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귀족의 딸, 남장하고 사립학교로 간 이유는?>
몰락귀족의 딸인 가브리엘은 원래 가기로 했던 친구 제레미가 갑자기 죽자 그 대신으로 유명 사립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언제나 정체가 들킬 것이 불안하다. 그리고 귀족가 자제인 학교의 학생들과는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집안환경의 차이가 있다. 수업 도중 화가나서 말을 죽이려는 조슈아와 다툰 이후로 학생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게 되지만, 그들처럼 편히 학교를 다닐 입장은 아니다.
친구 레이의 약혼자의 집에 가서 만난 사람이 그 정체를 알고, 부인에게 돈을 요구하려다 죽는 일이 생기고, 점점 제레미로 살기는 어려워진다. 그러는 사이 유안과 레이 형제는 제레미에게 끌리게 되고, 여러모로 돕지만, 누군가 계속해서 그를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그렇기에 살기 위해서는 떠날 수 밖에 없다.
제레미가 미국으로 도망치듯 사라진 직후 유안이 누군가의 총을 맞고 죽고, 레이는 형을 대신해서 억지로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 힘겹다. 그 시간도 멈춰져있었다. 형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는. 그러나 그토록 보고싶었던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이 이야기 속의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겪는 이유는 다르지만, 때로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때로는 돈이 그리고 미움이 동기가 되어 움직이기도 하고, 움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저마다의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사랑받기를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원한다지만, 그 사랑의 대상이 그가 원하는 그 모습으로만 있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상처주며, 괴로워할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 사랑했던 기억에 머물러서 살아가는, 마음은 그 시절의 소년으로 살아가는 삶도 힘겹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마음이 아프다.
때로 누군가의 상처는 그래서 마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다 결국은 마주하게 되는 것.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을 떠올리는 레이와, 정체가 들켜서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제레미가 아닌 가브리엘이 그렇듯, 꿈은 악몽이든 행복한 꿈이든 그대로 꿈속에서 살게 해주지는 않는다.
누군가 떠나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지만, 결국은 그 사람의 몫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는 것. 형인 유안이 어이없게 총에 맞아 죽고나서, 레이는 형의 몫까지 열심히 살고 있기는 하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을 뿐이다.
아픈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란, 실은 우리에게 선택이 주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 알지만, 레이가 그랬듯이 마음은 그 시간에 얼어붙은 물 속으로 잠겨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고, 또는 그의 아버지처럼 장남의 죽음을 지워버리고 믿으려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탓인지 시간이 흐른 다음의 레이가 형의 유안처럼 보였다.
마지막에서 가브리엘과 레이가 다시 만나게 되지만, 둘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함께 미국으로 떠나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많은 것이 달라진 상태다.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만나고 싶어했던 그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그들의 상처는 조금 아물었을까.
알라딘에서 검색을 하다보니, 만화책도 이북으로 나온 책이 있었다. 노다메 칸타빌레가 그렇듯, 이현숙의 <새비지 가든>도 1권에서 4권까지는 이북으로 나와 있다. 네이버에서 이 책의 유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으로 아는데, 알라딘 이북에서 뒤의 책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상처주고, 상처입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거다. 그냥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없을 거고. 그러나, 그런 것을 알기에 좀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다. 이 짧은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 오기까지 시간은 알 수 없고,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언제나 정해진 확실한 길만을 걷기 원한다해도, 우리 생애의 변수는 정말 많을 거고,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복잡하고 다양한 가능성으로 알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순간 이 여린 꿈이 어이없는 실수나 무성의함으로 인해 깨지지 않도록 조심히 다룬다. 조금이라도 더 이 시간을 살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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