일본의 유명한 원전 반대 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의 <원전을 멈춰라>로 정했다.
 
과연 원자력은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의 진정한 대안인가? 이 책은 우리가 궁금했던 원자력의 실체를 밝히고, 기후변화를 계기로 원자력산업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원자력 대국들과 한국 원자력 정책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그리고 사회환경 갈등의 씨앗인 원자력 정책을 살펴보고,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에너지정책의 바른 방향을 모색한다.
 
지난 2007년 12월 지구환경보고서 <탄소경제의 혁명>을 번역하던 [생태사회연구소] 회원들을 중심으로 원자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7명의 필진이 모여 2008년 3월부터 매달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1년 이상 거쳐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1부. [원자력 환상의 기원] : 1990년대 이후 서구 선진공업국을 중심으로 원자력 에너지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으며 대응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자국의 원자력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도모하고 있고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 증가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인도 등 신흥 개발도상국도원자력이 매력적인 에너지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를 ’원자력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김수진과 진상현은  ’원자력 르네상스’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를 손쉽게 달성하려는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으며, 원자력 산업이 다시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반세기 전 원자력에 열과하게 만들었던 원자력의 무한 에너지 신화가 다시 재생산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이후 전세계 원자력 발전소 증가율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자력이 2002년 전세계 전력 생산량에서 17%를 차지하였으나 2030년이 도면 그 비중이 9%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2부. [원자력의 네 가지 의혹] :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원자력 옹호자들의 ’원자력 신화’는 대략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원자력은 청정한 에너지이고 지속가능한 자원이며, 경제적이고 안전하다는 것... 김수진, 이현석, 정희정은 원자력의 네 가지 신화를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분석한 뒤 철저하게 네 가지 모두 허구적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정확안 분석은 원전이 가동된 이후가 아닌 발전연료를 준비하는 단계, 발전소를 건설하는 단계, 그리고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단계에서 각각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계산해야 하며, 이것을 모두 고려하여 풍력, 태양광, 석탄, 가스 발전과 원자력 발전을 비교하면 원자력 발전이 석탄보다 약간 우수할 수는 있으나 가스나 바이오가스 열병합 발전보다 결코 우수하지 못함을 제시한다. 더군다나 원자력 발전은 발전에 따른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고 테러공격이나 군사적 갈등이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청정하기는 커녕 더욱 환경파괴적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거론한다.
 
OECD/NEA에 따르면 현재 기술로 확인되고 있는 원자력 원료의 확인 매장량은 2007년 현재 297만 톤 규모이다. 이 매장량을 2007년 전세계 우라늄 수요량으로 나눠보면 대략 43~79년 동안 사용이 가능할 뿐이며, 이는 원자력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내놓는 수치와 다르게 2003년 미국 MIT 연구진이 발표한 [The Future of Nuclear Power]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이 석탄이나 가스복합발전보다 경제적이지 않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석탄과 가스를 수입하는 비용을 추가로 감안한다 하더라도 원자력이 석탄이나 가스보다 크게 경제적이지 않다는 것이며, 여기에 원자력 발전소 폐기 이후의 방사성 폐기물 처리비용과 이에 따른 이산화탄소 저감비용을 추가하면 무조건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1986년 구소련(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 등은 원자력 안전 신화에 커다란 파열음을 낸 바 있다. 사고 뿐이 아니라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랜초세코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전후/ 폐쇄 전후에 주변지역의 선천성 기형이나 갑상선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크게 차이를 보이는 등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자체가 인간을 포함한 주변지역의 생태계를 크게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진과 기상이변, 기술적인 불안정성, 관리부실 등 한국 원자력 발전소의 고장 및 가동중단이 빈번한 가운데 자칫 잘못하면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원전을 계속 가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3부. [전 세계 원자력의 현주소] :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미국 등 서구 선진공업국의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되었고 대신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개발도상국에서 원전 신규 가동이 증가한 바 있다. 1990년대 ’원자력 르네상스’ 이후 미국 등 몇 개 선진공업국도 원전 추가 건설을 발표하였으나 2011년 3월 일본의 쓰나미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다시 세계적으로 신규 원전 건설과 가동 연장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OECD 국가 중 처음부터 원전을 사용하지 않은 국가는 호주, 덴마크,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노르웨이, 포루투칼, 터키, 폴란드 등 11개국이며,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한 국가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 총7개국이다. 원전 폐쇄를 결정한 국가와 계속 이용하거나 증설하는 국가는 대부분 원자력의 소유 및 운영형태가 국가 중심이거나 원자력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다. 또한 각국의 민주주의 운영 형태에 의해서도 차이가 발생하는데 갈등 조정 및 의사결정 방식에 있어서 경쟁 민주주의 모델, 즉 다수결 방식을 강조하는 미국, 일본, 한국 등과 달리 협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사결정을 할 때 ’가능한 많은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을 택하는 국가의 경우 원전 폐쇄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의 원자력 문제에 관한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첫 출발은 "원자력을 둘러싼 갈등을 사회화하는데 있다."
 
