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어젠 날씨가 그럭저럭 좋았죠. 얼마 전까지 입던 옷은 이제 빨아서 넣어야 될 거 같아요. 이제 그 옷을 입으려면 반 년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 벌써 그렇게 된 거예요. 계절은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담당이거나, 아님 늘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누군가가 담당하는 거 아닐까요. 지난 겨울도, 이번 봄도, 아무리 봐도 서서히 우릴 생각해가면서 바뀌는 건 아닌 것 같죠? 아무래도 그렇지 않아요?

 

 **언니, 오늘은 고민이 있어요. 요즘 저, 열심히 살고 있는 거 같지 않아서, 슬슬 불안해지는 거예요. 하루하루 충실하고 효율과 성과를 올리면서 산다는 거, 그거 모든 사람이 다 그럴 수 있는 걸까요? 난 열심히 살고 있다, 이런 것도 다 자기 기준이 다르니까, 객관적 수치와 다를 수도 있긴 하죠. 그렇지만, 언니가 날 본다면, "**, 요즘 조금 해이해진 거 같아." 라고 말할 것만 같은 생각을 하는 거죠. 말하자면 뭐, 그래요.  

 

 열심히 산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자기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 누군들 치열하고 열심히 살고 싶지 않겠어요. 그냥, 지금 뭔가 쉬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지지부진 하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죠. 언니야 전부터 크게 화내는 일이 없는 온화한 사람이지만, 반면 전 변덕스럽기도 하고 불만도 많고, 이것저것 정신없는 그런 애였잖아요. 이 이야기 하면, 언닌 웃을 거야 아마.^^

 

 저, 담달에 시험보는 거 알죠? 이맘때면 죽어라 해야 하는 시기라는 거, 저도 알아요. 그럼요. 전 작년에도 이 시험을 봤어요. 떨어져서 다시 보는 거지만. 근데, 올해는 어쩐지 그냥 퍼져사는 거 같아서, 저 많이 괴로워요. 그렇다고 이런 얘길 엄마한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 때부터, 문제는 더 나빠질걸. 가끔은 언니가 이전처럼 가까이 살면 좋겠다 생각해요. 힘들때, 칭얼거리듯 말하면, 언니는 그 이야기를 듣으면서 걱정해주기도 하고, 가끔은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자고도 하고. 그렇게 도와주고 싶어했으니까요. 언니 손은 감촉이 좋고 따뜻해서 계속 잡고 있으면 어린시절 엄마 손을 잡고 걷는 느낌이었죠. 어떤 의미에선, 그 때도 그랬을 거예요.

 

 저기... 중요하고 심각한 얘길 하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요...

 언니, 나 배고파요.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얼마전부터 저 배탈나서 오늘도 밥 제대로 못 먹고 있어요. 말 그대로 맘대로 먹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먹는 것만 보면,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는 걸요. ^^; 언니 요리 솜씨 은근히 괜찮다는 소문 있던데...근데, 제겐 그 실력을 자랑 안 했을까요? 아이, 미안해요. 언니가 좋다는 델 우리 같이 가면 그 집 음식은 매번 맛있었는데. 근데도 난 왜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요. 그치만 그 겸손함 덕에 전 지금껏 한 번도 언니의 특별한 요리를 먹어볼 기회를 얻지 못했네요. ^^;  에이, 진짜 아쉽다!

 

 언니가 만든 음식엔 뭐가 들어가나요?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꼭 들어가야 할 '정성과 사랑'은  빼고요. 설마 비법 양념이 다시다는 아니겠죠? 그건 우리집에도 있어요. 맛선생이나 산들애도 대용품으로 쓰지요. 제 친구는 진~짜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이 싫대요. 그치만, 우리 엄마는 이거 오늘도 쓰던데요. 반 숟갈씩 슬쩍슬쩍.

 

 저, 솔직히 말할게요. 이번에 시험 잘 봐야 해, 하고 부담스러워 지면, 그냥 도망치고 싶어요. 텔레비전으로 인터넷으로, 알라딘 서재로. 아님 다른 무엇으로도... 이럴 때, 이런 건 좋지 않아, 하고 말해주기를. 난, 그런 걸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젠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도망쳐도 도망쳐도 결국엔 시험장에 가야 되는 걸요. 아님, 내년에 또 봐야 되는 거구요. 그게 도망의 결과겠죠.

 

**언니, 오늘은 제가 좀 힘들었어요.

내일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생각해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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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친 Kitchien 1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문화사(만화) / 2009년 10월

 

 이 음식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의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게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 일이 추억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길지 않은 이야기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의 것이다. 엄마가 보내준 굴이, 된장찌개가, 마룻 바닥을 돌아다니는 꽃게도 지나고보면 추억이 되고, 그립기도 한 이야기가 되어 줄 거다.

 

 책은 컬러로 되어 있고, 연재시에 실리지 않았던 작가 후기가 군데군데 있다고 하니, 전에 봤더라도 보지 못한 이야기가 조금 더 있을 듯 하다.

 

 

 

 마음속에는 괴물이 산다
한덕현 지음 / 청림출판 / 2013년 3월

 

 불안의 콤플렉스에서 탈출하는 자신감의 심리학!!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인 스포츠 정신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오랜 임상 경험과 다양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을 썼다. 우리가 가진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와,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모색한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극도의 긴장된 순간에서 맞이하는 승부의 순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인드 트레이닝을 하듯, 우리도 자신의 지금 모습을 통해서, 불안과 콤플렉스에서 탈출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저자의 설명과 조언을 한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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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전 라면 잘 끓여요. 특히 컵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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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3-05-03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오래 썼어요. 처음엔 와서 로그인만 해 보겠어, 했다가 또 이렇다죠.^^

서니데이 2013-05-03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까지 그럭저럭 고민스러웠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집니다. 내일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