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궁리 공동선 총서 1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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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도 교묘하지만 지젝의 논의는 절실하게 동작한다. '불가능의 재구성' 내지는 '가능의 재구성'을 담고서.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을 영화로 만든 알란 파커 감독의 《더 월(Pink Ployd The Wall)》(1982)을 보라. 영화에는 코드화된 삶, 벽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강제와 억압, 전쟁의 고통, 컨베이어 벨트 위의 학생들……이 등장한다 ㅡ 거기서 우리가 하는 건 '망치의 행진'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벽은 허물어진다. 실제로 무너졌는지 아니면 그런 의지를 보여 주려는 건지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해석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스운 건 벽을 부수려는 의지나 논의 또한 '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밖으로 나가려는 파리가 창문이 닫힌 것도 모른 채 자꾸만 투명한 유리에 몸을 던지듯이. 진부한 말이지만, 벽이 존재함으로써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가능하고 가치를 갖는 게 아닐는지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얼음을 깨뜨리기 위해선 먼저 물이 얼어야 하지 않겠나.

 

 

공동선은 저에게 있어 투쟁의 문제입니다. 공동선은 저에게 '자유를 향한 공동 투쟁'을 의미합니다 (...) 우리 스스로가 이방인이 되어봄으로써 어떻게 공동선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주제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 예를 들어, 오늘날 프랑스의 어느 보수주의자도 「나도 68혁명 현장에 있었어. 나 또한 물론 시위를 했지. 하지만 후에 나는 현실주의자가 되었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경계를 흐려버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재사유(rethink)하는 것 말입니다.


ㅡ 본문 p.195-209

 

 

그래서 「사회 · 정치적 공간 안으로의 배제된 자들의 침입이 곧 민주주의」라는 지젝의 말은 힘을 얻는다. 이것은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무사유로 인해 전체주의가 발생한다」와 궤를 같이 한다. 그녀가 말한 '철저한 무사유'는 바로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음'을 의미하므로. ……사회는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것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그런 (윤리적)표준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논의들이 필요한 거겠지. '공동선'이 무시되고 '최고선'이라는 것이 존재할 땐 누구나 그것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알게 된다. 최고선을 좇는 이들은 그들 스스로가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최고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미 그들이 배제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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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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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괴상한 버릇(편견)이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은 읽지 않는다는 것. 그게 조금씩 깨지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로 시작해서 이제 온다 리쿠로도 넘어오는 중이다 ㅡ 이 『달의 뒷면』에서 인간의 수용이란 것에 대해, '정보의 취사선택' 운운하는 부분은 좀 진부하다고 느꼈고, 게다가 소재도 진부한 '현대인의 습성'에다가, 화장(火葬)을 하고 봤더니 유골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에피소드도 그랬다. 그런데도 이 소설, 재미있다……. 본문에서 사람이 실종되는 것을 '도둑맞는다'고 한 건 어째서였을까. 왜 피동의 형태로 표현된 걸까. 등장인물 교이치로처럼 일기를 써 자신의 1분 1초를 반추하지 않으면, 내가 나임을 오롯이 만족하지 않으면 무엇인가에 '당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달의 뒷면』을 지배하는 '텍스트(책)와 물'의 측면에서 봤을 때 자꾸만 편해지려는, 그래서 반대로 집(나) 안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 '나르시시즘의 뒷면'을 보여주려 한 것인지. ……그나저나 소설 속에서 왜 하필 문학작품의 제목으로 끝말잇기하는 장면을 넣은 것일까. 왜 하필 물이 차오른 곳이 도서관이었을까. 왜 하필 교이치로의 창고에서 낡은 LP를 보여준 것일까. 내가 보기에 '달의 뒷면'이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다 ㅡ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 어쨌든 『달의 뒷면』을 지배하며 가장 크게 드러난 물질은 '물(水)'이다.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이 물을 두고 부드러움을 간직한 우월적인 것이라고도 했다가도, 물은 난폭하다며 '물 속에서의 승리는 바람 속에서보다 더 드물고 위험스럽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책에 이런 말을 써놓았다.

 

 