4부. [한국 원자력의 현주소] : 저자들은 한국의 원자력 정책이 과거 반세기의 성장과정을 거쳐 지금은 기후변화와 고유가 시대를 기회로 다시 주력 에너지원으로 자리잡으려는 움직임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렇지만 이 같은 원자력 중심의 전력수급 정책에 대한 반론과 문제 제기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은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을 둘러싼 부안과 경주사태의 사례에서 보듯이 안전과 위협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발전소의 온배수가 어업과 해양생태계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중앙집중적인 전력생산 시스템으로 인하여 송전탑을 둘러싼 지역갈등과 생산과 소비간 불균형, 양수발전댐 건설의 비효율성과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국가적, 사회적 총비용이 무한하게 지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임을 지적한다.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 정책은 에너지 절약 등을 통한 수요 조정을 어렵게 하고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산업용 전기요금과 심야전기요금제도로 막대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으며, 동시에 신,재생에너지의 개발과 확산을 억제하여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방출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5부. [기후변화 시대 원자력 정책의 미래] : 원자력을 둘러싼 문제점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현대의 대의민주주의가 절차와 내용을 절연시켜 놓았듯, 도시화와 자본주의가 생산과 소비를 기계적으로 분리시켰고 사람들의 정치,사회적 삶에 대한 인식을 현실의 생활과 떨어뜨려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제 정부의 ’절차적 합리성’은 아무리 잘 확보되더라도 단지 주어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게 되고 전문가 중심의 권위적이 문제해결이나 사법적 판단에 기대는 행정적 문제해결 방식은 근본적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처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의 경우에도, 안전성에 대한 분석과 증거에 대해 서로 다른 방법론을 놓고 충분하게 논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역의 소외의식과 불균형에 기대어 시장주의적 해법으로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을 뿐, 정책에 대한 신뢰가 쌓여서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서 합의를 도출하는 민주적 해결방식으로 확대해야 함을 의미한다.
 
과학에 대한 맹신도 재검토해야 한다. 울리히 벡은 "과학이 지구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을 보호하는데 앞장서면서 과학의 합리성이 훼손될 지경에 이르렀다"며, "과학의 제도적, 이론적 실수와 결함을 인식하고 여기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과들을 자기 비판적이고 실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학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와 1986년 폭발한 체르노빌 원전을 담당한 소련과 미국의 과학자들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지난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담당하고 있던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들도 현시대의 최고 수준급 과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원자력의 모든 문제를 예측하고 관리하고 해결하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저자들은 "미래에 대한 가장 좋은 예측과 현실 문제에 대한 적정한 처리방안은 시민들 스스로 참여하여 현실과 미래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때 만들어진다.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문제를 대의제의 장막 속에서 소수 전문가의 판단으로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 역동성, 복합성 속에서 사회적 공론화를 이루어내고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교훈은 사회적으로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제일수록, 미래 세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문제일수록 시간을 가지고 다수의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화가 필수적이라는것이다. 그것은 정부와 정치권에게 가장 큰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일반인들과 지식인들, 시민들 모두가 주체적으로 나서서 고민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 합의하는 과정이기도 해야 함을 의마한다.
 
