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장하준교수의 인연(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라 책과의 인연..)은 2008년 8월 삼청동의 어느 북카페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고 잠깐 짬이 나는 사이 우연히 책꽂이에서 뽑아든 <나쁜 사마리아인들> 몇 쪽을 읽게 되었다. 북카페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기에 제목만 적어놓고 돌아와 저녁에 인터넷을 책과 저자를 검색하였다. 그렇게 시작되어 2009년까지 장하준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터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었고, 작년에 <국가의 역할>을, 그리고 2011년에 들어 이 책 <개혁의 덫>과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었다. 이 책은 대학 동기가 선물해준 것이다.(작년까지만 해도 저자의 책 한두 권 정도는 읽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지 않겠냐 - 더군다나 이 책은 2004년 작이다 - 고 생각하였는데, 저자의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새로 읽으려고 마음 먹으니 아무래도 꺼림칙하여 먼저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격변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신문, 잡지, 그리고 인터넷 매체에 실었던 글과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책을 펼쳐들고 나서 ’읽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 책을 처음 발간한 것이 2004년 8월이다. 당시 상황은 고노무현 전대통령이 집권 2년차에 접어들었고 탄핵정국으로 안정적인 국회의석을 확보한 상태에서 한-미 FTA 등 산적한 경제현안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가 무성했던 시기였다. FTA는 전임 고김대중 대통령 임기 때부터 추진했던 정책이고 노무현정부 역시 시민사회단체와 여러 교수,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와 ’개혁’의 허울, 신흥경제국의 적합한 경제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다.
 
6년이 지난 후 결과로만 보면, 저자의 지적과 비판,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 현재의 경제 위기(이명박정권과 보수언론은 위기라고 인정하지 않지만...)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경제정책 방향이 수 년간 정부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위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개혁’에 대해 진보세력도, 시민단체도, 일반인들도 여전히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대안과 정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이 책은 아직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2004년에 한국사회와 경제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하면서 의견을 피력한다. 2004년의 한국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경제라는 변수 외에 정치라는 변수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변수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했다. 당시 한국 경제가 ‘개혁’이라는 ‘덫’에 걸린 상태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7년 개혁론자들(김대중정부와 민주당, 진보세력)은 ‘개혁’을 내걸고 집권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의 부정적 유산, 특히 권위적,폭압적 정권의 제도 및 정책과 절연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적절한 대안을 세우지 못하였고 상당히 무의식적으로, 맹목적으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물론, IMF 구제금융에 따라 IMF와 IBRD, 그리고 그들의 배후인 미국의 요구와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음을 인정하더라도 김대중정부, 그리고 진보세력이 주체적인 장단기 정책과 계획이 없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겉으로 신자유주의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방식이였다. 시장 중심적 접근 방식은 개발연대의 정부 개입적 접근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그 골치 아픈 재벌 문제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는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투명 경영, 주주 자본주의를 통해 가공 자본의 창출에 의한 1인 소유 및 문어발식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김대중정부의 개혁의 결과가 무엇인가?
우선 ’투자가 붕괴’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실업난’이 이어졌다. ’청년 실업’이 국가적 고민으로 떠오르고, 구조 조정 과정에서 물러난 중년층 실업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일찌감치 퇴출되거나 소자본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 소비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소비 진작 정책은 ’신용 불량자’만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가중시킨 것은 물론 가정 파괴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또 노동 시장을 유연화한다고 ’비정규직’을 늘린 탓에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커졌다. 반면 주식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주주들의 영향력이 강해진 결과 기업들의 ’배당률’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기업들의 이익이 과거와 같이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 대체로 상류층에 속하는 - 주주들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절대 ’빈곤층’의 급증이다. 외환 위기 이후 절대 빈곤층은 국민의 5.9%에서 11.5%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과거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평등한 수준에 속하던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가 이제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게 되었고, 자칫 잘못하면 미국을 제치고 멕시코 등 남미 국가의 대열에 끼게 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이다. 저자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고 묻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혁론자들은 진보를 표방했다. 진보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상징한다. 그런데 현재의 개혁은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약육강식의 시장으로 몰아내고 있다. ‘개혁’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과거와의 절연만을 서두른 결과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2004년 전후의 한국이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했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 채택했던 경제 정책을 다시 채택하면 된다. 문제점만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말이다. 그에 대해 쏟아지는 무수한 반론의 요지는 한 가지,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그게 말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경제사적으로 제시한다.