사람과 세계의 싸움에서,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쪽은 세계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계는 나의 도발(挑發)이다'라는 공식을 선언함으로써, 쇼펜하우어의 교훈을 완전히 하고 (...) 나의 날카롭고 뛰어난 지도력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므로 나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ㅡ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자, 그럼 다시 소설을 보자. 작품 후반에서 남겨진 세 사람은 스스로가 '도둑맞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도둑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ㅡ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을의 다른 사람들은 실종된(도둑맞은) 그 기간 동안만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그에 대한 자각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럼 남는(남겨진) 문제는 빤하다. 세상살이 하찮다면 하찮은 것이지만, 내가 아니어도 별 상관 없다는 듯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질타, 남은 교이치로 · 다몬 · 아이코를 내세운 정수리에 침 놓기, 비(非)활자화에 대한 아우성, '다수파'라는 것에 대한 동경과 거부감, 개인(個)과 공동체(共)를 모두 소망하는 이율배반…….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반대급부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래서는 그저 편할 대로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은 이 소설은 정신병(혹은 편집증) 환자 몇의 소동극이었습니다, 하고 에필로그에 크게 써놓을 수도 있다는 거다. 이런 식이라면 앞서 '텍스트(책)와 물'이라 언급했던 부분도 확대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달의 뒷면』, 정체가 뭘까. 검은색과 흰 색의 정중앙에 서서 잿빛을 띠는, 어디로든지 튀어나갈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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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카프카 평전 - 실존과 구원의 글쓰기 서강인문정신 16
이주동 지음 / 소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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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씀으로써, 낯설고 부조리한 세상을 텍스트의 서사 안으로 끌고 들어온 카프카였다. 그리고 남들이 잠든 밤에 홀로 깨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카프카 평전』을 집어 들었을 땐 '평전'이란 단어가 주는 시간과 압력에서였는지 이유 없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수수께끼와도 같은 그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카프카란 인물 자체도 꼭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에 미쳐 이 두꺼운 평전에 빠져들었다. 초인 혹은 거인이었던 아버지의 반대를 비롯해 사회와 세상이란 굴레 속에서 그를 존재하게 한 건 언제나 글쓰기였다.

 

 

불행하고, 불행하다. 하지만 좋은 생각을 했다. 한밤중이다 (...) 불이 켜져 타오르는 램프, 조용한 집 안, 어두운 바깥, 깨어 있는 마지막 순간들, 그것은 나에게 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비록 가장 불행한 권리이긴 하지만. 나는 이러한 권리를 서둘러 이용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자꾸만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것처럼 극히 자연스런 귀결. 물론 카프카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윤리(도덕)적 문제로 간주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상상 속에서도 가능하기 쉽지 않은 부조리함을 활자화하면서 그것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통 또한 보여주었다 ㅡ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열린 해석'으로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특히 그의 작품 「변신」을 보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 말이다. 부조리한 데포르메의 충격이 주는 섬뜩함은 언제 읽어도 우리로 하여금 질겁하게 한다. 게다가 그와 함께 조직으로 대변되는 사회구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그들이 벌레로 변한 주인공보다도 낯설게 다가오지 않던가. 그러니까 당연히 당시 사회체제와 맞물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여기서 '함몰된 개인'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ㅡ 어찌 「변신」의 경우만 그렇겠는가, 하고 느껴지긴 하지만.

 

 

그는 1922년 (두 번째)유언장을 쓰는데 그 후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카프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되 자신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가 키르케고르의 책을 자주 반복해서 읽은 것은 그의 삶이 아버지와의 갈등, 약혼자와의 파혼, 여러 번의 졸도, 세속적이고 범속한 것에 대한 거부, 소외된 삶, 부족한 신앙심에서 오는 불안,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다가온 인간적인 절망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카프카의 삶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p.761). 후두결핵으로 죽기 전 카프카는 그를 따랐던 클롭슈토크에게 모르핀을 놓아달라고 소리쳤고, 그는 카프카의 분노에 마취제인 판토폰을 투여했다. 그러자 카프카는 이렇게 외쳤다. 「속이지 말게. 자네는 내게 해독제를 주고 있잖아! 나를 죽여주게. 그렇지 않으면 자넨 살인자야.」 그리고 클롭슈토크가 주사기를 씻으로 침대에서 멀어져 가자 그는 떠나가지 말라고 했고, 클롭슈토크는 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카프카는 내처 말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가네.」

 

 

「변신」 · 『소송』 등을 쓴 그가 죽었다는 것은 ㅡ 그의 글쓰기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가 그렇겠지만)이제 글로만 카프카를 만날 수 있는 나는 멀리 있는 그에게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의 여동생이 했던 말로 찬사 아닌 찬사를 하려 한다. 「이리 좀 와 보세요! 그것이 뒈졌어요. 저기 누워서 완전히 뒈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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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에 관한 검은 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검열에 관한 검은책
에마뉘엘 피에라 외 지음, 권지현 옮김, 김기태 감수 / 알마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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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선정한 ‘인터넷 감시국’에 4년 연속 선정됐다. 온라인상에서 표현의 자유와 자유로운 인터넷 접근 등이 침해되고 있다는 뜻이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나는 꼼수다’에 대한 법정소송 등을 선정이유로 꼽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12일 연례보고서인 ‘2012년 인터넷 적대국’을 발표했다.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 명단인 셈이다. 가장 검열이 심한 인터넷 적대국에는 북한, 미얀마, 중국, 쿠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베트남 등이 꼽혔다. 한국이 포함된 ‘인터넷 감시국’은 적대국보다는 한단계 낮지만 여전히 인터넷에서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운 국가들을 뜻한다. 이집트, 러시아, 말레이시아, 호주, 프랑스 등도 인터넷 감시국에 포함됐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009년 이래 계속 우리나라를 인터넷 감시국으로 지정해 왔다.