* 책 속의 책 : 히로세 다카시 <체르노빌의 아이들>, 다카기 긴자부로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시화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모리 로빈스 <연성에너지 경로>,  
 
* 책 속의 문장 :
- 원자력산업이 다시 부흥한다는 주장은 실제 상황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원전을 운영하는 발전업체에 의해 제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현재 원자력 발전업체의 선택은 분명하다. 신규 원자력발전소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발전소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여 경제적 수익을 최대화하려고 할 뿐이다. ‘원자력 르네상스’는 기존의 에너지경제 구조 하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를 단기적으로 손쉽게 수행하고 전력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옹호되고 있을 뿐이다.(p.31)
 
- 자연적으로 방사선 준위가 떨어져 원래 상태의 절반이 되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하는데, 방사성폐기물의 반감기는 방사성물질의 종류에 따라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억 년까지 다양하다. 평균적으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은 300~400년,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1만 년 정도 생태계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특히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경우, 인류 역사에 버금가는 오랜 기간 동안 격리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그 처분방안에 대해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수십 년간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단계이다. 일부에서는 방사성폐기물의 반감기를 줄이기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으나, 이 역시 아직 연구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등 실제 방사성폐기물을 안정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방안이 인류에게는 없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방사성폐기물의 존재는 다른 에너지원과 원자력발전을 구분 짓는 주요한 지점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이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와 각종 대기오염물질을 발생시켜 환경적 문제를 일으킨다면, 핵에너지는 인류의 과학기술로 처분할 수 없는 방사성폐기물을 발생시킨다. 에너지원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폐기물이 나올 뿐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폐기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셈이다.(p.96)
 
- 원자력은 태생적으로 전력소비의 악순환을 유도함으로써 원자력 의존적인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런 원자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탈피 전략과 기술적인 차원에서의 탈피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탈피 전략은 공급 중심의 에너지 수급정책이 아닌 수요관리 중심으로의 정책전환이 핵심이다. 과거 정부는 경제성장 및 국민의 행복증진이라는 미명 하에 에너지공급을 확대하는 전략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그렇지만 기후변화·고유가 시대에는 에너지 공급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낭비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수요관리정책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 즉 에너지 낭비적인 도시구조 및 소비행태를 우선적으로 개선한 다음에 불가피한 부분에 한해서 저탄소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공급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기후변화 관련 대표적인 국제기구인 IPCC와 유럽연합에서도 수요관리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으며, 이명박 정부도 인수위원회에서 에너지효율개선을 가장 중요한 국가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p.308)
 
----------------------------- 공부모임 후기 ---------------------------
 
공부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이 ’욕망의 수레바퀴’ 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폭주기관차’로 볼 수 있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문화와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현상이라는 것을 제기했다. 현재와 같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문화는 필연적으로 과도한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고 그에 따라 원전이 대두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석자 중 한 분은 근원적인 출발점으로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을 제기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혁명은 폭발적인 인구증가(1800년 이후 200년만에 10억에서 70억으로 7배 증가)를 가져오게 되고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에너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이 계속될 경우 지구 생태계와 후손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지금 세대부터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절감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 자신부터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지 않고 ’원전을 반대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이율배반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떤 참석자는 ’욕망’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함을 지적한다. 우리 시대의 욕망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고 성장하면서 외부로부터 주입되고 인식된 것이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각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개되기도 하였으나 현실적이지는 못하다는 의견이 다수였으며, 대신 ’욕망’을 조절, 통제하는 삶이 ’욕망’을 쫒아가는 삶보다 행복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 2011년 4월 20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2011년 두 번째 공부모임의 교재였다.. 인문사회적인 텍스트를 주로 다루던 공부모임에서 모처럼 사회심리,의료 성격의 교재를 선택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작년에 발간된 책...
 
