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저자가 여러 해 동안 법정스님을 따르면서 스님이 법문하시고 말씀하시는 내용 중에서 가려뽑아 발간한 것이다. 스님의 뜻으로 만든  모임인 ’맑고 향기롭게’ 회원들이나 길상회 모임을 대상으로 법문하신 것, 명동성당 기념식에서 강연하신 내용, 도올 서원에서 말씀하신 내용, 그리고 사석에서 하신 말씀들을 모았다. 따라서 대략 1990년 중후반의 기록일 것이다. 저자는 스님의 말씀을 모두 녹화한 후, 녹음내용을 기록했다고 한다.
 
여기에 각 장의 서두에는 글을 엮은 저자의 경험과 감상이 때로는 일화로, 때로는 인상으로, 때로는 경구들로 담담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엮은이의 서정적인 필치에 덧붙여진 소박하고 정갈한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은 어렴풋이나마 스님의 맑고 투명한 세계를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은 어떤 묵은 데 갇혀 있으면 안된다. 꽃처럼 늘 새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런데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어디에 갇혀있는 것일까?’라고 자문하게 된다. 직장이라는 둘레에 또는 관계라는 둘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하루하루 편안한 잠자리와 남이 해준 밥을 먹고 매일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한다.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고 따뜻한 말을 나눈다든가 눈매를 나눈다든가 일을 나눈다든가, 아니면 시간을 함께 나눈다든가,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와의 유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누는 기쁨이 없다면 사는 기쁨이 없다"
나는 누구와 어떤 것을 나눌 수 있을까... 매달 시민단체에 몇 만원, 봉사단체에 몇 만원과 같이 물질을 일부 나누면서 자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족과 직장, 가끔 만나는 가까운 선후배와 동료 이외에 나에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있기나 한 걸까...
 
"온갖 욕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온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 소유물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스스로를 우주적인 생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맑은 가난, 곧 청빈이다. 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내안이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소유물을 줄이는 것이 그 출발이라면 내가 그동안 소중하게 모아서 읽고 소감을 쓰고 있는 이 책들, 내가 가장 집착을 보이는 이 책들부터 줄여야할텐데,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가슴 뜨끔한 말씀이다. 펜도 하나면 되고 가방도 하나면 되고 안경도 하나면 되고 신발도 하나면 될 것이다. 몇 개씩 가지고 있어봐야 결국 필요한 상황에서는 하나 밖에 사용할 수 없다. 많이 줄이고 버리고 주었지만 더 줄여야 하겠지...
 
"세상이 달리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달라진다. 내 자신이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들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생각나고 사티시 쿠마르도 생각나고 ’나무를 심은 사람’도 생각나고 박노해시인도 생각나다. 그들 모두 동일한 이야기를 했고 모두가 말에 앞서 실천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세상이 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나부터 달라지고자 노력할 것이다. 먼저 소유물들을 하나씩 버리고 과도한 음식과 수면을 줄여나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횟수도 점점 늘릴 것이다. 미워하기 보다 용서하고 나무라기 보다 이해하고 찾아오기 바라기보다 찾아갈 것이다. 말하기 보다 듣고 뛰기보다 걷고 분노하기 보다 공감할 것이다...
 
"나는 이 절이 부유해지거나 화려해지거나 번잡한 행사들을 벌여 나간다면 아무 미련없이 이 절을 떠날 것이다. 나는 이 절이 소박하고 가난한 절이 되기를 바란다."
성북동 길상사의 창건주이자 회주이면서도 길상사 창건 후 첫 법회에서 법정스님은 평소와 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 연휴 기간에 처음 길상사를 갔었다. 스님의 말씀과 달리 건물들이 제법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수도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지난 달 구례 화엄사를 갔을 때 느꼈던 번잡함과 화려함과 욕심이 떠오르면서 길상사와 비교되었다.
 
"무한경쟁이라니... 사람이 어떻게 무한히, 끝없이 경쟁만 할 수 있는가. 그런 구호에 속아서는 안 된다. 어떻게 경쟁만 하고 살 수 있는가. 물론 삶의 요소에 경쟁도 있지만 경쟁하지 않고 사는 그런 경우도 있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니, 우리는 일류가 아니다. 나 자신도 일류가 아니다. 삼류 사류도 있고 아류로도 살고 있다. 다들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우리는 성적의 차이를 떠나서, 빈부의 차이를 떠나서 사이좋고 우정으로 지내왔다. 지금도 그 친구들과는 성적이나 실력, 빈부나 직급과 상관없이 지낼 수 있다. 다만, 정부와 기업이, 언론과 무식한 식자층들이 우리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끌려다니고 내몰리는 대기업의 선후배와 친구들, 공무원들과 교육자들, 사업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에 이어 법정스님의 저서를 다섯 번째로 읽었다.
 
* 책 속의 문장
- 텅 비워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텅 비어야 거기 새로운 것이 들어찬다. 우리는 비울 줄을 모르고 가진 것에 집착한다.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찬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진정으로 거기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다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이다. 텅 비어 있을 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p.42)

-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한때일 뿐이다. 욕망은 새로운 자극으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을 채워 가는 삶은 결코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인생이, 내 삶의 잔고가 어디쯤에 왔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거듭거듭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p.102)

- 종교는 한마디로 사랑의 실천이다.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보살행, 자비행은 깨달은 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익혀 가는 정진이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쌓은 행의 축적이 마침내는 깨달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몰랐던 것을 아는 것, 이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본래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꽃씨를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가꾸어 나가면 그것이 시절인연을 만나 꽃피고 열매 맺는 것,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p.110)
 
[ 2011년 2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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