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다자이 오사무 전집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수윤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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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란하다. 이렇게 스스로를 뻔히 보이는 악덕 속에 밀어넣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하나같이 데카당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데카당이 아니다. 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하다 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들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표현하지 않아서 데카당이 아니고, 표현했기 때문에 데카당이다. 자기변호에 서투르기 때문에 데카당인 것이다. 말하자면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자신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괴로움에 신음하는 거다. 그에게 있어 승부를 양보하는 것은 오만함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고 봐도 좋다. 몹시 답답할 정도로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외려 절실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양반다리로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글 몇 줄인가를 써놓고 내심 기뻐하고 있을 따름이다. 얼마나 초라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nevermore'라고 담담히 외치고 '엉망진창'이라고 명랑하게 외친다. 어슬렁어슬렁, 내일을 알 수 없는 스스로의 생명을 바라볼밖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군, 하는 기분이 드는 작품도 몇몇 있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나는 그냥 다자이 씨에게 샘이 났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중독 상태의 글을 쓸 수는 없다, 무자비한 생활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고 생각했다. 또 나에게는 언젠가 틀림없이 개에게 물릴 것이라는 믿음조차도 없다.(「개 이야기」) 물론 나 또한 개를 싫어하여 그처럼 총으로 탕탕 쏴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은 있지만 저만치 개가 나타나면 지레 겁을 먹고 슬슬 피해다니기 때문에 물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항상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는 상태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어떤가. 당당히, 보란 듯이 죽음에 성공했다. 나는 영원히 이상주의자는 되지 못할 위인인가보다.


허황된 꽃. 용서하라,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어머니의 가슴은 바싹 말라, 나를 안아주는 일은 없다. 위로, 더 위로 도망가는 것이야말로, 나의 운명. 단절, 이 고통, 너는 모른다. 내팽개쳐줘, 나를. 영원히 멀리해!
ㅡ 「HUMAN LOST」



바보의 대명사다. 다자이 오사무는 바보다. 가족에게 미움 받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방법만 연구하고 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바보 같은 그가 대변해주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자살이라는 속임수를 쓴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 한마디로 되었다.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더 끝장을 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몰수했다. 아아, 다자이는 바보다. 자살을 일종의 처세술처럼 타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나. 예술의 미는 결국 시민을 향한 봉사의 미라고 하지 않았나. 수상한 유령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낸 말이 부조리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자신의 목숨에서조차 부조리를 낚아 올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마이너스 인간이므로 제로가 되기 위해 죽어버린 것일지도. 자신을 비웃는 건 치졸한 짓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바보 같고, 비겁하다. 비쩍 마른 약골주제에 다자이라는 왠지 싸움이 셀 것 같은 이름을 고른 것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한평생 느긋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여 외려 반감을 느낀 것마저 비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비겁했기 때문에 다자이가 있었다. 거울을 보며 실제보다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자이가 있다. 그렇게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이, 한때 존재했었다. 「Nevermore.」


덧) 『다자이 오사무 전집』은 전10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올해 안에 전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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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브랜든 포브스 외 지음, 김경주 옮김 / 한빛비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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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디오헤드가 어떤 노랫말에서 어떤 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른다. 언어영역의 예문 하나를 차지했던 시인이 몇 연 몇 행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같잖은 우리는, 풀이하고 해석하고 점수를 매긴다. 「전반적으로 기타 루프가 좀 촌스럽지 않아?」 「왜 갑자기 마이너로 바뀌는 거지? 이건 아닌데.」 「여기서 '님'이란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이로구먼. 아마도 죽었을 거야.」 「프로이트를 대입시켜서 어려운 말로 해석해보자고.」 같잖은 인간들이 같잖은 짓을 하고 있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일이다.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면 지구상에서 비평가의 존재는 사라지고 그만큼 삶은 재미없어질 테니까. 어쨌거나 나는 찌그러진 눈을 가진 톰 요크가 좋긴 하다. 심지어 밴드 앨범보다 그의 솔로 작업물이 더 좋아서 『The Eraser』와 이 음반의 리믹스 앨범까지 구입했을 정도다(오, 황금빛 카누트 황제여!).



톰 요크의 솔로 앨범이다. 비트와 전자음이 더 강조된 사운드에 가사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기후 변화 등 환경문제와 이라크전쟁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ㅡ라디오헤드 디스코그래피




이들이 근원적이고 감각적인 신경 어딘가를 건드리는 수준은 최상급에 해당한다. 'such a pretty house and such a pretty garden'은 왜 그리도 슬펐던 건지(「No Surprises」, 『OK Computer』). 물이 차오르는, 얼추 통(桶) 같은 걸 뒤집어쓰고 나와서 노래하는 뮤직비디오와 함께라면 노랫말이 들리건 들리지 않건 간에 우울해져서 미칠 지경이다.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듣는 많은 심장들은 ㅡ 내면의 갈등, 도덕적 절망감, 썩 유쾌하지 않은 비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정체 모를 어떤 것들에 의해 그들의 사운드에 저당 잡힐 것만 같다 ㅡ 「Just」의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We Suck Young Blood」의 박자를 맞추는 박수소리에 소름이 돋거나.