그동안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보면서 어렴풋하게 생각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를 직접 보거나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부분들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간혹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긴 했어도 이렇게 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세하고 짜임새 있게는 생각해보지도 다른 정보로부터 접해보지도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외상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 심리적/의학적 장애에 대해 새롭고도 많은 것들을 알도록 해주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트라우마 Trauma]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 독자들에게 쉽고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24편에 달하는 영화의 줄거리와 주인공들의 연기장면을 놓고 트라우마의 성격과 특징, PTSD의 증상과 원인, 그리고 치유에 대해서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소개하는 영화의 편수가 조금 많은 것이 흠이긴 하다.(10편 이하의 영화를 대상으로 했으면, 독자들이 충분히 각 영화를 관람하면서 책을 다시 되새김질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솔직하게 24편이 소개되니 나부터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는 각 챕터의 뒷 부분에 의학적, 심리학적인 용어와 풀이를 짤막하게 삽입하여 좀 더 이론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란 ’트라우마’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을 말한다. [트라우마 Trauma]란 전쟁, 대참사, 재난같은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외상 사건 뿐 아니라 심한 구타, 강간, 가정폭력, 학대, 성폭행 등 아동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일반적인 적응능력을 압도하는 특별한 사건’, 그리고 자동차 사고, 중요한 사람의 죽음, 이별, 창피를 당한 경험, 심한 좌절, 심각한 질병이나 신체적 장애, 심한 불안, 고문, 유괴, 가족으로부터의 학대 등의 사건까지도 해당된다.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스트레스와는 크게 다르다. 기본적으로 1) 미리 예측할 수 없고, 2) 미리 대비할 수도 없으며, 3) 도망거거나 회피할 수도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인간은 외부에서오는 위협에 대항해볼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게 되면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강렬한 두려움, 공포, 무력감,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인류가 현대로 접어들면서 뉴스나 신문 사회면에는 사건 사고가 없는 날이 거의 없다. (원래 인류사를 통틀어 사건,사고가 없는 날은 거의 없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언제, 어디서나 즉시 사건,사고를 알 수 있게 된 것이겠지...)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통째로 무너지고, 비행기가 떨어지고, 납치당하고, 관광하다가 총에 맞고, 연쇄살인범에게 자식을 잃고, 강도를 만나 폭행을 당하고, 길을 걷다 성추행이나 강간을 당하는 등 굵직굵직한 트라우마들의 전조들이 수시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하고, 주식이 폭락을 하고, 믿었던 애인에게 차이고, 이혼 당하고, 왕따 당하고, 수능 점수에 실망해 뛰어내리는 등등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일이 너무나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기본적으로 우연한 사건, 사고에서 발생하지만, 현대 사회의 경우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횟수나 피해자들의 숫자는 더 클 것 같다. 이 세상이 이상심리나 정신병의 일종으로 여겨지던 트라우마가 이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겪는 흔한 질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대 기술 문명의 발달과 속도와 변화를 강조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일생 동안 어쩔 수 없이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도 트라우마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면 그것이 닥쳤을 때 공포와 무기력을 경험하며 트라우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트라우마에 대해서 이제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고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대중들에게 트라우마의 심각성과 치유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이렇게 압도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인간의 뇌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냥 내버려두고 잊어버리려는 노력을 한다고 이러한 변화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인간의 뇌에는 외부자극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두 개의 정보처리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주로 편도체가 관여하여 즉각적인 신체반응이나 행동을 유발하는 급행시스템과 피질과 해마가 주로 관여하여 외부자극을 주의 깊게 평가하도록 하는 완행시스템이다. 그런데 ’압도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인간의 뇌 정보시스템이 커다란 혼란을 겪어 두 개의 신경회로 시스템의 보완기능에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결과 급행시스템만 일방적으로 활성화되고 완행시스템은 억압된다. 문제는 위험한 상황이 끝난 뒤에도 이러한 시스템의 변화가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다.
 
