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지금, 이 책을 한 번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거의 십여 년 된 책입니다만, 내용은 알지 못했던 책이었습니다. 그 사이 한 번 읽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어디선가 봤는데 내용이 아주 무섭다는 말이 들려서, 그동안 기회가 없었던 듯 합니다.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무섭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한 편에서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어려운 일이라도 자청하는 사람들이 있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이 소설 안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뒤섞여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더 무섭게 느껴지는 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는 사건의 묘사만이 아니라, 이 소설의 이야기가 많이 멀지 않은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원서가 일본작가의 책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지명과 인명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만, 용과 마법이 등장하는 설정보다는 훨씬 우리와 가깝고 비슷해 보이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여, 휴대전화를 비롯해 우리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많은 것들이 여기에도 있기에, 보다 가까운 세계의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 일들이 주변에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 공포감은 내 앞에서 배가 됩니다.

 

  이 책은 주인공 한 사람의 시점으로 일관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떠한 설명도 나오지 않으면서, 무작정 읽어가야 합니다. 읽다보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왜 나오는지 들쭉날쭉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쉬지않고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한편으로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작가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무대위의 연극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처음부터 읽다보면, 약간은 위화감이 든다거나 조금 이상했던 부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스토리의 큰 흐름에 집중해서 읽게 되기 때문에 조금 이상하다 하면서도 그럭저럭 다음 장으로 잘 넘어갑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무대의 불이 꺼지고,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때까지 무대만을 흐릿하고 색감있게 비추던 조명은, 이 시점부터는 이야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자리까지 모두 켜지고, 모든 것도 그 순간부터는 이 극장 밖의 모습들이 그렇듯 훤히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사건에 대한 누군가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다가, 이제서야 지금의 현실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이르면 읽는 사람이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과거인 건가, 아니면 픽션이었던 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던가? 여러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만, 결국 약간 웃고 말았습니다.  

 

 이 순간부터는, 앞서 보여준 여러 가지의 부조화에 대해서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 책의 설명이나 묘사가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 간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래서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렇게 부분부분만을 보여줬던 겁니다.

 

 이 책은 그 장면을 위해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기발한 반전을 준비하고 펑! 하고 나타나는 책들도 많고 영화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부분부터 사실 그대로 보여주긴 했지만, 읽는 사람이 자기 입장에서 읽도록 준비해 왔을테니까요.

 

 그렇지만 여기서부터도 책은 약간 달라집니다. 작가는 이 장면에 이르러 난처해하면서 읽는 사람에게, 조금은 준비없이 진실을 말해버립니다.  지금까지, 상식이라 믿었던 것들이 실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일 뿐, 그것이 실체는 아니라는 말을, 그는 우리에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해야 할 것이라는 여지를 남기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습니다. 등장 인물 앞으로 미래의 시간을 남겨둔 것일 수 도 있겠습니다.

 

 원작이 일본 소설이라서, 벚꽃 지는 계절의 의미를 잘 모르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 시점이 이십대 시절이 아닌 인생의 후반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점에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젊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인물들이 활약하는 소설입니다. 남의 눈에는 이렇게 비치지만, 실제의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 실체를 만드는 건 나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는 결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적을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미래에 대한 열망은 강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도 많고, 할 수 있을 것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바깥의 벚꽃은 졌겠지만, 그 사람의 내부에서 그보다 환하게 활짝 피고 있나 봅니다. 지나온 시간에 비해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대로, 라는 주인공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책을 이제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러면 앞서 작가가 준비했던 많은 것들을 웃어가면서 읽어갈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이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무섭고 두렵지만, 그래도 한 번 읽은 사람으로서 결말을 알기에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 이번엔 읽으면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작가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는 정답찾기가 될 것 같아, 무척 기대합니다. 

 

 다시, 앞 부분으로 돌아가보면, 이 책의 도입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그리고 다음에 눈을 떴을 때 갓난아기로 새로이 태어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페이지10 에서)

 

 나는 움찔 몸을 떨며 현실로 돌아왔다.

(페이지 12 에서) 

 

  이 소란스럽던 연극이 끝나고 책을 덮으면, 그 순간부터는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현실이 무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오늘은 섣달 그믐이며, 내일은 다시 맞는 첫 날입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다시 새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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