 

기자회는 우선 급증하는 온라인 게시물 삭제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북한과 관련된 온라인 게시물 삭제요청은 2009년 이전 연평균 1500건에서 2010년 8만449건으로 훌쩍 뛰었다. 기자회는 삭제 요청을 하는 주체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불투명성도 지적했다. 2011년도 들어 9월까지 150건이나 되는 이적표현물 관련 수사 건수에도 우려를 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북한 트위터 계정인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RT)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정근(24)씨 사건이 꼽혔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문제에 대한 인터넷 검열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인터넷 감시국 선정의 중요한 이유가 됐다. 지난해말 위헌 판결이 난 트위터 선거운동 규제와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법정소송에 휘말린 김어준씨 등 나꼼수 멤버들의 사례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지난 달 실린 한겨레신문의 한 기사다. 빅브라더건 파놉티콘이건 뭐건 간에, 정말 지긋지긋하게 많이 들어온 말이다. 언론과 책을 비롯한 텍스트, 영상물, 노래, 그림 등에 대한 검열이 뭐 하루아침의 일이던가 ㅡ 아직까지 '불온서적'이란 게 있을 정도니. 한국사회는 특히 자기검열을 의심하는 타자검열이 판을 치며 서로 드잡이를 하고 있다. 인터넷의 기사를 삭제하고 방송에 나온 출연자를 '아웃'시키는 일은 이런 축에도 못 끼는 듯싶을 정도다. 어두운 군부독재를 거쳐 이제 숨 좀 쉴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찰나 SNS에 불어닥친 검열의 폭풍과 인격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작태를 보라(물론 자기검열이 모든 것 위에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그것만이' 올바른 해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각설하고 책으로 돌아가서 보자면, 무척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출판물과 영화산업의 검열, 광고심의, 인터넷의 자기검열, 종교적 모독과 관련된 검열과 소송 등 온갖 검열에 대한 것은 모두 들어있다. 물론 해결책은 쉬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검열을 위한 검열이란 어불성설이다. 이 『검열에 관한 검은책』의 서두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들이 그것을 ㅡ 이 책의 모든 것을 ㅡ 설명해준다.

 

 

(...) 불온한 서적들은 금지시키거나 유통을 제한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무런 예외 없이 모든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대신 경고나 서문, 반대 의견을 끼워 넣으면 된다. 「이 책은 그릇되고 천박한 반유대주의적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고 곧장 자살이나 살인을 저지르면 안 됩니다. 다른 해결책도 있습니다. 저희에게 연락주시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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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총 AK47
마쓰모토 진이치 지음, 이정환 옮김 / 민음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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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얘기지만 과거 K 사(社)의 P자동차는 '너무 잘 만들어서 실패작'이었다(고 들었다). 고장이 없어 소비자의 입장으로서는 유지비 내지는 수리비가 적게 들어갔던 것인데, 물론 적절치 못한 비유지만 이 AK47은 기관 부위에 어느 정도의 화약이나 먼지가 남아 있어도 별 지장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미숙한 어린 소년들도 총을 쉽게 다룰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경우는 비슷할 것이다……. AK. 압토마트 칼라시니코바(Avtomat Kalashnikova,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잔고장이 적고 어떤 경우에서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동소총. 열 살도 되지 않은 '병사'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흉기다.

 

 

 

 

 

쓰모토 진이치가 쓴 『칼라시니코프(カラシニコフ)』는 전 2권인데 이 책은 제1권을 번역한 책이라고 한다. 원저 2권의 내용을 대강 살펴보니 '악마의 총' AK47의 개발자의 의도와 다른 유통을 비롯 실패한 국가에 대해 ㅡ 거시적 · 미시적 관점이 모두 존재한다 ㅡ 적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생산이 용이하고 조작이 쉬워도 AK47이 '악마의 총'이 아닌 '좋은 AK'로 정의될 때야말로 비로소 이것은 좋은 도구라는 개념이 유효하다는 거다. ……실로 이 책을 읽으면서 혼동이 됐던 것은, 무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가 'AK 계열'로 분류되는 것인가 아니면 우선적으로 'AK 계열'에 속하기 때문에 무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거였다. 총이 무너뜨릴 수 있는 국가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다. 이것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 왜 이 AK가, 총이, 인간과 국가에게 어떤 의미로 스며들었으며 어떻게 정의되었는가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현재 AK를 중심으로 다양한 총을 생산 중인 이지마슈 사(社)에서는 ㅡ AK의 개발자 칼라시니코프가 설계 책임자를 맡고 있단다 ㅡ AK나 저격용 총, 기관총 등의 군용 총은 정부의 발주가 있어야 비로소 생산하는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비단 이지마슈가 아니더라도, 또 총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것이 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양보해서 이해는 한다고 해도 용납이 되질 않는다.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인간이 만들고, 팔고, 사는 구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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