강렬한 두려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경험하는 ’압도적인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사람들은 대개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보이게 된다. (PTSD는 1980년이 되어서야 미국 정신과학회에서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은?) PTSD의 세 가지 주요 증상은,
 
첫째, 과도한 각성 상태와 연관된 증상. 충격적인 사건 이후 언제 또 그런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위험에 대한 경계상태가 지속된다.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예상하지 못한 자극에 대해 심하게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늘 초초하고 불안하고 걱정이 많고 수면이 방해되고 집중이 안 되며 죽음, 폭력 등에 대한 공포도 매우 크다.
 
둘째, 충격적인 외상 기억의 반복적인 재경험. 외상 사건을 경험하고 한참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마치 현재에도 그 외상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강렬한 경험을 한다. 깨어있는 동안 어떤 이미지나 잔상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플레식백의 형태로, 잠을 자는 동안에는 반복적인 악몽으로 계속된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 폭행이나 강간을 당한 피해자는 비오는 소리만 들어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워하며 당시의 폭행 가해자와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만 보아도 공포에 질리거나 비슷한 장소에 가면 그때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괴로워하기도 한다.
 
셋째, 회피와 둔감화. 압도적인 위협에 대해 완전히 무기력해지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면 사람은 실제 어떤 저항을 하기보다 차라리 의식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방어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현실감각이 둔해지거나 상실되고 시간 감각마저 변형되면서 멍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세 가지 증상이 극단적으로 심각하게 발생하거나 주기적으로 여러 증상이 반복해서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우울증,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폭식 등에 빠지기도 하고 심한 자살 사건을 벌이거나 사회생활을 단절하기도 한다.

 
 
트라우마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 성공한 영화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이 대부분 트라우마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나 한국 영화에서 트라우마가 거의 일상처럼 다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트라우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주변, 혹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람보], [밀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포레스트 검프] 등 일반일들에게도 익숙한 영화 24편을 통해 트라우마의 원인, 증상, 치유의 관점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트라우마가 한 인간의 삶을 압도적으로 무너트리는 사건이라는 사실임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여주인공 신애(전도연 분)의 잘린 머리카락이 하수구로 흘러내려 가는 엔딩을 통해 감독은 우리네 삶이 결국은 벌레 같은 인생 아니겠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밀양]의 여주인공 신애는 남편과 아들을 각각 사고와 유괴 사건으로 잃은 비극적 운명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김 박사는 세상 사 모든 것이 트라우마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어린 시절 무관심과 방치는 커서 자녀에게 가장 치명적인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96년도 선댄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는 학교에서의 왕따와 부모의 편애, 형제와의 갈등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진지하게 본 저자는 어린 시절 받게 되는 사소한 상처들이 훗날 트라우마로 발전하지 않도록 가정이 1차적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가정이 그 역할을 못한다면 자녀는 무기력하고 자기 부정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의 치료책과 예방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영화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포레스트 검프] 등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트라우마로 인해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세상과 인생이 쓰레기통이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살아가지 말고 내 삶이 초콜릿 박스일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삶에 좋은 일, 즐거운 일, 웃을 일, 행복했던 일, 뭔가를 성취해 자신감을 느꼈던 일, 누군가와 함께 친밀감과 사랑을 나눈 일, 평온하고 안정감을 느꼈던 순간 등등과 같이 긍정적인 경험을 하였던 때를 인식하면서 살라는 주문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소통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본 김 박사는 관계 속 교감 이상의 치유책은 없다고 단언한다. 트라우마를 함께 겪고 있는 두 사람이 같이 아파해주면서 공감하는 동안 트라우마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겪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섬세하고 보여주고 있다는 점. 