내 머릿속에 두 가지 색(상념)이 놓여있는데
네가 (말)하려는 게 뭐였니?

there are two colors in my head
what was that you tried to say?

ㅡ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Kid A』




폐쇄된 우주에서, ㅡ 굉장히 어색한 말이다 ㅡ 나름대로 조화로운 멜로디가 흐르면 이 음악이란 예술은 단속적이게 된다. 단속적으로 변하고, 밀접한 관계로 변신(개조)한다. 라디오헤드를 완전히 오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일이 잘 굴러갈 리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우울함의 딱지를 붙여주고 있는 거고. 혀가 어떻게 움직이든 맛을 보는 감각은 동일한 셈이다. 뭐, 애초 라디오헤드를 말하려던 게 아니라 라디오헤드를 분석한 이 책을 말하려고 했던 거니까(재미있으니 꼭 읽어라!) 톰 요크를 위시한 얼간이들(「Creep」)은 제쳐두자. ……근데 별 할 말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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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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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이티브, 크리에이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라는 모 출판사 사장님(마포 김 사장님)의 말씀대로 나 역시 이것을 유념하고 있긴 한데, 이런 식으로 '크리에이티브 보고서'를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군대에서의 새벽, 1시간도 넘게 근무를 서게 되면 사수와 조수는 무슨 얘기라도 주절거리게 된다. 「제가 얼마 전 휴가 때 여자를 만났는데 말입니다.」, 「중대장이 어떻게든 말년들도 유격에 데리고 가려는 통에…….」, 「아까 취침하고 나서 용팔이(일병)가 코를 너무 곤다며 조 상병이 장난으로 모포말이를 했는데 그게 잘못돼서 그만…….」 조수는 사수를 즐겁게 하지 못하면 죽.는.다. 조수는 사수를 재미있는 상태로 적당히 흥분시켜 다음날 24시간을 편안히 보내는 것에 그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의 사명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데에 있으며 태생적으로 그래야만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책을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크리에이티브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실실 웃다가 끝나버린다. 반드시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여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원고지 1,000매 분량(A4 용지 100장이 넘는다)의 소설을 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이걸 내가 끝까지 다 완성할 수나 있으려나. 이걸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그냥 내처 써야한다. 내가 이 책에서 건진 가장 값진 말은 '근성'이다. 나보다 어린 세대라면 잘 모르겠지만 곤조(根性, こんじょう)라는 일본어 ㅡ 댁들이 일본어를 몰라서가(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니라 우리 세대는 잘못된 일본어를 자주 썼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ㅡ 가 있다. 뜻은 같다. 2루수 앞 땅볼을 치고 도저히 1루 베이스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없음에도 죽을힘을 다해 1루수를 향해 돌진하는 양준혁의 '곤조.' 엉덩이에 땀띠 날 때까지 앉아서 도통 써지지 않는 활자와 투쟁하는 그 '곤조'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상책이라지만 즐길 수 없으면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말인즉슨 피하지 않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크리에이터의 길로 들어서고 싶다면 근성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걸 만들어내려는 과정 하나하나가 힘들면서도 짜릿하게 느껴져야 한다. 요는 인내심, 근성이 없으면 진입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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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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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이나, 전형적이다. 일단 아무렇지도 않게 계절과 풍경을 묘사하고, 발단은 불길하게만 들리는 전화벨 소리나 혹은 예기치 않은 방문자로 시작되며, 경찰이든 뭐든 현역이 아닌 주인공은 그의 커리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린다, 뭐 이런 패턴. 아,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을 괴롭히는 그만의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할리우드 영화가 좋아할 법한 부드러운 안착의 클리셰 ㅡ 『악녀를 위한 밤』도 매한가지군. 여기까지가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느낌이다. 얼마 전 할런 코벤의 소설을 접하면서 왜 내가 그의 첫 작품부터 읽질 못했을까를 후회했었다. 자, 이제 존 버든의 첫 '데이브 거니 시리즈'인 『658, 우연히』를 지금껏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것 역시 후회스럽다는 고백이 남았다. 코벤 씨에게, 그리고 '댄스 시리즈'의 디버 씨에게도 역시 미안한 말이지만 ㅡ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는 나중을 기약하고 ㅡ 나는 이 전직 광고회사 사장님 쪽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싶다. 조금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만큼 차갑고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의 담도를 부러 오락가락하게 조절하고 딱 질리지 않을 정도로만 옆길로 샜다가 금세 돌아오는 패턴(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예를 들 수 있다)을 보임으로써 할리우드의 방정식을 충족시키고 있다. 동시에 장광설이 없어 읽기 편하다. 하지만 이렇게나 평범한 소설인데도 재미있다. 재미있으면 된 거다,

