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사이는 매일 얼굴을 보고 한집에서 먹고 자는 사이이다보니, 가끔은 사소한 이유로 말다툼 끝에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다시 이전처럼 이얘기 저얘기 하고 그러지만, 그래도 마음이 상처입는 건 좀더 간다. 그리고 다시 싸우면 이전의 상처도 같이 벌어져서 더욱 아프고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싫으면 주저하지 않고 "엄마 싫어, 미워!" 하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도, 조금 더 크면 이전처럼 그럴 수는 없게 된다. 왜냐면 더이상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꼭 그런 때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아니라는 건 여기저기에서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네가 나이가 몇인데!"라는 한심한 시선과 함께.
그런데 안됐지만, 나이는 먹었어도 그래도 나는 그냥 나일 뿐인걸.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었어도 엄마에게 있어서의 나란 그때의 어린애인 그대로인 걸.^^ 가끔 싸우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화를 내고 울어도, 며칠 지나면 거창한 화해의식이 없더라도 어느새 다시 말을 하고 밥을 먹는 그런 사이. 대체로 우리 집에서는 그렇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이미 나이를 먹고 성장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는 상처입기 쉬운 연약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시간이 흘러 어느 사이에 되는 걸지도 모르지만, 마음 속 아이의 성장을 위해선 많은 것이 필요하다. 상처입고 좌절하고, 원하지 않아도 이별해야만 한다. 그런 순간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고, 또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이 배워가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고, 상대방과의 적정한 거리를 알게 된다. 때로는 부모, 때로는 친구, 또는 연인이 되기도 하는 내가 아닌 그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런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과정이라 한다면, 지금 내 앞에 놓은 한계를 인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은 작은 희망을 남긴다.
<서른살이 심리학에 묻다>와 <심리학이 서른살에 답하다> 두 권의 책으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저자 김혜남 님의 책인데, 서른살 시리즈 이전에 나온 책이다. 우리 집에 있는 책은 2006년의 표지인데, 이후 새로이 표지를 해서 나온 것을 알게 되어 두 권 모두 실었다.
어느 집에선 한 번도 야단쳐본 적 없는 착한 아이와 좋은 부모가 있다고도 하지만, 그런 집에서 안 살아봐서, 무척 부럽기만 할 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건 모르겠다. 아마도 그 집안은 좀더 서로를 존중하고 누군가 말할 때는 마음에 안 들더라도 참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또는 서로 나이를 먹고 한 시간을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같은 과제를 제시한다. 한 그룹의 아이들은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들이지만, 다른 한 그룹의 아이들은 보통 정도이다. 도미노를 세우는 과제는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중간중간 공들여 세운 블록이 넘어지기도 한다. 이때 두 그룹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차이가 있다.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상대의 잘못을 비난하려들지 않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짜증스럽고 공격적으로 지적한다. 아이들이 만든 도미노를 보면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들의 도미노가 잘 만들어져서 모두 넘어졌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중간에 멈췄다.
여러 가지 실험이 계속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아이들의 차이도 조금씩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대상이 아이들로 설정되었으나, 어느 면에서 보나, 어른들도 비슷할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의 반응이 어른들보다는 더욱 알아보기 쉬울 수도있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알고,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이들이 학업의 성취라거나 개인의 내적행복의 측면에 있어서 훨씬 좋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책의 끝 부분에 이르러 오늘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내일 행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공감하게 된다. 행복과 긍정을 수없이 말하지만, 도대체 그 실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말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보여주는 사례는 도움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그러기 위해서 모든 걸 억제하고 오직 화목하게 보이는 삶을 살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러기 위해서 일방의 원하는 대로 다른 일방이 끌려가서는 겉으로 화목한 것이 자기 입장을 두고 다투는 것보다도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다만 조금 더 입장차이를 인정하면 좋겠고, 이왕이면 원색적인 대화로 변질되어 속을 쓰리게 하지 않도록 , 필요이상으로 상대를 자극한다거나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단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지만, 그러고 나면 서로 상처받고 안 보고 싶어지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는 거니까.
오늘 싸우면 오늘은 다시 안 볼 것처럼 해도, 내일이나 모레쯤 되면 서먹서먹해지고, 그리고 한 며칠 되면 이전처럼 그저 그렇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그렇게 보이지만, 상처는 입는다. 쉽게 아물지도 않고, 애써 부정하고 싶어지지도 않는 상처는 다음에 벌어질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한 집에서 살고 한 상의 밥을 먹는 사이. 그게 가족인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