 

하지만 실제 한국의 현실은 암담한 상황으로 보인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피해자 편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법과 제도의 미비는 물론이고 전문가도 부족하고 건강보험 체계에도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다.(보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함) 시민사회 차원의 대응도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들이 한국의 국민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많았다. 내 가족과 내 주변에 있는 적지않은 사람들에게서 가끔 느끼게 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식적이지 않은 말과 행동을 트라우마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가족 구성에서 성장과정까지 내가 잘 알고 있는 상대에게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능성과 관심을 두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한 사람의 현재 모습과 성격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100%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성격과 습관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나의 편견이나 선입관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달리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사회적 트라우마이다. 저자는 4부 ‘대한민국은 트라우마 공화국’ 편에서 한국인들만이 겪는 사회적 트라우마에 날카로운 분석의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식민지-분단-전쟁-고도압축성장과 좌우 대립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국민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즉, 60대 이상의 세대에게서 보여지는 분단과 전쟁, 남과북, 재벌과빈곤, 좌우대립에 대한 히스테리적 반응은 이성적인 생각이나 논의가 불가능하게끔 하는 강렬한 트라우마라 할 수 있고 40~50대의 재벌과분단, 군사독재, 피해의식 등은 또 다른 사회적 트라우마다. 다만, 요즘 20대 세대들에게서 보이는 ’근거가 없어 보이는 우경화’는 어떤 트라우마에서 기원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자신들보다 먼저 태어나 40~50대가 한국경제 성장의 열매를 따먹어 버린 40~50대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동일까? 아니면 개인적, 사회적 의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보수언론과 신자유주의에 물든 ’개념없는 청소년적 반항’일까?
 
한 번쯤 이 책을 읽고 우리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생각하는 것도 필요한 때다...
 
[ 2011년 2월 7일 ]
 
-------------- 2월 8일 공부모임 후 후기 ----------------------------------
 
오늘 공부모임에서는 오랜만에 모든 참석자가 깊은 관심으로 논의에 참여했고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토론도 진행됐다.
 
모두가 컴플렉스나 부적응 정도로만 생각하던 개인과 주변의 많은 심리적 현상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구체적인 증상으로 재해석하면서 공감하였고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적인 현상이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트라우마가 있다는 현실에 한편으로는 위안을 삼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참석자 중에서는 그동안 살면서 스스로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겪어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본 경험자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주변의 사례와 경험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성폭력과 가정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의 구체적인 사례와 의견, 개인적인 처리와 집단적인 처리로 구분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 미국의 상담치료에 대한 제도적 장치, 한국식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와 공감 등 많은 소중한 의견도 들렸다.
(어떤 사람은 현재 자신의 가장 심한 트라우마는 MB라며 절규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최근들어 ’집단의 폭력’과 ’전국민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전국민이 마치 한꺼번에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울하고 부정적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긍정적인지, 국가적/사회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와 제도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개인과 주변사람들은 또 각자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의견이 교환되기도 했다.
 
오늘 공부모임에는 영화감독이 한 분 참석하여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참석자들이 책 속의 영화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24편의 영화 중 여러 편을 강추해 주었다.
 
공부모임을 마치면서 나 자신의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내가 주변에게 트라우마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 내 가족과 이웃, 가까운 친구와 선후배들의 트라우마는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에 잠기면서 헤어졌다.
또한, 나 자신이나 주변에서 트라우마가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고, 사람들에게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촉구해야 하는 것에 대한 숙제를 안고 돌아왔다. 
  
