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척이나, 전형적이다. 일단 아무렇지도 않게 계절과 풍경을 묘사하고, 발단은 불길하게만 들리는 전화벨 소리나 혹은 예기치 않은 방문자로 시작되며, 경찰이든 뭐든 현역이 아닌 주인공은 그의 커리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린다, 뭐 이런 패턴. 아,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을 괴롭히는 그만의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할리우드 영화가 좋아할 법한 부드러운 안착의 클리셰 ㅡ 『악녀를 위한 밤』도 매한가지군. 여기까지가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느낌이다. 얼마 전 할런 코벤의 소설을 접하면서 왜 내가 그의 첫 작품부터 읽질 못했을까를 후회했었다. 자, 이제 존 버든의 첫 '데이브 거니 시리즈'인 『658, 우연히』를 지금껏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것 역시 후회스럽다는 고백이 남았다. 코벤 씨에게, 그리고 '댄스 시리즈'의 디버 씨에게도 역시 미안한 말이지만 ㅡ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는 나중을 기약하고 ㅡ 나는 이 전직 광고회사 사장님 쪽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싶다. 조금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만큼 차갑고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의 담도를 부러 오락가락하게 조절하고 딱 질리지 않을 정도로만 옆길로 샜다가 금세 돌아오는 패턴(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예를 들 수 있다)을 보임으로써 할리우드의 방정식을 충족시키고 있다. 동시에 장광설이 없어 읽기 편하다. 하지만 이렇게나 평범한 소설인데도 재미있다. 재미있으면 된 거다,

라고만 하면 충분치 못할 테니까 조금 더 적는다. 일단 ‘가족이라는 무리 안에 있는 어떤 괴물’이란 명제를 집단적 구속력이 강한 테두리 안에 넣어놓고(무슨 말인지는 읽어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지켜본다. 그리고 여기에 조금은 어설픈 조합인 것처럼 보이는 '드러나지 않은 조직'을 합체시킨다. 예상하다시피, 결과는 전혀 어설프지 않았다. 헤살이 될까봐 망설여지긴 하지만, 한번 주먹을 쓰면 절대(!) 일어설 수 없게 만들고 반전이 없는 것이 반전이었던 영화 《테이큰》을 기억할는지. 물론 이 소설에서 리암 니슨식의 과격한 액션이 나온다는 건 아니다. 포인트는 ……에 있다(영화는 그렇지 않았지만 『악녀를 위한 밤』의 주인공은 범인에게 약점 ㅡ '멋진 사진들' ㅡ 을 잡히는데 그것이 나중에 전혀 언급되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또 영화의 스피디한 전개만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독자를 잡아끄는 뭔가가 있다. 그게 대체 뭘까. 내 결론은 '희한한 조합'이다. 멕시코인 정원사와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곡, 주인공의 약점을 잡는 범인의 다소 어리둥절한 방법, 고전적인 자그마한 트릭, 증명하기 위해 쓰는 말인 증언의 이면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범죄.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목을 자르고 도주한 멕시코인 정원사라니, 이 문장만 보면 엄청나게 해괴한 조합으로 들릴 테지만 단 하나, 이야기에는 '사람의 품질'이 간섭한다. 또 「깜짝 놀랄 일이 있어」가 될 수도 있고 「보지 않은 건 믿지 마」가 될지도 모르는 '눈을 꼭 감아'라는 말이(원제: shut your eyes tight) 하나 더 첨가되고. 들것이 필요한데도 반창고로 생채기를 숨기는 셈이다.

가이 리치 감독의 《스내치》를 봤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이건 브릭탑의 돼지우리잖아?」 하고. 돼지 농장을 갖고 있는 마피아 두목 브릭탑이 시체 처리를 위해 돼지들에게 몸뚱이(?)를 던져주면, 녀석들은 야금야금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사람의 품질'이 상품(上品)이냐 하품(下品)이냐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이용해먹을' 것인가가 드러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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