라고만 하면 충분치 못할 테니까 조금 더 적는다. 일단 ‘가족이라는 무리 안에 있는 어떤 괴물’이란 명제를 집단적 구속력이 강한 테두리 안에 넣어놓고(무슨 말인지는 읽어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지켜본다. 그리고 여기에 조금은 어설픈 조합인 것처럼 보이는 '드러나지 않은 조직'을 합체시킨다. 예상하다시피, 결과는 전혀 어설프지 않았다. 헤살이 될까봐 망설여지긴 하지만, 한번 주먹을 쓰면 절대(!) 일어설 수 없게 만들고 반전이 없는 것이 반전이었던 영화 《테이큰》을 기억할는지. 물론 이 소설에서 리암 니슨식의 과격한 액션이 나온다는 건 아니다. 포인트는 ……에 있다(영화는 그렇지 않았지만 『악녀를 위한 밤』의 주인공은 범인에게 약점 ㅡ '멋진 사진들' ㅡ 을 잡히는데 그것이 나중에 전혀 언급되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또 영화의 스피디한 전개만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독자를 잡아끄는 뭔가가 있다. 그게 대체 뭘까. 내 결론은 '희한한 조합'이다. 멕시코인 정원사와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곡, 주인공의 약점을 잡는 범인의 다소 어리둥절한 방법, 고전적인 자그마한 트릭, 증명하기 위해 쓰는 말인 증언의 이면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범죄.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목을 자르고 도주한 멕시코인 정원사라니, 이 문장만 보면 엄청나게 해괴한 조합으로 들릴 테지만 단 하나, 이야기에는 '사람의 품질'이 간섭한다. 또 「깜짝 놀랄 일이 있어」가 될 수도 있고 「보지 않은 건 믿지 마」가 될지도 모르는 '눈을 꼭 감아'라는 말이(원제: shut your eyes tight) 하나 더 첨가되고. 들것이 필요한데도 반창고로 생채기를 숨기는 셈이다.

가이 리치 감독의 《스내치》를 봤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이건 브릭탑의 돼지우리잖아?」 하고. 돼지 농장을 갖고 있는 마피아 두목 브릭탑이 시체 처리를 위해 돼지들에게 몸뚱이(?)를 던져주면, 녀석들은 야금야금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사람의 품질'이 상품(上品)이냐 하품(下品)이냐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이용해먹을' 것인가가 드러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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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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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 분쇄되고, 프리스비처럼 동어반복만을 하다보면 과연 어떤 인간이 미치지 않을 수 있겠나. 『세월』이, 『댈러웨이 부인』의 답습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버지니아, 로라, 클래리사 ㅡ 이 셋의 기묘한 합체의식(合體意識)이 조이스의 '길고도 긴 하루'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이건 농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제발 이 삶(들)을 봐 달라」는 간곡한 권고로 시작한다. 게다가 화자들은 몹시 지쳐있다. 때로는 명랑함도 의미를 잃은 것처럼 꾸며져 '허무주의 vs. 인간의 임무'라는 다소 피상적 논리도 엿보인다.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논리와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모순에서 이 작품은 후자의 발언권을 얻어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당연히 페미니즘(만)을 다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건 하나의 수단이니까. 내가 왼쪽을 볼 때 당신은 오른쪽을 보고, 내가 오른쪽을 볼 때 당신은 왼쪽을 본다. 타협점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분명 이런 상태가 지속될 필요는 없는데도 인물들은 꾸역꾸역 침체된 일분일초를 걷는다. 이따금 빅벤이 울려도 그건 그저 지옥으로 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사실, 애초 『댈러웨이 부인』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들었다면 엄청난 중력의 참을 수 없는 부조화를 느꼈으리라(내겐 울프의 작품을 읽다가 내동댕이쳐버린 전적이 있다, 정말이다!) ㅡ 낡아빠진 램프를 주워 그들을 대신해 소원이라도 빌어주고 싶을 만큼. 예컨대 '시작한 곳에서 끝나버리는' 기이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세 여자는 저항할 힘조차 없고 그러려는 노력 또한 단속적이어서 속내를 들어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충실한 조력이 있다한들 그녀들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ㅡ 그럴 수 없다, 『댈러웨이 부인』만 하더라도 거기서 셉티머스만 죽어나갔듯 여기서도…… ㅡ 그녀들의 세월이 욕망(죽음)한대로 결핍이라는 표지판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을까. 이들에게는 약간의 '시끄러움'만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왜? 끝의 위치가 시작으로 돌아가 버티고 때문이다. 하다못해 그녀들에게는 시뮬라르크 따위도 없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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