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은이가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 하나에 답해야 한다. ’과거의 우리 경제가 과연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느냐’는 질문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선진국들의 소득이 2배가 되는데 7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다. 반면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 위기 때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6% 가량으로, 40여 년이 지나면 소득이 8배가 되는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물론 이런 성장률 하나만으로 우리의 개발연대를 무조건 미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소득이 가나의 반이 채 안 되고, 아르헨티나의 5분의 1밖에 안 되던 나라, 텅스텐·생선·해조류 등 1차 산품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던 나라가 이제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2배 가량 되는 소득에,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 등의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출국임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소득 분배가 어느 정도 평등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민 전반의 생활이 향상되었다. 저자는 그와 같은 성과는 제대로 평가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재벌 문제에 있어, 재벌들의 체질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저자 역시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재벌 = 공공의 적’이라는 무모한 일반화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 비판의 요지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과다한 차입 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 구조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런 인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비율로 따져 볼 때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보다 더 많은 자금을 주식 시장을 통해 동원했다고 한다.(이 반론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 것. 저자는 차입경영이 문제가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또 350~400%라는 우리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병적으로 높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고도 성장기 일본이나 1980년대 유럽과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이 책은 끝까지 이런 식의 반박이 거듭되면서 거의 모든 경제 문제를 다룬다. 세계화나 금융 허브, FTA 협정, 서비스업 육성,  인플레이션 문제, 정치 논리의 개입의 필요성, 다국적 기업의 존재 여부 등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과거 경제 성장 정책을 수정하여 재도입함으로써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개혁론자들이 자신이 주장하던 개혁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흑백논리’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과거의 성장정책(결국 몇 가지 박정희식 핵심 경제정책을 이야기함)이 자칫 잘못하면 진보세력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그래서 격렬한 반대도 있을 수 있다.) 한국경제를 회복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한국의 진보세력과 시민들의 정치사회 의식수준을 너무 얕본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에 누가 했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어떤 것이 더 국민을 위한 최적의 정책이 될 것인가, 10년이나 50년 후를 바라볼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 책 속의 문장
- 1997년의 외환위기는 지나친 정부개인 때문이 아니라 금융규제의 미비 등 지나친 자유방임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 미국 MIT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시아 경제위기는 국내적 제도의 결함보다는 세계 자본시장의 불안정성과 국내 금융규제의 미비에서 찾아야 한다고 받아들인다.(1999. 12 / 한국일보 / p.26)

- 우리가 흔히 선진경제라고 하면 연상하는 주주 지상주의, 자유방임주의 그리고 작은정부를 이상으로 삼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전체 선진국을 기준으로 볼 때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다.(1999. 4 / 한국일보 / p.128)

- 결론적으로 말해 주주 자본주의의 추구는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좋지 않다. 대부분의 주주들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따른 이익보다 단기적 배당이나 주가 차액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주 이익의 추구가 과연 국민 경제 전체에 득이 되느냐는 점이다.(월간 ’말’ / 2003. 6 / p.161)

- 경제성장의 저하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자본 자유화는 투기 자본의 이동을 활발하게 하여 경젱환경을 불안하게 만들며 투자를 저하시킨다. 아울러 규제 완화로 말미암아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생산적인 투자가 줄어든다. 그 결과 야기되는 투자 축소는 고용감소와 수요위축을 불러오게 되고, 수요 위축은 다시 투자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동아일보 / 2003. 7 / p.175)

- 진정으로 이공계에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려면 투자를 가로막는 제도와 정책을 고쳐 제조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고 노동 시장 유연화를 빙자한 고용의 불안정성을 시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공계 일자리가 장래성 있고,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지 않으면 이공계 기피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동아일보 / 2003. 11 / p.208)
 
[ 2011년 2월 12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