[ 2011년 2월 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원제 : THE ELEGANT UNIVERSE : SUPERSTRINGS, HIDDEN DIMENSIONS AND THE QUEST FOR THE ULTIMATE THEORY
- 부제 : 초끈이론과 숨겨진 차원, 그리고 궁극의 이론을 향한 탐구 여행
 
2007년 12월에 저자의 <우주의 구조 The Fabric of the Cosmos >를 읽은 후, 이 책을 읽겠다고 마음 먹은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더 지나버렸다. 책을 구입한 때가 2008년 4월이니 책을 책꽂이에 꽂아놓고 방치한 지도 벌써 3년 가까이...ㅋㅋ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지난 설 연휴에 꺼내들었다. 처음 <우주의 구조>를 읽을 때 하루 4시간 이상 책에 몰입했음에도 일주일 가까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상당히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갔다. 그동안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교양을 조금은 쌓았나보다...^^
 
<우주의 구조>를 먼저 읽은 후에 이 책을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책과 <우주의 구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초끈이론에 대한 저자의 ’태도’인 것 같다. ’태도’라 함은 이 책에서만 보면 저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여 우주만물의 ’대통일이론’ or ’최종 이론’을 이끌어낼 물리학 이론은 초끈이론 밖에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 치고 있는데, <우주의 구조>(2005년에 발간)에서는 큰소리보다 물리학과 우주과학의 흐름과 발달과정, 그리고 21세기 현재 최종이론을 향한 과학자들의 다양한 노력과 이론을 소개하면서 많이 겸손해졌다는 것이다. 이 책(1999년에 발간)에서 저자는 "향후 5년 안에 초끈이론에 큰 성과가 있을 것"임을 예측했지만, 2005년까지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렇다 할 실험결과나 관측결과, 또는 이론적인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초끈이론에 대한 대중적인 설명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500쪽이 넘는 분량을 주로 초끈이론을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는 요약하여 잘 설명한다. 그리고 두 가지 당대 최고의 물리학 이론이 서로 통합되지 못하고 충돌한다는 점을 거론한 뒤, 초끈이론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간다.
 
상대성이론이란 무엇인가? 20세기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불리우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그동안 절대적으로 알려졌던 아이작 뉴턴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4차원 시공간을 통해 고정되고 절대적인 우주에서 변화하고 상대적인 새로운 우주관을 정립시켰다.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는 사실을 통해 운동을 통해 시간이 달라지고, 길이 역시 달라진다는 것이 이론의 핵심이다.
 
또한 20세기의 비슷한 시기에 상대성이론과 또 다른 차원에서 획기적인 이론이 발견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극미세 영역을 탐구하는 양자역학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양자역학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는 게 입증되었다. 양자역학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플랑크스케일 이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자들의 움직임은 거시세계에서의 움직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은 원자 규모 이하의 물리학에서는 검증되지 못했고 양자역학은 우주 차원에서 적용되지 못한다. 하나의 자연과 우주를 설명하는데 거시 영역과 미시 영역이 각각 다른 이론으로 설명된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자연 현상에 대한 빈틈없는 논리를 세워야 하는 물리학에 있어서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초끈이론이다.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란 무엇인가? 초미세 공간 안에는 원자가 있고, 원자의 내부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게 최소의 단위는 아니다. 전자의 내부에는 3쌍으로 움직이는 쿼크가 있는데 그것을 소립자라고 부른다. 초끈이론은 물질의 최소단위가 소립자가 아니라 1차원으로 이루어진 길이를 갖고 있는 진동하는 끈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거기서부터 모든 이론을 전개한다. 물론 현재의 과학기술로 끈의 존재를 발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이론물리학자의 상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학의 이론적 토대와 정밀한 실험과정을 거치면서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가장 강력한 후보로 주목받았다. 초끈이론은 양자기하학, 대칭성, 공간찢기, 다중공간와 연결된다.







 
초끈이론에서 ’초(super)’란 ’초대칭성(supersymmetric)’의 줄임말로, 초대칭성이란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들 뿐 아니라 그 힘을 기술하는 수학체계까지 통일시키고자 하는 이론들이 가장 커다란 스케일의 대칭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 2011년 2월 13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